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교수의 명가의 와인] 로랑 페리에(Laurent-Perrier)

2020.08.23 08:47:20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초유의 대학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 무사히 종강을 했다. 코로나 사태로 일반 대학이 ‘사이버대’가 됐다. 필자는 와인과 미식인문학 과목을 강의하는데, 실습이 필요한 과목이라 매우 힘들었다.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만들고, 카메라로 시음, 시식 등 실습을 보여주며, 참조 동영상도 e-Class에 올려 줬다. 7월에는 식당 한 곳을 정해, 방역에 신경 쓰며, 학생들을 모아, 테이블 매너와 와인 에티켓 수업도 마쳤다. 기말고사도 온라인 시험으로 치렀고, 평점 부여까지 모두 마쳤다. 전국 대학의 교수진들이 이런 홍역을 겪었겠지. 


무사히 한 학기를 마친 기념으로 샹파뉴를 오픈했다. ‘대면의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비대면의 세기(Untact Siècle)’로 들어섬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로랑 페리에의 ‘그랑 시에클(Grand Siécle)’ 샹파뉴를 집어 들었다, 겁도 없이…! 




‘1812년 서곡’을 들으며 마셔야할 샹파뉴, 로랑 페리에

이 달의 명가, 로랑 페리에 샹파뉴 하우스의 기원은 1812년에 앙드레 미셸 삐에를로(Andre-Michel Pierlot)가 세운 샹파뉴 네고시앙이다. 


그의 아들 알퐁스 삐에를로(Alphonse Pierlot)가 이어 받았으나, 후손이 없었던 그는 당시 와인 양조 담당자였던 유젠 로랑(Eugene Laurent)에게 양조장을 물려줬다. 유젠은 아내와 함께 샹파뉴 회사를 운영해 나갔다. 1887년 갑작스런 사고로 유젠 로랑이 작고한 후, 샹파뉴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심한 그의 아내인 마틸드 에밀리 페리에(Mathilde Emilie Perrier)는 남편의 성과 자신의 성을 합쳐서 회사 이름을 ‘뵈브 로랑 페리에(Veuve Laurent-Perrier)’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Veuve’는 과부, 미망인 이라는 뜻의 불어다. 여기서 현재의 회사 명칭인 로랑 페리에가 등장한다. 그녀는 뛰어난 리더십과 사업 감각으로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했으며, 1차 세계대전을 잘 극복하고, 1920년에는 영국에 합작 회사를 세워 진출했다. 


1925년 회사를 상속받은 그녀의 딸, 유제니 로랑(Eugénie Hortense Laurent)은 30년대의 세계적 경제 대공황기를 넘기지 못하고, 1939년 2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울리기 직전에 마리 루이즈 랑송 드 노낭꾸르(Marie-Louise Lanson de Nonancourt)에게 회사를 매도했다. 현 소유주의 할머니 격인 마리 루이즈 노낭꾸르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그녀의 두 아들인 모리스(Maurice)와 베르나르(Bernard)는 이 기간 나치 독일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안타깝게도 큰 아들 모리스는 강제수용소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둘째 베르나르는 르끌레 장군(General Leclerc)이 이끄는 2군단에 합류해 복무했다. 조국을 위한 이 영웅적인 활동으로, 후일 대통령이 된 샤를르 드 골 장군이 로랑 페리에의 역사에 깜짝 등장하기도 한다. 가업을 승계해야하는 베르나르는 1945년부터 회사에 합류해 포도 재배에서부터 양조까지 모든 과정을 체험하며 습득했고, 1948년 사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회사의 규모는 직원이 20여 명, 약 8만여 병의 샹파뉴를 생산했다. 샹파뉴에 대한 열정과 전통적 가치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베르나르는 회사를 과감하게 경영해 나갔다. 그는 포도를 공급해 줬던 1200여명의 재배자들과 각별한 신뢰 관계를 형성했으며, 양조에 있어서는 전통과 신기술의 혁신을 현명하게 결합해 로랑 페리에 샹파뉴 스타일을 구현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볍고, 우아하며, 생동감 있는’ 로랑 페리에의 고유성을 확립했으며, 다양한 뀌베 샹파뉴를 개발했다. 



