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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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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verage Issue] Beverage’s Glass ② 특별한 한 잔을 위해

지난 호에서 맥주 전용 잔에 대한 관심이 마케팅과 결합돼 ‘소비’로 이어지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음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아로마가 다양하고 풍부한 와인은 각기 다른 잔의 모양으로 고유의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또 다른 술 ‘사케’는 어떨까?
더불어 최근 국내 젊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전통주 역시 음용에 대한 고민을 어디까지 해왔는지 궁금해진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일본의 사케와 우리 전통주의 ‘잔’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취재 오진희 기자


사케, 잔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
고급 일식 레스토랑에서 사케를 주문하면 약 20개의 잔을 내어준다. 고객들은 잔 크기, 모양, 색깔 등을 통해 술의 양,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 마시게 된다. 이처럼 일본에는 ‘사케의 다양한 잔’이 있다. 사케의 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이다. 최근 사케 잔에 ‘유리 잔’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사케 잔은 도자기 잔이었다. 그래서 국내의 일식 레스토랑에서도 20개의 사케 잔을 내어줄 때, 대부분 도자기 잔으로 마련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사케 잔으로 Sakazuki, Guinomi, Ochoko 등이 있다. 이들은 술잔이라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인기가 많았던 시대와 잔의 쓰임은 조금씩 다르다. 먼저 Sakazuki는 가장 오래된 전통 잔으로 생일이라든지 결혼식 등 공식적인 행사에 많이 사용돼 왔으며, 헤이안 시대(794~1186년) 귀족계급의 특권층이 애용했다. 나중에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거나, 중대한 행사에서 상징적으로 사용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화려하게 만들어 장식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Guinomi의 경우 에도 시대(1600~1868년)에 사무라이들의 잔으로 사랑을 받았다. Sakazuki가 형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는 잔이라면, Guinomi는 편한 술자리에서 사용돼 왔다. Guinomi 잔으로 사무라이들이 술을 마신다면,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잔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Karatsu guinomi 잔을 최고로 여기기도 한다.
Ochoko는 우리가 흔히 사케를 담아 마시는 도쿠리 병과 세트로 나오는 잔을 이야기 하는데,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케 잔이다. Ochko의 경우 다른 사케 잔보다 작은 것이 특징이다. 하얀 Ochoko 바닥에 파란 두 개의 원이 있는 잔은 Kikichoko라고 한다. Kikichoko는 주로 술의 맛, 향, 색깔 등을 평가할 때 쓰였다.
일본의 전통 잔 중 가장 눈길을 모은 것은 바로 나무 잔 ‘Masu’다. Masu는 에도 시대 때 술을 마시는 잔이 아닌, 용량을 측정하는 도구였다. 당시에는 병이흔치 않던 시기로 사케가 병에 담겨 나오지 않았던 것. 보통 Masu 한 잔에 사케 180㎖를 담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사케를 병에 담기 시작했는데, 딱딱한 네모 나무잔이라 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잔으로 인기를 얻었다. 보통 삼나무, 향나무로 만드는데, 나무의 진한 향이 사케에 배어든다고 한다. 최근에는 관리 문제로 인해 삼나무, 향나무 외에 다른 재질의 나무로 만들기도 하며, 나무잔 안에 유리잔을 넣은 세트로 선보이기도 한다. 유리잔과 세트인 Masu는 유리잔을 꽉 채우고 외부 잔에도 꽉 차도록 따르는 것이 정석이다.



사케를 조금 더 특별하게 즐기는 방법
기본적으로 사케를 즐기는 방법으로는 호리병 모양의 도쿠리에 사케를 옮겨 담고 Ochoko는 작은 잔에 따라 마시는 게 기본적인 음용법이다. 뜨거운 사케를 마실 때는 Masu 잔을 이용하는 게 좋다. 사케는 음용 온도에 따라 특화된 잔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여러 시대에 걸쳐 나타난 유행에 따라, 다양한 사케 잔을 선보인 일본의 사케 양조장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 사케의 풍부한 향과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잔의 기능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 예로 1997년 일본의 후쿠미츠야 사는 주로 와인 잔을 제조하는 ‘리델’ 사에게 사케에 가장 적합한 잔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리델은 1998년, 100가지가 넘는 디자인과 약 60가지 모양의 잔으로 전문가들에게 다양한 사케를 맛보게 했다. 30여 명의 일본 사케 전문가와 45명의 다이긴조 사케 메이커의 의견을 종합해 199년 다이긴조(Daiginjo) 잔이 탄생하게 됐다.
도정률 50%,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시킨 고급 사케, ‘다이긴조(大昑釀)’의 우아한 향미와 부드러운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리델 사의 ‘다이긴조’ 잔이 최선이겠지만, 집에 있는 잔을 활용해도 사케의 향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뇽 블랑, 리즐링 등과 같은 화이트 와인을 즐기는 잔으로는 다이긴조와 긴조(도정률 40%의 사케)를 즐겨보라고 권한다. 이들은 향이 강한 사케로, 입에 닿는 잔 입구 부분이 얇으면 얇을수록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화이트 잔이 없다면, 깊이가 적당히 있고 잔 입구가 몸통 보다 살짝 넓은 유리잔 혹은 자기 잔을 권한다.
레드 와인 잔으로는 하우스 쥰마이와 같은 맛이 강하고 묵직한 느낌의 사케를 추천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타닌이 강한 레드 와인을 즐기는 잔으로 강한 맛의 사케를 마시라고 권하는데, 타닌과 아로마를 조화롭게 해주는 잔의 역할이 강한 맛의 사케를 즐기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와인 잔 외의 잔으로는 도기 잔을 권하며, 깊이는 얕아도 되나 잔 입구가 몸통보다 살짝 좁은 타입을 추천한다. 덧붙여 향이 약한 사케지만, 최대한 향을 느껴보고 싶다면 위스키 글라스처럼 깊이가 깊고 입구가 최대한 모아진 타입이 적합하다.



