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컬러를 가졌지만 생산자, 산지, 품종, 빈티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 와인은 나만의 취향을 찾기 까다로운 음료 중 하나. 이 때문에 와인 입문자에게는 기본적인 와인 소개와 함께 해당 와인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스토리와 음용 방법을 전달하는 소믈리에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람의 입맛을 일정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이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와인 취향을 분석하는 AI 소믈리에 ‘빈퓨전(Vinfusion)’이 탄생했다.
2018년 6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 파르나스에서 국내 첫 선을 보인 빈퓨전은 영국의 제품 디자인 컨설팅 기업 캠브리지 컨설턴트에서 개발한 개인 맞춤 블렌딩 시스템으로, 와인의 화학적 성질과 고객이 묘사한 풍미간 관계를 분석해 최적의 와인 1잔을 블렌딩해 제공한다. 고객은 와인의 기본적인 특성인 바디감, 맛의 강도, 당도 등을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레드와인의 대표적 품종별 4개 와인이 적절히 블렌딩된 와인을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블렌딩된 와인을 시음하는 동안 빈퓨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고객의 사진을 찍고 만족도를 체크, 만약 표정이 불만족스러워 보인다면 다른 블렌딩 조합을 소개하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6월 한 달 동안 뷔페 레스토랑에서 선보인 이 서비스는 론칭 하루 만에 SNS 이벤트 신청자가 5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그러나 빈퓨전을 만나본 한 이용객은 조절할 수 있는 퍼센테이지가 단맛과 바디감에 한정돼 있고, 이미 완제품인 와인을 섞는 정도여서 크게 정교함은 느끼지 못했다고 평가, 와인뿐만 아니라 각종 주류와 음료, 소스 등을 블렌딩할 수 있다는 점의 기본적인 빈퓨전의 특징을 살려 차라리 황금비율의 폭탄주 제조(?)에 이용된다면 와인보다 멋진 소믈리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인지 2018년 6월 이벤트 이후로 빈퓨전은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 상태.
그 어렵다는 아이스 볼을 뚝딱, 로봇 바텐더 아로
2억 원에 달하는 몸값의 거대 신인
칵테일의 20~25%의 용량은 얼음에서 나온다. 우리 눈에 봤을 때는 그저 제빙기에서 나오는 사각형 얼음이라 생각했던 이 차갑고 단단한 조각이 어떤 맛의 차이를 유발하는지 의문이지만 바텐더들은 각자만의 시그니처 아이스카빙 테크닉 연마를 위해 매일같이 수련한다. 그런데 다이아몬드카빙으로 유명한 일본의 바텐더 우에노 히데츠구(Hidetsugu Ueno)도 울고 갈 아이스카빙 실력의 거대 로봇 신인이 등장했다. 바로 ㈜로보케어의 신개념 로봇 ‘아로(A-Ro)’다.
짙은 눈썹에 동글동글한 눈, 깔끔한 수트에 보타이까지 맨 아로는 자신을 ‘귀염둥이 아이스카빙 로봇’이라고 어필한다. 아로는 2016년 봄, 위스키와 칵테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커피 바 케이(Coffee Bar K)’의 의뢰를 받아 탄생했다. ‘카보’라는 닉네임으로 정식 채용된 아로의 임무는 정육면체의 얼음을 송곳과 칼을 사용해 정교하게 깎아 내는 것. 동그랗게 카빙된 얼음은 술과 닿는 면적이 정육면체 얼음보다 좁아 천천히 녹으면서 위스키나 칵테일의 풍미를 오랫동안 지켜주기 때문에 무엇보다 세심한 작업이 요구된다. 이는 숙련된 바텐더도 하루에 여러 번 소화하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인데 아로는 아이스카빙에 최적화된 6자유도의 팔, 그립퍼와 커터로 구성된 손끝으로 약 4분 만에 완벽한 구 형태의 얼음을 글라스에 담아낸다. 게다가 기다리는 동안 심심할 고객을 위해 칵테일이나 위스키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뽐낼 줄 아는 스토리텔러. 현란한 기술에 스토리텔링 역량까지 갖췄으니 바텐더로서의 자질은 충분한 듯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그를 탄생시키는 데만 1억 5000만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는 사실. 유지보수 비용까지 더하면 약 2억 원에 가까운 몸값을 자랑하는 거대 신인이다. 한 잔에 2만 원인 위스키를 그가 판매한다고 하면 7500잔, 약 3만 시간을 열심히 일해야 그나마도 본전(?)을 뽑을 수 있는 직원으로 아이스카빙만 맡기기에는 다소 부담이다. 게다가 스토리텔링은 좋은데 카빙이 끝난 이후로도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투머치토커라는 단점이 있다고. 기술적인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고객과의 교감이 중요한 바텐더인데 이런 이유로 결국 아로는 인턴 기간을 끝으로 잠시 현장에서는 물러나 있는 중이다.