혁신과 겸허함의 상징, 로랑 페리에 샹파뉴 하우스

혁신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1959년 회사의 최고급 샹파뉴인 그랑드 뀌베 ‘그랑 시에클(Grande Cuvée Grand Siècle)’를 선보였다. 이 최고급 샹파뉴에 대한 베르나르 회장의 각오는 대단했다. ‘최고 해의 샹파뉴에, 최고 해의 다른 샹파뉴를 섞어서, 최고의 새로운 샹파뉴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작황이 특별히 좋았던 3개 빈티지 샹파뉴를 블렌딩해 생산하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사고였다. 그런데 이 샹파뉴가 출시되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큰 공을 세운 베르나르 회장과의 친분으로 샤를 드 골 대통령이 직접 시음하게 됐다. 드골 대통령은 이 와인을 시음하고 놀라워하며 “Grand Siècle, obviously, Nonencourt!”라고 말했다고 한다. 직역하면 “오~ 위대한 세기가 떠오르는군~ 노낭꾸르~!”라는 뜻이다. 역사적 용어로 ‘그랑 시에클’은 프랑스 역사에서 위대한 시대, 위대한 태양왕 루이 14세가 다스리던 17세기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 뀌베의 이름이 탄생하게 됐다. 


또 다른 혁신은 1968년 뀌베 로제(Cuvée Rosé) 샹파뉴 생산으로부터 왔다. 당시까지는 화이트 와인에 레드 와인을 섞어서 로제 샹파뉴를 만들던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베르나르는 포도의 풍미를 최대한 추출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적포도 품종을 껍질째 침용시켜 로제 와인을 만드는 방식, 즉 ‘세녜(Saignée)’ 방식을 사용했다. 색상뿐만 아니라 향과 풍미가 농축됐다. 그로 인해 고품격 로제 샹파뉴 생산의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세 번째 혁신은 ‘샤르도네 바라기’다. 로랑 페리에 샹파뉴의 화이트 뀌베에는 샤르도네의 함량이 타 회사 대비 월등히 높다. 일반적으로 기본급 뀌베에는 30~35% 정도, 고급 뀌베에만 50%까지 사용하는 데 비해, 로랑 페리에사는 일반급이나 최고급 뀌베에서나 모두 55% 정도의 고함량을 유지한다. 이로써, ‘가볍고 우아하며 섬세한’ 로랑 페리에의 인장이 박힌 샹파뉴가 탄생하게 됐지만, 회사로서는 비싼 샤르도네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 부담이 들어가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만났던 알렉상드라 페레르 드 노낭꾸르 여사 이야기를 해보자. 그녀는 베르나르 회장의 장녀이자, 회사 브랜드 관리의 총책임자다. 그녀는 필자에게 아주 특별한 로제를 시음시켜 줬다. 레이블을 보니 ‘Alexandra Rosé’였다. 알렉산드라?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네? “1982년 수확한 포도로 샹파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제가 불쑥 결혼을 발표하자, 결혼식 때 아버지가 이 샹파뉴를 내놓았습니다. 레이블에는 ‘알렉상드라’라는 뀌베명이 적혀 있었죠. 바로 제 이름입니다.”라며 필자에게 설명해 주는 알렉상드라의 눈가는 촉촉히 적셔 있었다. 사랑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하며 고이 간직해 온 샹파뉴에 딸의 이름이 적힌 레이블을 붙여 메시지를 전달한 베르나르 회장의 마음이 전해져 뭉클했다. 


영국 왕실이 보증한 샹파뉴 하우스, 로랑 페리에

중세 이후, 영국의 국왕은 왕실에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인들에게 공식 인증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로얄 워런트(Royal Warrant, 왕실 조달 허가증)’라는 이름으로 개인 또는 사업자에게 부여되고 있다. 품질과 공급 심사는 매 5년마다 갱신되며, 언제든지 보유 자격이 박탈될 수 있고 수여자가 사망하거나 소유자가 변동되는 경우에는 재심사가 이뤄진다. 현재 교부자는 여왕 폐하(HM The Queen) 그리고 그녀의 남편 에든버러 공작(HRH The Duke of Edinburgh)과 아들 황태자(HRH The Prince of Wales)다. 현재 로얄 워런트를 보유하고 있는 샹파뉴 하우스로서는, 여왕 폐하 엘리자베스 2세가 8개, 그리고 황태자 웨일즈공 찰스 윈저(Charles Windsor)가 1개를 교부했는데, 찰스 황태자가 교부한 1개가 바로 로랑 페리에 하우스다. 


