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요리하고 살림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남이 해준 음식’이라고 답할 것이다. 여기 이 ‘남’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모였다. 요리를 업으로 삼으며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지칠 법도 한데, 쉬는 날 혹은 일이 끝나고 자신의 요리를 선보이고 이야기하고 함께 공유하 는 셰프들의 또 다른 레스 토랑 ‘힐링셰프’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요리를 업으로 삼은, 삼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요리에 대해 공유하고 새로운 식문화를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니 누가 과연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어렸을 적 3년여 간 아이돌을 준비하다 조리 업계에 뛰어들게 됐다는 힐링셰프의 대표 이산호 셰프를 통해 요리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요리를 사랑하는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커뮤니티 ‘힐링셰프’에 대해 알아보자.
취재 오진희 기자 | 사진 조무경 팀장
지난 5월 29일 安(안)1.74에서 힐링셰프의 18번째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소희 셰프가 참여해 눈길을 모았다. 특히 김 셰프의 방한 목적이 오직 ‘힐링셰프’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고 알려져 더욱 이 모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O’live ‘아바타 셰프’를 통해 힐링셰프의 이산호 대표와 연이 닿으면서 함께하게 된 김 셰프는 참여한 많은 요리인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선사했다고. 이산호 대표 역시 김 셰프의 조언에 감명 받고 앞으로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하는지 느끼는 바가 크다고 전한다.
“김소희 셰프님은 처음 텔레비전에서만 뵙고 이후 방송 출연이 계기가 돼 연락을 조금씩 했었습니다. 이후 사석에서 한 번 뵙게 됐었는데 그 때 제가 몸담고 있는 호텔에 식사하시러 오시라고 초대를 했고, 그 초대에 응해주시면서 ‘힐링셰프’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힐링셰프란 커뮤니티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는지 등을 말씀드리며 초청 드렸는데, 다음에 한 번 참여하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김 셰프님이 따로 한국에 들어올 일정이 없으신 것 같아서 크게 기대를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 셰프님이 5월 모임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해주셨고, 정말 와 주셨죠. 요리를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 싶어서 왔다며, 이 커뮤니티의 수장인 저에게 힘이 돼 주고 싶다고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온전히 ‘힐링셰프’ 모임만을 위해서 와주신 겁니다. 정말 감동이었어요.”
김 셰프가 참여한 18회 힐링셰프 모임에는 네 번째 개최되는 ‘어메이징 요리대회’가 함께 진행됐다. 덕분에 이번 대회 참여자들은 김 셰프의 거침없는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8월, 다시 한 번 김 셰프가 이 모임에참여했을 때 실력이 발전돼 있으면 직접 오스트리아에 초청해 요리를 알려주겠다고 밝혀 김 셰프의 업계 후배들에 대한 사랑을 짐작케 했다.
“김소희 셰프님이 참여해주시면서 앞으로 ‘힐링셰프’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하는지 가닥이 잡힌 느낌이에요. 김 셰프님은 ‘공부를 해야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이번 모임에서 저는 김 셰프님과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도 제게 이런 말을 하셨어요. 너의 요리를 이제 맛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주하지 말고 어떡하면 새로운 요리를 할 수 있을지 계속 공부해야한다고요. 실제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할 때에도 셰프님의 요리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날 만큼은 내가 너의 보조를 하겠다며 제게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셨어요. 이날 김 셰프님은 미나리를 갈아 만든 콩국수를, 저는 김 셰프님과 함께 짜장 보리 리소토와 닭을 다져서 소스를 안에 넣고 튀긴 색다른 깐풍기를 선보였습니다. 김 셰프님께 처음 깐풍기라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는 뻔한 요리라고 몇번 혼났어요. 이에 연구를 시작했고 그렇게 생각하다가 탄생한 요리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저는 ‘힐링셰프의 역할이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 셰프님과의 협업을 통해 평생 배워야하고 함께 연구하고 공유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지난 5월 모임에는 박효남 명장님께서도 참석해주셨는데, 다음번에는 직접 박 명장님께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시간을 통해 여러 선배님들, 명장님들과 함께 힐링셰프 모임을 진행한다면, 더욱 의미 있는 모임이 될 것이라 생각이들었습니다.”
