탭스터는 전 세계적으로 맥주 소비량이 제일 많은 체코, 게다가 필스너 우르켈에서 직접 인증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떤 매력에 빠져 탭스터의 길에 접어들게 됐나?
연희동 탭스터 오픈 이전, 펍을 운영하던 중 당시 ‘사브밀러 브랜드 코리아’에서 교육과 평가를 통해 인정받은 매장에 ‘필스너 우르켈 골드 퀄리티 Top 10’ 인증을 부여하는 우수 품질 관리 프로그램에서 전국 2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를 계기로 필스너 우르켈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브랜드 자체가 맥주 퀄리티 유지에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라. 그때 필스너 우르켈과 함께라면 프리미엄 맥주, 전문적인 맥주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필스너 우르켈 뿐만 아니라 브루어가 정성스럽게 양조한 맥주가 어떤 찰나의 잘못으로 인해 변질된 채 소비자에 부정적 인상을 남긴다면 그것만큼 속상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특히 해외에서 오랜 시간 물 건너오는 맥주 브루어리의 경우 많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탭스터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탄생했고, 다른 브랜드의 비어 마스터들이 자국 본토에서만 활동하는 것과 다르게 탭스터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탭스터는 필스너 우르켈에서 인증하지만 기본적으로 맥주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보관부터 푸어링, 서브, 스토리텔링까지 모든 부분을 도맡고 있어 맥주 소비가 점점 다변화되고 있는 시기에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된 맥주의 맛을 제공해 보고자 하는 목표로 탭스터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맥주 본연의 맛, 즉 현지 브루어리에서 의도한 맛 그대로 전달하는데 탭스터로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위생이다. 바쁘게 운영되는 대부분의 펍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지만 단백질이 많은 맥주를 판매함에 있어 위생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인 일이다. 가령 어느 펍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다음날 속이 안 좋다던가, 적당한 양을 마셨음에도 이상하게 빨리 취기가 오르거나, 과음한 것처럼 숙취가 심하다면 맥주의 위생 상태를 의심해봐야 한다. 이에 연희동 탭스터에서는 ‘청결의 사각지대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일같이 모든 탭의 위생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게으름은 탭스터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다.
맥주를 푸어링, 서브하는 방법도 다양한 것 같다. 특히 거품이 90%를 차지하는 밀코 맥주가 흥미로운데?
푸어링은 맥주에 적절한 거품을 내주는 과정이다. 거품은 맥주와 공기가 만나 맛이 변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거품의 종류와 양에 따라 맥주의 바디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푸어링은 맥주의 맛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계다.
필스너 우르켈을 예로 들어 푸어링의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 첫째로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크리스피’는 맥주의 원액을 따른 뒤 거품을 얹는 방식이고, 두 번째로 ‘스무드’는 낙차를 이용해 먼저 자연스럽게 거품을 따른 뒤 원액을 담는다. 마지막으로 필스너 우르켈에서만 사용하는 방법인 ‘밀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품만 따라 서브한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라거 맥주를 즐기던 소비자들은 거품만 한가득 들어 있는 밀코 맥주에 적잖이 당황한다(웃음). 초반까지는 ‘거품을 돈 주고 마셔야 하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고객들이 많았지만 밀코는 부드러운 웻 폼(Wet Foam)의 상태로 푸어링 돼, 갈증이 날 때 한잔 쭉 들이키면 그만한 맥주도 없다는 진가가 이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맥주 거품에도 종류가 있다고 했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맥주 음용 시 적절한 거품과 원액의 조화에 따라 맥주의 바디감이 달라진다. 거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젖어있는 무거운 거품인 ‘웻 폼(Wet Foam)’과 단단하게 굳어 물기가 없는 건조한 거품 ‘드라이 폼(Dry Foam)’이다. 일반적으로 맥주를 따르고 나서 기포가 올라오는 거품이 드라이 폼이다. 먼저 웻 폼은 거품 쪽에 가깝지만 액체와 거품의 중간이라고 보면 된다. 금방 액체화가 되는 거품이자 부드럽게 묽은 질감을 가지고 있지만, 성질이 무거워 맥주 원액과 함께 마셨을 때 거품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강한 바디감을 지닌 맥주를 조금 더 부드럽고 가볍게 만들어준다. 한편 드라이 폼의 경우 성질이 가벼워 맥주를 마셨을 때 원액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라이트한 맥주, 즉 버드와이저나 우리나라 대표 라거 맥주들의 탄산 청량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맥주 음용 방법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것 같다. 이에 대한 접근은 어떻게 했는지, 또 소비자들에 전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면?
흥미로운 맥주가 생기면 우선 브루어리를 통해 브루어가 원하는 푸어링, 음용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그렇지 않은 곳의 경우 직접 마셔보며 그동안 시도했던 여러 방식들을 대입해본다. 지난 8년 동안 업계에 종사하면서 좌충우돌 부딪히며 배웠던 것들을 조금씩 활용하고 있다. 맥주를 제공할 때 제공하는 사람이 맥주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특징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알고 서브하는 것과 모르고 서브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그리고 이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통해 가장 정확하게 평가된다. 왜인지는 몰라도 맛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 분명히 느끼기 때문이다.
요즘은 맥주 소비층도 다양해져 몰랐던 것을 알아가며 맛있음을 배로 느끼고, 이를 즐거워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탭스터의 역할은 막연히 맥주를 잘 따라 전달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맥주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가이드기도 하다. 맥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하고, 맥주로 인한 기쁨이 배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손님의 안전을 위해 과음을 방지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즐거웠던 시간을 온전히 간직한 채 안전하게 귀가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건전한 문화를 이끌어가는 것도 탭스터이자 바텐더인 이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연희동 탭스터의 주 고객은 어떤가? 탭스터로서 매장 운영의 철학이 궁금하다.
고객층은 20대부터 70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워낙 정적이고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네라 오랫동안 연희동에 거주하고 있는 인근 주민부터, 대학가가 근처에 있어 20대 학생, 그리고 외국인 고객도 방문한다. 연희동 탭스터를 처음 오픈할 때 방앗간을 콘셉트로 삼은 것처럼, 실제로 공부가 잘 안 돼 맥주 한 잔으로 답답함을 풀러 나오는 학생들, 조용히 방문해 기네스 한 잔 맛있게 즐기고 돌아가시는 동네 어르신, 삼삼오오 소소한 만남을 즐기는 이들 모두가 탭스터의 주 고객이다.
나의 신조는 하루에 한 테이블씩 단골을 만들자는 것이다. 모든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지만 하루에 한 팀이라도, 단골로 만들 수 있다면 이만한 마케팅도 없다고 생각한다. 단골이 없는 동네 장사는 어불성설이다. 때문에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고 있고, 손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탭스터로서, 연희동 탭스터의 대표로서 이루고 싶은 비전은 무엇인가?
전 세계에 탭스터라는 명칭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많은 동료들이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탭스터로서 동료들의 노고에 누가 되지 않도록 탭스터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할 것이며, 빠른 시일 내에 국내 탭스터 간의 공식적인 소통의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다. 현재 ‘탭스터 챌린지’라는 국내 탭스터들의 비공식적인 채널이 있긴 하지만 주기적으로 탭스터들끼리 모여 미션을 수행하는 정도다. 아무래도 각자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이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후배 탭스터 양성을 위해서라도 탭스터들의 커뮤니티를 활성화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앞으로 맥주에 대한 재미난 원데이 클래스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탭스터라는 직업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으면 멘토로서 가이드 역할도 하고, 맥주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과도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