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내 대학 동기는 따뜻한 이집트로 역사 여행을 떠났다. 현명한 선택이다. 그런데 나는 정반대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서늘한 프랑스 중북부로 떠난 것이다. 그는 나일 강을 뒤지고 있는데 나는 루아르 강을 따라 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지난 연말 직전에 한 수입사에서 루아르 지역 와인을 신규 론칭했는데, 필자는 그 매력에 쏙 빠지고야 말았다. 결국 글을 써야만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혔고, 이 엄동설한에 을씨년스런 프랑스 중북부로 ‘글 여행’을 떠나게 됐다. 애꿎은 독자 여러분들까지 내 겨울 여행의 동반자가 되실 것이나,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멋진 이야기와 멋진 사람, 멋진 와인이 있으니까~! 대망의 2020년을 여는 새해 첫 와인,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나의 신년 선물은 프랑스 루아르의 명품 ‘Domaine Charles Joguet’의 와인이다. 루아르 밸리의 정통 레드 와인, 쉬농(Chinon) 예술과 낭만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프랑스의 정원(Jardin de France)’이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이곳은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인 루아르가 유유히 흐르는 프랑스 중북부다. 중남부 ‘마시프 상트랄(Massif Central)’ 고산지대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끝에는 겨울의 서곡이 존재한다. ‘싸늘함’이 ‘서늘함’을 대체할 11월에는 지난달 나바로 꼬레아스 아르헨티나 와인과 짝을 이룰 칠레의 와인을 찾아간다. 안데스 산맥을 서쪽으로 넘으면 광활한 태평양이 눈에 들어오며 그 사이의 좁은 밴드 같은 대지에 신대륙 최고의 포도밭들이 펼쳐져 있다. 칠레다. 강렬한 흙 내음과 진한 과일 향, 든든한 알코올과 탄탄한 구조감은 한 해를 정리하는 각오를 새롭게 해줄 것이다. 일곱 색깔 무지개 밴드, 칠레 와인 평균 폭 100km에 남북으로 약 5000km에 달하는 긴 영토를 가진 칠레~! 북으로는 아타카마 사막, 남으로는 빙하 지형, 서로는 드넓은 대양과 동으로는 6000m 급의 안데스 산맥이 병풍을 드리운 매우 특별한 지형을 가진 국가다. 칠레의 와인 생산 지역은 국토의 중간 부분인 센트럴 밸리에 집중돼 있으며, 북쪽의 아콩카과 밸리에서부터 남쪽의 비오비오 밸리까지 약 7개의 구역이 핵심산지를 구성한다. 연간 400mm 정도의 낮은 강수량과 2200시간 이상의 풍부한 일조량을 자랑하는 칠레는 세계적 수준의 와인을 생산하는 대국이다. 일찍이 그 가능성을 간파한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낮은 인건비, 높은
이젠 완연한 가을이다. 하늘이 맑고 높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 살짝 느껴지는 한기는 지난 여름의 열기에 대한 기억을 무색케 한다. 필자의 ‘명가의 와인’은 늘 계절을 따라가니... 서늘함은 따뜻함으로 궁합을 맞춰 본다. 10월은 남미로 가자. 높은 알코올과 진한 과일 향, 화사한 태양의 열기가 담긴 와인이다. 가버린 여름을 달래고, 다가올 수확의 시기를 축하하는 올 10월 바쿠스 축제는 아르헨티나 와인으로 선택해 본다. 잠 깨는 와인 생산 대국, 아르헨티나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조국이여~!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애절한 선율로 기억되는 국가, 아르헨티나. 라틴어로 ‘은(Silver)’라는 뜻의 나라 이름과는 달리, 많은 경제적 위기를 거치고 있는 국가, 아르헨티나. 장엄한 이과수 폭포를 끼고 있는 관광 대국, 팜파스 대초원에서 수백 만 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는 축산 국 아르헨티나. 이런 다양한 이미지를 넘어 아르헨티나는 우리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세계 5위권의 당당한 와인 생산 대국으로 다가온다. 와인 역사도 오래됐다. 1554년 최초의 포도나무 묘목이 아르헨티나에 식재됐고, 이후 500여 년간 와인은 아르헨티나