사실 요리/조리업계에는 다양한 모임, 협회들이 공존한다. 그러나 업계에 몸담고 있는 젊은 요리사들이 분야를 허물고 다함께 만나는 자리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특히 힐링셰프를 계기로 비슷한 모임이 생겼다니, 힐링셰프에 대한 업계 종사자들의 관심을 짐작케 한다. 첫 모임에서는 60명이 참여했으며, 이제는 100명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음식과 함께 주류가 제공되니 사건사고도 많았을 터, 이쯤 되니 힐링셰프를 처음 시작하게 된경위와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호텔 주방에서 일하다보니 굉장히 폐쇄적인 느낌이 있었습니다. 노동 강도도 세고 노동 시간도 길다보니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SNS를 시작하게 됐는데, 업계 종사자들과 친구를 맺게 되고, 사람을 만나서 배워보자는 마음가짐으로 한 분 한 분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러 다녔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다같이 모여 생각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14년 12월 첫 모임을 하게 됐고, SNS를 기반으로 한 모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분들이 모여 이에 대한 갈망이 다들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그것이 시작이 돼 1년이 넘도록 많은 분들이 찾아주는 힐링셰프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대부분 처음 만나는 자리다 보니 어색함을 풀기 위해 주류를 제공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종종 있었죠. 그러나 술을 아예 금지하기는 힘들더군요. 그래서 운영진들이 철저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만하더라도 모임이 진행되면서 계속 눈동자를 굴리게 되더라고요. 술이 좀 과한 사람이 있다 싶으면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계속 신경 쓰는 겁니다. 이제는 조금 약한 맥주 위주로 제공하려고 하고 있으며, 조리학과 고등학생들이 참여할 때는 운영진들이 그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으며 전담마크를 하죠. 그러나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협찬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영리를 취하는 모임이 아니다 보니, 협찬을 통해 장소 제공부터 음료, 간단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하는데요. 협찬을 받으면 또 운영진 측에서 제공해야하는 부분이 있으니 이러한 것들을 조율하기가 참 어렵습니다.(웃음)”
한 달에 한 번 늦은 시간 고된 노동을 마치고 참여하거나, 사적인 모임 공간에서 또다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 고충일 수도 있다. 그러나 100여 명이 참여하는 힐링셰프의 모임에는 어떠한 특별함이 있을까?더불어 앞으로 힐링셰프 모임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많은 분들이 제게 이 모임을 왜 하냐고 묻습니다. 처음에는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많은 업계에 함께 있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는 것을 보니 이제 다양한 콘텐츠로 재밌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힐링셰프에는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모임(힐링셰프에서 만든 이 모임의 타이틀은 ‘셰프의 늦은 밤’입니다.)뿐만 아니라 여러 일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김소희 셰프님의 참여로 커뮤니티의 형태에서 식재료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논의를 하는 등 좀 더 전문성을 띄는 모임으로 발전시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재능기부 등 봉사활동도 두루 하는 커뮤니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음식이란 매개체를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했다면 이 커뮤니티를 통해 좀 더 건강하고 다양한 문화를 양산시킬 수 있도록 많은 콘텐츠를 개발하고 진행할 예정입니다.”
힐링셰프의 다양한 프로그램
셰프의 늦은 밤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힐링셰프 모임을 이르는 말. 6월을 맞이해 벌써 19회 모임이 진행됐다. 주류와 음식이 함께하며, 음식에 대한 생각, 요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 많은 인원이 참여하므로 준비하는 것이 만만치 않지만 ‘Share(공유)’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이 셰프가 절대 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 중 하나! 가끔 요리/조리인들만 참여할 수 있는 모임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요리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참여가 가능하니 어떤 모임인지 궁금하다면 힐링셰프 페이스북을 예의주시하길 바란다.
어메이징 요리대회
셰프의 늦은 밤을 진행하면서 중간 중간에 함께 선보인 프로그램. 지난 5월 모임에서 정식으로, 제대로 갖춰서 진행됐다. 지난 5월 대회까지 합쳐 선보인 횟수는 총 4회. 김소희 셰프가 8월에도 힐링셰프 모임에 참여한다고 밝혔으니, 8월에 또다시 ‘어메이징 요리대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개최되는 기간은 정기적이지 않은 것이 특징. 요리대회에 참여하고 싶다면, 평소에 요리 실력을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옥상 소규모 파티
최근 생긴 힐링셰프의 소규모 모임. 옥상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첫 모임은 열다섯 명 남짓 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기회를 가졌다고. 함께 문화를 즐기는 모임으로는 옥상 소규모 파티뿐만 아니라 ‘밥 한 번 먹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맛집 탐방을 하고 있다. 참여 인원은 4~5명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함께 평가 아닌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셰프들의 재능기부
마지막으로 이산호 셰프가 가장 하고 싶었다는 프로그램 재능기부. 지난 3월 처음 힐링셰프의 몇몇 운영진들이 모여 진행했다. 첫 재능기부는 서울관광고등학교에 도서 기증을 하고 무료 특강으로 이뤄졌다. 서울관광고등학교에 증정한 100권의 요리 관련 서적은 힐링셰프 운영진 및 참여자들의 기부를 통해 이뤄졌다. 이후 6월에는 고아원을 방문해 함께 요리를 만들고 점심을 제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