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하루를 끝내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국민 간식 치킨과의 맥주. 야식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맥주는 빼놓을 수 없는 기호식품이 됐다. 최근 마트나 편의점에 그 종류도 다양하게 빼곡이 차지하고 있는 맥주들은 맥주 애호가에게 골라먹는 재미를 선사한다.
게다가 최근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수제맥주까지! 브루어의 정성과 개성이 고스란히 담긴 수제맥주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그 중 세계 맥주대회 22관왕을 차지해 우리나라 수제맥주계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브루어리가 있다. 플래티넘은 국내 최초로 Pale Ale을 선보인 브루어리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맥주시장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국내 유일무이한 맥주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플래티넘의 윤정훈 부사장과 플래티넘 맥주. 그가 이야기하는 맥주의 세계에 빠져보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저는 제가 이런 세계에 입문할 줄 몰랐어요. 브루마스터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죠. 미국 유학 당시 친구 아버지에게 홈브루잉을 배우다가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윤정훈 부사장은 단순히 홈브루잉을 취미로 즐기다 브루어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미국에서도 홈브루잉이 유명하지 않을 때라 외국인 유학생이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에 주변의 반응이 좋았다고. 윤 부사장을 향한 칭찬이 그를 마음껏 춤추게 한 것이다.
재미를 가지고 만들어본 맥주를 주변사람과 함께 나눠 마시고 더 나은 맥주를 위해 연구하다보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보자는 생각으로 맥주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만든 맥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나요. 맛이 좋은지 나쁜지의 기준도 없었죠. 단지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윤 부사장은 그렇게 제대로 맥주를 배워보고자 맥주학교에 진학, 졸업 이후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 사부를 만나 본격적으로 브루잉을 시작하게 된다.
기술자는 경력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는 미국 대학 중 몇 안 되는 양조학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UC데이비드로 학교를 옮겨 양조학의 기초부터 탄탄한 실력을 다지기 시작한다. 맥주에 대한 공부를 어느 정도 마쳤다고 생각한 그는 경력을 쌓을 겸 일하기 시작한 브루어리에서 그의 사부 Joe Pickett를 만난다. “맥주학교를 나왔으니 맥주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었죠.
아주 큰 오산이었어요. 현장에서 브루마스터를 만나고 앉아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만큼 혼도 많이 났습니다.” 그에게 양조를 제대로 가르쳐 준 마스터는 53년 경력의 베테랑 마스터였다. 하지만 마스터는 맥주학교를 졸업한 이는 아니었고, 아직까지 각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회에서 입상한 마스터들 중에서도 맥주학교 출신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윤 부사장이 말하는 브루마스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아한 직업이 아니다. 단순이 맛을 보고 이를 평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맥주 제조의 전 공정을 관리하는 공장의 기술자다. 성수기에는 주말 밤낮 할 것 없이 공정에 매달려 있어야하고 자칫 기계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이를 직접 손봐야 하기도 한다.