이런 위업을 이루고, 200여 년을 이어오고 있는 샴페인 명가 로랑 페리에를 명품 반열에 올려 세운 기업가이자 자랑스런 가문의 주역인 베르나르 드 노낭꾸르 회장은 2010년에 서거했지만, 그의 두 딸이 유업을 계승해 최고의 샹파뉴 하우스를 이끌고 있다. 



현재 로랑 페리에 사의 지하 셀러는 약 12km로 완벽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천연 셀러에서 샹파뉴를 숙성시키고 있다. 고급 뀌베의 효모모으기 작업은 수작업으로 하지만 일반 샹파뉴는 하루에 약 6만 병을 돌릴 수 있는 장치를 이용해 현대화시켰다. 2012년에는 창립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 건축가 쟝 미셸 윌모뜨(Jean-Michel Wilmotte)에 의뢰해, 그랑 시에클 전용 셀러를 초현대식으로 완성했다. 또 다른 셀러에는 1950년대에 건립했다가 스테인레스조의 등장으로 50여 년간 사용하지 않았던 콘크리트 양조조도 윌모뜨의 손길로 웅장하게 재탄생했다. 더불어, ‘수도사의 방(Galerie des Moines)’ 갤러리에는 길다란 로마식 궁륭 천정 아래 1959년 첫 출시 이래의 그랑 시에클 와인 재고가 잠들어 있는데, 그것을 보는 벅찬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샹파뉴 회사 직급의 꽃인 셀러 마스터에 대한 언급을 빼놓을 수 없다. 1973년부터 로랑 페리에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2004년부터 셀러 마스터(Chef de Caves)가 된 미셸 포코네(Michel Fauconnet)는 현재의 로랑 페리에 스타일을 창출한 전설적인 양조가다. 로랑 페리에 그룹은 현재 Salon, Delamotte, De Castellane 회사도 소유하고 있다. 위대한 세기의 위대한 상파뉴 그랑 시에클을 마시며, 필자는 위대한 샹파뉴 하우스 로랑 페리에의 겸허하면서도 조용한 진군을 바라볼 것이다.




로랑 페리에, 라 뀌베 La Cuvée, Brut


로랑 페리에 샹파뉴 라인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샹파뉴다. 뀌베 명칭이 ‘La Cuvée’다. ‘La Cuvée’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함축돼 있다. 우선은 양조장에서 포도를 압착해 즙을 낼 때에, 부드러운 첫 압착으로부터 얻은 최고 품질의 즙을 La Cuvée라고 한다. 로랑 페리에가 자사의 기본 샹파뉴 뀌베 명칭을 La Cuvée라고 정한 것은, 샹파뉴 생산에 대한 오랜 정통성의 표현이며, 표현의 과다함을 아끼는 절제의 미학에서 나온 결과라고 본다. 기본이 최고니까! 사용된 주스의 80%는 당해 년도 포도며, 나머지 20%는 전 해의 리저브 와인에서 블렌딩했다. 20%까지의 리저브 와인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 만큼 품질에 최선을 기한다는 명확한 증거다. 품종 블렌딩 비율은 샤르도네 55%, 피노 누아 30%, 피노 므니에 15%다. 비싼 포도인 샤르도네의 함량이 많다. 전반적인 품질의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샤르도네의 우아하고 섬세한 터치를 추구했다는 의미다. 3년의 장기 숙성을 통해 탄생했고, 알코올 도수는 12%vol다. 옅은 황금색에 섬세한 버블의 향연, 서양 배와 리치, 청포도, 오렌지, 레몬향이 싱그럽다. 로랑 페리에 샹파뉴의 기본은 부드럽고 안정된 미감이 특별하며, 어느 하나의 곁가지가 튀거나 화려하지 않다. 라인업의 시작부터 고결한 선비의 이미지를 풍긴다.
Price 16만 원대