전통주는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 했나
그렇다면, 우리 전통주는 어떻게 음용하고 있을까? 전통주 하면 떠오르는 ‘막걸리’, 막걸리는 대표적으로 밥그릇과 같은 대접에 마신다. 이는 대표적인 노동 주(酒)로, 잘 깨지지 않으며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일해야 했던 문화가 밑에 깔려있다. 더불어 막걸리 외에 다른 전통주는 특별한 음용 방법이나 잔에 대한 정보가 적은데, 이는 두 번의 시련을 겪는 동안 전통주에 대한 문화와 명맥이 끊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있었다. 이는 김장문화처럼 집에서 술을 빚는 문화를 말하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조선 주세령’을 발표하고 술을 빚는 것을 금지했다. 이렇게 가양주 문화는 단절되고, 양조면허를 받은 양조장에서 공업적인 술 빚기로 바뀌게 됐다. 더불어 양조에 필수적인 누룩제조가 기업화 돼, 다양한 주품들이 사라지고 사케, 맥주, 양주 등 외래 주(酒)가 대거 유입됐다.
이후 전통주는 큰 시련을 한 번 더 겪게 된다. 1960년대 정부에서 양곡관리법을 만들어, 정책적으로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 전문가들은 이 시기에 우리 전통주가 거의 말살되다시피 사라졌다고 전한다. 1995년 술을 개인이 빚어 마시는 것이 허용됐고, 전통 가양주 복원에 힘쓰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러한 노력에 답이라도 하는 것 인양,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페이스북 페이지 ‘대동여주도’를 통해 전통주 홍보대사가 된 PR 5th Avenue 이지민 대표는 “최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젊은 사람들을 겨냥한 젊은 주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며, “하지만 막걸리 외에 다른 전통주 분야는 시장도 너무 작고 유지가 어려운 양조장이 많아 술을 마실 때 중요한 ‘잔’이라든지 음용법 등에 관해 신경을 쓰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에 도움이 되고자 전통주에 대해 알리는 SNS 페이지를 운영하게 됐다.”고 전했다.
다양한 전통주, 어떤 특징이 있을까
전통주류를 분류하는 카테고리를 나누다 보면, 엄청 많은 카테고리가 나올 수 있다. 이는 주류 원료가 워낙 다양해, 주류의 원료로 나누고 여러 가지 발효방식에 또 나누다 보면 분류가 끝없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간단하게 전통주에 대해 분류를 하자면 모든 전통주는 ‘발효주’라는 것, 또한 발효주는 크게 ‘청주’와 ‘탁주’로 분류된다. 이 발효주는 발효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발효주는 소주와 같은 증류주류, 리큐르를 뜻하는 혼성주류의 베이스가 되고, 발효주와 소주를 섞은 혼양주류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로부터 ‘가양주’ 문화가 있던 탓에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전통주가 많은데, 이에 우리나라 발효주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가향주(佳香酒)’와 ‘약용약주(藥用藥酒)’를 꼽을 수 있다.
‘가향주(佳香酒)’는 술에 꽃이나 과일껍질 등 자연재료가 갖는 여러 가지 향기를 첨가한 술로, 주류의 원료로 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더러는 과일이나 그 껍질을 이용하기도 한다. ‘약용약주(藥用藥酒)’는 열매를 비롯한 자연재료가 갖는 약리성을 이용한 술을 말하는데 흔히 ‘약주’라고 한다.
맑은 발효주 ‘청주’, 탁한 발효주 ‘탁주’, 발효주를 증류한 ‘소주’, 발효주나 증류주에 과실이나 향료, 감미료, 약성 한약재 등을 첨가해 침출/증류한 혼성주 일명 ‘리큐르’, 발효주와 소주의 단점을 보완한 ‘혼양주’ 등 제조방법에 따른 분류도 이렇게나 많은데, 가향주나 약주와 같이 주류의 원료로 나누고 발효방식으로까지 나누면 그 카테고리는 어마어마하게 될 것이다. 이에 (사)한국전통주진흥협회 관계자는 “신세계백화점과 진행하는 공동주병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로 수출하면서 전용 잔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분류도 쉽지 않고 지역 특산물로 이뤄진 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용 잔을 만들기 위해서는 술 하나하나 특징을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예산은 충분치 않은 상황이며, 시장 자체가 아직 크지 않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과가 적어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밝혔다.


