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소중하다. 오랜 시간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 오면서 다양한 직종이 생겨났고 그 활동으로 인류는 지구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21세기 현재 인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고 직업에 대한 인식이 혁명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래도 가문의 직업을 잊지 않고 전수하려는 와인 세계는 그나마 다행이며, 회사 이름과 와인 레이블에 그 역사를 전하고 있다.
스페인 와인의 귀족, 리오하
스페인의 라 리오하(La Rioja DOC) 생산 지역은 2000년 포도주 생산 역사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지역의 특별한 잠재력이 발휘됐다. 1870년대에 필록세라(포도나무 뿌리 진딧물)가 프랑스 보르도 와인 생산 지역을 황폐화시켰을 때, 보르도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밭과 와인을 찾아 피레네 산맥을 건넜고, 국경에서 멀지 않은 리오하 지역이 간택됐다. 이때부터 필록세라의 위협이 사라지는 약 30여 년 동안 프랑스 생산자들은 그들의 선진 노하우와 기술을 리오하 지역에 전파했는데, 이는 스페인에서 보르도 스타일의 장기 숙성형 고급 레드 와인이 생산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스페인의 등급 제도가 시행된 1926년, 리오하 지방은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원산지 명칭을 수여받았다. 리오하 포도밭은 에브로(Ebro) 강과 그 지류들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중 하나가 상류에서 유입되는 리오 오하(Rio Oja) 강이며 여기에서 DO 이름이 나왔다.
대부분의 리오하 와인은 템프라니요 품종으로 만드는 적포도주며, 내부적으로 알라베사(Rioja Alavesa), 알타(Rioja Alta), 바하(Rioja Baja)의 3개 하부 구역으로 나뉜다. 처음 두 곳은 에브로 강에 면한 높은 고도에 위치, 온화한 기후와 토양을 가지고 있으며, 균형 있고 향기로운 와인을 생산한다. 리오하 바하는 더 덥고 건조한 낮은 고도에 있으며, 일상으로 마시기 위한 부드러운 가르나차 와인을 생산한다.
여러 품종의 블렌딩, 오크통 숙성 등 매우 고유한 와인 제조 스타일을 가진 역사적인 와인 산지 리오하~! 오랜 역사와 품격을 가진 고매한 보데가(양조장)들 속에서 리오하 와인 대중화의 기치를 높이 걸고, 맛있고 가격 좋은 리오하 와인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와이너리를 이 달에 만나 본다. 한국의 와인 애호가라면 웬만하면 피해갈 수 없는 그 유명한 렘브란트 초상화 그림이 그려진 바로 그 와인이다. 아하~!!
파우스티노, 그 이름의 출발점
파우스티노 와인 그룹의 초기 창립자는 엘레우테리오 마르티네스 아르속(Eleuterio Martínez Arzok)이다. 1861년 그는 알라바(Álava) 지역의 오욘(Oyón) 마을에 집과 땅을 장만하고, 포도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기가 지나면서 앞서 언급한 필록세라가 스페인까지 넘어 오게 되면서, 초기 밭은 파괴됐다. 1920년, 가문의 2세대인 파우스티노 페레스 데 알베니스(Faustino Martínez Pérez de Albéniz, 그의 이름에서 현재 와이너리의 이름이 나왔다.)는 부친을 도와 포도밭을 재건했다.
2세대인 파우스티노는 와인을 양조해 벌크로 판매했던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와이너리에서 병입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병입 판매를 결정한 1930년부터 양조장은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고, 이 시기 깜삐요(Campillo), 비냐 빠리따(Viña Parrita), 산타나(Santana) 그리고 파마르(Famar) 같은 초기 브랜드들이 만들어졌다. 가족 사업은 1957년 3세대인 훌리오 파우스티노 마르티네스(Julio Faustino Martínez) 때에 이르러 더욱 공고해졌다. 이 해 오스트리아에 첫 수출을 하면서 국제 와인 시장에도 진출했다. 1960년에는 부친 파우스티노에게 헌정된 브랜드 Faustino가 론칭했다. 파우스티노는 빠르게 스페인 최고의 브랜드 중 하나가 됐으며, Reserva와 Gran Reserva 부분에서 최고의 수출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아버지의 업적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와이너리 이름도 파우스티노로 정했다. 1980년대 말, 파우스티노 그룹은 스페인에서의 입지를 굳혔고, DO 지역에 새로운 독립된 양조장을 건립하는 또 다른 사업을 구상했다.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리오하 지방 최고의 테루아인 리오하 알라베사(Rioja-Alavesa) 지구의 핵심 구역인 라과르디아(Laguardia) 마을의 한 농장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주력 포도밭을 조성했으며, 1990년에는 깜삐요(Bodegas Campillo) 양조장이 완성됐다. 1995년에는 회사가 태동한 오욘(Oyón)에 있는 작은 양조장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선택적 확장 과정은 계속됐다.
