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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7 (토)

손진호

[Special Wine Column] 비녜도 채드윅, 전설을 마시다


와인의 세계에서 새 빈티지를 기다리는 마음은 첫 눈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다. 한 여름의 태양과 가을의 우수도 좋지만, 첫 눈을 맞는 설레임과 새로운 경이감에 비할 바는 아니다. 땅은 동일하나 기상과 날씨가 매년 달라지니 그 해의 표현을 담은 새로운 터치가 매년 입병되는 와인에 담겨 있다. 일반 와인도 그러하거니와, 최고급 와인계에 속하는 와인들은 더더욱 그 터치가 뚜렷하고 신비스럽다. 고급 와인들은 일반적으로 20개월 이상 숙성을 시키니, 올해 병입되는 와인은 2021년 빈티지인 경우가 많다. 마침, 지구 반대편 우리와 대척점에 있는 전혀 다른 기후의 나라 칠레에서 필자가 높이 평가하는 와인인 ‘비녜도 채드윅(Viñedo Chadwick)’의 2021년 빈티지가 출시돼 시음해 보았다.

 

  

와인과 폴로, 두 개의 열정이 하나의 용광로에

 

‘비녜도 채드윅’은 와인의 이름이자, 와이너리 이름이기도 하며, 역사적 포도밭 이름이기도 하다. 이 명칭은 채드윅 가문에서 유래하는데, 11세기 중엽 정복왕 윌리엄 1세(William the Conqueror) 가 헤이스팅스 전투 때 참여한 공로로 채드윅 가문에 영지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천년의 역사와 함께 교육자, 작곡가, 조각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망을 가진 가문이다. 비녜도 채드윅 와인은 현 경영자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의 부친인 돈 알폰소 채드윅(Don Alfonso Chadwick)에게 헌정한 와인이다.

 

알폰소에게는 두 가지 열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하나가 와인이고, 다른 하나는 폴로 경기다. 재능있고 열정적인 폴로 선수였던 그는 집에 있는 개인 경기장에서 연습하며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그는 서거한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부군이었던 필립 공(Prince Philip)과 함께 폴로를 즐기곤 했으며, 지금은 비녜도 채드윅의 포도밭이 된 폴로 경기장에서 그와 친선 경기를 열기도 했다. 부친이 폴로 선수에서 은퇴하자, 아들이자 현 회장인 에두아르도 채드윅은 폴로 연습장이 있었던 부지를 눈여겨 보았고, 위대한 와인을 품을 수 있다는 비전을 갖고, 애지중지했던 폴로 경기장을 포도밭으로 바꿨다. 

 

 

세계적 명산지의 생산 철학과 방식을 칠레에서

 

에두아르도는 1992년 여기 15ha의 밭에 까베르네 소비뇽을 심었다. 안데스 산맥의 발치, 마이포 밸리의 상류에 위치한 푸엔테 알토(Puente Alto) DO 지역은 칠레 최고의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의 요람으로 알려져 왔다. 포도밭은 풍부한 점토성 양토가 와인의 보디와 골격을 형성시켜 주며, 하부토에 큰 자갈이 가득 박혀 있어, 배수와 지온 유지에 유익한 효과를 준다. 낮에는 지중해성 기후의 온화한 태양이 포도를 충분히 익혀 주고, 밤에는 안데스 산맥의 찬 기운이 내려와 포도밭을 덮으니, 포도의 산도를 보존해 주며, 긴 성숙기를 보장해 주는 곳이다. 우아함과 세련됨, 강렬한 풍미와 뚜렷한 골격을 갖춘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칠레 최고의 테루아다.


비녜도 채드윅의 포도밭은 보르도 그랑크뤼급 샤또 포도밭의 식재 비율과 관리 방식을 채택하고있다. 1992년에 식재한 까베르네 소비뇽 밭은 헥타르당 4166주의 매우 조밀한 식재 밀도를 가지고 있으며, 헥타르당 평균 수확량은 약 3~4톤 내외로 엄격하게 관리된다. 지속 가능형 유기 농법(Sustainable & Organic)으로 재배된 포도는 수확기에 매우 엄격하게 선발되며, 양조장에서의 부드러운 처리로 정교하게 생산된다.

 

이 모든 과정은 칠레에서 가장 재능 있는 와인 메이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란시스코 베티그(Francisco Baettig)가 신중하게 감독한다. 그의 철학은 신선함과 순수함, 우아함을 지닌 와인을 만드는 것이며, 각 빈티지의 특성을 존중하고 테루아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산량이 컬트 와인 수준으로 약 5000병에서 1만 병 정도만 생산되며, 이는 전 세계 최고의 와인 시장에 엄격하게 할당된다. 

 

 

베를린 테이스팅 1위, JS 100점 만점의 전설

 

출시 이후, 줄곧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 온 비녜도 채드윅은 최고의 화제를 몰고 다니며, 세계적 평론가들로부터 일관되게 찬사와 인정을 받는 와인이 됐다. 에두아르도 회장은 비녜도 채드윅 와인이 세계적 명품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와인을 만들었으니, 그 품질을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생각으로 전 세계를 돌며 각국의 와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블라인드 테이스팅 행사를 개최했다.

