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주변에 목욕탕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이는 목욕을 한국보다 훨씬 많이 즐기는 일본에서도 다르지 않아 동네마다 있었던 ‘센토(せんとう)’라는 대중목욕탕을 지금은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하지만 최근에 ‘차도(茶道)’처럼 ‘사도(サ道;사우나를 즐기는 방법)’가 일본에서 유행하면서 ‘슈퍼 센토(대형 목욕탕)’라고 불리는 온천 사우나들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이들 시설을 이용하는 대다수는 남성들이다보니, 온천 사우나는 여전히 남성들의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 ‘사우나 카페 호텔’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고 있는 ‘오후로 카페 유타타네(おふろ cafe utatane)’가 주목할 만하다.
온천 사우나 시설의 붐, 그리고 쇠락
주식회사 온천도장(温泉道場)을 창업한 야마자키 토시키 사장은 대학을 졸업한 후 ‘후나이 종합 연구소’라는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기업을 운영하는 집안의 자제인 야마자키는 여느 후계자들이 그렇듯 여러 사업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이유로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면서 여러 사업분야의 프로젝터를 담당하던 야마자키는 어느날 온천시설의 컨설팅을 맡게 됐다. 1년에 200곳의 사우나를 찾았을 정도로 온천 마니아였던 야마자키는 온천시설을 담당하라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뻤다. 일이 아니라 취미 생활을 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마자키가 맡은 온천시설은 장기 불황으로 경영난에 빠진 시설이었다. 이 기업의 컨설팅을 맡게 된 야마자키는 먼저 수많은 온천시설을 찾아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온천시설의 매력이 감소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결론은 온천시설은 어디를 가도 기존의 시설을 모방한 것과 같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온천시설 안에 들어가면 탈의실, 안마의자, 텔레비전 그리고 사우나와 욕탕이 있을 뿐 어떤 다른 특별한 요소는 없었다. 그리고 사우나를 마치고 나와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기껏해야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간이 식사공간이 전부였다. 이런 획일적인 온천 사우나를 보면서 야마자키의 마음에는 개성 있는 온천 사우나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바로 그때 사이타마 현에 있는 온천 사우나 시설을 운영하던 오너가 야마자키에게 회사를 인수해 줄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야마자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온천 사우나를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자금이 없었던 야마자키는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리고 은행의 도움을 받아 온천 사우나를 인수하는데 겨우 성공했다. 그리고 온천 사우나를 경영하는 회사인 주식회사 온천도장(温泉道場)을 창업했고, 온천시설의 브랜드는 ‘오후로 카페 유타타네(목욕탕에서 유카타를 입고 뒹굴뒹굴하는 카페라는 의미)’라고 네이밍했다.
MZ세대 여성을 위한 ‘목욕×카페×호텔’의 탄생
야마카키는 온천 사우나를 인수한 후 먼저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결론은 주차장이 협소하고 동시에 주변의 라이벌 온천 사우나와 비교했을 때 욕실이 좁으며 욕탕 종류도 적다는 점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야마자키의 생각은 우선 온천의 메인인 욕실을 일반적인 수준으로만 리노베이션 한다는 것이었다. 예산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욕실의 업그레이드에 많은 비용을 들여 공사를 한다 하더라도 주변의 라이벌들과 같은 수준의 퀄리티 밖에 구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면 차라리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은 아이디어가 남성 중심이었던 고객 타깃을 과감히 여성으로 시프트 하는 것이었다.
야마자키는 남성들이 욕실의 넓이나 욕실의 종류를 중요시 하는 반면, 여성들은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차라리 욕실의 리노베이션에는 예산을 최소화하고, 욕실 이외의 공간에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여성 고객을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욕실로 승부하지 않고 공간 및 분위기로 승부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던 것이다. 그리고 여성 중에서도 그 대상을 MZ세대로 잡았다. 인수한 온천시설의 인근에는 주차장이 좁았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고객들을 노릴 필요가 있었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또한 새로운 브랜드를 확장하기 위해서도 홍보성 있는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했다.
타깃으로 정한 MZ세대 여성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대형 쇼핑몰 등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휴일을 보내는 방법을 철저히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야마자키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많은 여성들이 카페에서 잡담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는 당연한 일상 속 모습이었지만 목적의식을 갖고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각해 낸 콘셉트가 ‘목욕×카페’였다. 그러다 아이디어 회의를 거치면서, 여자 친구들끼리 밤새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콘셉트에 호텔을 첨가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최종 완성된 콘셉트가 ‘목욕×카페×호텔’이었다.
콘셉트가 정해지자 야마자키는 구체화 작업에 들어갔다. 처음 논의가 시작됐을 때는 커피 머신 등을 설치해 목욕탕에 친구와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제기됐다. 그러나 야마자키는 단순히 목욕 공간에 커피 머신만을 둔다고 해서 카페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MZ세대 여성들이 오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느끼는 아늑함의 요소를 담는 것이 꼭 필요했다. 그러자 논의는 ‘아늑함을 느끼는 공간이란 어떤 것일까’로 전개됐다. 논의를 거치면서 아늑한 공간이란 ‘집’을 떠올리게 된다는 생각에 모아졌고, 야마자키는 이러한 논의를 지켜보면서 문득 어렸을 때 친구 집에 가서 슬립오버를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야마자키는 사우나와 온천욕을 하고, 유카타를 입고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뒹굴뒹굴하기도 하며 그러다 밤이 되면 맥주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새벽까지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집과 같은 공간을 만들면, MZ세대 여성들이 분명히 찾아와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목욕탕 카페에서 유카타를 입고 뒹굴뒹굴 할 수 있는 ‘오후로 카페 유타타네’다.
MZ세대 여성들의 아지트
오후로 카페 유타타네에 들어서면 집 모양의 아늑한 사우나와 온천을 즐길 수 있고, 유카타로 갈아입고 나오면 각자가 원하는 형태의 ‘뒹굴뒹굴’하는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서고에서 소설이나 만화를 꺼내서 해먹에 누워 읽거나, 트럼프, 보드게임, 컴퓨터게임도 가능하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주문해서 먹고, 라운지로 이동해서 술을 마실 수도 있다.
게다가 공간 안에는 집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들이 숨겨져 있는데, 그중 하나가 책장의 책을 조금은 어수선하게 놓여진 것처럼 둔 것이다. 너무 정돈된 느낌이 들지 않게 함으로써 처음 온 공간이라도 긴장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세심함이다. 이렇게 집과 같은 아늑함을 주기 위해 세부적인 부분까지 신경을 쓴 결과, 고객들이 일반적으로 온천 사우나에 머무는 평균 시간이 2시간 이내인데 반해, 오후로 카페 유타타네에서 머무는 시간이 7시간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매출도 야마자키가 인수하기 전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실제로 재방문 고객도 늘었는데, 일례로 이곳을 즐겨 찾는 여성들 중 평일 저녁을 호텔에서 먹고 술을 마시며 늦게까지 슬립오버를 한 후, 아침에 일어나 온천을 하고 각자의 직장으로 간다고 한다.
오후로 카페 유타타네는 주요 고객인 젊은 층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천도장의 젊은 직원들이 내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온천시설의 콘텐츠와 하드웨어적인 부분에서의 변화까지 젊은 직원들이 재량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도록 권한을 넘겨줬다. 실제로 이러한 권한의 이행이 오후로 카페 유타타네가 지금까지 순항을 하고 있는 큰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후로 카페 유타타네는 객실보다는 목욕탕과 카페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온천 사우나의 주 고객인 남성보다 젊은 여성 고객들을 타깃으로 했다는 점에서 다소 생소하지만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호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