로랑 페리에, 하모니 Harmony, Demi-Sec


일반적으로 한 샹파뉴 회사의 ‘Demi-Sec’ 뀌베는 기본 ‘Brut’ 뀌베에 원하는 양의 설탕 가당해 완성한다. 그런데 로랑 페리에의 ‘Harmony Demi-Sec’은 이 뀌베만을 위한 고유한 독자적 뀌베로부터 양조된다. 브륏 스타일과 드미섹 스타일을 단지 당도의 차이로만 인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드라이한 브륏과 스위트한 드미섹은 와인 조직 자체의 긴장도와 볼륨감이 달라야 완벽하게 해당 스타일이 구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품종 블렌딩이 ‘La Cuvee, Brut’과 다르다.  샤르도네 45%, 피노 누아 40%, 피노 므니에 15%다. 샤르도네가 10% 줄고, 피노 누아가 10% 올라갔다. 감미가 있기 때문에, 자칫 무너질 수 있는 긴장감을 피노의 강한 힘과 과일향으로 균형을 이뤄 생동감을 유지시켰다. 샹파뉴를 오랫동안 만들어본 기술자만이 해결할 수 있는 품종 놀이다.

3년 숙성했으며, 알코올은 12%vol에, 하모니의 당분 함량은 40g/L다. 디저트 음식이나 케이크 등과 특별히 잘 어울리도록 고안됐고, 단짠 궁합으로 짠 음식과의 조화에도 신경을 썼다. 밝고 화사한 볏짚색, 잘 익은 복숭아와 자두 살내음, 꿀과 케이크의 단내음이 등장하다가, 곧바로 고소한 견과류 향과 바닐라, 토스트의 깊은 향이 이어 받는다. 몽실몽실한 질감과 둥글둥글한 버블감이 매혹적인 디저트 샹파뉴~!
Price 16만 원대

로랑 페리에, 빈티지 Millésimé, Brut


프랑스 샹파뉴 업계에서는 특별히 기후가 좋았던 해에는 ‘빈티지(불어, 밀레지메)’ 샹파뉴를 생산한다. 보통 10년에 3~4번 생산했는데, 21세기 들어 생산이 잦아졌다. 그래서 일반 와인처럼 빈티지 샹파뉴도 ‘빈티지를 따지는 것’이 필요해졌다. 2020년 한국 시장에 론칭된 로랑 페리에의 2008년 빈티지는 1996, 2012 등과 함께 ‘세기의 빈티지’다. “어멋~! 이건 꼭 사야해~!”다.

Wine Enthusiast 지 ‘Top 100 Cellar Selection’에서 96점을 받으며, 33위에 랭크됐고, Wine Advocator(RP)지 93점이며, James Suckling 평점 96점이다.

품종은 샤르도네 50%에 피노 누아 50%를 균형감있게 블렌딩했다. 몽타뉴 드 렝스 지구의 피노 누아와 꼬뜨 데 블랑 지구의 샤르도네 중에서 최고의 포도만을 모아 착즙해 뀌베를 만들었다. 최소 7년간 병입 숙성됐으며, 알코올은 12%vol다. 영롱한 황금색 색조에 비춰진 미세한 버블이 길다란 샹파뉴 잔의 바닥에서 수면으로 힘차게 올라온다. 그 소용돌이를 타고, 싱그런 라임과 레몬, 이국적인 망고와 자몽, 우아한 백도와 복숭아향이 미네랄 터치와 함께 펼쳐진다. 높은 산도와 생동감있는 입맛이 불안할 정도로 힘차며, 백악질 토질에서 기인한 담백한 미네랄 맛을 남기며 긴 여운에 젖어든다. 로랑 페리에 빈티지 샹파뉴는 2009~2013년 대한항공 비즈니스 & 퍼스트 클래스에서 제공된 샹파뉴로서, 전 세계 기내식 와인 리스트를 선도하고 있다.
Price 20만 원대

로랑 페리에, 뀌베 로제 Cuvée Rosé Brut


본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로랑 페리에의 로제 샹파뉴는 블렌딩식이 아니라 적포도 품종을 껍질째 침용시켜 로제 와인을 만드는 ‘Saignée’ 방식으로 생산된다. 이 방식은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고품격 로제 샹파뉴를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세심한 주의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기에 가격도 높다. 품종은 피노 누아 100%로서, 렝스 산기슭의 앙보네 Ambonnay, 부지 Bouzy 등 그랑크뤼 마을을 포함해 10개 마을의 고품질 피노 누아를 48~72시간 정도 ‘저온 침용(Cold Soak)’ 과정을 거쳐 색상과 타닌을 받아 냈다. 이후, 5년 이상의 병입 숙성을 통해 복합미를 잉태했다. 알코올은 12%vol다.

