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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옥

[김성옥의 Erotic Food] 남자의 향기, 밤크림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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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버튼을 누르면 문자판이 돌면서 ‘오늘밤 당신에게 입맞추겠어요(Let me kiss you tonight).’, ‘널 미친듯이 만지고 싶어(I want to caress you madly).’ 이런 문장을 조합해내는 시계도 있죠. 또 요즘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기계식 시계만의 ‘가치’와 독창적인 ‘스토리’가 담겨져 있어야 진짜 명품시계죠. 리차드밀(Richard Mille)에서 만든 ‘에로틱 투르비용(Erotic Tourbillon)’은 시계 버튼을 누를 때마다 야릇한 문장을 조합해 내는 것을 보면 그 속에 꼭 AI가 하나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제 취미는 시계 모으기입니다.” A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어 B는 “저는 주말이면 자전거를 탑니다.”라며 취미를 전했다. 
비에 젖은 정장을 툭툭 털고 들어서면서 머리를 흔들어 시선을 끌었던 C는 “저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맛집 투어하는 것입니다. 주말이면 정말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회사에서 있었던 스트레스를 잊어요. 다음에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투어면 더욱 좋겠습니다.”라고 약간은 코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오늘 미팅 장소인 ‘더클리식’은 모던한 실내 인테리어와 차가운 듯 도도한 조명이 재즈와 잘 어울리는 곳인데 비가 내리니 음악과 음식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오늘 이 장소 좋죠? 오늘 즐거운 만남을 위해 치어스~”



남자들의 소개와 함께 우리쪽 소개가 이어졌다.  
“저는 요리와 컬러, 컬러와 환경 등 컬러테라피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라며 나를 소개하자 C는 “매우 학문적이네요. 맛집 투어와도 잘 맞겠어요.”라며 나에게 눈을 찡긋했다.
하늘거리는 이팝나무꽃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민정이는 “제 부모님께서 화원을 하셔서 꽃에 관심이 많아 꽃명과 꽃말 등을 조금 아는 편이에요. 그런데 에버랜드에서 놀면서 꽃말 연구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이어 지은이는 “저는 아이쇼핑하기예요. 특히 면세점 쇼핑이요. 당연히 해외여행과 함께요.”라고 말했다. “돈이 드는 취미지만 능력 안에서 즐기면 자신을 위해 행복한 투자죠.” A는 자신과 같은 부류라며 은근히 지은이를 지지해줬다. 그러자 지은이는 A에게 “특별한 시계에 대해 더 얘기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홍콩 ‘워치스&원더스(Watches&Wonders)’는 매년 10월에 열리는 화려한 명품시계 박람회인데 몽블랑, 파네라이, 피아제, 보메메르시에, 까르띠에, IWC, 예거르쿨트르, 리차드밀, 로저드뷔 등 유명 브랜드가 참가하는 것으로 유명해 시계를 보기 위해 홍콩을 두어 번 다녀왔습니다. 몽블랑의 시계에 두 개의 작은 지구본이 있는 것 아시죠? 북반구와 남반구의 낮과 밤을 알려주는 시계말이예요.”
시계 이름조차 몰랐던 우리들은 한동안 남자들이 열광했던 ‘빌르레 투르비용 실린더릭 나이트스카이 지오스피어’가 1497년 포르투갈을 출발해 인도행 항로 개척에 성공한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용기와 추진력을 표현했다는 스토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까르띠에의 퍼페추얼 캘린더(윤달과 윤년까지 인식해 날짜를 정확히 표시하는 기능)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 계단 형태로 원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월·일·요일을 볼 수 있는 시계도 있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음력, 양력을 잘 모르지만 중국과 한국 사람들은 음력을 많이 따져 이 시계에 관심이 많은데 캘린더 기능보다 ‘디자인의 예술을 보여주는 시계’라고 할 수 있죠.” 이어 A는 시계사진도 보여줬다. 남성적인 ‘마초 시계’로 유명한 파네라이는 연두색 스트랩(시곗줄)을 장착한 ‘라디오미르 1940 3데이즈 아치아이오’를 내놨을 때 어마어마한 반응이 있었다며 색상이 핑크, 블루, 그린, 아이보리 등 알록달록해진 것은 물론 두께도 얇게 바꿔 여자들이 편안하게 찰 수 있도록 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선호하는 시계로 인기가 있다고 했다. IWC도 사이즈는 아빠 양복을 입은 듯 큼직한 시계지만 의외로 여성스런 의상에도 언발란스의 매치가 멋있어서 여성들이 구매가 많다고 했다.
휴대폰이 보편화되면서 굳이 시계를 볼 일이 없고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했던 우리들에게 시계는 새로운 대화였다. 시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약간의 잘난 척, 있는 척하는 그에게 시선이 자꾸 갔다.

