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12월 31일, 다가오는 2021년에는 더욱 부지런하고, 건강을 챙기며, 항상 즐거운 날들만 가득하기를 바랐다. 또한 코로나19의 종식을 기대하며, 외국으로 짧게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엔 그 해를 돌아보며 하지 못했던 것들, 부족했던 것들을 되돌아보며 더 괜찮은 나, 더 나은 다음 해를 기대했다.
하지만 2021년은 시작부터 지루하고 평범함 날들로 가득했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나무의 봉우리에 작은 꽃과 새싹들이 맺히려는 모습을 보며. 턱을 괴고 자주 상상하곤 했다. ‘대체 이 지루한 2021년은 언제쯤 끝나려나…’
11월, 더운 여름이 지나고, 짧은 가을을 지나 비가 내리더니, 갑자기 추워지며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2021년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한 달 남짓 남았다. 필자가 제일 바쁜 이 시기를 견디면 드디어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기대할 수 있는 2022년이 된다.
컨설턴트에게 1년 동안 가장 바쁜 시기가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2월 발렌타인데이, 10월 할로윈데이,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기에 호텔과 레스토랑은 시즌형 이벤트와 파티를 기획하며, 이러한 분위기를 조금씩 느낄 있도록 어울리는 음악들을 선곡해 달라고 요청을 하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11월 초부터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도록 현재 나오는 음악들과 더불어 크리스마스 캐럴을 함께 틀어 달라는 요청과 문의를 하고 있다. 여느 작업에서처럼 많은 크리스마스 음악들을 들으며, 남들보다는 한 달 먼저 크리스마스를 접하고 있는 필자는, 독자들과 함께 재미있는 크리스마스 음악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크리스마스의 시작은 미국이 아니라고?
킬링타임용으로 자주 애용하는 넷플릭스에서 드디어 하나 둘, 크리스마스, 12월 겨울의 감성을 느끼게 하는 영화들이 업로드되고 있다(드디어 볼 것 들이 생겼다). 얼마 전 새로 개봉한 넷플릭스 제작의 ‘러브하드(Love Hard, 2021)’라는 미국의 크리스마스 배경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속 하얀 눈 덮힌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로 장식된 마을을 보며, 필자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설레임을 다시 느꼈다. 영화 속 장면 중, 주인공 조시와 나탈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가족과 함께 이웃집을 방문하며 크리스마스 캐럴 ‘Baby It’s Cold Outside‘를 듀엣으로 부르면서 크리스마스 서정에 한 스푼 더했다.
이 시즌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사랑하는 가족, 이웃, 그리고 연인과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함께 캐럴을 합창하면서 음악을 통해 한마음으로 서로를 축복한다. 마을 사람들과 캐럴을 합창하는 모습. 필자가 생각하는 클래식한 크리스마스 신(Scene)이다. 미디어에서 접하는 모습들만 보면,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 생각했는데(영화와 미디어에선 뉴욕의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로맨틱해 보이더라.) 여러분은 알고 있나? 캐럴을 부르기 시작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라는 것을.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를 기리기 위해 초기 기독교인들은 찬송가를 불렀다. 760년 이후, 유럽의 많은 작곡가들이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쁘게 보낼 수 있도록 캐럴을 작곡했지만, 이 음악은 라틴어로 쓰이고 노래됐기에, 글을 읽고,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중세시대(1200년대)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노래하고 가사를 읽는 것을 불편해 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에도 큰 흥미를 갖지 않았다고 한다.
흔히 우리의 귀에 익숙한 크리스마스 캐럴은 1410년대에 작곡된 음악들로 시작됐다고 하지만, 그 당시 작곡됐던 노래들 또한, 신성한 것이 아닌, 예수의 탄생과 어머니 마리아의 이야기를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담아낸 글을 사용했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에서 부르기보다 집에서 또는 친구와 함께 불렀다고 한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캐럴 음악’은 유럽 지역, 각 마을 내에서 결성된 ‘Waits(마을의 권력자들로 인해 구성된 모임)’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돈을 벌기 위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는데 이때 Waits의 음악을 접한 사람들이 가사의 신성함과 익살스러운 멜로디에 많은 사랑을 받으며 대중화 됐다는 설이 있다.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이야기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벚꽃연금’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난 2017년 버스커버스커 밴드가 ‘벚꽃엔딩’이라는 음악을 발매하며, 그 음악을 작곡하고 불렀던 장범준은 저작권료로 지난 7년간 약 60억을 모았다고 했다. ‘벚꽃엔딩’에 대한 코멘트 중 “시대가 흐르고, 벚꽃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때, 후손들에게 봄의 벚꽃을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노래”라는 찬사를 본 적이 있다.
