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을 찾았다. ‘비 오는 날엔 막걸리’라는 공식은 누가 만들었을까? 비가 와도 잠잠해지지 않는 젊음의 거리 홍대의 느린마을 양조장에는 막걸리를 만드는 소믈리에가 있다. 일명 ‘막믈리에’라 불리는 홍재경 대표다. 호텔에서 소믈리에로 근무하며 숱한 양주를 다뤄왔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있던 막걸리를 드디어 느린마을 양조장을 통해 전파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든든한 조력자 김영민 점장. 두 사람은 그들만의 막걸리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을 매일 구수하게 빚고 있다. 단순히 술을 파는 공간이 아닌 술의 문화를 전파하고자 하는 이들을 만나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과 전통주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동네 수제막걸리 양조장
배상면주가에서 운영하는 느린마을 양조장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을 만들겠다’는 재미난 생각에서 비롯된 국내 최초 도심형 막걸리 양조장이다. 느린마을 양조장에서는 매일 신선하고 맛있는 술을 ‘제일 맛있는’ 상태로 제공, 막걸리의 경우 모든 매장 내에서 양조가 이뤄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더욱 신뢰할 수 있다. 또한 막걸리 이외에도 배상면주가의 산사춘, 백하주, 민들레대포와 같은 약주와 최근에 출시된 느린마을 소주, 라이스 라거맥주, 복분자음, 완주감술, 청송사과술의 과실주 등의 전통주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 최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느린마을 양조장이 인기를 얻고 있다.
맛있는 술이 있으면 안주도 빠질 수 없는 법. 느린마을 양조장은 단품으로 즐겨도 손색이 없는 맛있는 메뉴들도 즐비하다. 특히 막걸리와 궁합이 딱인 요리들이 많은데 이유는 막걸리 법제법을 기반으로 만든 안주기 때문이다. 느린마을 양조장의 시그니처 메뉴는 ‘양조장 막고기 한접시’와 고소한 ‘소고기 육전’, ‘골뱅이와 쫄면’, 그리고 ‘제육 두부김치’. 이 외에도 매장마다 다양한 종류의 안주들이 준비돼 있으며 ‘열빙어 튀김’이나 ‘생굴 막걸리 식초무침’과 같은 시즌 메뉴도 즐길 수 있다.
살아있는 효모의 맛을 느껴보자
느린마을 양조장의 막걸리가 특별한 이유는 매일 일정량만 생산해 최상의 맛과 향기를 지닌 오리지널 수제막걸리이기 때문이다. 느린마을 막걸리는 발효기간에 따라 4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뉜다. 신선한 막걸리의 맛은 효모와 당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효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당을 섭취해 발효, 갈수록 단맛은 사라지고 진정한 막걸리의 맛이 살아난다. 1~3일차의 봄은 신선하고 달콤함이 특징이며, 4~6일차의 여름에서는 상큼함과 풍부한 탄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이 지나 7~9일차의 가을이 되면 잘 익은 부드러운 신맛이 나고, 10일차의 겨울에는 살짝 쿰쿰하고 드라이한 맛이 매력적인 진정한 술꾼들의 막걸리가 된다.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 김영민 점장은 “겨울 막걸리는 어릴 적 시골에서 할머니가 담가줬던 막걸리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쉰내, 군내나는 막걸리는 특히 불향 가득한 목살 스테이크와 궁합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이어 홍재경 대표는 “막걸리는 아무렇게나 막 만들어 막걸 리가 아니라 지금 ‘막’걸렀다는 신선함을 담은 술이다. 특히 느린마을 양조장의 막걸리는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이 들어있지 않아 막걸리의 발효과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막걸리”라며 “인공감미료는 효모가 좋아하지 않는 당이라 시간이 지나도 단맛이 유지되기 때문에 진정한 막걸리의 맛을 느끼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막걸리 소믈리에의 느린마을 막걸리
‘막걸리 만드는 소믈리에’.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을 운영하고 있는 홍재경 대표의 수식어다. 오랜 시간 호텔 레스토랑 소믈리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온 홍 대표는 소믈리에협회의 회장과 조니워커스쿨의 원장도 역임한 주류 전문가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막걸리에 빠졌다. 호텔에서 소믈리에로 근무하며 와인을 비롯한 각종 고급 양주만큼 막걸리도 그에 못지않은 매력을 지닌 술인데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에 그는 이제 직접 막걸리를 양조하고, 전통주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을 지난해 8월 오픈했다.
