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 마케팅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즈의 사이
한편 요즘에는 마케팅과 세일즈, 홍보, 커뮤니케이션의 영역 구분이 희미해져가고 있는 가고 있다. 특히 호텔업계에서는 마케팅을 단독으로 하는 부서를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마케팅 부서에서 세일즈나 홍보의 역할까지 겸임하는 경우가 많다. 한 호텔 마케팅 담당자는 “마케팅은 물론 홍보와 디자인까지 맡아서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아무래도 운영이 더 어려워져 충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무량이 많다 보니 마케팅, 홍보, 디자인 어느 한쪽을 중점적으로 깊이 있게 파고 들기보다 업무를 하나씩 해내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전한다. 세일즈와 마케팅 부서의 결합에 대해서 한 업계 관계자는 “세일즈는 영업 이익과 직결되는 부분이니 만큼 운영 쪽에서 세일즈 부서를 없애기보다 마케팅의 비중을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세일즈에 흡수된 듯 보인다. 그만큼 국내 호텔업계에서 마케팅의 영역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마케팅 지향적 사고와 판매 지향적 사고는 명백히 다른 것이며 세일즈는 마케팅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제품 지향적 기업은 공장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하지만 마케팅 지향적 기업은 시장으로부터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제품 지향적 사고는 ‘제품과 서비스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반면, 마케팅 지향적 사고는 ‘근본적인 고객의 혜택’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닌 ‘미팅에 최적화된 장소’, ‘누릴 수 있는 사치’라는 마케팅 지향적 관념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 교수는 “피터 드러커는 ‘마케팅의 목적은 판매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시장의 필요로 인해 탄생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구태여 판매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판매가 주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기업 외부로 보내는 ‘일방적 과정(One-Way Progress)’이라면, 마케팅은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실을 기업이 파악함으로써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다시 반송하는 ‘상호과정(Two-Way Process)’”이라고 설명했다.
호스피탈리티업계의 핵심 상품, 사람
마케팅의 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호스피탈리티 산업에만 존재하는 마케팅이 있다. 바로 내부 마케팅이다. 내부 마케팅은 외부고객인 일반 소비자가 아닌 내부고객, 즉 기업 내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이다. 직원은 기업의 마케팅철학을 고객에 실천하는 핵심 인물이다. 특히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일선 종업원의 경우 더 그렇다. 내부 마케팅이란 직원의, 직원을 위한, 직원에 의한 마케팅이고, 일반 고객에 마케팅을 통해 제품 혹은 서비스를 어필하는 것처럼 직원에게는 그들의 ‘과업 혹은 직업’을 어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객의 욕구, 필요,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유일한 마케팅 공식은 내부 마케팅에도 고스란히 적용돼야 한다.
정 교수는 “환대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은 ‘사람’이다. 경영학과는 사람을 다루는 일을 인적자원관리라 구분하지만 호스피탈리티업계에는 내부 마케팅이 있다. 디즈니랜드의 철학 중 하나로 ‘직원을 고객 앞에서 연습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이는 곧 완벽하게 준비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호스피탈리티업계에서 어설픈 직원이 서비스하는 것은 결함있는 제품을 시장에 내보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면서 “내부 마케팅의 핵심은 ‘권한부여(Empowerment)’”라고 이야기한다.
권한부여의 좋은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리츠칼튼의 사례다. 리츠칼튼은 직원에게 ‘신사, 숙녀’의 신조를 강조한다. 서비스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손님들의 갑질로, 마치 하인을 다루듯 직원들을 대하는 이들에게 맞춰주다 보면 비굴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리츠칼튼이 직원들에게 권한위임을 통해 신사, 숙녀 긍지를 갖도록 한 것이다. 리츠칼튼의 직원은 고객의 불평 해결을 위해 1건당 수천 달러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경비가 할당돼 있다. 이를테면 실수로 고객의 옷에 커피를 쏟았다면 옷을 사줄 수 있고, 경비뿐만 아니라 시간도 고객을 만족시키는데 드는 시간만큼 자기 일과에서 벗어날 권리도 가지고 있다. 한편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미라지 리조트 & 카지노의 직무기술서의 내용은 ‘고객을 위해, 고객이 원하는 대로 일해라’는 한 줄의 주문에 불과하다. 이처럼 내부 고객에 마케팅을 잘하는 기업들은 외부 고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 기업이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두 번째 진실의 순간, 정직 마케팅
고객이 회사나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하게 되는 15초 내외 짧은 순간인 ‘진실의 순간(MOT, Moments of Truth)’만큼 중요한 ‘두 번째 진실의 순간(The Second Moment of Truth)’이 있다. 바로 신뢰와 약속 이행의 순간이다.
정 교수는 “역사적으로 기업들의 마케팅 개념에 대한 오해와 남발이 만연되고 있다. 무수한 기업들이 소비자들을 위해 지나친 아이디어를 남발하고, 지나치게 열정적인데다 낙관적이기까지 하다. 즉 마케팅의 개념이 기업이 전달 가능한 이상의 것이 돼 버렸다.”면서 “마케팅의 필요충분조건은 기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무엇이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인식하는데 있다. 과대광고, 비현실적인 약속은 고객을 창출시킬 수는 있으나 유지하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약점을 공개하는 마케팅 전략인 ‘플로섬 마케팅(Flawsome Marketing, 결점 마케팅)’을 ‘인간적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전략의 ‘정직 마케팅’으로 해석했다.