파우스티노, 리오하를 넘어 스페인 전역으로
리오하 지방에 머물던 파우스티노 그룹은 1996년 비로소 리오하의 품을 떠나 역시 최고의 스페인 와인 산지 중 하나인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지방으로 진출했다. 회사는 빌라누에바(Villanueva), 구미엘 데 이산(Gumiel de Izán), 로아(Roa) 마을에 땅을 구입해 포도밭을 조성함으로써 지역에 입지를 굳혔다. 포르티아 프로젝트(Portia Project)의 시작이었다. 파우스티노 그룹 4세대의 마지막 과업은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의 새 양조장인 보데가스 포르티아(Bodegas Portia)다. 2010년에 문을 연 포르티아 양조장은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의 심장부인 구미엘 데 이싼(Gumiel de Izán) 마을에 있으며, 아름다운 양조장은 저명한 건축가 노만 포스터(Sir Norman Foster) 경이 설계했다.
1998년에는 스페인의 한 가운데에 있는 로스 트랜소네스(Los Trenzones) 마을의 한 농장을 인수하면서 라만챠(La Mancha DO) 지역으로 진출했다. 이 시설은 확장을 거듭해 보데가스 레간사(Bodegas Leganza)로 성장했으며, 콘데사 데 레간사(Condesa de Leganza), 핀카 로스 트랜소네스(Finca Los Trenzones) 브랜드 와인을 생산한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파우스티노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고 더욱 강화됐으니, 나바라(Navarra) 지방에 있는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마을의 농지를 구입해 포도밭으로 조성했다.
이곳은 지금 보데가스 발카를로스(Bodegas Valcerlos) 양조장으로 성장했으며, 마르께스 데 발카를로스(Marques de Valcarlos)와 포르티우스(Fortius) 두 개의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다. 그룹은 스페인 전역에 2220ha의 광활한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고, 본부인 리오하 지역에만 750ha의 밭을 경작한다. 친환경 영농법, 유기농법을 견지하며, 포도밭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인공위성 촬영 판독 장치, 밭의 상황을 제어하기 위한 기상 관측 장치를 각 구역마다 설치해 운영한다. 수확을 최소화하기 위한 열매 솎기(Green Harvest)와 손 수확으로 수확의 품질 확보하고 양조장에서 다시 설익은 포도와 가지 등을 제거하며 세심한 배려로 원물 포도의 품질을 높인다.
현재 와인 그룹은 4세대인 까르멘과 루르드(Carmen & Lourdes Martínez Zabala) 두 자매가 경영하며, 파밀리아 마르티네스 사발라(Familia Martínez Zabala)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성장과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Martínez Zabala는 그룹 소유자의 4대째 성씨로서, 1861년에 그룹 파우스티노의 전신을 설립한 바로 그 집안이다. 창립 이래 160여 년의 모든 변화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키워드는 가족 중심 경영, 포도밭 중시, 지속 가능한 환경, 중단없는 혁신이다. 현재 전 세계 70개 이상의 국가에 자사 와인을 수출하고 있다.
파우스티노, 램브란트의 초상화와 함께 세계로
특징적이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와인 레이블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라도 특별하게 제작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림을 좋아하는 미술 애호가라면 파우스티노 와인의 레이블은 단연 압권이다. 파밀리아 마르티네스 사발라 와인 그룹은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고, 지속적으로 예술 분야를 후원해 왔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레이블 중 하나가 된 파우스티노의 레이블 이미지 초상화는 17세기 네덜란드인 니꼴라스 반 뱀빅(Nicolaes Van Bambeeck)의 초상화다.
그는 하층 계급 출신이었지만, 1630년대 의류 무역으로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상류층 출신 부인과 결혼하는 등 신분도 상승했다. 그러다 보니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램브란트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했다. 1640년대 초에 그린 이 그림에는 검은색 정장모와 하얀 레이스 달린 린넨 옷 등이 등장하며, 그의 성공과 출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표정이 보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파우스티노 리오하 와인 레이블에 저 그림을 선정했을까? 정답은 바로 직업 때문이다. 1960년 파우스티노 브랜드를 론칭한 가문의 3세대인 돈 훌리오는 회사의 창립자인 할아버지 엘레우테리오 마르티네스 아르속의 이전 직업이 초상화의 주인공인 니꼴라스처럼 의류 상인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마도 그는 의류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네덜란드인, 니콜라스를 파우스티노 그룹을 성공시킨 마르티네스 가문과 동일시했기 때문인 듯하다.