오픈할 당시부터 함께하고 있는 김영민 점장은 그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느린마을 양조장의 음식을 책임지고 있는 셰프다. 김 점장도 호텔 출신으로 조선호텔 레스토랑 근무시절 홍 대표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요리를 하며 막걸리와 전통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김 점장은 함께 하자는 홍 대표의 제안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느린마을 양조장을 선택했고, 합이 좋은 두 사람은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 만의 스토리를 쌓아가고 있다.
‘홍’대점만의 특별한 서비스
느린마을 양조장의 맛과 향에 취해있을 때쯤 갑자기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렸다. 바로 ‘홍스타임(Hong’s Time)’이 시작된 것. 홍스타임은 홍재경 대표의 ‘홍’을 따서 만든 막간의 이벤트다. 매일 저녁 9시쯤 홍스타임이 시작되면 모든 테이블의 시선은 한 곳으로 모인다. 홍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퀴즈를 진행, 그날의 손님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손님들은 색다른 경험을 통해 한층 더 맛있는 추억을 쌓는다. 그리곤 홍 대표는 일일이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그의 시그니처 막걸리 칵테일 ‘막꽃피(막걸리에 꽃이 피다)’를 선보인다. 뽀얀 막걸리에 붉은 빛의 꽃이 피면 손님들은 너도나도 카메라를 든다. 여기에 ‘친구와 술은 편안해야 합니다. 막걸리처럼’, ‘당신이 왔으니 봄입니다.’와 같은 감성 충만한 문구를 흑판에 적어 예약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홍대점만의 소소한 이벤트다.
이처럼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은 홍재경 대표와 김영민 점장의 재미난 아이디어들이 곳곳에 녹아들었다. 손님들이 직원들과 농담도 하고, 편하게 술과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어 좋았다는 피드백을 남기고 갈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두 사람. 이들의 막걸리에 대한 애정으로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난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은 술의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
느린마을 양조장 홍재경 대표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의 색깔을 더욱 녹여낼 것”
느린마을 양조장 김영민 점장
지난해 8월 오픈 이후 어느덧 9개월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의 케미가 남다른 것 같은데 함께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홍재경 처음부터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소믈리에로 일하면서부터 막걸리와 막걸리 양조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양조장 자체를 운영하기는 시기상으로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스스로 잘하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봤고 서비스 종사자로 커리어를 쌓아온 나로서 양조를 하면서 서비스도 가능한 느린마을 양조장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처음부터 혼자 진행했다면 아마 많이 버거웠을 것 같은데 김영민 점장과 함께 하다 보니 많은 의지가 됐다. 하나 둘 채워나간다는 느낌으로 매장이 자리 잡힐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김영민 우리의 교집합은 조선호텔이었지만 사실 호텔에서는 같이 근무해본 경험이 없다(웃음). 같은 부서도 아니었고 어쩌다 헬퍼로 근무하게 돼도 섹션이 달라 오며가며 몇 번 본 것이 다이다. 그러나 이후 가까워지는 계기가 생길수록 홍재경이라는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나 또한 사업에 대한 경험은 없었지만 함께한다면 호텔에서 제공했던 서비스와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1년이 다 돼 가는데 단골손님들도 늘어가고 점점 우리 매장만의 색깔도 갖춰 나가는 듯해 즐겁게 일하고 있다.
새롭게 시도한 일이라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오픈 과정은 어땠나?
홍재경 오픈은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체인점의 장점이다. 이미 배상면주가는 20년의 노하우와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느린마을 양조장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매뉴얼을 따라 차근차근 진행해오다 보니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김영민 오히려 오픈 이후, 매장을 우리만의 색깔을 덧입히는 과정에서 힘든 점이 많았다. 체인브랜드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는 많은데 또 너무 튀면 안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자’였다.
이러한 노력들로 점점 홍대점만의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는 듯 보인다. 다양한 이벤트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김영민 홍스타임은 오픈 초기부터 홍보차원에서 무언가를 해보자고 고민하던 중에 즉흥적으로 생겨난 이벤트다. 처음에는 5만 원 이상 식사한 테이블에 한해 영화 티켓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생각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러한 방식은 특별히 우리 홍대점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크게 손님의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다 가장 매장이 활발한 시간에 테이블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그런 재미난 이벤트가 없을까 해서 대표님의 성을 따 홍스타임을 만들었다.