이제 최고의 클라이막스가 남아 있다. 여름 복더위의 끝판 왕, 불 볕 더위가 기다리는 8월이다. 작년의 경험 학습치 때문에 공포감마저 엄습해 온다. 커피숍을 거의 안가는 필자도 더위를 피해 하루 종일 스타벅스에서 노트북 펴 놓고 공부했던 게 작년 여름이었으니… 이렇게 뜨거운 8월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스파클링을 소개할 수밖에 없다. 샴페인은 훨씬 더 복합적이고 우아하니, 이런 무식한(?) 더위에는 일반 스파클링이 훨씬 제 격이다. 그렇게 이 달에 엄선한 4종은 어디서나 살 수 있고, 저렴하게 살 수 있고,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바로 그 브랜드, 독일과 스페인의 스파클링 브랜드다. 수천 만 아이싱 버블의 향연, 스파클링 와인 발효 현상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부산물인 탄산가스를 병 안에 가두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인류는 또 다른 큰 축복의 선물을 받게 된다. 바로 발포성 와인, 스파클링 와인이다. 이 부류에도 압력 단위 3바(Bar) 이하의 세미 스파클링 와인 카테고리와 3바에서 6바 사이의 강한 압력을 가진 일반 스파클링 와인으로 구분된다. 세미 스파클링은 사이다나 콜라 같은 발포성이니, 가볍고 보통 스위트한 스타일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보는 철사
지난 5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수상 아베와 함께 일본 전통 씨름인 스모를 관람하는 영상이 TV에 나왔다. 스모 의식 특유의 다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민속 춤 하카(HAKA)가 떠올랐다. 하카는 예전에 마오리족 전사들이 전장에 나가기 전에 추는 춤이었다. 다리를 한껏 벌리고 서서 고함을 내지르고,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치며 가슴을 두드리는 춤을 추는데, 이때 선수들은 눈을 부릅뜨고 혀를 최대한 내밀어 상대방의 사기를 꺾고 위협한다. 박력이 넘치며 격렬하지만 강약을 조절하고, 나무로 만든 창으로 적을 공격하는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하카 춤과 뉴질랜드 생각이 나자, 필자는 그 날 밤 바로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와인을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본격적인 여름을 향해갈 우리 셀러에 꼭 있어야 할 와인이 뉴질랜드 와인이다. 그래서 이번 달은 그 때 마신 와인을 소개한다. 오세아니아 대양주의 싱그런 선물 커다란 대륙 호주 옆에 위치해 있어 작아 보이지만, 뉴질랜드의 면적은 26만 6000㎢로서 크기는 남한의 2.7배다. 뉴질랜드는 17세기 중반 아벨 테스만(Abel Tasman)이
계절의 여왕 5월~! 왜 최고의 계절일까? 장미를 비롯한 모든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변덕스런 4월 날씨보다는 안정되고, 더운 여름으로 진입하는 6월로 가기 전의 5월이 기온도 가장 최적이라 그런 왕관을 씌워줬을까? 와인으로 본다면, 가장 안정되고 무난한 칠레 와인 격이다. 최근 칠레 와인 품질 상승 속도가 놀랍다. 레드 와인의 풍성한 과일 향과 화이트 와인의 화사한 꽃향기, 온화한 알코올과 매끄러운 바디와 타닌~! 그렇다, 5월에는 칠레로 가자~! 대서양을 건넌 까딸랑, 돈 미겔 뷰 1935년 스페인 카탈루냐(Cataluña) 지방 출신의 이민자 미겔 뷰 가르샤(Miguel Viu-García)와 두 아들 아구스틴(Agustín)과 미겔 뷰 마넨(Miguel Viu Manent)은 청운의 꿈을 품고 대서양을 건넜다. 그들은 칠레 수도 산티아고 근방에 양조장 보데가스 뷰(Bodegas Viu)를 설립했다. 그들은 포도를 구입해 양조해서 국내 시장에 자신들의 브랜드 ‘Vinos Viu’로 병입 판매했다. 아버지와 형과 함께 일하던 미겔 뷰 마넨은 1954년 산티아고의 한 양조장을 구입해 독립한다. 사업은 성공적이었고, 칠레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슬로건 “