종업원이 다가와서 “오늘 비가 와서 셰프의 추천스프인 밤크림스프 올려드리겠습니다.” 스프가 놓여지는 순간 지은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 집안이 빵빵한가봐. 무슨 돈이 있어 그 비싼 시계를 사겠니? 그래도 돈이 있으니 저러고 다니는 것 아닐까? 나는 저 사람이랑 파트너할래.” 이어 애교섞인 콧소리로 “여성용 시계도 보여주세요.”라며 지은이가 말했다. 



스프를 먹던 민정이는 “밤스프에서 밤꽃향이 나네요.”라고 했다. “이 스프는 통조림밤이라 그런 향이 없어.” 민정이의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단호하게 답했다. “아니야. 밤이라는 그 말에서부터 밤꽃향이 나는 거야.” 민정이는 비싼 시계에 관심 없다는 듯 “밤꽃이 얼마나 멋진 향을 가졌는지 얘기해 볼께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5월 하순에서 6월 초 밤나무가 없는 곳에서도 밤꽃 향과 비슷한 향을 맡을 수 있는데 이것은 가죽나무 꽃에서 풍기는 향이에요. 가죽나무는 작은 녹지 공간만 있어도 잘 자라서 양재천에 가면 가죽나무 꽃으로 뒤덮여 있어요. 그 꽃에서 밤꽃과 비슷한 비릿한 향이 나죠. 그리고 밤꽃 향을 내는 나무가 더 있는데 덜꿩나무라고 정원과 소공원에 조경수로 많이 볼 수 있고요. 덜꿩나무 학명인 ‘Viburnum Erosum’ 가운데 종소명 ‘Erosum’이 바로 에로틱(Erotic)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액 냄새가 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죠. 5월부터 시작된 가죽나무꽃 향과 덜꿩나무꽃 향이 지나면 6월엔 밤꽂향이 양평 가는 길을 가득 메우는데. 특히 밤이 되면 더욱 진한 향을 내고요. 6월 밤꽃이 지고 나면 한동안 꽃 향기가 뜸해지는데 꽃나무들도 서로 사랑하기 좋은 계절인 봄에 사랑의 향기를 뿜는다고 아빠가 말씀해 주셨어요. 요즘 사람들은 ‘향의 침묵’에 잠겨 짙은 향수로 자신을 꾸미는 것에 비해 나무들은 향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있어요. 밤꽃의 비릿한 향은 스퍼미딘(Spermidine)과 스퍼민(Spermine)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Sperm’이 정자라는 의미에요. 정액 특유의 냄새도 바로 이 성분 때문인데, 여성의 질 내부에서 수정이 이뤄질 때까지 정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
오늘 미팅장소에서 이런 야한 얘기를 해도 되나 싶었지만 모두들 와인으로 ‘치어스’를 외치며 즐거워했다.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민정이는 꽃에 대해 간간이 말을 했지만, 밤꽃에 대해 말하는 모습이 전문가 같아서 멋져 보였다. 

“사람들의 만남에서 사람 얘기만 했는데 꽃에 대한 얘기도 즐겁네요.” B는 민정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며 말했다. “밤크림스프에서 진짜 밤꽃향이 나는데요.” 
나도 그 향을 느끼고 싶었다. 밤크림스프는 이팝나무꽃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민정과도 너무 닮아 있었고 순간 친구의 옷에서 밤꽃향이 나는 듯 했다. 
스프 다음 음식으로 스테이크와 샐러드, 치즈 등 어떤 메뉴들을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재즈에 취하고 와인에 취하고, 밤꽃 향에 취해 있었던 것만이 기억되는 밤이었다.


김성옥
동원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김성옥 교수는 식품기술사, 조리기능장,
영양사 등 식품, 조리에 관련한 자격증
국내 최다 보유자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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