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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컬리너리

[The Chef] 가능성을 뛰어넘는 도전!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 김순희 셰프


1986년 어느 봄, 호텔 한식당에 첫 발을 들인 뒤 젊은 시절 한식과 함께 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캄캄한 밤하늘을 보면서 퇴근하자마자 새벽별을 보고 출근하는 생활이 익숙하다 못해 이골이 났다. 조찬이 예약돼 있는 날이면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한식은 정성스런 음식인지라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면 티가 나게 되니 대충이란 있을 수 없다. 메뉴, 식재료의 특성, 단골 고객의 취향,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의 무게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만큼 한식에 정통한 김순희 셰프다. 이런 그의 성실성과 꼼꼼함을 알기에, 정년퇴임을 훌쩍 넘기고도 호텔에서는 9년째 김순희 셰프의 자리를 유지해줬다. 젊은 날의 청춘과 열정을 다 바쳐 호텔 한식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김순희 셰프는 호텔 한식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아랫배가 묵직하게 당겨 오면서 약간의 통증도 느껴졌다. 병원에서는 무거운 물건은 절대로 들면 안 된다고 했다.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신신 당부를 했는데도 기어코 출근을 하고야 말았다. 얼마 전 자궁에 혹이 발견돼 자궁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터라 봉합해 놓은 곳이 여간 욱신거리는 게 아니었다. 지금껏 주방 일을 겁내본 적이 없으니 조심한다고 해도 일의 강도는 여전했다.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신경질적인 통증과 함께 하혈이 시작됐지만 해야 할 일은 모두 마무리 짓고 병원으로 서둘러 갔다. 입원한 다음 날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육회가 없다고 야단이 난 모양이다. 분명 어제 다 확인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다시 주방에 가 보니, 저기 버젓이 놓여있지 않은가? 내 상황을 모르는 바 아닌데 굳이 직접 와서 찾아내라니... 눈칫밥은 직장생활에서 으레 있는 일이려니 하며 나를 주방에서 밀어내려고 눈엣 가시처럼 굴어도 눈 하나 깜짝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씩씩거리며 상사를 찾아가 팔을 잡아 끌었다. 옳고 그름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성미인지라 일을 크게 한 판 벌였다.


운동선수에서 셰프가 되다
소싯적에는 꽤나 운동 잘한다는 소릴 듣고 자라서 초, 중, 고 학창시절에는 운동선수로 뛰었다. 전국체전에서 넓이 뛰기 선수로 출전해 전국 2위에 오르기도 하고, 고등학교 3년을 핸드볼 선수로 기량을 뽐냈다. 학교에서 하는 각종 체육관련 행사는 도맡았을 정도로 타고난 운동 신경과 체력이 좋았다. 하지만 운동을 업으로 이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손맛이 좋았던 어머니는 충주에서 식당을 운영하셨고 추어탕, 올갱이국, 꿩만두, 두부, 청국장을 직접 만드셨다. 따뜻한 아랫목은 손님상에 오를 청국장에게 내어주고, 충주의 명물인 꿩만두도 직접 빚어 만들었다. 그 덕에 어릴 적부터 정성껏 재료를 준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요리에 재미를 느꼈고 특히 홍두깨 하나만 있으면 국수가락을 뽑는 실력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1986년은 대학에 조리과가 신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땄다. 그 무렵 롯데 호텔에서 근무하시던 친척 한 분이 한식을 제대로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면서 삼청동에 있는 남문집을 추천해주셨다. 당시에 남문집은 청와대 손님들과 정재계 손님들을 받던 유명한 궁중 한정식집이었다.


제대로 된 궁중요리를 배울 생각에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배웠고 명성왕후의 상궁을 지낸 스승으로부터 구절판을 전수받아 본격적으로 한식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던 중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의 초대 회장의 부친이 손님으로 방문해 김 셰프의 재능을 알아보고 킹스 뷔페의 책임자로 발탁하며 호텔 한식당에 첫 발을 들였다.



운동선수에서 셰프가 되기까지 30년 넘게 호텔 주방에 몸담으면서 그를 지탱해준 것은 다름 아닌자식과도 같은 후배들이었다. “한식 주방은 부침이 심한 주방인데 5년 동안이나 한 팀을 이뤄 저를 받쳐주고 있으니 후배들이 없으면 저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팀웍을 다지는 데 운동만큼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주방 식구들과 회식을 할 때면 식후 볼링이나 탁구 경기를 하며 팀웍을 다지지만 나이 차로 결코 밀리는 법이 없다. 정글과도 같은 주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과 끈기, 팀웍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순희 셰프는 호텔 주방을 벗어나면 후배들과 격 없이 어우러져 지내지만 주방에서만큼은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이다.


“요리사는 기본이 흐트러지면 오래 갈 수 없어요. 주방이라는 공간은 칼과 불을 다루는 곳 이므로 항상 위험이 산재하죠. 그래서 주방에 들어온 지 적어도 1년이 지나야 칼을 잡아볼 수 있게 합니다. 그 전까지는 식재료를 받아와 전처리하고 선입선출을 몸에 익히면서 재료 관리, 냉장-냉동고의 온도를 점검하는 기본적인 일부터 수행하게 되지요. 모두 사소한일 같지만 사실 굉장히 중요해요. 기본이 없이는 개인을 넘어 주방 전체가 엉망이 돼 버릴 뿐 아니라 사고의 위험도 커집니다. 주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호텔 한식당 영업을 종료합니다.’
그랬다. 모든 주방이 대동소이하지만 특히 한식 주방은 예나 지금이나 정글이다. 불과 칼을 다루는 긴장 속에서 하루 12~14시간 씩 근무 하지만 호텔의 모든 주방 가운데서도 유독 한식 주방만큼은 대우가 시원찮았다. 요리 한 가지를 완성하기 위해서 오랜 준비단계를 거쳐야 하는 만큼 식재료 하나하나 다듬고, 삶고, 무치고 잔일이 많은 까다로운 음식이지만 항상 곁에 있어 특별함을 느끼기 어려운 ‘한식’이기 때문이다.


