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리(Sherry), 대표적인 식전주(Apéritif)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와 함께하는 와인이 포르투갈의 ‘포트(Port)’라면,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 마시는 술 즉, ‘식전주(Apéritif)’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와인은 단연 ‘셰리(Sherry)’라고 할 수 있다. 가정에 초대 받아 음식이 준비되기 전, 기다리면서 응접실에서 손님들끼리 이야기하면서 마시는 와인이다. 셰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와인은 아니지만 유럽에서는 샴페인 이상으로 잘 알려진 와인이다. 유럽, 특히 영국에서 와인을 아는 척하려면 셰리를 꼭 알아야 한다.
샴페인과 셰리
샴페인이 나오는 샹파뉴 지방은 프랑스에서는 포도를 재배하는 지방 중 가장 추운 곳이고, 일조량이 부족하여 와인의 알코올 함량이 낮고 산도가 높지만, 거품 나는 와인을 만들어 유명해진 곳이다. 셰리를 생산하는 곳은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의 해안가로 아프리카와 경계를 이루는 지브롤터 해협이 있는 곳으로 기온이 높은데다, 일 년에 거의 300일 동안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서 와인의 알코올 함량이 높고 산도가 너무 낮지만, 알코올을 첨가하고 기묘하게 산화시켜 세계적인 명주가 된 곳이다. 양쪽 지방 모두 타고난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을 만든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제조과정
셰리는 ‘팔로미노(Palomino)’란 포도로 화이트와인을 만들어, 알코올을 가해서 알코올 농도를 15.5% 정도로 맞춘 다음에 500ℓ 나무통에 80% 정도만 채우고 뚜껑을 열어서 공기와 접촉을 시키는 다소 정도에서 벗어난 방법으로 만든다. 이렇게 하면 와인표면에 백회색의 ‘효모 막(Yeast film)’이 생기는데, 이 효모는 이 지역에서 자라는 팔로미노 포도에 자생하는 것으로 이 지방 이외 다른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효모 막을 스페인에서는 ‘플로르(Flor, 꽃)’라고 하는데, 하얀 막이 와인 표면에 안개꽃을 뿌려 놓은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효모 막은 한 달 만에 표면을 덮어버리는데, 그렇게 되면 보호막이 형성되어 더 이상 과도한 산화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효모 막은 당분을 알코올로 변화시키는 효모가 아니고, 알코올을 분해하여 ‘알데히드’라는 물질을 만들기 때문에 셰리는 알데히드에 의해서 셰리 특유의 향기를 갖게 된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썩 좋은 향이 아니지만, 서양 사람들에게는 갓 구어 낸 따뜻한 빵에서 나오는 냄새와 같이 식욕을 자극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식전주로 셰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셰리의 숙성
전통적으로 와인을 발효시키고 숙성 저장하는 창고는 동굴이나 지하에 건설하여 외부의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스페인의 셰리창고는 ‘보데가(Bodega)’라고 하여, 주로 지상에 건설하는데, 이유는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방은 건조하기 때문에 저장 중인 와인의 증발량이 많다. 일 년에 약 3%의 셰리가 없어지는데, 전체적으로 하루에 셰리 7000병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산소와 셰리로 숨을 쉰다고 하며, 이렇게 증발하여 없어지는 와인을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한다. 또, 셰리를 숙성시키는 솔레라(Solera) 시스템은 셰리가 들어 있는 통을 매년 차례대로 쌓아두면서, 위치 차이에 의해서 맨 밑에서 와인을 따라내면 위에 있는 통에서 차례대로 흘러 들어가도록 만들어 놓은 반자동적인 블렌딩 방법이다. 그러므로 맨 아래층의 오래된 와인을 꺼내서 병에 담고, 새로 담은 와인은 맨 위층에 넣어 둔다. 이렇게 하면, 스타일이나 품질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제조회사별로 고유의 맛을 유지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셰리는 빈티지가 있을 수 없으며, 숙성기간도 평균적으로 산출된다.
셰리의 종류
이렇게 만들어서 숙성시킨 셰리의 표준형을 ‘피노(Fino)’라고 하는데, 플로르를 번식시켜 만든 가장 기본적인 타입으로 색깔이 옅고 알코올 농도도 그렇게 높지 않다. 차게 해서 마시면 해산물과 조화가 가장 잘 되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피노를 더 오래 숙성시키고(최소 8년) 알코올 농도도 더 높여 16~20%로 조절한 것을 ‘아몬티야도(Amontillado)’라고 하는데, 산화가 더 진행되어 색깔이 진하고 진한 호두 향을 갖고 있다. 또 대서양 연안의 항구도시에서 발효하여 숙성시킨 셰리를 ‘만사니야(Manzanilla)’라고 하는데, 이는 이 지역의 습한 미기후 때문에 약간 짠맛이 있어 자극성이 있다. 효모 막(꽃)이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만든 셰리도 있는데, 이를 ‘올로로소
(Oloroso)’라고 한다. 예전에는 효모 막의 형성 여부를 알 수 없어서 향을 맡아보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처음부터 알코올 농도 20% 이상으로 해서 만들었으나, 요즈음은 처음부터 기타 품종이나 프레스 주스로 올로로소를 만든다. 효모막이 형성되지 않은 셰리지만 장기간 숙성 중 산화를 진행되어 색깔이 진하고 호두 향을 갖고 있다. 이 셰리를 달게 만들면 영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크림 셰리가 된다. 참고로 ‘페드로 히메네스(Pedro Ximénez)’라는 셰리도 있다. 동일한 명칭의 포도 품종으로 만들며, 암갈색을 띠는 리큐르와 같이 농후한 단맛을 내는 셰리다. 디저트용으로 사용되지만, 주로 다른 셰리의 단맛을 내기 위해 사용된다. 수확한 포도를 2~3주 건조시켜 얻은 주스를 완전히 발효시키지 않기 때문에 단맛이 강하다.
셰리와 요리
피노는 차게 해서 아페리티프로 마시며 생선 조개, 바다가재, 참새우 등과 잘 어울리며 아몬티야도는 가벼운 치즈, 소시지, 햄 등과 함께, 올로로소는 스포츠 드링크로서 많이 활용된다. 스위트한 크림 셰리는 쿠키, 케이크와 함께 음미하는 것이 좋고, 커피와 브랜디가 나오기 전 디저트 와인으로도 사용된다. 셰리와 포트 그리고 마데이라를 세계 3대 강화 와인이라고 하는데,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되고, 영국 시장을 겨냥하여 만들어졌으나, 영국인의 음주습관이 바뀌면서 영국 수출량이 줄어들었다. 이에 미국 시장 등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수출 판로를 모색 중이다. 바쁜 현대생활에 식전에 마시는 와인과 디저트 와인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고전적인 정찬 코스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셰리와 포트다. 한편, 셰리는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초기에는 호기심 차원에서 어느 정도 수입이 되었으나 요즘은 수입회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셰리에 호두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맛이 한물 간 듯한 화이트와인의 향처럼 느껴진다. 된장의 맛을 벗어나 청국장 맛을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외국인이 우리 청국장 맛을 아는데 시간이 걸리듯, 우리가 셰리의 맛을 찾고 즐길 정도가 된다면, 와인과 서양음식의 맛 그리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들의 정서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7월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