홍재경 예약 태그는 어떤 식당의 액자에 포스트잇으로 예약자 이름을 붙여놓은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냥 이름만 붙여놓는 것은 조금 밋밋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액자 대신 흑판에 그날그날 예약자를 환영하는 문구를 쓰게 된 것이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됐다. 막걸리 칵테일은 평소에 자주 즐겨 마시고 있었는데 주로 매장을 찾는 이들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고객들이다보니 막걸리의 새로운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본 것이 좋은 반응을 이끌었던 것 같다.
매장 운영 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홍재경 어떤 레스토랑이든 단골 고객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신규고객을 아무리 창출해도 재방문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운영의 지속성을 이끌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매장을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기존에 호텔에서 담당하던 고객들과 정말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김영민 그렇다. 처음에는 이 갭에 당황했었는데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니 각자만의 특징이 있더라. 호텔 고객은 정형화된 서비스를 원한다. 그들은 원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며 필요 이상으로 다가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만 홍대 인근의 고객들은 틀에 짜여 지지 않은 서비스를 추구한다.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종업원이 스스로 다가가 답을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어떤 서비스가 옳다 그르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성향의 고객들을 경험해보며, 우리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들에 특화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강구하고 있다.
홍재경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청결이다. 맛이나 분위기는 개인의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견차이가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이를 수정·보완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만약 매장이 깨끗하지 않아 불쾌했다는 이야기는 신선한 막걸리를 취급하는 업장에 치명적인 피드백이다. 특히 막걸리는 조금만 신경을 덜 써도 금방 끈적이는 이물감이 남게 돼 청결유지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주로 방문하는 고객은 어떠한가? 아무래도 홍대에 위치해 있어 젊은 나이대의 고객이 많을 것 같다.
홍재경 꼭 그렇지도 않다. 대학가라 학생들이 많이 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젊은 여성 직장인들이 많이 오는 편이다. 대학근처지만 합정, 상수, 연남 등 크고 작은 회사들도 밀집돼 있어 회식으로 예약하는 손님들도 많다. 외국인 고객들도 종종 방문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워낙 유명한 관광지인 홍대에 한국 전통주로 익숙한 막걸리를 마셔볼 수 있어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듯 보인다.
최근 전통주가 인기다. 소비자들의 전통주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져가고 있는데 직접 매장을 운영해보니 어떠하다고 생각하나?
홍재경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전통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곳이 없어 직원들이 막걸리와 전통주에 대해 이런 저런 소개를 해주면 반응이 상당히 좋다. 생각보다 느린마을 양조장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막걸리를 자세히 모르고 방문하는 이들도 있어 왜 맛의 차이가 생기는지, 막걸리의 발효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막걸리는 왜 막걸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알고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것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 점점 막걸리를 알아가고 막걸리의 맛이 다를 수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앞으로 느린마을 양조장 홍대점을 어떤 매장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은지 궁금하다.
김영민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하면서 홍대점을 홍보하는 것도 있지만 그 중심에는 ‘막걸리 소믈리에 홍재경’이라는 브랜드가 있다. 어딜 가도 막걸리와 느린마을 양조장은 있지만 홍대점에 오면 막믈리에 홍재경 대표가 만드는 막걸리, 내가 아는 사람이 만들어 더욱 신뢰가 가는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시그니처 이벤트 이외에도 아이디어를 구상 중인 것들이 많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를 우리만의 스타일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홍재경 느린마을 양조장을 통해 주류시장의 범위를 넓혀가고 싶다. 조만간 오픈하려고 하는 ‘홍스아카데미’도 이러한 비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전통주에 관심 있는 학생이 매장에 방문해 이것저것 물어보면 진로에 대한 조언도 해주고, 원하는 곳이 있다면 회식을 시작하기 앞서 10~20분 정도 술과 술의 맛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홍스타임과 같은 단발성 이벤트도 좋지만 이 공간 자체를 술만 파는 곳이 아닌 술의 문화를 전파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술과 동고동락하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제는 술에게 어떻게 보답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막걸리, 전통주를 주제로 한 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