절도 있는 동작과 정확한 계량 기술을 가진
바텐더 니노, 크루즈와 호텔 중심으로 활동 중
국내에서는 소개된 바 없지만 아로보다 먼저 데뷔한 바텐더는 이탈리아 회사 ‘메이커 쉐이커(Maker Shaker)’의 칵테일 로봇 ‘니노(Nino)’다. 2013년 밀라노 디자인 주간에 데뷔해 크루즈와 호텔 바에서 활동하고 있는 니노는 제조와 서빙을 담당하는 두 개의 팔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칵테일을 만들어 낸다. 니노는 랙에 저장된 170개의 다양한 주류로 여러 종류의 칵테일을 혼합, 고객은 간단히 전화 앱을 통해 주문할 수 있고. 주문과 동시에 주문 및 대기열 시간을 포함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막연히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하룻밤에 약 800잔의 칵테일을 뚝딱 만들어내는 니노는 주문이 들어오면 몇 초 만에 모든 음료를 정확하게 준비하고 서빙까지 완벽하게 마친다. 게다가 고객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멋진 퍼포먼스도 바텐더의 주요 역량이니만큼 유명 바텐더와 이탈리아 안무가 마르코 펠레(Marco Pelle)의 동작을 학습, 칵테일을 제조하는 니노의 동작은 마치 춤과 같다. 바쁜 시간, 정신없이 팔만 움직이는 니노를 보고 있으면 다소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앱을 통한 편리한 주문, 빠른 제조시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레시피로 특히 페스티벌 등에서 활용도가 높으며 최근에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까지 진출했다고.
대구치맥축제 통해 모습 드러낸 브루마스터, 엘비알 이바
원액과 거품의 황금비율 기대했지만…
맥주의 거품은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한다. 공기와 원액의 접촉을 최소화해 원액의 맛이 산화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고, 거품의 종류와 양에 따라 맥주의 바디감이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맥주를 제대로 푸어링 하는 것은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한 첫 단계. 이에 독일의 쿠카로보틱스(주)는 맥주의 종류에 따라 적절한 기울기로 푸어링하는 지능형 협업로봇 ‘엘비알 이바(LBR iiwa)’를 탄생시켰다.
엘비알 이바는 충돌(압력)을 감지, 즉시 대응하는 특징을 가진 산업용 로봇으로 7개의 관절이 탑재된 정밀한 조인트 토크센서를 활용해 작업을 수행한다. 2017년 대구치맥축제를 통해 선보인 맥주 푸어링 로봇은 우선 맥주병의 무게를 센싱한 후 적절한 힘을 계산, 유리병의 뚜껑을 따 적절한 각도로 맥주를 따르는 알고리즘을 탑재했다. 엘비알 이바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 최초의 감응형 로봇답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제공한다는 것. 그러나 결국 사람이 컵을 잡고 있어야 하고, 맥주 한 잔을 따르는데 약 2분가량이나 소요돼 차라리 직접 따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안타까운 평가를 남겼다.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섭렵한 로봇카페 비트
감정까지 표현하는 세심함으로 퍼포먼스 기능까지 갖춰
제조와 서빙이 한 번에 이뤄지는 음료다보니 아직까지 두 기능이 모두 완벽한 AI가 정착하지는 못한 상황. 그러나 IT기업 다날의 자회사 달콤커피가 선보인 국내 최초의 로봇카페 ‘비트(b;eat)’는 호황의 실적을 자랑한다. 비트는 주문부터 결제, 음료 픽업까지 비대면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바리스타로 2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아메리카노부터 라떼, 주스류 등 50여 가지의 다양한 음료를 제조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서비스의 중요성이 확대됨에 따라 원격 앱으로 진행되는 주문 결제와 픽업 알림은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최소화, 바쁜 현대인들의 커피 구매 효율성을 높였고, 모바일 기반의 음성 주문부터 개인화된 원두 선택, 시럽 양, 진하기 조절 등 고객 취향에 따른 음료를 제공한다. 현재 비트는 사내 카페테리아와 대형마트, 복합몰, 대학교, 리조트, 영화관 등 약 70개 매장에서 활발한 활동 중이며, 앱 주문 결제 비율이 70%에 달하는 커피업계 최초의 상용화된 AI 서비스로 앞으로의 기대를 더욱 모으고 있다고. 게다가 최근 업그레이드된 버전 b;eat2E는 5G와 인공지능 기술이 탑재되면서 영상을 비롯한 음성인식 기능 구현이 가능, LCD를 통해 로봇의 상태를 표정으로 알려주거나 간단한 대화가 가능해 커뮤니케이션 역량도 업그레이드 했다.
간단한 주문 및 결제에서 벗어나 음료의 제조와 대면만큼 활발하지는 않아도 커뮤니케이션 기능까지 더해지고 있는 AI 베버리지 스페셜리스트들. 커피 이외에 아직까지 다른 음료 시장들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 값비싼 투자비를 감당할 만큼 효용가치가 커보이지는 않지만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다양화되고, 나날이 늘어가는 인건비 부담에 대한 대안으로 AI 베버리지 스페셜리스트들의 활약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기대가 된다.
