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verage People] 음료의 종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베버리지 아카데미 김영하 대표

2019.06.06 09:20:44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더위에 오른손에 시원한 음료 한 잔이 절실해 지는 요즘, 음료업계는 형형색색의 음료들로 소비자들의 갈증을 해소하기위한 여름 맞이가 한창이다. 베이스가 되는 다양한 재료만큼이나 음료의 종류도 가지각색인데, 몇 가지 재료를 쥐어주면 순식간에 새로운 소프트드링크를 탄생시키는 이가 있다. 바로 베버리지 아카데미의 김영하 대표다.


오로지 음료 하나만을 바라보는 집념의 사나이
베버리지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하 대표(이하 김 대표)는 전국 약 300여 곳의 카페와 8곳의 프랜차이즈 본사에 음료를 개발하는 베버리지 컨설턴트이자 베버리지 아카데미에서 음료 전문가반을 진행하는 교육자다. 그는 음료와 음료재료의 전반적인 이해로 새로운 음료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업계 관계자들을 교육하고 있으며, 방방곡곡에서 관련 세미나도 실시하고 있다.


김 대표는 1999년에 바텐더로서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던 중 2006년부터 에스프레소가 들어오기 시작, 칵테일 재료로 애매했던 에스프레소에 대한 이해의 필요를 느껴 카페에서 커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바텐더로서의 경력이 있던 터라 나름 카페에서도 소프트드링크를 예쁘게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소프트드링크는 녹녹치 않았다. “바(Bar)와 카페의 세일즈 포인트는 확연히 다르다. 바의 세일즈 포인트가 ‘드라이 & 비터(Dry&Bitter)’라면 카페는 ‘스위트 & 사워(Sweet&Sour)’다. 이러한 개념이 부족한 채로 카페 소프트드링크에 접근했으니 잘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해하고 있었던 소프트드링크에 대해 궁금해지니 이것저것 공부가 필요했다. 그런데 소프트드링크 전문가는 없었고 관련된 서적도 어쩌다 몇몇 대형서점에 한 권씩 들어오는 원서들뿐이었다. 그래서 김 대표는 그 원서를 사수하기 위해 아침 일찍 강남 교보문고를 찾았다. 그렇게 스스로 소프트드링크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관련 서적과 자료들을 구매하는 데만 들인 돈만 2억 원. 음료 연구에 이정도로 열의를 가질 이가 또 있을까 싶다.



음료에 대한 학문적 접근의 장, 베버리지 아카데미
베버리지 아카데미는 김영하 대표가 음료와 관련된 일을 제대로 해나가기 위해 이론적인 정립의 필요성을 느껴 운영하게 됐다. 아카데미는 본인의 연구실이기도,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정리된 지식을 나눠가질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시작은 2013년, 고향인 부산에서 ‘크레아 베버리지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부터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음료 전문가반은 재료의 매칭을 이론적으로 풀어내고, 그 이론을 토대로 간단한 실습과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강의는 특히 재료에 관련된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데, 재료간의 매칭과 각 음료에 대한 정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도 다룬다.


김 대표의 아카데미에는 구경할 것들이 많다.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름 모를 식재료들과 관련 서적들. 과연 집요하게 소프트드링크 시장을 연구해 온 이답다. 그는 그에게 있어 음료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왕왕 받는데 그럴 때마다 되려 이렇게 물어본다고 한다. “스프는 음식일까, 음료일까?”


분명 스프를 숟가락으로 떠서 먹긴 하지만 바로 목으로 넘겨 삼키니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이에 김 대표는 스프가 ‘꼭 음식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음식과 음료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하며 ‘음료는 이래야 한다.’는 제한을 두기보다 오히려 한계를 깨고 더욱 다양해질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철학으로 김 대표는 얼마 전 열렸던 전국 토종 벼 축제에서 토종 벼를 주 재료로 한 쌀 라떼를 선보인 바 있으며, 토마토 주스를 색다르게 만들고 싶어 카프레제 샐러드에서 착안한 ‘베반다 카프레제(토마토와 모짜렐라를 다이스로 썰어 음료에 넣은 것이 특징)’를 개발하기도 했다.



