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일년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며, 그 중 최고인 10월이다. 태어난 달이라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여름의 혹서와 겨울의 혹한도 아니고, 황사와 바람이 많은 봄도 아니고, 차분한 자연의 정취와 결실을 느끼는 가을이 좋은 것이다. 이런 가을에는 차가운 화이트도 무거운 레드 와인도 아닌 중간쯤의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는데, 마침 떠오른 와인이 부드러운 레드 스파클링인 람브루스코다. 그래서 이 계통에서 가장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한 양조장 와인을 소개하려 한다. 다행히 최근 이 와인이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했으니 이런 행운이 또 있으랴~!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과 람브루스코 와인 람브루스코 와인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찾아 갈 곳은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 지방이다. 이탈리아는 남북으로 기다란 국토를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눌 수 있는데, 북부와 중부의 경계 지대에 있는 지방이 에밀리아 로마냐다. 사실, 이 지방은 와인보다는 음악과 예술, 미식의 고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띠, 작곡가 베르디, 지휘자 토스카니니 등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미식 분야에서도 그 유명한 아체또 발사미
태어나서 처음 맞은 초유의 폭염~! 110여 년 만의 최고 기온을 갱신한 지난 여름 더위의 광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9월이지만 이대로 가을을 맞기엔 그래도 아쉬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읊조린다. “주여.. 마지막 남은 과일들이 익을 수 있도록.. 이틀만 더 남국의 태양을 허락하시어.. 짙은 포도주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바로 그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는 곳이 프랑스 북부 론 산지다. 로마 제국의 숨결이 느껴지는 프랑스 남동부 론 지역은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와인 명산지다. 중앙 산악 지대(Massif Central)와 알프스 산맥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론 강이 흐르고, 그 가파른 경사 언덕에 심어진 포도나무는 역사 이상의 감동스러운 맛을 전해 준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발원해 프랑스 남부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론 강은 800km 이상의 긴 강으로, 그 유역에 멋진 포도 산지를 빚어 놓았다. 가파른 경사지에 좁고 길게 형성된 북부 산지와 넓은 구릉지에 여유롭게 퍼져있는 남부 산지로 나뉜다. 북부 산지에는 험준한 비탈만큼이나 꼬장꼬장한 뚝심의 생산자들로 유명한데, 이 달의 손님은 30년 만에 론 최고의 생산자 반열에 오른 행복한 디오니소스
한 여름 밤의 버건디 랩소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밤만 되면 생각나는 와인이 있다. 도멘느 드 라 로마네 꽁띠의 ‘라 따슈’(Domaine de la Romanée-Conti, La Tâche)다. 연구소 앞의 테라스에서 시원하게 칠링해 마셨던 2006년의 여름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다. 부르고뉴의 정갈하고 시원한 드라이 피노는 그야말로 한여름의 와인이다. 더위에 노곤해진 정신을 번쩍 깨우는 산도와 감각적인 타닌, 새침한 피니시까지 온 몸의 감각을 깨우고 힐링시킨다. 프랑스 중동부의 부르고뉴 지방은 선선한 기후와 석회점토질 토양으로 피노누아와 샤르도네가 번성할 수 있는 최적의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수백 년간의 포도 재배, 와인 양조 전통이 있고 그 노하우를 대대로 물려받은 우직한 생산자들이 있다. 전통과 역사성, 자연과 떼루아라는 프랑스적인 관념이 가장 깊이 뿌리내려 있는 곳이 부르고뉴 지방이다. 이런 곳에서 이방인이 적응하고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달에 다룰 이 와인 회사가 더욱 빛을 발한다. 바로 미국인 알렉스 감발이 세운 메종 알렉스 감발 네고시앙 이야기다. 그는 속된 말로 ‘맨 땅에 헤딩’한 경우다. 선대로부터 사업과
