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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4 (화)

[김준철의 Wine Story] 술의 역사를 바꾼 벌레, '필록세라(Phylloxera)'

미국에서 살던 벌레
포도의 원산지를 중동지방이라고 하지만 와인용 포도가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가 흔히 먹는 포도는 전부 미국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포도를 유럽 종과 미국 종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 더 추가한다면 아시아 지역의 머루까지 포함하여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에, 유럽인들이 미국 동부에 상륙하여 보니까, 이름 모를 수많은 포도가 자생하고 있는 그야말로 이곳은 야생 포도의 천국이었다. 이들은 이런 포도로 와인을 담았는데, 맛이 전혀 달라 와인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아서 미국 종은 생식용으로 사용하고, 유럽에서 와인용 포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유럽 종 포도는 겨울이 춥고 여름이 습하고 더운 미국의 동부지방에서는 잘 자라지 못했다. 이렇게 미국에 유럽 종 포도가 적응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는데, 이 때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양쪽 대륙으로 묘목이 왔다 갔다 하면서 미국종 포도뿌리에서 기생하는 벌레가 유럽으로 건너 간 것이다. 처음에는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발견되었다가, 점차 보르도를 중심으로 이 벌레가 퍼져나가면서 유럽의 포도밭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미국 종 포도는 수천 년 동안 이 벌레와 같이 지내오면서 이 벌레에 대한 저항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지만, 유럽 종 포도는 저항력이 전혀 없으니까, 순식간에 포도밭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필록세라(Phylloxera vastatrix)라는 벌레
이 벌레를 ‘필록세라(Phylloxera vastatrix)’라고 하는데, 진딧물의 일종으로, 여러가지가 있지만, 농황색에 몸길이가 1㎜ 내외의 난형으로 아주 작기 때문에, 있다고 보면 보이고 지나치면 그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 대개는 날개가 없지만, 지역에 따라 여름에서 초가을에 날개를 가진 것도 나타나서 잎에서 자라기도한다. 성충의 색깔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데, 새 뿌리에서 자란 것은 연두색이나 황록색 혹은 옅은 갈색이지만, 약한 뿌리에서 자란 것은 갈색이나 황색이며, 아주 오래된 성충은 진한 갈색으로 변하기도 한다.유충과 성충이 뿌리와 잎에 붙어 수액을 흡수할 때 독성 있는 액을 가해 황갈색의 혹을 만드는데, 이 때문에 뿌리는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할 수 없게 되어 성장이 정지되며, 해를 입은 나무는 영양장애로 쇠약해지고, 새순의 발아가 더디고 고르지 못하며, 개화가 안 되어 꽃떨이 현상이 일어나 송이에 포도알이 성글게 달리고, 씨 없는 작은 포도알이 많이 섞이게 된다. 결국, 포도나무는 얼마 안 있어 죽거나, 상처를 통하여 병원균이 침입하여 부패되기도 한다.


대재앙의 시작
이때부터 아무런 저항력이 없는 유럽 종 포도는 이 벌레 때문에 이삼십 년 동안 거의 황폐되어 해결 방법이 없었다. 학자에 따라서는 프랑스는 1870년에 일어난 보불전쟁의 피해보다 더 컸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이 필록세라 재앙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후 20년 동안 유럽 전역의 포도밭을 황폐화시켰고, 이어서 바다 건너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까지 침투하였다. 다만 칠레를 비롯한 남미까지는 침투가 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농약살포, 포도밭에 물을 대는 법, 유럽종과 미국종의 교잡종 묘목의 개발, 심지어는 전기 쇼크까지 수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여, 1873년까지 프랑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상금 3만 프랑을 걸었지만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다.


해결은 접붙이기
그러다가 프랑스, 미국 양국 과학자들의 협동으로 해결책이 나왔는데,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원예학자와 미국 종 포도 전문가 두 사람의 협동과 노력으로,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강한 미국 종 뿌리(Rootstock)에 유럽 종 포도 가지(Scion)를 접붙이는 아이디어가 실현되어 서서히 그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종 포도가 생식용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와인용으로 가장 중요한 필록세라에 강한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접붙이기 대목용으로 그 수요가 늘어나고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 된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 접목에 따른 와인의 품질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일부 유명한 샤토들은 1차 대전까지 접목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로마네 콩티’와 같은 최고급 포도밭은 2차 대전 후에야 접목을 할 정도로 우여곡절 끝에 접목이란 방법이 정착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종 포도나무라 하더라도 필록세라에 완벽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취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 필록세라는 두고두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파 경로 및 대책
필록세라는 묘목이나 대목에 붙어서 전파되거나, 지주, 박스, 타이어, 신발 등으로도 전파되므로 이들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관수하는 물을 통해서도 전파되는데, 유충은 물에서 일주일 이상 살 수 있고, 유충은 6주 이상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빗물로도 다른 나무로 전파될 수 있다. 점토질 토양이 가뭄으로 갈라질 경우, 이 틈새를 이용해서 필록세라가 다른 나무로 이동하니까, 토양과 뿌리의 규산 함량이 높은 모래땅에서는 피해가 적거나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농약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므로 필록세라 저항력이 있는 대목에 접붙이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 저항력이 있는 대목이란 면역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성이 강하다는 것이므로 저항력 있는 대목을 구입할 때도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필록세라가 가져다 준 혜택
필록세라는 와인뿐만 아니라 세계 주류 역사를 뒤흔든, 근세에 가장 영향력 있는 해충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라는 것은 한 두 해만 안 되도 치명적인데, 10년, 20년 농사가 안 된다면 모두 보따리 사서 떠나야 한다. 필록세라가 기승을 부리던 때 유럽의 와인메이커들은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 신세계 와인산지로 이동하면서 신세계 와인산업을 발전시키게 된다.
또, 19세기 후반에 필록세라 때문에 유럽의 와인 생산량이 바닥을 밑돌자, 이제까지 천대받았던 맥주가 상류층에서도 빛을 보게 되었고, 병맥주를 개발하는 등 맥주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또, 와인을 증류시켜 만드는 코냑을 비롯한 브랜디 역시 품귀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토속주 형태로 머물고 있던 스카치위스키가 영국 상류층에 유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프랑스까지 스카치위스키가 침투하게 된다. 필록세라는 위스키를 세계무대로 데뷔시킨 벌레라고 할 수 있다. 이윽고 프랑스에서는 명산지의 와인이 귀해지니까 원산지를 속여서 파는 가짜 와인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해결하고자 생긴 것이 유명한 원산지명칭제도(AOC)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필록세라 재앙 때문에 국가 간에 동식물이 이동할 때는 오염상태를 조사하는 검역제도가 자리를 잡았고, 생물학적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필록세라 사건을 모르면 와인의 역사는 물론, 세계 주류 역사의 중요한 대목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9세기 후반에 필록세라 때문에 유럽의 와인 생산량이 바닥을 밑돌자, 이제까지 천대받았던 맥주가 상류층에서도 빛을 보게 되었고, 병맥주를 개발하는 등 맥주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또, 와인을 증류시켜 만드는 코냑을 비롯한 브랜디 역시 품귀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토속주 형태로 머물고 있던 스카치위스키가 영국 상류층에 유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프랑스까지 스카치위스키가 침투하게 된다. 필록세라는 위스키를 세계무대로 데뷔시킨 벌레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4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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