INTERVIEW

전통주에 대한 편견 먼저 깨야해
PR 5th Avenue 이지민 CEO

Q. 맥주, 와인, 사케 등 외래 주류에 대한 ‘전용 잔’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전통주 전용 잔에 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지난해 전통주가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전통주 시장이 크지 않다. 특히 막걸리 시장을 빼면 정말 너무 작은 시장이다. 전국 각지에 엄청 다양한 전통주가 있다. 이에 대해 다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전통주 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더불어 전통주는 전통주 하나하나 특색이 너무 강해 전용 잔을 만들려면 양조장 별로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며, 또 이 잔을 사서 쓸 업장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양조장에서도 ‘전용 잔’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을 선뜻 만들고 배포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Q. 그런데 술을 즐길 때, 잔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아쉬움은 들지 않나?
개인적으로 술을 마실 때 잔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잔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술의 맛도 달라진다. 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잔이다. 사실 그동안 전통주는 작은 도자기 잔에 많이 마셨다. 예전에 전통주를 도자기 병에 담아 판매하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혜택이 있었고, 세트로 판매할 때 도자기 병과 어울리는 잔을 선택하다보니 자연스레 도자기 잔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것이 계속 이어져 오다보니 전통주는 도자기 잔이라는 선입견이 생겼고, 도자기 잔이 주는 분위기는 젊은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달라 관심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이는 전통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아쉬운 점이다. 집에 있는 유리잔으로도 충분히 색다르게 즐길 수 있으며, 와인 잔을 이용해 다른 풍미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이와 같은 생각을 상상조차 하지 않아 안타깝다.


Q. 잔이 술의 가치를 높여준다고 말했다. 전통주의 가치를 높여 주면서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뭐가 있을까?
우선 전통주를 도자기 잔에만 먹지 말아야 한다. 도자기 잔에 먹다보면 함께 먹는 음식은 빈대떡, 파전 등과 같은 한정된 분위기, 맛만 즐기게 된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유리잔, 위스키와 같은 독주를 언더락 해 마실 수 있는 언더락 잔에 40도 정도 되는 도수가 높은 전통주를 마시는 것이다. 물론, 위스키처럼 언더락 해 마셔야 한다. 여기에 더 발전시키고 싶다면, 페퍼민트 토닉워터 등을 섞어 마시는 것도 좋다. 술의 풍미를 훨씬 살려줄 것이다. 그럼 여기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위스키를 마실 때 초콜릿을 먹는 것처럼, 초콜릿을 먹어라. 정말 잘 어울린다. 도자기 잔에 전통주를 마신다면 누가 초콜릿과 먹을 생각을 하겠는가. 잔만 바꿔도 전통주에 대한 편견만 깨져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페어링이 나타난다.


Q. 전통주와 초콜릿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조화다. 혹시 추천하는 또 다른 조화가 있다면 무엇이 있나?
굉장히 많이 있는데, 가장 추천하는 조화는 전주의 이강주와 프라이드 치킨이다. 사실 이강주의 경우 기름진 음식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어떠한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이강주 하나면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더불어 이화주와 같은 탁주를 과일에 요거트처럼 뿌려서 함께 먹는 것도 좋고, 치즈 케이크랑 매실원주와 같은 리큐르도 꽤나 잘 어울린다. 이때 매실원주는 와인 잔에 담아 풍부한 향과 맛을 함께 즐기길 바란다. 사실 우리의 전통주는 화학 술과는 다르게 몸에 좋게 작용한다. 물론 적당량을 마셔야겠지만. 지역의 좋은 특산물을 발효시켜 만들었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고, 도수가 높은 전통주도 많이 마셔도 탈이 없다.(웃음)


Q. 전통주에 관심이 많은 국내 소비자에게 즐길 수 있는 팁을 준다면?
2014년도부터 페이스북 페이지 ‘대동여주도’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점이, 전통주의 장인들은 정말 각고의 노력으로 술을 빚는다는 것이다. 장인정신이 깃든 술은 한 잔을 마셔도 그 품격과 분위기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전통주는 그 전통성이 단절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졌었다. 특히 농경사회다 보니 흉년이 들면 쌀로 술을 빚지 못했고, 몰래 몰래 빚어야만 했다. 현재 우리의 전통주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전통주 전용 잔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우선 전통주에 대한 편견을 깨고 와인 잔, 콜라 잔, 유리잔, 컵, 등 다양한 형태로 전통주를 즐겨봐라. 함께 먹는 음식이 달라지고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2016년 3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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