4월이 되니, 들꽃도 만발하고 비로소 봄이 온 것 같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지만, 그래도 산으로 들로 유원지로 놀러 나갈 수 있다. 유원지에 가면 필수적인 놀이 시설이 공중 전차나 케이블카다. 하늘에 붕~떠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생경스러움이 최고다.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에는 와이너리에도 이런 시설이 있다. 그래서, 공중 트램이 있는 와인 명가 스털링이 이 달의 와인 명가로 뽑혔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보석, 나파 밸리~! ‘1976년 파리의 심판’으로 캘리포니아 와인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나파 밸리(Napa Valley) 와인이다. 나파 밸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지점에 있는 좁은 밸리다. 남북으로 길이 45km, 평균 너비 5km 정도로 좁고 길다. 면적은 약 1만 8500ha며, 캘리포니아 전체 포도밭의 약 8%다. 캘리포니아 와인 총생산의 5%를 담당하나, 캘리포니아 와인 경제의 34%를 담당한다. 그만큼 고급 와인산지다. 양쪽이 산맥으로 막혀있는 나파 밸리는 태양이 내리쬐는 고온 건조한 낮과 서늘한 밤이 이어지는 최적의 기후조건으로 포도는 천천히 골고루 잘 익게 된다. 나파 밸리 안에서도 미세 기후는
이한치한~! 추운 겨울에 차가운 아이스와인과 독일 리슬링으로 겨울 추위를 물리쳤다면, 봄까지 남은 2개월 동안은 따뜻한 뉴월드 지역의 온기로 다가오는 봄을 열어 볼까 한다. 그렇다면 뉴월드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캘리포니아가 그 대상으로 가장 적절하리라. 진한 레드 와인을 시음하며,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미중 무역 분쟁 등 세계 정치사의 주요 현안들도 캘리포니아 와인 맛처럼 감미롭고 부드럽고 매끈하게 해결되기를 소망해 본다. 뉴월드 와인의 맹주, 미국 캘리포니아~!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처럼 오랜 역사를 통해 전통적으로 포도주를 만들어 온 ‘지중해 중심 유럽 국가’들의 와인을 ‘구세계 와인(Old World Wine)’이라고 부른다면, 미국, 캐나다,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 ‘신흥 와인 생산국’들의 와인을 ‘뉴월드 와인(New World Wine)’ 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발견된 신대륙으로의 이민이 활성화되면서, 유럽 이민에 의해 유럽종 포도나무가 건너가 식재됐다. 이들 국가들은 대략 18세기부터 포도주를 상업적으로 생산했으나, 정치, 경제상의 여러 이유로 1950년대
1월에 글을 쓰고 2월 호에 올리니, 마치 신정을 쇠고 맞은 새해를, 구정(설)으로 한 번 더 맞는 느낌이다. 여전히 북극 추위는 맹위를 떨치는데, 지난 달의 아이스와인이 차가운 겨울 왕국 엘사 공주 이미지였다면, 이 달에 소개할 와인은 같은 겨울 왕국 공주지만 좀 더 마음이 순박하고 맑은 이미지의 동생 안나 공주를 닮은 와인이다. 바로 독일의 리슬링이다. 그래, 공주로 가자~! 공주 시리즈는 불패지 않은가?! 공주 이야기를 구성하려면, 공주가 사는 높은 산 정상의 멋진 성과 화려한 궁전이 있어야 하고, 왕이나 황제가 등장해야 한다. 여기에 딱 맞는 양조장이 있으니, 독일 최고의 와인 명가 ‘슐로스 요하니스베르크’다. 새해엔 정갈한 마음을 가지게 하소서~! 20여 년 와인을 마시면서 점차 레드 와인 일변도에서 스파클링 와인과 화이트 와인으로 취향이 변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현상일까? 특히 화이트 와인은 대부분의 음식과도 잘 맞아서 즐겨 마신다. 그러다 보니 보통 드라이 와인을 주로 챙기게 되는데, 겨울에 마시기에는 드라이 스타일이 좀 차갑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살포시 부드러운 감미의 화이트 와인인데, 이 분야의 독보적 명품