전 세계 레드 와인 생산자들의 모범이 되는 곳,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동경과 관심을 받는 곳, 자연과 빈티지의 끊임없는 도전과 평가를 받는 곳, 바로 프랑스 보르도(Bordeaux)다. 그 위대한 와인 산업 공간에 발을 디딘 한 메종(Maison)을 7월의 와인 명가로 골랐다. 보르도 와인 산업의 든든한 기둥, 비뇨블 두르뜨 12만ha의 포도밭을 가진 보르도는 세계 최대의 고급 와인 산지다. 8000여 개 이상의 샤또(Chateau)와 400여 개의 네고시앙(Negociant)이 보르도 와인 산업을 지탱하고 있다. 샤또는 일정한 농지와 건물을 가진 농장으로서 개별 가족 안에서 영농이 이뤄지고 있는 독립형 단위 와인 생산체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에 포도밭 관리와 와인 생산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 지역색이 뚜렷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또한 세대를 거듭하면서 생산 철학과 노하우를 전수해 가기에 샤또는 가장 전통적이며, 가장 ‘보르도스러운’ 생산 단위다. 네고시앙은 본래 와인 도매상으로부터 출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별 양조 시설을 갖추지 못한 포도 재배 농가의 포도를 구입해 자사의 양조 시설에서 생산하고 숙성시켜 병입하는 라인을 갖추게 됐다. 이후
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할까? 유럽 귀족의 위계질서 정도는 꿰차고 있어야 하겠지? 스페인어 마르께스(Marques)는 후작이다. 이탈리아어로는 마르께제(Marchese), 프랑스어로는 마르끼(Marquis)다. 후작은 유럽 작위 5등급 중 두 번째다. 주로 변방의 제후들이나 지방의 대 토후들에게 하사했던 작위다. 이 달에는 리스칼 후작의 와인을 마셔 보자. ‘후작’ 와인, 마르께스 데 리스칼 왜 후작의 와인인가? 50만㎡ 이상의 너른 국토를 가진 스페인은 유럽 대륙의 땅 끝 지역답게 품고 있는 민족들도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민족이 바스크족이다. 이들은 프랑스와의 국경인 피레네 산맥의 북쪽과 남쪽 자락에 나뉘어 살고 있는데, 남쪽 바스크 지역의 최하단에 위치한 곳이 리호하(Rioja)지역이다. 스페인 왕국은 바스크족을 관리하고 프랑스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이곳에 초소를 두고 성을 쌓고 국경을 방어해 왔다. 1708년 국왕 펠리페 5세는 스페인 장군이었던 발타사르 우르타도 아메사가 Baltasar Hurtado de Amézaga y Báñez de Villabaso의 공을 기리기 위해 ‘Marqués de Ri
3월 중순 갑작스레 기온이 영상 20℃ 가까이 급상승하자 서둘러 벚꽃이 만개했다. 그러다가 4월 초 다시 꽃샘추위가 와서 기온은 영하 가까이 떨어지고 비바람이 거세게 불자 벚꽃과 상춘객들은 수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잔잔하던 도심의 밤거리에 폭풍급 돌풍이 불어 간판이 떨어지는 기상 이변도 있었다. 그렇다. 자연은 언제 어떻게 우리 사는 세계의 날씨를 바꿀지 모른다. 그런데 대자연의 변덕과 질투로 새로 탄생하게 된 와인도 많다. 오늘 소개할 마르살라 와인이 그러하다. 지중해의 폭풍이 가져다 준 선물, 마르살라 18세기 후반 영국 리버풀 출신인 존 우드하우스(John Woodhouse)라는 와인 상인이 폭풍의 풍랑을 피해 지중해 한 가운데의 섬 시칠리아의 마르살라 항으로 피신해 들어 왔다. 그는 여관에서 지역의 제일 좋은 와인을 시켜 맛봤는데, 알코올이 높았던 현지 와인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는 오크통 50통 분량의 와인을 구입해 영국 시장의 반응을 보고자 했다. 다만 영국까지 가는 긴 뱃길에 포도주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브랜디를 조금 넣어 보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영국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자 그는 1796년 다시 마르살라로 돌아와서 가난한 현지인
지난 3월 우리는 장애인올림픽인 패럴림픽을 개최했다. 조금은 불편한 몸이지만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고 존경심이 들었다. 장애를 극복하고 도전의 세계로 나아가는 정신을 본받고 싶었다. 그때 갑자기 날아든 비보.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타계했다. 지병인 루게릭병을 극복하고 현대 물리학계 대부가 되기까지 그가 흘린 노력과 인내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래서 준비한 와인 글은 폰테루톨리 ‘시에삐(Siepi)’다. 시에삐는 이탈리아어로 장애물이라는 뜻이다. 호킹 박사를 추모하며 세상의 모든 장애인에게 이 칼럼을 바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와인 명가, 마쩨이 가문 이탈리아 토스카나는 내가 방문해 본 와인 산지 중 최고다.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녹색의 풀밭과 구릉, 그림 같은 사이프러스 나무에 가려진 돌집,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모든 공간을 포도밭이 메우고 있다. 대략 14세기부터 토스카나 지방의 와인들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했으니 700여 년의 와인 생산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곳이다. 그러니 그 긴 역사 속에 오죽 와인 생산자들이 많았으랴마는 오늘은 특별한 색깔을 가진 한 가문을 소개하려한다. 바로 까스텔로 디 폰테루톨리 농장으로