 

그리해 개최된 2004년 1월의 전설적인 '베를린 테이스팅'에서 “비녜도 채드윅 2000”이 샤또 라피트, 라뚜르, 마르고 등 보르도 특급 와인들과 이탈리아 수퍼 터스칸 와인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르며 칠레 와인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 결과, 비네도 채드윅의 2000 빈티지는 페트루스, 샤또 라피트, 샤또 마르고,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 등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들과 함께 <디캔터(Decanter)> 지로부터 "와인 레전드 Wine Legend”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아울러 와인 구루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로부터 최고 등급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으로 인정받았으며, 또한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은 그가 시음한 2014년 빈티지에 완벽하다는 100점 만점을 받았다. 결국 칠레 와인 역사상 최고의 점수를 받은 와인이 됐으며, 뿌엔테 알토 테루아를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와인 원산지로 올려 놓게 했다.

 

이로써 위대한 폴로 선수였던 알폰소의 이름은 이제 세계 최정상급의 와인의 이름으로서 영원히 남아 있게 됐으며, 비녜도 채드윅 와인은 채드윅 가문의 역사를 보존하고, 다방면에서 성공을 이룬 가문의 영광을 와인계에서도 실현하게 됐다. 

 

 

2021년 빈티지, 비녜도 채드윅

 

칠레의 2021년은 적당히 서늘한 계절로 인해 포도의 자연스러운 산도, 아로마 및 색상을 보존하는 길고 고른 숙성으로 이어진 특별한 빈티지였다. 시즌은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로 시작돼 고른 착과를 얻을 수 있었고, 여름은 평년보다 시원했으며, 지속적인 햇볕 덕분에 건강한 포도가 부드럽게 익을 수 있었고, 타닌의 성숙과 당도 축적은 수확 시기까지 천천히 함께 진행됐다. 열매는 단단하고 색이 뛰어나며 잘 익은 타닌과 상큼한 산미가 최적의 당도와 균형을 이루게 됐다. 이렇게 완만한 성숙기를 거친 후 3월 말부터 수확을 시작 4월 초에 대부분의 까베르네 소비뇽을 수확하고 4월 12일에 마지막 수확을 마쳤다. 이 뛰어난 빈티지는 매우 길고 우아한 입맛과 함께 놀라운 기교와 복합성을 보여주며 뛰어난 푸엔테 알토 테루아의 넉넉한 자연을 보여준다.

 


필자가 시음한 2021 빈티지는 까베르네 소비뇽 97%에 소량의 쁘띠 베르도를 블렌딩했다. 양조된 와인은 프랑스 새 오크 배럴(80%)과 중형 오크통(Foudre 20%)에 나눠 22개월간 숙성했다. 짙은 흑적색에 선명한 보랏빛 뉘앙스가 생동감을 주며, 첫 눈에 와인의 농축미와 품질을 보여 준다. 잔의 첫 향에서는 제비꽃, 산딸기, 블랙커런트의 은은한 향과 바닐라, 삼나무 목재향, 스카치 캔디의 향긋한 부께가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나무 숲속의 피톤치드 향과 발사믹 향이 신비스럽게 등장하며, 유칼립투스, 정향과 후추가 주는 향신료 향은 이국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한 모금 머물면, 감미롭게 잘 익은 과일의 농익은 감미가 담백하게 느껴지며, 산뜻하고도 높은 산도가 미각 전반을 긴장시켜 준다. 신선한 베리류와 과일, 바닐라와 다크 초콜릿, 볶은 커피, 향긋한 향신료의 풍미가 이어지며, 농축된 압축감과 미려한 질감이 조화를 이루는 틈새로, 세련된 벨벳 질감의 타닌이 유영을 하며 감각있는 레드 와인의 조화로움을 연출한다.

 

시음 전반을 아우르는 깔끔한 미네랄과 14%vol의 과하지 않은 안정된 알코올, 그리고 상큼한 과일 맛이 균형을 이루는 잘 짜여진 한 편의 교향곡과 같은 근사한 레드 와인이다. 칠레와 보르도, 그 중간에 완벽히 자리잡은 뛰어난 품질과 정밀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독특한 캐릭터는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뛰어난 숙성 잠재력을 가진 이 와인은 15~30년까지 보관해도 좋겠고, 이른 기간에도 고급 파인 다이닝 스테이크나 한우 스테이크 구이와 함께 즐기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겠다.

 

알코올이 과하지 않고, European Vegetarian Union의 ‘비건 V-Label’ 인증을 받았으니, 몸에도 순하게 다가올 건강한 와인이다. 더욱 놀랍고 반가운 것은 필자가 이 테이스팅 후기를 쓰는 동안, 로버트 파커와 팀 엣킨스 MW(Tim Atkin)가 모두 2021년 빈티지에 완벽한 100점 만점을 다는 사실을 축하하며, 시의적절하게 나올 본 칼럼을 축하 선물로 바친다. 

사진 제공_ VINEDO CHADWICK @vinedochadw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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