파우스티노 와인은 그 유명세 만큼이나, 재미있는 의문점도 많은데, 호기심 대마왕인 필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또 한 가지 수수께끼가 남아 있다. 파우스티노 와인의 각 품질에 따른 뀌베(Cuvee, Brand) 명칭에 붙어 있는 숫자도 필자에게는 미스테리였다. Faustino I, Faustino V, Faustino VII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가? 루이 13세, 루이 14세처럼 왕의 이름을 뜻하는 것도 아닌 듯한데… 이 숫자 또한 3세대 오너 훌리오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자기가 만든 최고의 와인에 라틴 숫자로 ‘1’을 붙였다. 마치 경연대회에서 1위를 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홀수를 좋아해서, 홀수만으로 순위를 매기기로 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 다음으로 품질이 좋은 와인에 숫자 ‘3’을 부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회사에서 만든 브랜디인 Carlos III이 매우 인기가 있어서, 굳이 이 브랜드와 경쟁하며 새로운 ‘III’자를 붙일 필요는 없어서, ‘3’은 생략됐다. 따라서 다음 품질 와인인 Rioja Reserva 와인에 ‘V’가 붙게 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아래 등급인 가벼운 품질 와인에는 ‘VII’이 부여됐다. 한국 시장에는 최고 품질인 Faustino I과 6위에 해당하는 Crianza 그리고 막내인 Faustino VII이 수입되고 있다.
리오하, 템프라니요 ‘파우스티노 VII’ Rioja, Tempranillo, ‘Faustino VII’
스페인의 대표 품종인 템프라니요는 스페인 거의 전역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리오하 지역이 가장 유명하다. 이 와인은 리오하 와인의 개성을 담보하는 템프라니요 품종의 표준 품질을 느낄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와인이다. 수확한 포도는 발효를 마치고 미국산 오크통에서 4개월 정도 숙성시켰다.
미국산 오크통을 사용하는 것은 리오하 지역의 오랜 전통으로서, 이로 인해 상큼한 과일향과 향기로운 나무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된다. 필자가 시음한 2019년 템프라니요 파우스티노 VII는 자줏빛 색조가 예쁘게 주변을 장식한 루비 색상에, 블랙베리와 잘 익은 체리, 딸기향과 함께 바닐라, 오크향이 어우러진 산뜻한 부께를 느낄 수 있다. 더운 여름에 시음했기에, 온도를 16°C 정도로 낮춰 마셨는데도 전혀 껄끄럽지 않은 매끈한 미감을 보여 줬다.
미디엄 라이트 보디감에 드라이한 기본 품성을 유지한 채, 알코올 13%vol의 안정된 맛의 균형 감각이 잘 표현된 기본급 레드다. 외관은 또 얼마나 기품이 있는가? 레이블은 황금색 바탕에 가문의 로고와 렘브란트 초상화가 고급스럽게 배치돼 있어, 테이블을 품격있게 장식해 준다. 가격을 알면 놀라 자빠질 정도로 가성비가 좋다. 이 와인의 2015년 빈티지는 2017년 Berliner Wine Trophy에서 Premium Gold 메달을 수상했다. 부드러운 광양식 불고기나 살라미 소시지, 치즈나 육포 등 기본 안줏거리와 함께 한 여름밤을 시원하게 동반할 죽부인 같은 레드다.
Price 2만 원대
리오하, 크리안사 Rioja, Crianza
스페인에서 고급 품질 와인의 기준이 되는 ‘크리안사(Crianza)’라는 표현 명칭은 레드(Tinto) 와인의 경우, 최소 6개월의 오크통 숙성을 포함해 최소 24개월 이상 숙성하고, 3년째에 출시하는 와인에 해당한다. 화이트와 로제 와인은 그 기간이 약간 단축돼 최소 18개월 숙성한다. 크리안사 와인은 적당한 오크 숙성을 거친 와인으로 미디엄 보디 정도의 몸집에 가격 대비 품질이 좋다.
싱싱한 과일향이 살아 있으며, 살짝 오크의 복합미를 느낄 수 있고, 일상의 좋은 음식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최근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는 모던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 리오하 지방에서는 최소한 12개월의 오크통 숙성을 거치며, 또 12개월을 스테인레스 탱크나 병 안에서 숙성해야 한다. 필자가 시음한 2017년 빈티지 크리안사 와인은 미국산 오크통에서 14개월은 숙성했다. 아마 병입하고도 추가로 1년 정도 숙성을 시킨 후에 출시했을 것이다. 살짝 벽돌색이 감도는 짙은 루비색조를 띤 따뜻한 감성의 레드 칼라다. 잔에서는 산딸기와 체리의 생동감, 볏짚단과 건초, 젖은 흙내음이 안정감 있게 숙성돼 가는 중간급 템프라니요 와인의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
입안에서는 가뿐한 산미와 과일 풍미, 부드러운 타닌과 오크 숙성에서 오는 바닐라, 감초의 향긋한 드라이감이 잘 조화를 이뤘다. 13.5%vol 알코올의 힘과 우아한 질감 속에 감칠맛나는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매력적인 레드 와인~! 스페인의 만체고 치즈, 초리소 소시지, 하몬 접시와 함께 멋진 스페니시 식탁을 준비할 수 있겠다. 2017년 빈티지 와인은 제임스 서클링 점수 92점을 획득했다.