소프트드링크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쯤 돼서 궁금해지는 것. ‘소프트드링크’는 정확히 어떤 음료를 말하는 것인가? 소프트드링크, 들어는 봤는데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선뜻 입을 떼기가 힘들다. 혹자는 소프트드링크가 탄산음료인가 하고 갸우뚱 할 수도 있겠다.


소프트드링크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음료에 대한 정의를 하면 ‘음료(Drink)’는 ‘사람이 마실 수 있도록 만든 액체’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음료는 다시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는 ‘소프트드링크(Soft Drink)’와 알코올이 포함된 ‘하드드링크(Hard Drink)’로 나뉜다. 소프트드링크는 물을 비롯한 커피 및 과즙음료, 탄산음료, 주스, 에이드, 스쿼시, 셰이크, 밀크티, RTD음료 등이 있으며, 지난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소프트드링크 시장이 최근 5년간 연평균 2.0%의 성장을 이어나가면서 약 209조 9521억 원의 시장규모를 지니고 있다고 발표,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장가도를 이어갈 것이 전망되고 있다.


그만큼 카페 매출에 있어 커피보다 기타음료 및 디저트의 비중이 더 큰 상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프트드링크에 대해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음료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이 없었기 때문이다. 커피는 바리스타, 와인은 소믈리에, 맥주는 부루어 등 각각의 영역에 대한 전문 직종이 존재하지만 소프트드링크는 그렇지 못하고, 때문에 이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도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 이 일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누군가 그를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에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쉽게 소위 말하는 ‘스타’가 되고자 하는 오늘날의 외식업계 현실을 꼬집는 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한사코 손사래 치는 김영하 대표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앞으로 음료업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의 대쪽 같은 소신이 필요해 보인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단기간 내에 업계가 바뀔 것이라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그가 있어 음료업계에서 소프트드링크의 위상이 조금씩 드러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하 대표의 소프트드링크


프로즌 라임 스무디(Frozen Lime Smoothie)
최근 많이 대중화된 라임으로 만든 스무디는 라임필을 활용한 음료다. 프로즌 라임 스무디는 라임필을 적절히 사용해야 가향 없이 맛있는 스무디를 만들 수 있는데 설탕의 양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프로즌 스무디 자체의 텍스쳐가 거칠어져 라임필의 거친 느낌이 더 완강해질 수 있다.


무화과 에이드(Fig Ade)
무화과는 향이 강하지 않아 음료의 재료로 쓰기 난감한 재료인데 여기에 탄산수까지 더해지면 무화과에 쓴 맛이 더해지면 무화과 특유의 연한 단맛을 살리기 힘들게 된다. 따라서 무화과 에이드는 무화과를 적절히 으깬 후 여과해 에이드를 만든다. 과율을 살짝 으깬 것은 일정한 크기로 따로 음료에 넣어주는데 크러시드 아이스를 사용해 그 안에 과육이 고정되게 해주면 비주얼도 일품인 무화과 에이드가 완성된다.


프로젝트 ‘O’ C01-토마토
(Project 'O'  C01 - tomato)

프로젝트 ‘O’는 간단하면서 화사하지만 깔끔한 우유 메뉴를 만드는 김영하 대표의 프로젝트다. 제조 난이도는 높지만 주로 떠올릴 수 없는 우유와 토마토, 그리고 크림의 신선한 조합을 지녔다. 토마토가 들어갔는데도 토마토에서 생기는 과즙으로 인한 층 분리가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고 유제품과의 그라데이션이 계속 유지되는 점이 특징인 음료다. 크림의 강한 향과 맛에 은은한 토마토 향이 서로 상쇄되지 않고 적절히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


“음료업계, 각자의 전문영역 존중해야 긍정적인 발전 이룰 수 있어”

