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2019년의 끝자락에 우두커니 서서 저 멀리 보이는 알프스를 바라봅니다. ‘시간은 쏜 화살과 같다’라는 말이 실감이 나면서 왠지 모를 세월의 무상함 그리고 평온함 같은 것이 마음을 쓸어 내립니다. 만년을 녹지 않고 간직한 산을 바라보자니 어느새 입김이 차가워진 공기 사이를 가르고 있는 겨울을 실감합니다. 내 안의 따뜻함이 외부의 차가움과 마주하면서 만들어낸 일루젼 같은 입김을 바라보자니 문득 영화 <커피와 담배>가 떠오릅니다. 2003년 개봉한 이 영화는 짐 자무쉬 감독의 앤솔로지* 작품입니다. ✽앤솔로지(Anthology) :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모아 놓은 것. 대게 주제나 시대 등 특정한 기준에 따라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음. ‘꽃을 따서 모은 것’, ‘꽃다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앤토로기아(Anthologia)가 어원. Scene 1 # 영화 <커피와 담배>는 세편의 단편 영화로 이어져있고, 커피와 담배를 매개로 한 11가지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흑백의 영화로 시작부터 테이블 위에 흐드러지게 펼쳐진 담배와 꽁초커피 잔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커피에 중독돼 손을 덜덜 떨면서도 연신 커피
Prologue #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새벽이면 비몽사몽간에 이불을 잡아당기게 됩니다. 꿈속에서도 ‘아 벌써 겨울이 오면 안 되는데...’라며 침대 안으로 침입하는 가을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향해 투덜댑니다. 천고마비의 유래는 은나라 때 흉노족의 침입과 관련 있다고 합니다. 흉노족은 2000년 동안 중국의 각 왕조와 백성들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척박한 초원에 살면서도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은 말에 의한 기동력으로 오랜 기간 위협의 대상이 됐습니다. 기동력을 바탕으로 국경을 넘어 들어와 약탈을 일삼곤 했는데요. 유목민인 ‘흉노족’에게는 겨울이 가장 두려운 계절이었습니다. 초원이 얼어붙는 고난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늘 흉노의 침략을 두려워하던 북방 지역의 중국인들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찔(천고마비)가 가장 두려워!”라고 푸념했는데, 이것이 천고마비의 유래가 됐다고 합니다. Scene 1 # 계절의 변화는 지구의 공전을 통해서 생겨납니다.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로 공전하기 때문에 태양의 남중 고도와 밤낮의 길이가 달라져 생기는 현상이지요. 하루에 1도씩 365일을 끊임없이 경주하면 결국 제자
Prologue #“이것은 수수께끼의 식품입니다. 단 세 가지의 재료로 이뤄져 있으며 주요 제조과정은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맡고 있습니다. 에피타이저로 먹기도 하고 양념이나 디저트로 먹기도 합니다. 때로는 의사들이 병을 치료하는 데 이것을 처방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힌트를 주자면 유제품입니다. 그런데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도 먹을 수 있습니다. 네, 바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입니다.“ Scene 1 #2019년 2월 <BBC Future>에 소개된 ‘아만다’란 이름의 필자가 기고한 글의 일부입니다. 필자는 우리가 흔히 파마산 치즈라고 알고 있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영양과 맛에서 완벽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식품’이란 제목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이를 만드는 데 온갖 노력과 법률적 규제의 결실로 많은 요리사, 영양학자,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이 이 치즈를 두고 ‘완벽에 가까운 식품’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파르미지아노의 맛은 짜면서도 달콤하고 풀의 향도 있지만 넛트의 향도 있습니다. 숙성 기간에 따라 맛과 향도 다른데요. 2년 숙성된 치즈는 생과일 향이 나고 날카롭게 달콤한 맛이 납니다. 3년 숙성된 치즈는 말린
Prologue # 8월의 이탈리아는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텅 빈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나 한국의 광복절인 8월 15인은 이탈리아의 최고의 명절 가운데 하나인 페라고스토(Ferragosto)입니다! 이날은 이탈리아에서는 ‘성모승천일(로마 카톨릭 교회가 성모 마리아의 죄 없는 영혼과 타락하지 않은 육체가, 하늘로 실제 승천한 것으로 가정하고, 의무적 축일로 기념할 것을 교리로 정한 날)’인데, 원래의 기원은 기원전 로마 신을 섬기던 풍습에서 라틴어로 Feriae Augusti라고 합니다. 과거 로마시대 때 아우구스토 황제가 만들었던 8월의 축제가 역사가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8월 내내 축제인 시절도 있었다고 하네요. Scene 1 # 카톨릭의 본산 이탈리아인지라 성모승천일로 지정된 이들의 풍습은 가장 큰 명절로 현재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요. 문득 어젯밤 이탈리아 친구들과 나눈 터키인의 민족 대이동 이야기가 오버랩 됩니다. 이탈리아인 친구인 마르코와 그의 아내 사리나, 프란체스코와 그의 베트남 아내와 고크, 그리고 저까지 다섯이 함께 즐거운 식사를 나누고 토스카나의 전경이 보이는 야
Prologue # 어디서부터 날아왔는지 꽃가루들은 눈송이 마냥 거리를 수놓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이탈리아로 이주 온지 몇 해가 지나면 알러지 반응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뜻밖의 재채기는 제게는 불청객이지만, 피할 수 없는 관문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알바니아 선교여행에서 돌아오는 여정에 마주한 우박이 오버랩 됐습니다. 말펜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사람의 시선을 강탈한 봄날의 우박은 여권심사를 대기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긴장을 한층 고조시켰습니다. 멀리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은 언제나 그렇듯이 조용하게 우뚝 솟아있습니다. 여름을 바짝 추격하는 봄의 향기가 만연합니다. Scene 1 #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 주의 도시 베르가모는 한 때는 베네치아 공국의 도시로 존재해 왔습니다. 밀라노 북동쪽 45km, 롬바르디아 평야의 북쪽으로 배후에는 알프스 산지로부터 공급되는 수력에 의해서 금속, 알루미늄, 자동차, 냉장고, 식품 등의 공업이 발달해 있습니다. 고대에는 ‘베르고뭄’ 이라 부르던 갈리아인의 도시로 롬바르디아 공국의 수도가 된 후에도 비스콘티,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59년 이탈리아 왕국에 의해 통일됐습니다.