“기술자는 연륜이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출신, 즉 학벌을 따지는 경향이 있죠.” 우리나라에는 맥주 양조에 대한 프라이빗 스쿨은 몇 군데 있지만 정식 교육기관은 아직까지 없다. 이에 외국으로 맥주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윤 부사장은 맥주 기술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수제맥주의 불모지에서 뿌리를 내리다
최근 맥주시장이 크게 넓어졌다고 하지만 그 중 한국 수제맥주시장은 아직까지 불모지다. 이유는 주세법상의 문제다. 윤 부사장은 4캔에 만 원하는 수입맥주에 비해 수제맥주가 가지는 세금 부담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세는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다. 종가세는 판매되는 가격에 의한 세금으로 타 국가의 종량세, 양(도수)에 의해 세금을 걷는 것과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의례적으로 종가세는 고가품에 대해 공정이 많고 제조가가 높으면 그에 대한 세금을 더 내라는 의미인데, 종가세를 적용하는 우리나라는 원부자 재비가 많이 드는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세금을 높게 책정한다. “수제맥주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일반 대중성 있는 맥주가 판관비에 들일 비용을 원부자재에 투자합니다. 종가세를 적용했을때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은 원부자재, 인건비, 장비 모두 저렴하게 대량생산하는 경우죠. 영세한 브루어리들은 버틸 수 없는 구조에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경우 주세에 판관비, 제조비까지 모두 들어가는데 수입맥주는 이 부분을 본국에서 이미 떼고 있다는 가정 하에 이중과세가 안 되기 때문에 4캔에 만원하는 수입맥주와의 가격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맥주의 통신판매가 불가하다는 점도 문제다. 전통주의 경우 전통주 장려 프로그램 등으로 통신판매가 가능해 졌지만 여전히 맥주는 직접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 “술가지고 엄격하기로는 미국만큼 규제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병도 종이에 싸서 다녀야하고 차에 실을 때도 무조건 트렁크에 실어야 해요. 하지만 그렇게 엄격한 미국에서도 통신판매는 이뤄지고 있죠.”
주세에 유통의 문제까지, 한국 수제맥주가 나아가야 할 길은 다소 막막해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윤 부사장은 당장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최근 정부에서 수제맥주 시장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추가 세율 혜택을 늘리고 있다는점은 고무적이라 이야기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의 맥주 소비량은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맥주로 인해 벌어드리는 돈의 대부분이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지요. 최근 소형 브루어리에 대한 세금 혜택이 많아지고 있는데 중형 브루어리들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해 클 수 있는 실력파 브루어리들이 많습니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 범위가 넓어져 한국 수제맥주 시장의 파이가 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플래티넘 크래프트 비어
이렇게 맥주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플래티넘 맥주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2015년 세계 3대 맥주대회 AIBA의 올해의 챔피온 회사로 지정되기도 한 저력을 지니고 있다. 2002년 주세법 개정과 함게 문을 연 플래티넘 브루어리는 국내에서 최초로 Pale Ale을 생산, 현재 엔타이시 생산공장과 충북 증평 공장에서 총 7가지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플래티넘 Pale Ale 맥주는 영국 맥주의 장점과 신대륙 미국의 창조성을 조화시킨 플래티넘의 대표맥주로 입맛을 돋우는 가벼운 쓴맛과 함께 다양한 열대과일의 꽃향기가 풍부해 현재 세계 각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맥주다. 여기에 벨기에 밀맥주 스타일로 필터처리를 하지 않은 플래티넘 화이트 에일은 첫 맛의 상큼한 느낌 뒤로 목 넘김 후 코리엔더와 오렌지에서 나오는 달콤함이 여운으로 남는 맥주다. 이외에 IPA, 오트밀스타우드, 골드에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모든 맥주들은 윤 부사장의 손에서 직접 양조됐다.
플래티넘 크래프트 비어의 부사장이자 브루마스터로서 그는 제조공정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유일의 세계 맥주 대회의 심사위원이자 수요미식회, 거인의 어깨 등의 매체에서 맥주의 세계를 알리고 있다. 현재 플래티넘의 증평 공장이 아시아에서 Top 3 규모의 브루어리로 꼽히고 있는데 더 큰 3공장을 만들어 한국에서 가장 큰 브루어리를 만들고 싶다는 윤정훈 부사장. 그의 맥주에 대한 열정으로 빚어낸 플래티넘의 맥주들이 앞으로 맥주 불모지에서 더 튼튼한 뿌리를 내리길 응원한다.
플래티넘 맥주와 함께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
미국에서 졸업 후 포니 익스프레스 브루잉 컴퍼니에서 헤드브루어 자리까지 올랐다. 당시 캔서스에서 가장 큰 브루어리의 책임자를 역임했기 때문에 청운의 꿈을 안고 귀국했다. 하지만 귀국 후 상황은 녹녹치 않았고 5개월여 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당시 한국에는 독일맥주가 성행했던 시기여서 내가 배운 IPA, Pale Ale이 반응이 좋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흔치않은 공법이었던 Dry Hopping(생 홉을 넣어 발효하는 공법)까지 도입해 최선을 다했지만 너무 쓰다는 피드백이 강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던 시기에 지금의 사장님을 만났다.