베버리지 아카데미 김영하 대표



그동안 만들어 온 메뉴들을 보니 기존의 틀을 깬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많은 것 같다. 레시피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 편인가?
음료는 완전혼합이 특징이다. 음식은 레이어가 있는데 음료에는 레이어가 없다. 쉽게 생각해보면 각종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로 만든 샐러드를 갈아서 음료로 먹는다고 생각하면 어떤가? 음료는 음식에서 말하는 페어링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설프게 매칭이 된다하면 곤란해진다. 따라서 완전혼합이 안 되게 하거나 완전혼합일 때 재료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재료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매칭 포인트를 ‘퍼펙트 매칭’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속적으로 음료에 대한 학문적 접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필드에 있는 이들에게 어필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음료를 포함한 전체 F&B 종사자들이 전문직으로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볼멘소리를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내가 몸담고 있는 업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다루는 재료와 기물을 탐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물론 국내에서 소프트드링크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고, 앞으로 소프트드링크에 대한 정의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지만 업계 종사자로서 업에 대한 이해는 어떤 직업이든 필수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나만의 전문성을 가지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면, 저절로 그에 상응하는 존중과 더불어 업계의 발전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카데미에서 강의, 혹은 세미나 강연 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무엇인가?
업계 관계자 혹은 음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만다린’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오렌지나 귤이라고 이야기한다. 모과와 퀸스는 엄연히 다른 종의 과일인데 모과의 영문명을 찾으면 퀸스라 나오고, 구글에 모과를 검색하면 퀸스의 단면이 나온다. 현재 우리들은 그런 수준의 정보에 노출돼 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음료를 완벽히 구현하기 위해 재료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이를테면 애플티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모과와 퀸스는 사과와 거의 흡사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과껍질의 향이 사과 과육보다 세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로 티를 만들 때 모과껍질을 활용하면 그냥 사과만 넣은 애플티보다 풍미 있는 음료가 완성된다. 이처럼 재료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데 대부분 자기가 쓰는 재료에 대한 부분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애플망고는 진짜 애플망고가 아니다. 전 세계 망고품종만 하더라도 2000종이나 된다. 커피에 대해서 배우지만 자신의 카페에서 사용되고 있는 재료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커피는 소프트드링크를 만드는 재료중 하나에 불과하다.


소프트드링크의 종류에 대해서도 아직 정리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에이드를 예로 들어보자. 에이드는 원래 과즙을 물에 희석시킨 음료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에이드는 청량한 탄산수가 들어간 음료다. 에이드에 탄산수가 들어가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해답은 ‘물’에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은 석회지형이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물에 석회질이 많다. 때문에 물의 석회가 완전히 자연 용해된 탄산수를 유럽인들은 물로 섭취한다. 따라서 유럽의 에이드에는 탄산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물이 들어간 것은 에이드고 탄산수가 들어간 것은 스쿼시라고 말하고 있는 현실이다. 법칙이 정리돼 있지 않으니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음료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어 이를 블루오션이라고 바라본 이들이 준비 없이 너도나도 달려들고 있는 상황이라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음료의 체계를 세우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필요한 상황이지만 해외에도 정리된 것이 없고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니 어떻게 근간을 잡아야 할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 참고한 여러 서적들, 자료들을 총망라한 개념을 모아 살덩어리를 비교분석, 반대로 뼈대를 세워가는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앞으로 음료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음료시장은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그러나 업계가 상생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맡은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음료를 칭하는 단어로 드링크보다 베버리지에 익숙해지며 ‘베버리지’로 모든 음료를 통틀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업의 발전을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부분이다. 앞서 얘기했듯 바와 카페는 다른 세일즈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데 바텐더가 카페에서 소프트드링크를 다룬다는 것은 바텐더로서도, 소프트드링크 종사자에 있어서도 전문성을 잃어가는 일이다. 바 시장은 바 시장대로, 카페 시장은 카페 시장대로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하는데, 일부 이익만 바라보는 관계자들에 의해 음료시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업에 대한 이해가 정확히 수반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음료시장이 커진 만큼 수익성이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학문적 토대를 갖춰 시장이 올바르게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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