Price 3만 원대
리오하, 그란 레세르바, ‘파우스티노 I’ Rioja, Gran Reserva, ‘Faustino I’
스페인 와인 법규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과 완전히 다른 특이한 점은 법으로 규정한 숙성 기간을 준수하게 하고, 그에 따른 표시를 레이블에 명시하게 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빈티지 해의 좋은 포도로 만든 와인을 오래 숙성시킨다는 일반적인 관행에 비춰 본다면, 숙성을 오래 시킨 와인일수록 고급 와인으로 인정하나, 각기 다른 소비자층의 기호와 음식과의 조화를 생각한다면, 이는 각 개인의 선호도와 다양한 스타일의 표현으로 생각해 봄직도 하다.
이 와인과 같은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 명칭은 특별하게 성공한 해에만 사용한다. 레드 와인의 경우, 최소 18개월의 오크통 숙성을 포함해 최소 60개월(5년) 숙성하고, 6년째에 출시할 수 있다. 오랜 숙성의 결과, 잘 풀어진 올드 빈티지의 섬세한 부께와 부드러운 미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향은 매우 진화해 동물향과 황야 벌판의 느낌이 강하고, 보르도 올드 빈티지의 느낌과 비슷하나, 말린 자두, 모과, 석류, 블랙베리잼 쪽으로 나타나며, 말미에 다소간 브랜디 & 아마로네의 터치가 느껴진다.
필자가 시음한 2010년 빈티지 그란 레세르바 ‘파우스티노 I’은 템프라니요 86%, 그라시아노 9%, 마쑤엘로 5%가 블렌딩된 특별한 와인이다. 그라시아노 품종을 더해 은은한 향과 밝은 색조, 높은 산미를 추가했고, 마수엘로 품종은 향의 복합미와 풍부한 타닌감에 기여했다. 미국산 오크통만 사용한 것은 아니고, 프랑스산 오크통도 30% 가량 사용했다. 총 오크통 숙성 기간은 26개월이며, 병입하고도 36개월은 추가 숙성시켰다. 그야말로 장기 숙성의 가장 모범적인 경우다.
결국, 스페인 와인은 병입 숙성이 잘 돼 있어, 시판되는 와인은 구입 즉시 마실 만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오랜 숙성 기간에도 불구하고, 맑고 밝은 자줏빛 루비 칼라를 유지하며 매우 짙은 적갈색 색감이 놀랍다. 역시 놀랍게도, 싱그런 베리향과 과일향, 향신료향이 매우 복합적으로 깃들어 있다. 스페인 대지의 황야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먼지 뉘앙스가 기저를 이루며, 건초와 히드 내음, 정향과 감초, 바닐라의 향긋함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다.
미국 오크에서 기인한 커피와 카카오, 담배향과 프랑스 배럴에서 얻은 균형감, 바닐라, 너트류의 풍미가 미감까지 이어진다. 부드럽고 비단결같은 질감, 13.5%vol의 가뿐한 무게감 모두 스페인 최고의 레드, 리오하 명성을 우아하게 보여준다. 특히 파우스티노의 그란 레세르바는 회색 세라믹 미네랄 코팅 병을 사용해 빛으로부터 와인을 최대한 보호하고, 겉을 싸고 있는 그물망은 외부 조작으로부터 와인 병을 보호해주며, 황금빛 고급스러움을 더해준다.
생산 기준도 매우 엄격해 1964년 첫 출시 이후 단 14개의 빈티지만이 ‘Faustino I’으로 출시됐다. 연간 약 20만 병 생산되는데, 리오하 지역 그란 레세르바 판매량의 1/3이 ‘Faustino I’이다. 세계적인 주류 산업 잡지인 ‘Drinks International’에서 선정한 ‘World's Most Admired Wine Brands 50’ 리스트에서 당당히 23위를 기록했다. 필자는 이 와인을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토끼고기를 넣은 빠에야 요리에 오래 숙성된 만체고 치즈를 곁들여 운치있는 장마철 저녁 만찬을 즐겼다. 이제 이 기쁨은 독자 여러분의 것이다.
Price 7만 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