여기는 북위 43도, 프랑스 최남단.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바람은 부드럽고 봄의 습기는 포도나무의 수액을 오르게 한다. 여름의 복더위와 뜨거운 열기는 포도의 색깔을 검게 하고 포도알 안에 당분을 가득 채워준다. 내륙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은 땅을 식혀주고 질병을 예방하며, 벌레가 꼬이지 못하게 한다. 강수량은 연 400mm 전후로 프랑스에서 가장 적은 편이다. 화강암 토양에 뿌리내린 고목들은 깊숙하게 박힌 뿌리에서 수분을 뽑아 올린다. 포도 재배의 천국, 여기는 랑그독(Languedoc) 지방이다. 프랑스 랑그독의 대표 와인 그룹, 제라르 베르트랑 랑그독 지방의 22만 4000ha의 포도밭 면적은 프랑스 최대이며 그 중 7만ha는 고급 AOP 와인 생산 지역이다. 불과 50년 전만해도 ‘가장 싼 가격에 대량’으로 포도주를 생산하는데 주력했던 이곳은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진보와 변화를 경험한 곳이 됐다.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그르나슈 등 고급 품종을 재배하고 양조기술을 혁신하며, 기술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상업 유통망을 혁신해 초대형 슈퍼마켓과 결합, 주문, 생산을 통해 대규모 생산 유통을 가능하게 만든 곳이다. 바로 이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필자가 평화의 샹파뉴 떼땅져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북한의 뉴스에서는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남북 대화를 희망한다는 평화의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그것도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입에서. 이어서 판문점 회담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더니 올림픽 개회식 남북 공동 입장과 공동팀 구성까지 이야기 나온다. 이 글이 발표되는 2월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두 번째 올림픽이 개최되고 남북이 한 자리에서 응원가를 부를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축복의 향연에 나는 평화의 샹파뉴, 떼땅져 건배를 제안한다. 올레~! 전쟁의 포연 속에 핀 샹파뉴, 떼땅져 지난 한 해 우리나라는 정말 다사다난했다. 국정은 문란했고 국론은 분열됐다. 촛불과 태극기가 충돌하고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있었다. 북에서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고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들은 우리를 힘들게 했다. 세상은 정녕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여기 한 와인 회사의 스토리가 반갑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격전지의 자연 경관과 포도밭을 아름답게 본 한 장교가 있었고,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찾아와 결국 그 포도원을 구입한다. 전쟁의 포연
대망의 2018년 새해가 밝았다. 황금개띠 해라고 한다. 개는 충직한 동물이다. 와인 중에서는 어떤 와인이 충직한 와인일까? 자라난 포도밭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품종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와인메이커의 기술을 그대로 반영하는 와인, 그리고 언제나 변치 않는 믿음을 주는 와인, 실패할 확률이 가장 적은 와인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칠레 와인이 떠오른다. 주어진 가격대에서 늘 만족감을 주는 와인. 칠레의 토양을 그대로 표현하기에 초심자도 쉽게 느낄 수 있는 와인이다. 그래서 1월에는 칠레 와인을 마셨다. 황금처럼 고상하면 더욱 좋기에 좀 좋은 와인으로! 소박함의 가치를 아는 와인 농장, 산 페드로 2000년 대 초반 내가 방문한 칠레의 ‘비냐 산 페드로(Viña San Pedr)’(이하 산 페드로) 양조장은 화려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았다. 소박한 칠레의 전통 농가와 양조장의 모습 속에서는 수백 년 스페인 통치하에 유럽 문명의 침탈이 있었음에도 자존심을 잃지 않은 마푸체 문명의 인내의 시간들이 배어 있었다. 방문객들에게 항상 손을 들어 미소를 보내는 양조장 노동자들의 모습 속에는 자기들과 같은 경제적 여건 하의 사람들도 마실 수 있는 저렴하고 편한 와