기업의 도덕성은 신뢰에 있어 가장 핵심적 요소다. 그리고 도덕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는데 ‘악행의 금지’와 ‘선행의 촉진’이다. 최근 호텔에서 친환경 마케팅, 지역사회공헌, CRS 등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선행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호텔업계에서 대표적인 사례로는 신라호텔의 이부진 사장이 장충동 신라호텔의 현관으로 돌진해 회전문 파손과 인명피해를 끼친 택시기사에 대해 약 5억 원의 배상책임 면제와 치료비까지 보상,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이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신라호텔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마케팅 근본이야말로 유일한 해결책
무질서 속 기업의 질서 찾아야
그동안 호텔업계에도 다양한 마케팅의 흥망성쇠가 있었다. 소비자의 욕구와 필요는 끝을 모르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이를 빠르게 캐치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송곳은 그저 송곳일 뿐, 문제가 되는 구멍을 막기 위해 다른 적절한 제품이 나오면 금세 대체되는 것이 시장이다. 제품은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외형적인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마케팅을 무질서(Entropy)의 정도가 넘쳐흐르는 학문이라 표현한다. 공식과 진리가 없기 때문에 마케팅은 자유분방한 영역이자 매력적이고, 어쩌면 의학보다도 우수한 학문이라고 말이다.
코로나19로 마케팅 담당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그렇지 않아도 수요가 위축된 데다 수요도 내국인으로 한정돼 있어 불안정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마케팅의 근본을 찾고 마케팅의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정 교수는 “1970년대 미국 외식 프랜차이즈 시장이 포화에 이르렀을 때 웬디스는 매출 확보를 위해 고가의 메뉴를 개발, 프리미엄 차별화 전략을 펼친 반면, 맥도날드는 오히려 저가의 맥모닝 메뉴를 론칭했다. 맥도날드는 당시 소비자가 맥도날드 당사보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는 점을 알았던 것이다. 마케팅의 철학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맥도날드는 여전히 식음료업계를 이끌어오고 있는 대표 브랜드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면서 “지금 코로나19로 힘든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고객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경제위기나 코로나19 같은 재해는 시장과 기업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놨다. 코로나19 위기를 지나고 나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근했던 곳들은 결국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특급호텔을 포함해 많은 호텔들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고객 유입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케팅부서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마케팅은 시장의 소비자를 기업의 고객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호텔로 찾아오는 고객이 없으면 시장에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엄밀히 말하면 마케터라면 코로나19의 위기든, 호캉스 열풍의 호기든 시장의 동향, 소비자들의 욕구와 필요, 그리고 문제를 언제나 면밀히 관찰하고 있어야 한다. 트렌드 리포트에 의존하는 마케팅은 너도나도 할 수 있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시장에 나가 현재 잠재적 소비자들의 문제가 무엇이고, 그로인해 표출되는 욕구와 필요는 무엇인지 캐치해야 한다. Apple은 911테러와 IT 거품이 붕괴됐던 1999~2002년 사이 판매수익이 60%나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R&D 비용을 42%나 올렸고, 그 결과로 iTunes Platform, iPod, iTunes, iPhone 등을 개발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반면 같은 시기 모토로라는 R&D 비용을 13% 삭감, 2004년 반짝 성공 이후 실패를 거듭하며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마케팅은 과학이 아닌 철학
우리나라는 유독 트렌드에 민감하다. 갖은 매체와 기업들에서 트렌드리포트가 발간되고, 호텔도 트렌드 키워드에 따라 패키지 프로모션이나 이벤트를 실시한다. 그러나 특정 호텔을 떠올렸을 때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르는 패키지가 있었는지 반문해보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결국 문화 없이 트렌드만 쫓는 꼴이다. 그동안 호텔가에서 선보인 마케팅들은 모두 그만그만한 아이템을 특정 계절, 기념일에 맞춘 특색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트렌드는 따라가지만 그래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일회성의 마케팅이 많았다.”라고 지적한다.
마케팅은 소비자를 위한 모든 것이다. 바꿔 말하면 마케팅의 모든 것은 오로지 소비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 교수는 소비자는 마케팅 게임의 모든 관객이자 정확하고 준엄한 심판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해답은 ‘시장’에 있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잠시 잊고 있었던 마케팅 철학을 다시 아로새기고 전장으로 나서야 한다. 토마스 에디슨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그리고 필요는 항상 소비자의 문제로부터 발생한다. 이 대명제를 마케터들은 잊어선 안 되겠다.
ISSUE BOOK
Hotel Hospitality Marketing은 세종대학교 호텔관광경영학과 정규엽 교수가 집필한 마케팅서로 9번째 개정증보판을 지난해 3월 발행했다. 정규엽 교수는 빠르게 변화하는 마케팅 트렌드 성향을 반영해 매 2년마다 최신 사례를 담은 개정증보판을 출간하고 있다. 본서는 그동안의 마케팅서적과 달리 마케팅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철학적으로 접근, 기본적인 마케팅적 사고에서부터 기능, 전략까지 무수한 사례를 통해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깊이 있게 통찰했다.
저자 정규엽 발행 센게이지러닝코리아 가격 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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