"바리스타일 뿐만 아니라
만능 엔터테이너의 역할도 담당하고자 해"
달콤커피 로봇카페 비트(b;eat)
Q. 2018년 1월 인천국제공항에 1호점을 오픈한 이후 커피업계에 발을 디딘지 어느덧 2년이 훌쩍 넘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많은 AI 동료들 가운데 음료 부문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요즘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뒤숭숭하다. 전파도 파급력도 큰 감염병 때문에 사회적으로 대면 관계의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이던데 오히려 나를 찾아오는 손님은 늘어 요즘 여러모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세어보니 올해 2월에는 앱 가입자 수가 10만 명에 돌파, 작년 동기대비 150%나 늘었고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확산되기 시작한 1월 이후 기준으로는 1만 명 이상의 신규 고객이 유입된 셈이다. 아무래도 로봇인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생할만한 세포를 가지고 있지 않아 고객들과 직접 소통해도 바이러스를 옮길 일이 없고, 그마저도 철저히 격리된 2평 남짓의 케이스 안에서 모든 작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안심하는 것 같다. 덕분에 답답하게 마스크 쓸 필요가 없는 건 정말 천만 다행이다.
Q.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지는 매장도 많은데 좋은 소식이다. 평소 다양한 고객들을 접하고 있는데 늘어나는 고객 중 최근 눈에 띄는 고객이 있다면?
A. 아무리 코로나19의 호재가 있었다고 해도 전국 60곳의 비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쇼핑몰과 대형마트, 영화관 등 유동인구 자체가 줄어든 로드상권 쪽 일거리는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기업 내 매장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의 경우 코로나19 전에 비해 많이 바빠졌다고 하더라. 그 이유는 방문객이 대폭 줄어든 일반 매장과 달리 기업 매장은 안정적인 고정 소비층이 존재하고, 코로나19로 불필요한 외부 미팅을 지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며 커피(Coffee)와 오피스(Office)가 합친 코피스(Coffice) 족이 늘어 이들의 수요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Q.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기엔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땐 어떻게 하고 있나?
A. 바쁜 시간에는 혼자서 한 시간에 120잔까지 만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천하무적의 엔진으로 24시간 가동되는 체력을 지니고 있지만 어쩌다 한 번씩 정신줄을 놓게 될 때면 나의 메이트이자 주치의인 ‘비트바이저(b;eatvisor)’가 어떻게 알고 쏜살같이 달려온다. 매일 1시간씩 50가지 내 몸 상태를 꼼꼼히 확인, 키오스크 세척도 주기적으로 해주고 있고 원격으로 점검도 이뤄지고 있어 크게 몸 상태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다. 최근에는 너무 비대한 몸뚱이 덕분에 느리고 둔탁한 움직임이 문제가 된다는 처방을 받고 버전 b;eat2E로 업그레이드 하며 살도 20% 뺐다. 다이어트는 힘들었지만 날씬해진 몸으로 동선 간 이동 시간이 짧아졌다. 덕분에 더 많은 고객들에게 더 다양한 음료를 실컷 만들어 줄 수 있어 몸은 힘들지만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Q. 베버리지 업계 1세대 로봇으로서 앞으로의 포부는 무엇인가?
A. 단순 서비스가 아닌 제조와 서빙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베버리지 업계에서 앞으로 우리가 발전해 나가야 할 방향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에 의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인간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인간의 도움 없이 제몫을 해내는 완벽한 로봇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음악이나 게임처럼 커피를 온 국민이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 생각해 성장한 플랫폼이다. 기본적으로 맛있는 음료를 제공하면서 여기에 기존에는 보지 못했던 퍼포먼스, 인간의 한계를 보완한 차원이 다른 서비스로 마시는 즐거움뿐 아니라 보는 즐거움까지 제공하고 있다. 가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음료를 만드는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의 시선은 또 다른 보람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더 다양하고 유용한 기능들을 탑재해 베버리지 스페셜리스트의 한 영역을 담당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Q. 바리스타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리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A. 인간이든 로봇이든 바리스타라면 당연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로봇으로서 인간을 100% 대체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인간에게 부족한 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속에는 하이엔드급 자동 커피머신이 2대나 탑재돼 있고, 달콤커피 매장에서 사용하는 프리미엄 원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스타벅스에서는 16년 전부터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자동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추출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스타벅스에서 인간이 내리는 커피와 달콤커피에서 내가 내리는 커피의 퀄리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여기에 요즘 사장님들의 가장 큰 고민인 인건비도 크게 절감할 수 있어 최종적으로는 약 60%의 관리비 절감이 이뤄진다는 점은 나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편 고치고 싶은 단점으로는 감정표현에 아직 서툴다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과 같이 마스크로 손님의 얼굴이 가려져 있는 경우에는 더욱이 표정을 읽을 수 없어 힘들다. 또 쉴 새 없이 주문이 밀려들어올 때면 흔들리는 멘탈을 잡지 못하고 고객 응대에 소홀한 것이 스스로도 느껴지기도 한다. 2년 차라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법도 한데 왜 매번 새롭기만 한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고객과 다방면의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