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마저 사고 팔았던 낭만적인 시대
“그린란드를 사서 미국에 편입시키고 싶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화려한 어록 가운데 하나다. 국가경영도 호텔처럼 했던 트럼프 덕에 당시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란드가 주목받았다. 덴마크는 “영토를 어떻게 파느냐”며 일축했고 트럼프는 예정된 덴마크 방문을 취소했다.
집 한 채 사는 것도 힘든 요즘이지만 영토를 사고 파는 것이 없는 일은 아니다.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1867)를,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1803)를 샀다. 그린란드 매입제안도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1946년 앤드루 존슨 당시 미 대통령 역시 2차 세계대전 뒤 매입을 제안했으니.
어릴 때 그린란드를 세계전도에서 보고 놀랐다. 메르카토르 도법 특유의 왜곡에 의해 아프리카보다 더 큰 땅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얼음뿐인 동토(凍土)이지만 전설적인 바이킹 에리쿠 프로발드손이 처음 찾았을 때는 중세온난기여서 푸른 산천이었다고 전해진다. 잠깐의 녹음(綠陰)이었지만 프로발드손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 ‘푸른 땅’이라 홍보했다. ‘그린란드’의 시작이었다(요즘 같으면 부동산 사기로 처벌된다).
저 말을 믿고 이주한 사람들은 빙하기에 얼어붙은 땅 위 개썰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정착민들은 강력범죄를 짓고 본국에서 추방당한 바이킹들. 당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저렇게 속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을까. 집 크기를 달리 알려주거나 근처 혐오시설이 있다면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 이를 속이면 사기가 된다. 뉴스에는 많은 강력사건이 등장한다. 주택 살인사건, 아파트 살인사건은 뉴스에 흔하지만 그 뒤 누군가는 살인사건 현장인 그 곳에서 잠을 청하고, 살림을 꾸리며 아기를 키울 것이다. 이 사람들은 본인들이 이사하기 전 있었던 일을 과연 알까.
호텔도 마찬가지. 호텔 객실 역시 달갑지 않지만 사건사고가 많은 곳이다. 뉴스에는 호텔 내 살인 사건이 간간이 등장하지만 그때문에 객실을 폐쇄했다는 호텔 얘긴 들어본 일이 없다. 그렇다면 호텔은 다음 투숙객에게 이러한 사실을 고지했을까.
“며칠 전, 어느 고객 분이 배우자를 살해했는데 깨끗이 시체흔을 치우고 유기물 및 피는 다 제거됐습니다. 괜찮으시죠?”
흉사 숨기고 객실 대여, 사기죄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기죄가 성립되기 어렵다. 만약 흉사가 있던 집을 집주인이 숨기고 팔았을 경우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매매계약의 목적물인 아파트는 통상 주거용으로 사용되므로, 통념상 흉사라 여겨지는 사건사고 가옥에 입주를 꺼리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흉사가 있던 호텔 객실을 대여하는 것은 ‘사기죄’가 될 수 없을까. 호텔은 그 특성상 모든 종류의 인간군상(人間群像)이 다 들어오는 곳이다. 텐션 역시 높다. 삶이 행복한 사람, 가족과 편안한 사람, 극단의 처지에 내몰린 사람 모두가 찾는 곳이 바로 호텔이다. 흉사가 있다고 그것을 고객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를 호텔에게 부과한다면 호텔 비즈니스는 유지될 수 없다. 폐쇄된 객실 옆에 투숙하는 사람도 찜찜하고 맞은편도 찜찜할 것이다. 그게 1개 층으로 퍼져나가면 비즈니스가 되겠는가.
보이는 것만 해도 신경 쓰기 바쁜데 우린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 더욱 신경을 썼다. 예전엔 아파트 층수에 ‘4’대신 ‘F'를 썼다. ‘4’가 ‘죽을 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F는 정말 아무 연상이 안 되는 걸까). 묫자리, 작명(作名), 풍수지리 등이 난무하고 점집에 아직도 많은 돈이 쓰이는 현실에서 흉사가 있던 가옥은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이 꺼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는 어떨까. 어떤 고시생이 10년간 공부했지만 결국 낙방해 방을 비웠는데 그곳에 입주한 또 다른 고시생이 이 사실을 알게 됐을 경우 계약을 취소할 수 있을까. 법원은 인정하지 않는다. 적당히 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2억에 산 집을 10억에 팔았는데 2억에 산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라면? 이 경우 역시 사기가 되지 않는다. 10억에 산 매수인은 자신의 판단으로 산 것이고 차익을 노린 전매사실은 매매로 인한 법률관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으며 권리 실현에 어떤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다만 10억에 샀다고 말한 경우라면 기망이 성립된다).
Ignorance is bliss
호텔에서의 흉사 발생은 피할 수 없다. 어느 특급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그런 흉사가 있던 방 번호를 공유하며 그 방에는 투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군대 역시 흉사가 많고 소문은 더 많지만 어느 병사도 내무실(생활관)을 바꾸지는 아니(못)했고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살인 사건 있었던 호텔 객실, 판매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사족 왜 스코틀‘랜드’, 스와질‘랜드’와 달리 그린‘란드’일까. 국가 및 수도명은 최대한 그 나라 언어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영어권은 ‘랜드’, 독일어는 ‘란트(그래서 도이칠란트이다)’, 그 외의 언어는 ‘란드’로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