“새해가 겨울의 한 복판에 자리잡은 까닭은 낡은 것들이 겨울을 건너지 못하게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민주 운동가 신영복 선생은 칼날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가차 없이 잘라 버리는 것을 겨울의 한 복판에 새해가 있는 것에 비유했다. 올 겨울도 지난 겨울처럼 길고 혹독한 북극 추위가 예고돼 있다. 겨울 초입부터 몰아닥친 강추위에 서늘한 연구실에서 떨다보니, 시원한 아이스와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냉혹한 추위에 동결된 포도로 만든 북국의 아이스와인이야말로 혹한과 새해 첫 달에 소개하기 딱 좋은 아이템이 아닐까? 추위가 탄생시킨 와인, 아이스와인 일반 와인은 더위가 탄생시킨 와인이다. 따뜻한 기온과 풍부한 일조량이 포도를 충분히 익게해 향긋한 과일 향과 넉넉한 알코올 도수를 갖게 한다. 그러나 아이스와인(Icewine)은 정반대로 추위가 만든 와인이다. 한 겨울의 동결된 포도를 이용해 만든 스위트 와인이다. 독일에서 가장 먼저 생산돼 독일어로 아이스바인(Eiswein)이라고 부르는데, 이 글에서는 보다 대중적인 호칭인 아이스와인으로 통일하겠다. 용어상의 디테일로 들어가자면, 띄어 쓰기를 한 ‘아이스 와인’과 붙여 쓴 ‘아이스와인’은 다르다. 아이스 와인은 냉동
단풍이 짙게 물들었다. 온 산이 타는 듯하다. 우리나라 단풍도 멋있지만, 수년 전 이맘때 다녀온, 이탈리아 돌로미티(Dolomiti)산맥의 단풍이 생각난다. ‘작은 알프스’라고 부르는 돌로미티와 그 주변 산과 구릉지대에서 포도밭 풍경과 어울린 단풍은 또 다른 이국적 느낌을 선사했다. 그 때 그곳에서 단풍을 보며 마신 와인이 ‘프로세코(Prosecco)’라고 하는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그래서 이 달의 와인은 프로세코의 명가를 초대해봤다. 추운 겨울이 들이 닥치기 전, 부드러운 풍미의 스파클링으로 동장군으로 맞이해 보려는 나의 선택이기도 하다. 베네또 산골의 스파클링, 프로세코 이탈리아는 한반도처럼 길쭉한 반도인데, 지형도를 보면 국토 전역에 높은 산악지대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활발한 산괴가 그 유명한 알프스로, 알프스의 위용이 다소 완만해지는 산자락 그림같은 풍광 속에 아기자기한 포도밭이 곳곳에 숨어있다. 이 달 주제인 프로세코 와인은 이탈리아 북동부의 베네또 지방 북부 지역의 산골 산악 지형에서 생산된다. 해발 300m의 구릉에는 햇볕이 비스듬히 포도밭을 비추고, 일조량은 좋으나 기온이 서늘해 당도와 산도가 균형을 맞춘 포도가 생산되니, 잘 익은 과일
지금은 일년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며, 그 중 최고인 10월이다. 태어난 달이라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여름의 혹서와 겨울의 혹한도 아니고, 황사와 바람이 많은 봄도 아니고, 차분한 자연의 정취와 결실을 느끼는 가을이 좋은 것이다. 이런 가을에는 차가운 화이트도 무거운 레드 와인도 아닌 중간쯤의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는데, 마침 떠오른 와인이 부드러운 레드 스파클링인 람브루스코다. 그래서 이 계통에서 가장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한 양조장 와인을 소개하려 한다. 다행히 최근 이 와인이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했으니 이런 행운이 또 있으랴~!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과 람브루스코 와인 람브루스코 와인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찾아 갈 곳은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 지방이다. 이탈리아는 남북으로 기다란 국토를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눌 수 있는데, 북부와 중부의 경계 지대에 있는 지방이 에밀리아 로마냐다. 사실, 이 지방은 와인보다는 음악과 예술, 미식의 고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띠, 작곡가 베르디, 지휘자 토스카니니 등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미식 분야에서도 그 유명한 아체또 발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