영화에 나온 슈퍼맨이 우리나라의 땅속을 수직으로 뚫고 들어가 지구의 핵을 지나 그 반대편으로 나온다면 어느 나라로 나오게 될까? 바로 아르헨티나다. 지리학에서는 이 개념을 ‘대척점’ 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지구 반대편의 와인 산지는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며 필자가 아르헨티나를 찾은 것은 2000년도 중반이었다. 비행기로 날아가도 비행시간만 하루가 꼬박 걸렸다. 그 고생을 하고 도착한 멘도사(Mendoza) 라는 지방은 베이지색 집들과 파란 하늘, 그리고 멀리 안데스 산맥의 억센 굴곡이 보이는 낯설고 생경스러운 곳이었다. 안데스의 위용이 만들어낸 아르헨티나 와인 5000~6000m급 고담준봉들이 즐비한 안데스 산맥 인근에서는 어디에서건 높은 산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이미 포도밭의 자체 고도가 높다. 안데스 산지에서 고도는 포도의 아로마, 맛과 농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대개의 뉴월드 산지들은 여름 기간에 매우 덥기 때문에 밤에는 그나마 차가운 바다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고품질 포도가 생산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안데스 산맥 지역은 근처에 바다나 호수가 없기 때문에 고도 효과에 의한 온도 하강 현상에 기댈 수밖에 없다. 즉 남위 30~
"이맘때 시애틀은 늘 안개가 많고 비가 오는데, 지금은 해가 났네요. 햇빛을 즐기세요. 안개가 다시 끼기 전에.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후딱 갑니다. 즐기세요. 마음을 열고 지금 사랑하자구요~!" 탕웨이와 현빈이 주연한 영화 ‘만추’에서 수륙양용 오리차(Duck Bus)의 가이드가 하는 말이 머릿속에 감돈다. 안개로 유명한 시애틀의 날씨는 그래서 또 다른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들어냈나 보다. 요 며칠 단풍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가 내리더니 수은주가 10℃ 이하로 내려갔다. 요즘 날씨는 꼭 시애틀 날씨 같다. 생각난 김에 워싱턴 와인 한 병을 열었다. 그런데! 와인의 향과 맛에서는 따뜻하고 감미로운 훈풍이 불어오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시애틀의 날씨와 워싱턴 와인 사이에는 무슨 간격이 있는 것일까? 어떤 마술이 작용했을까? 케스케이드 산맥이 만든 마술 날씨 그 대답은 바로 시애틀 뒤에 높다랗게 병풍처럼 펼쳐진 케스케이드 산맥에 있다. 만년설로 덮힌 4400m급 Mount Rainier와 3200m급 Glacier Peak를 비롯한 준봉들이 남북으로 오리건주까지 달리는 이 산맥은 그 왼편과 오른편의 기후를 180도 다르게 바꿔 놓았다. 연간 강수량
이슬이 내려 가을이 깊어간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마감을 앞둔 작가의 마음에 분심을 더해 주고, 자정을 넘긴 새벽에 와인 한 잔을 들게 한다. 이달의 와인 ‘콘차이토로 돈 멜초르’다. 순간, 분심은 사라지고 명징한 평정심으로 나머지 원고를 써 내려간다. 취중 원고가 아니다. 취심 원고다. 이슬이 서리로 맺히기 전의 깊어가는 가을의 정서는 이 콘차이토로 와인과 기가 막히게 닮아 있다. 칠레의 뜨거운 태양과 안데스 산맥의 냉기는 한국 가을의 낮과 밤을 그대로 표현해 주나니, 그 정서가 어디 가랴~! 10월, 가을을 타는 남자들에게 콘차이토로 와인을 권하는 이유다. 칠레 농민을 사랑한 선각자, 돈 멜초르 스페인 정복자와 함께 칠레에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이 전파된 것이 16세기였지만, 19세기 중반까지 약 300년간 와인 산업은 큰 발전 없이 영세한 산업 분야로 명맥을 이어 왔다. 그런데 19세기 중반이 지나면서 산티 아고 주변의 유지들이 필록세라로 일자리를 잃은 프랑스 양조자들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칠레의 유력한 지주 가문의 자제들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칠레와인산업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당시 칠레 유지들은 프랑스 보르도로 가서 유학하며 포
장마가 끝났다. 눅눅한 장마 때는 건조함이 그리웠는데 폭염이 시작되니 장마가 그립기도 하다. 요즘의 무시무시한 더위는 시원한 맥주나 칠링된 스파클링으로 해결될 더위가 아니다. 이런 때는 ‘이열치열’이다. 아예 뜨거운 놈으로 마셔 줘야 한다. 섭씨 35도를 넘어서는 남프랑스의 열기가 고스란히 담긴 커다란 돌멩이들이 밤새도록 뜨끈뜨끈하게 포도밭을 달궈 탄생한 와인, 바로 샤또뇌프 뒤 빠쁘다. 교황의 와인, 와인의 교황 Vin de Pape, Pape des vins 14세기 초, 프랑스 남부 아비뇽(Avignon)에 교황청이 설립됐다. 아비뇽이 갑자기 유럽 종교의 중심지가 되자 수많은 가톨릭 지도자들과 순례자들이 몰려들었고 지역의 와인 소비는 급증했다. 역대 7명의 교황들은 와인 생산을 장려했고 포도밭은 확장됐다. 곧 인근에 있던 한 마을이 교황의 여름 별장으로 선정됐는데, 그곳은 와인의 품질로도 유명했다. 2대 아비뇽 교황 요한 22세는 아비뇽 북부 지역에서 온 와인도 즐겨 마셨는데, 이 일대 와인은 자연히 ‘교황의 와인’으로 알려지게 됐다. 1320년, 그는 조용하게 쉴 별장으로 이 지역에 성을 쌓았다. 후일, ‘샤또뇌프 뒤 빠쁘(Châteauneuf-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