정성을 많은 쏟는데 비해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열악한 시설과 인력난에 허덕이면서 구멍 난 주머니 취급을 받던 게 마치 엊그제 같다. 1980년대 무렵, 정부는 특급호텔에 한식당을 의무적으로 운영하게 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데 한식을 계승하고 발전 시키기보다 형식적으로 갖추는 데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호텔 한식당 의무 규제가 풀리자마자 영업 손실을 이유삼아 줄줄이 문을 닫았다. 몸 담았던 한식당이 운영 종료되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양식당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니 마음이 좋을 리 없다. 침통한 날들이 몇 해나 흘렀다.


호텔 한식당, 재기에 성공하다
한식당이 문을 닫았다고 해서 호텔 내 한식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연회, 웨딩, 조찬등 다양한 모임과 행사에 한식이 빠질 수 없었다. 김 셰프는 마음을 다잡아 다시 재기를 노렸다. 어떻게 해서든 호텔에 한식을 살려놓고 싶었다. 함께 일했던 한식 셰프 여럿이 모여 연구회도 만들고 기존의 한식을 조금씩 변형 시켜가며 사진과 레시피를 남겼다. 한식을 전하기 위해 일본과 홍콩 등 해외를 오가며 쌓았던 경험을 꺼내 실전에 적용해보기도 했다.


주말이면 1000명 이상의 고객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힘들기는커녕 기운이 펄펄 솟았고, 고객들의 컴플레인 마저도 고마웠다. 또한 단골 고객들의 메뉴 정보를 기록해놨다가 다음 번 방문 시에는 이 전과 중복되지 않는 새로운 메뉴로 제공하는 등 고객들의 식성과 반응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러자 시간이 갈수록 음식에 대한 좋은 피드백이 쌓이기 시작했다. 김 셰프를 먼저 알아주고 찾아주는 단골 고객이 생기고 회사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자체만으로 뿌듯한 성취감에 탄성이 절로 났다. 정년을 맞았지만 회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승진 인사까지 내면서 그녀가 더 머물러주기를 바랐다. 결국 그의 오랜 염원을 담아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의 한식당 안뜨레가 문을 열었고 현재 김순희 셰프는 안뜨레의 헤드 셰프로 활약하고 있다.



다시 불붙는 한식의 위상
정부가 추진하는 한식 세계화로 인해 한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사실 ‘되살아났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한식의 인기는 어느 때 보다도 정점을 찍고 있다. 한식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한식 주방에는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한 사람이 여러 몫을 하는 것은 물론, 이마 저도 여의치 않으면 파트타임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32년 넘게 한식 주방을 지키면서 많은 사람이 김셰프의 손을 거쳐 갔다.


투닥거리며 싸우면서도 잘 배워나가 주방장이 된 후배들도 있지만 다른 주방과 똑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더 고된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며 떠나는 후배들도 여럿 봐왔다. 그만큼 한식은 사명감없이는 단 하루도 버텨낼 수 없는 곳이다. 그래도 한식이 대세인 요즘은 다른 주방에서도 한식을 배워보고 싶어 지원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으니 가히 한식의 인기가 실감난다. 호텔 한식도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격식을 갖춘 궁중음식에 무게를 뒀을 뿐 아니라 외국인의 식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얼큰하고 매콤한 맛을 한식의 기본으로 삼았다면 점차 서양 스타일의 요리를 접목하고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는 모던 한식으로 갖춰 가는 모양새다.


음식도 사람도, 시대에 맞게 유연성 갖춰야
호텔에서 한식이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는 시대의 요구를 흡수하지 못한 데에 있다. 음식도 사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단지 고여 썩을 뿐이다. 한식은 지역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고 건강에 이로운 음식이므로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새롭게 시도해 본 한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단호박을 구워 내 속을 파고 호박죽을 담는 그릇으로 활용해 보기도 하고, 잣을 갈아서 두부를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서양식의 주재료인 랍스터와 치즈가 한식의 새로운 재료가 되기도 했으며 국적을 떠나 다양한 조리법이 한식을 요리하는데 다양한 영감을 불러왔다. 일본의 한 호텔에서 선보인 한식으로는 와사비 대신 된장을 사용하고 깻잎, 양배추, 김치, 지단, 케일, 새송이 등 쌈밥 재료를 활용한 한국식 초밥이 있다.

한식의 발전을 여기에서 멈추지 않게 하려면 우선, 우리부터 한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한 때 호텔의 조리사들마저 한식을 경시하곤 했으니 그 조직 내에서 한식이 발전할 수 있었겠는가. 5성급 호텔의 총주방장은 대부분 외국인인 경우가 많아 한식 주방에서도 관리자가 될수록 영어는 반드시 할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틈틈이 영어공부를 해 미팅에서 할 말은 문장을 통째로 외워 들어갔다. 시대의 흐름에 한식이 변했듯 이제는 한식 조리사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 상에 다가설 필요가 있다.


Epilogue.
Dear.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마인드와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변화가 반드시 찾아 올 것이며 그 변화는 나를 넘어선 조리인의 긍지를 일깨워 줄 수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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