당시 수제맥주는 레스토랑 안의 공장에서 만들어 그 곳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기에 유통이 어려워 사장님의 제안으로 중국 옌타이에 공장을 세우게 됐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워낙 외자출자에 배타적인 중국인데다가 식품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허가받는데 만 3년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허가를 받아 원부자재는 독일과 미국에서 공수, 현재 옌타이 공장에서는 연간 200만 리터, 증평 공장에서는 연간 500만 리터의 플래티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래티넘 맥주는 16년 만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브루어리로 자리매김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플래티넘이 처음 소개됐을 때에는 독일 맥주가 유명했기 때문에 미국 맥주를 들여왔다는 것 자체가 유일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초반에는 독일 맥주에 길들여져 있는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았지만 굴하지 않고 음용성에 중점을 둬 맥주를 양조했던 것이 대중적으로 어필됐다. 대중성을 맞췄다고 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맥주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만큼 원부자재 가격이 많이 들어가는 브루어리도 없을 것이다. 이제 맥주의 원조 독일 뮌헨에 가도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힙합바지를 입은채 미국 홉을 이용해 양조하고 있는 브루어들이 많다. 그만큼 미국 맥주도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고 있기에 우리나라 맥주 애호가들에게도 천천히 스며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플래티넘 맥주는 다수의 수상경력도 가지고 있다.
국제대회같은 경우에는 우리 맥주 공장이 중국에 있어 Made in China라는 인식이 너무 강했다. 때문에 제품 품질에 비해 평가가 절하되는 점이 안타까워 출품하게 됐다. 맛이라는 것이 객관화하기 힘들어 우리 맥주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일단 퀄리티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 자료를 마련해야 했다. 그 결과 약 3년 동안 22관왕을 할 수 있었으며 2015년도에는 세계 3대 국제 맥주대회 중 하나인 호주국제대회에서 올해 브루어리 챔피언 트로피도 받았다.
최근 홈 브루잉, 브루어리 투어 등 수제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의 수제맥주 소비 트렌드를 예상해본다면?
수입 맥주와 크래프트 맥주의 차이를 일반인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 맥주 시장은 약 5조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 전체 맥주 시장의 12.3%, 일본이 약 2%를 차지하는 것에 비해 1% 미만인 수치로 아직 가야할 길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또한 3년 이내 맥주 유행이 생길 것으로 본다. 전체적으로 맥주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 그 안에서 수제맥주 회사끼리 경쟁할 수 있고,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보다 양질의 맥주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플래티넘 브루어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우선 전체 맥주 시장이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한다. 따라서 플래티넘이 수제 맥주계에서 양적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중에 있다. 퀄리티는 가져가되 가격도 최대한 저항성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미 음용성 부분에서는 대중의 인지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한국 전통주의 기술을 맥주에 접목시키려 노력 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코지(사케를 만드는 주원료)를 활용한 맥주를 만들어 국제대회의 카테고리에까지 오르는 등의 활약을 보이고 있다. 전통주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도 다양한 전통 공법을 많이 가지고 있기에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맥주 숙성 또한 오크통이 아닌 옹기에 숙성시켜 우리나라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만들고자 한다.
브루마스터로서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비전은?
다양한 기호에 맞는 개성있는 맥주를 생산하는 수제맥주 산업은 벌써 전 세계적으로 검증이 된 사업이다. 이 수제맥주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존재가 브루마스터다.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산업이기에 그 어느 때 보다도 전망이 밝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수제맥주 산업이 전체 주류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플래티넘 브랜드도 키우고 많은 국제 대회에서 우리 수제맥주를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