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verage People] 와인, 역사와 문화의 집약체 - Son’s wine lab 손진호 교수

2016.04.11 11:43:04

손진호 교수 강의의 매력은 와인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역사학을 공부했기에 또 현지에서 직접 사람들과 부딪히며 얻은 지식과 경험이 가득하기에 여타 교육자들이 흉내낼 수 없는 깊이를 갖추고 있다. 르네상스인처럼 살고 싶다는 손 교수, 그가 갈구하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와인. 그래서 더 궁금한 와인에 얽힌 그의 삶, 그가 생각하는 와인 이야기에 대해 들어봤다.

취재 서현진 기자 | 사진 조무경 팀장



Q.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와인으로 전향한 배경이 궁금하다.
92년 프랑스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정치에 민감했던 386 세대이기에 프랑스 대혁명을 박사학위 연구 주제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당시 내 지도교수는 그 사건은 너무 유명해 외국인인 내가 하기에 장애물이 많을 것 같다며 한국이 농촌국가이니 프랑스의 농촌사에 대해 연구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했다. 그때부터 사료가 있는 프랑스의 주요 농촌들을 다니기 시작했고 각 지역의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기 위해 농민의 집에서 한, 두 달씩 머무르곤 했다. 대부분의 중요 도시에는 모두 포도밭이 있었는데 그 사실이 신기했고 농민들은 또 매일 식사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게 이상했다. 지금이야 와인이 단순히 술이 아닌, 음식과 함께 즐기는 하나의 음료였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왜 일은 안하고 매일 술만 마실까 하면서 옆에서 얻어 마시기도 하고, 포도밭에서 포도 나무를 자르고 포도를 수확하는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3년 동안 프랑스 일주를 마치고 파리에서 1년 동안 칩거하며 프랑스 농업사에 대한 논문을 썼다. 97년 학위를 마친 후 한국에 원서를 냈지만 IMF로 인해 교수 임용이 쉽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조금 더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머물렀는데 와인과 진짜 인연이 시작되는 우연한 기회가 생겼다. 한국 유명 리서치회사 대표가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 여행을 오는데 가이드를 해달라는 선배의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늘 가는 곳 말고 프랑스의 새로운 곳을 보여주라고 했다. 무얼 보여주면 좋을까 고민하다 포도밭 관광을 해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와인에 관한 책을 한 권 사서 읽다보니 포도 품종에 따라 색깔, 향, 맛이 다르다 사실이 매우 재밌었다. 그렇게 회장 가족과 포도밭 여행을 하던 중 그들은 프랑스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빠듯한 생활에 좋은 음식을 맛보기 힘들었던 나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파리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들을 예약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음식과 관련된 책을 사서 공부를 시작했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에 가서 공부한 대로 소믈리에게 음식과 와인을 주문했더니 나를 매우 신기한듯 바라봤다. 동양인들은 보통 발음하기 쉽거나 기본적인 것을 시키는데 내가 조금 특별한 것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나의 사연을 들은 그는, 나에게 자신이 총무로 있는 파리소믈리에협회를 소개해 줬고 나는 매주 수요일 파리의 쟁쟁한 소믈리에 50여 명이 모여 테이스팅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가끔 나에게 그들은 시음한 와인이 무슨 맛인지 물어보곤 했고 느끼는 대로 대답하는 나에게 표현을 잘 하고, 그 말이 맞다며 칭찬해줘 더욱 흥이 났다. 그래서 파리직업전문호텔학교에 등록해 소믈리에 과정을 마치고 다양한 곳에서 와인에 대해 공부하면서 역사학에서 최고가 되지 않을 바에 와인으로 최고가 되자는 마음을 먹게 됐다.


Q. 다른 곳이 아닌, 와인의 주요산지인 프랑스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니 더욱 흥미롭다. 그렇다면 왜 소믈리에가 아닌 와인 교육을 하게 됐나?
98년 한국에 잠깐 들어와 수입사 사장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IMF로 인해 하락했던 와인시장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반면 교육이 부족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와인 교육에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프랑스에서 공부한 후 99년 완전히 귀국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학교 선배가 준비 중인 와인 스쿨 교육부문에 동참하게 됐다. 그것이 국내 최초의 와인 스쿨인 서울 와인 스쿨이다. 이어 중앙대학교 사회교육원에도 와인소믈리에 과정이 개설돼 함께 담당하게 됐는데. 이 두 곳 모두 최초의 시설이기에 이때 만들어진 명칭, 커리큘럼 등도 내가 처음 만들게 됐다. 이후 쭉 교육 시설에 머물다가 2013년부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대학, 기업체에 강의를 하고 있다.