1968년 처음 이 뀌베 로제를 론칭할 때, 베르나르 드 노낭꾸르는 이 특별한 샹파뉴를 빛내줄 고유하고 차별화된 용기를 원했다. 뀌베 로제를 담은 복스런 둥근 병은 17세기 앙리 4세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모양 자체가 최상품 피노 누아 샹파뉴의 모든 풍요로움을 표현하고 있으며, 최초의 세녜 로제로서의 기념비적인 위치를 잘 드러내고 있다. 당연히 상자 케이스도 우아한데, 구입해 보면 안다. 화사하고 세련된 연어 살색 같은 핑크색 버블이 예쁘다. 산뜻한 산딸기와 상큼한 레드 커런트향, 달달한 딸기향 등이 제일 먼저 반긴다. 그리고 여태껏 맡아보지 못한 흰 후추와 제비꽃향, 베타 캬로틴향이 로랑 페리에 뀌베 로제의 독특한 매력이다. 신선한 산미와 함께 입안을 가뿐하게 조이는 기분 좋은 타닌감이 화이트 샹파뉴와는 다른 긴장감을 준다. 농밀한듯 가볍게 솟구치는 버블감도 입안 천정을 즐겁게 해준다. 생동감과 이국적 정취, 마음을 들뜨게 하는 예쁜 색상을 두루 갖춘 내 생애 최고의 로제 샹파뉴다.
Price 35만 원대

로랑 페리에, 그랑 시에클 Grand Siècle, Grande Cuvée, Brut


그랑드 뀌베 ‘그랑 시에클(Grand Siècle)’~!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프랑스어로 ‘위대한 시대’라는 뜻이다. ‘태양왕’ 루이 14세 시절의 위대한 프랑스를 부각시키기 위해 패키지에 ‘빛을 뿜는 태양’ 로고를 넣고 있다. 또한 특별한 모양의 둥근 병도 17세기에 직접 입으로 불어 만들었던 것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이 병은 플라꽁(Flacon)이라 불리는데, 병을 기울여 따르는 순간, 저 긴 병목에서 발포성 샹파뉴가 따라져 나오면서 내는 속삭임이란~! 그 어떤 샹파뉴 병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오묘한 선율을 선사한다.

병 모양과 이름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 생산 콘셉트도 매우 특이하다. 보통 회사 최고의 샹파뉴는 대개 빈티지 샹파뉴인데, 그랑 시에클은 ‘멀티 빈티지(Multi-Vintage)’ 콘셉트의 블렌딩 샹파뉴다. 작황이 특별히 좋았던 3개 빈티지 샹파뉴를 블렌딩해 생산하는데, ‘한 해는 구조감을, 한 해는 섬세함을, 한 해는 신선함을 부여한다’는 철학 아래 3개 빈티지의 와인을 블랜딩한다. 아~! 정말 대단하고 멋진 발상 아닌가. 빈티지가 없으니,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뀌베 번호를 사용해 내부적으로 구별한다. 필자가 ‘겁도 없이’ 마신 그랑 시에클은 No.23이었다. 2002년, 2004년, 2006년 빈티지의 블렌딩 작품이다. 병입해 8년 숙성했고, 알코올은 12%vol다.

24K 금반지처럼 약간 구릿빛 뉘앙스를 띤 황금색이다. 글라스에 따르자 초미세 기포가 올라오며, 깊고 오묘한 향을 실어 날라 준다. 아카시아꿀, 구운 빵, 단 빵, 브리오슈, 개암과 아몬드 견과류향, 감초와 바닐라, 카라멜, 계피 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입안에서는 높은 산미와 풍요로운 살집, 찰진 버블감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20년 이상 숙성된 고급 부르고뉴 화이트 ‘몽하셰 그랑 크뤼’에 탄산이 들어있다면 바로 이 느낌일 것이다. 긴 여운은 5분 가까이 간다. 정말 특별한 샹파뉴다. ‘위대한 세기’가 내 입안에서 시작되고 있다.
Price 55만 원대

손진호 / 중앙대학교 와인강좌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17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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