음악이 하나의 이벤트와 시즌을 대표한다는 좋은 예로,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인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이하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매년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곡이며 역시 ‘캐럴연금’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매년 크리스마스의 기대를 한층 더 증폭시켜주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캐리와 그녀의 공동 작업자인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 이하 아파나시에프)가 공동 작곡한 음악으로 캐리가 1993년 발매했던 ‘Music Box’ 앨범이 히트를 치며 그녀의 기획사 측에서 크리스마스 앨범을 발매해보자는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최고의 아티스트가 시즌형 이벤트 앨범을 발매하는 것에 대해 리스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중, 아파나시에프는 이전에 비교적 많은 아티스트들이 크리스마스 음악을 발매하지 않았으며, 히트를 친 크리스마스 음악은 아직 없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며, 앨범 제작을 꼭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마존에서 기획한 미니 다큐멘터리에서 음악 제작의 뒷배경을 설명했는데, 캐리는 새로운 크리스마스 음악을 제작하기보다는 오리지널 캐럴 커버 음악을 녹음해 발매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1994년 8월, 아파나시에프에 따르면 제작에 참여한 모두가 충분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크리스마스 트리와 불빛을 가져다 놨고, 이곳에서 캐리와 공동 작업자들은 크리스마스 앨범을 발매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며 코드와 멜로디를 작업하는 데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만이 소요됐다고 한다. 음반이 발매되던 시기, 이미 유명 가수인 캐리의 음악을 듣고 팬들에게 이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공유하자면,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1994년 첫 발매 후 25년이 지난 2019년 처음으로 빌보드 Hot 100 LIST 1위에에 올랐다고 한다(2019년 전 미국 외의 헝가리, 호주, 일본, 네덜란드, 노르웨이, 영국 그리고 한국 내에서는 이미 성을 거뒀는데 말이다.)
필자의 뇌피셜
크리스마스는 하나의 장르다
크리스마스 음악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이지?’라고 생각할 것 같은 독자들에게 자그마한 핑계와 설명을 덧붙이자면, 필자의 사업 필드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한다.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들리는 음악들은 대체적으로 공간의 특성상,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쁨과 설레임, 에너제틱한 무드를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쁘고 긍정적인 멜로디가 가득한 음악들로만 구성되기에 한정된 음악을 고를 수밖에 없어 ‘크리스마스 캐럴은 하나의 장르’라며 표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캐럴은 음악을 접근하는 방법에선 신기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냇 킹 콜(Nat King Cole)의 ‘The Christmas Song’과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의 ‘Santa Tell Me’를 앞뒤로 배치해 음악을 들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호텔에서 라운지 일렉 사운드의 음악들이 틀어지고 있는 와중 크리스마스 캐럴인 팝송으로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나와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는 말이다(다행히 크리스마스 캐럴이라 가능한 것이며, 만약 특별한 시즌 외에 어울리지 않은 두개의 장르가 믹스가 된다면 100% 컴플레인이 생길 것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 내에서 듣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음악이 공간에 어울리는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스타일인가’라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설렌다!’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음악을 접할 때 음악에 사용된 악기, 장르, 분위기, 템포를 먼저 분석하게 되는 것은 필자의 직업병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을 위한 선곡 작업을 하면서도, 크리스마스의 설레임을 간접적으로 충분히 느끼지 못한 채 바로 현실로 돌아와 음악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 클라이언트에게 “클래식하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 음악이 아닌, 저희 공간에서만 특별히 들을 수 있으면서, 공간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크리스마스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음악들로 구성해 주세요.”라는 의뢰를 받았다. 현재 그들이 사용하는 음악조차도 평범한 믹스가 아닌 것을 인지하고, 현 플레이리스트와 어울리며, 절대 흔히 들을 수 없는 음악을 찾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클래식, 팝, 재즈를 하나의 장르로 오래 인식된 필자의 음악세포가 분열되기 시작했다. 대체 새로운 크리스마스 음악으로 무엇이 있을까?
하루는 여느 때와 같이 유튜브에 ‘집중이 잘 되는 음악’을 검색하고, 24시간 스트리밍해주는 Chillhop Music을 듣고 있었다. Chillhop Music의 특성(이전 기고에 언급한 적 있다)인 그루비한 일렉비트, 재즈 감성 한 스푼 정도의 코드와 멜로디를 어깨와 목을 ‘둠칫’거리며 감상하다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스쳤다. ‘혹시, 스탠더드 크리스마스 재즈 위에 Chillhop 비트가 가미된 음악을 시도해보면 어떨까?’(아이디어에 대한 음악 서치 중, ‘Christmas Chillhop’이라고도 불리고, ‘Christmas lofi’라고도 불리는 음악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소규모의 팬들에게만 입으로 전해진 음악들인 듯 싶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 음악에 아주 단순한 구성의 편곡이 들어간 음악이며, 멜로디로 충분히 크리스마스를 느끼고 세련된 일렉트로닉 비트들이 가미돼 모던한 분위기를 더 증폭시켜주는 아주 좋은 접점의 음악 믹스였다. 또한 대중화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조금 있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이번 컬럼을 작성하며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 믹스 작업 중에 있다. 현장에 반영을 하기 위해선 아직 보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