Q. 강의에 대한 인기가 높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출신이 역사학자이기에 와인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문화성을 강조한다. 와인은 하나의 알코올이기 이전에 문화유산이기에 문화적 저변, 인문학적 접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면서 행복을 느낄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나는 항상 르네상스인처럼 살고 싶다. 그리스 로마시대처럼 이왕이면 좀더 밝고 뜻깊고 알차게 인문학적으로 살고 싶다. ‘와인’이 바로 나의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와인 한 잔에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고, 천문학, 지질학 등을 알지 못하면 와인을 그만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다. 즉 와인 한 잔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고 와인을 마시면서 공부하면 그러한 것들은 저절로 따라온다.



Q. 와인의 대중화를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우선 와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포도나무 씨앗을 심고 10년을 기다려야 포도를 수확할 수 있는 나무로 자라고 이 나무들은 매년 3월부터 자라 9월에 수확이 가능하다. 포도는 기후에 따라 생산량이 제한되기 때문에 맘대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소주, 맥주와는 다르다. 와이너리는 생업이자 가업이며 지역, 가문의 유산으로 와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 최고이듯이 이들에게 자신들의 와인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와인은 대중화의 측면에서가 아닌, 문화적 또는 다른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특히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문화적인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고객들에게 음식과 잘 매칭시킨 와인으로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제공해야 한다. 부드럽고 섬세한 음식을 판매하면서 와인은 수입사에서 주는 대로 강한 나라의 와인을 판매한다면 음식 맛과 와인 맛에 모두 실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음식과 맞는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해야한다. 이와함께 직원들의 와인 교육에도 신경을 써 정확한 지식을 고객들에게 전달해줬으면 좋겠다.


Q. 지금까지 마신 와인 중 최고의 와인을 소개해 달라.
2002년 빈티지, 부르고뉴의 피노누아 와인인 ‘라 따슈(La Tâche)’다. 로마네 콩티의 와이너리에서 나오는 이 와인은 10년 전에도 가격이 120만 원이 넘을 정도로 고가 와인이다.
이 와인을 마시게 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국내 유명 맥주회사에 와인 강의를 갔었는데, 그날 마침 회장님이 어떤 와인을 오픈해 마셔보니 상태가 좋지 않다며 내게 시음해볼 것을 요청했다. 그 와인 바로 ‘라 따슈’로 아주 훌륭한 상태였다. 가끔 장기 보관된 피노누아 와인에 대해 이해가 부족해 맛을 이상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이상이 없다고 알려줬는데 와인을 가져가도 된다기에 그날 저녁 9시 모든 강의가 끝나고 연구실로 와 차갑게 해 놓은 라 따슈를 마셨다. 더운 여름에 마당에서 달빛을 보며 차가운 최고의 와인을 마셨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인간이 심은 포도나무에서 이렇게 가치있고 맛있는 와인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을까 하며 감탄했던 그런 맛을, 한국에서 마시니 감회가 새로웠고 마치 이태백이 술을 마시고 시를 읊는 느낌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날 밤의 정취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후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특히 와인 때문에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그 와인을 마셨던 순간의 느낌을 생각하며 다시금 힘을 내곤 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와인 교육이 서울에 집중돼 있는데 지방에도 제대로된 와인 교육에 대한 니즈가 많다. 따라서 ‘와인 투엘브’라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방에 있는 와인에 관심이 높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일년 열두달, 12명씩 교육을 하는 것이다. 12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이고 서양에서 완벽한 숫자이며 무엇보다 와인 한 병은 12명이 나눠 마시면 제일 좋아 ‘와인 투엘브’라는 이름을 짓게 됐다.
앞으로 이 교육은 물론 다양한 강의을 통해 각 와인 산지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미식 아이템으로서, 구미 각국의 다양한 먹거리도 선보이는 것은 물론 한식의 소박하고 담백한 음식과 함께 편하게 먹을 와인을 소개할 것이다. 또한 와인을 통해 대화와 함께 즐기는, 절제하는 음주 문화를 전파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예정이다.

<2016년 4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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