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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5 (수)

[김준철의 Wine Story] 고급 와인의 탄생지 ‘보르도(Bordeaux)와 부르고뉴(Bourgogne)’

와인하면 프랑스지만,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와인의 양을 국가별 순위로 보면, 칠레, 스페인, 이탈리아에 이어서 프랑스는 4위가 된다. 이는 20세기 말부터 신세계의 중저가 와인이 전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액으로는 단연 1위다. 그만큼 프랑스 와인은 고급으로 값이 비싸다는 얘기가 되며, 이제는 고급 와인으로 그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다고 봐도 된다. 이런 고급 와인이 나오는 곳이 보르도와 부르고뉴이며, 그 명성은 하루아침에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이 좋은 이유
프랑스에서 와인용 포도재배의 북방 한계점은 낭트에서 파리를 직선으로 잇는 선이 된다. 이 선을 기준으로 보면, 루아르, 샹파뉴, 알자스 등은 서늘한 곳으로 주로 화이트와인을 생산하며, 남서부, 론, 프로방스, 랑그도크 등은 따뜻한 곳으로 레드와인이 잘 된다.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 보르도와 부르고뉴로서 기후 조건으로 볼 때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모두 고급이 나올 수 있는 곳이다. 토양을 보면, 보르도는 두 개의 강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둥글고 작은 자갈을 남겨둔 토양이며, 부르고뉴는 옛날 조개껍질이 쌓여서 이루어진 석회석 조각이 진흙 속에 파묻힌 토양으로 둘 다 배수가 잘 되는 곳이다. 또, 보르도는 물류 운반에 필수적인 강과 바다를 끼고 있어서 일찍부터 영국으로 와인을 운반할 수 있어서 돈 많은 귀족들이 발전시킨 와인이라면, 부르고뉴는 내륙 깊숙이 있어서 판매에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수도승들이 열정과 사명감으로 포도밭 하나하나 테루아르를 반영한 우수한 와인을 만들었다. 보르도는 귀족의 재력, 부르고뉴는 수도승의 노력으로 명품 와인을 탄생시킨 것이다.


보르도는 귀족, 부르고뉴는 수도승이

역사적으로 두 지역을 살펴보자. 1154년 프랑스의 왕비였던 알리에노르가 이혼 후에 영국 왕과 재혼하면서 아키텐(보르도의 행정구역 명칭)이 영국 영토에 편입되어, 덕분에 와인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보르도 사람들은 프랑스보다는 영국에 가까워졌고, 급기야 백년전쟁(1337~1453) 때 영국 편을 들게 된다. 부르고뉴 역시 백년전쟁 전에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가 싫어서 백년전쟁 중에 영국 편을 들면서 구국의 소녀 잔 다르크를 체포하여 영국군에게 넘기기까지 할 정도로 양대 와인 명산지는 백년전쟁 중에 프랑스의 위기를 자초하기에 이른다. 백년전쟁 후 영국의 입김이 없어지면서 보르도의 와인은 한 때 주춤했지만, 1461년 루이 11세가 즉위하면서 와인산업이 더 발전하게 되었다. 루이 14세, 15세 때 전성기를 맞이하고, 1720년대는 제병 공업 발달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다. 이때부터 귀족들이 포도밭을 소유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찾게 된 보르도의 샤토(Chateau)에는 호화스런 건축물들이 지어지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반면, 부르고뉴는 와인산지가 내륙 깊숙이 떨어져 있고, 수로가 발달되지 못하여 수도원의 와인으로만 알려져 있다가, 14세기 교황청이 아비뇽에 있을 때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루이 14세의 주치의가 오래된 부르고뉴 와인이 샹파뉴의 것보다 건강에 좋다고 처방하면서 그 명성을 굳히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다음에, 혁명정부는 영국으로 피신한 귀족 소유의 보르도에 포도밭은 쉽게 몰수하거나 손을 대지 못했지만, 부르고뉴의 포도밭은 수도원 소속이라서 쉽게 토지를 몰수하여 민간에게 불하하면서 하나의 포도밭이 작은 규모로 쪼개지게 된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은 부르고뉴 와인을 선호했기 때문에 보르도 와인이 약간 소원해졌으나, 나폴레옹 3세는 보르도 와인을 세계적인 와인으로 홍보하여 오늘날 보르도 와인을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명사들도 보르도와 부르고뉴로
유명 인사들의 와인에 대한 선호도 역시 보르도와 부르고뉴로 갈라진다. 부르봉왕조 때는 보르도 와인의 전성시대였지만, 나폴레옹은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했고, 세계적인 문호 알렉산더 뒤마는 부르고뉴 와인의 맹신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몽라셰(Montrachet, 부르고뉴최고급 화이트와인)를 마실 때는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는 보르도 와인의 분류체계(Grands Crus Classés, 1855)를 완성한 보르도 파였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와인 전문가로서 프랑스 주재 미국공사로 있을 때 샤토 오브리옹(Ch. Haut-Brion), 사토 마르고(Ch. Margaux), 샤토 라투르(Ch. Latour), 샤토 라피트(Ch. Lafite)등을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할 정도로 심미안을 가지고 있는 보르도 와인 정통파였다. 닉슨 대통령은 불미스럽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주류 전문가로서 부르고뉴 와인을 즐겨 마시던 사람이었다.


보르도는 왕, 부르고뉴는 여왕
부르고뉴의 고급 와인은 가장 값이 비싸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 ‘부르고뉴는 와인의 왕’, ‘보르도는 와인의 여왕’이라고 퍼뜨렸지만, 색깔이 진하고 맛이 직선적이고 강렬한 맛의 보르도 와인이 남성적이라면, 아름다운 색깔에 복합적이고 우아한 맛을 내는 부르고뉴 와인은 다분히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르도 특히, 명산지인 메도크는 ‘카베르네 소비뇽’이라는 진한 맛의 포도를 사용하여 메를로를 비롯한 몇 가지 품종을 더 섞지만, 부르고뉴의 레드와인은 ‘피노 누아’ 라는 품종 하나만을 사용한다. 이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를 떠나서는 명품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양 지역의 최고의 와인은 항상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값이 비싼 것이 흠이다. 유럽의 왕실과 부호, 미국의 재벌, 할리우드의 배우, 중동의 왕자까지 이들 와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고
급품은 가격을 묻지 않고, 재고가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살피게 되어있다. 고급품은 웬만해서는 손에 넣기도 어렵다. “부르는 것이 값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와인이기도 하다.


가장 비싼 와인은 부르고뉴에서
어찌됐든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세계 최고의 와인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보르도가 좋은 와인을 많이 만드는 곳이고, 값이 싼 와인부터 비싼 와인까지 선택의 폭이 넓고, 가격체계도 그 품질에 비례할 만큼 다분히 이성적이라고 한다면, 부르고뉴는 고급 와인을 적게 만드는 곳으로, 가격에 비해 실망스런 품질을 가진 와인도 많다. 그래서 부르고뉴 와인은 5병을 구입하여 2병만이라도 맛이 좋으면 나머지를 용서한다는 말이 있을 정
도로 상당히 감성적이다. 와인을 웬만큼 아는 사람들은 보르도의 ‘그랑 크뤼 클라세’ 정도는 잘 알고 있지만, 부르고뉴 쪽으로 넘어오면 고개를 흔든다. 분류 체계가 아주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르고뉴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나오는 곳으로 이를 잘 알아야 어디서든지 와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부르고뉴 와인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2014년 10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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