Prologue # 시오노 나나미가 사랑에 마지 않았던 ‘주홍빛 베네치아’의 5월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물의 도시’, ‘카니발 축제’, ‘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 베네치아를 부르는 수식어는 저마다 다릅니다. Scene 1 # 산타루치아 기차역은 매일 8만 명, 연간 3000만 명의 이용자를 수용하는 곳으로 유럽과 이탈리아에서 가장 바쁜 기차역 중 한 곳이죠.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베네치아의 한 뒷골목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바람이 불면서 ‘끼익, 끼익’ 하는 소리가 납니다. 보트를 묶어놓기 위해 만들어진 나무로 된 물체가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입니다. 너무 얕아서 파도라고 부르기엔 겸연쩍은 물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합주를 합니다. 평화로운 오후란 책에서 나오는 문장이 아니라 실체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6세기 망망대해 갯벌뿐인 바다 위에 섬을 만들고 다리를 연결해 수많은 운하가 도시 내부의 지역을 이어줬습니다. 118개의 섬, 400여 개의 다리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해상도시가 건설된 것이죠. 하나의 국가로 1500년의 장엄한 시간을 이어온 역사를 지켜온 베네치아의 현재 모습은 15~16세기의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유리공
Prologue # 아침에 눈이 말똥말똥해져 일어나보니,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보지 않아도, 스며드는 빛 없이 고요한 방안의 공기가 이를 확인시켜 줍니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은 일교차가 큰 탓에 온도가 최저로 떨어지는 시간대에 몸의 변화를 감지하고 깨어나는 것입니다. Scene 1 #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다면, 혹은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무엇이 있다면, 이 모든 무의식적 요인들은 불안을 일으키고, 우리의 뇌는 이 문제에 대해서 수면 중에 반응한다고 합니다. 불안은 직접 중추신경계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 변화는 수면 주기와 관련된 신경 화학적, 생화학적 시스템들에 또 다른 작은 변화를 야기시킨다고 합니다. 분절 수면을 일으키는 불안은 우리의 몸과 정신을 복원할 수 있는 깊은 수면의 단계를 방해한다고 하네요. 주로 봄이나 가을철의 환절기에 그런걸 보면, 계절의 변화에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갑작스런 변화는 그 자체가 평온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Scene 2 # 이탈리아는 최근 2019년 경제 전망을 내놓으면서, 대내외적으로 시끄럽고 불
Prologue # 스타벅스, 명실상부 지구 1등 커피 프랜차이즈가 35년 만에 밀라노에 입성했습니다. 여러분은 스타벅스의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알고 계신가요?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게 한 쪽 따리를 잃은 에이햅의 고래를 향한 복수를 담은 서사시적 소설 <모비딕> 속 등장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는데요. 고래를 잡는 배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햅은 복수심으로 불타 동료들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경을 찾아서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항해를 하게 됩니다. 마침내 흰 고래와 3일이나 되는 사투를 벌인 끝에 선장은 작살을 명중시키고도 바다 밑으로 빨려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내용입니다. 여기에 돛대의 밧줄을 담당한 일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멤버를 더해 s’를 붙여 스타벅스가 됐다고 합니다. Scene 1 # 스타벅스의 로고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바다의 인어 사이렌을 형상화했습니다. 아름답고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해 수많은 배를 침몰시키고 죽음의 축제를 벌인 캐릭터인데요. 달콤하고 치면적인 유혹으로 많은 사람들을 이끌겠다는 스타벅스의 의지가 담긴 엠블럼인 셈입니다. 이 세계적 기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