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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금)

한국음식평론가협회

[Dining Story] 할매니얼의 대표 작품 약과

- 본 지면은 한국음식평론가협회와 함께합니다.

 

요즘 디저트 대세는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신조어 ‘할매니얼’이라 할 수 있는데 할머니가 좋아할 것 같은 취향에 MZ세대가 열광을 하고 있는 트렌드를 말한다. 그중 하나가 약과인데 과정류(菓飣類)의 한 종류로 유밀과(油蜜菓)에 속하며 명절음식 뿐만 아니라 혼례, 회갑연등 주요 의례의 큰상차림에 필수적으로 사용돼 왔다, 약과는 제조 시 밀가루에 참기름, 꿀이나 시럽, 술을 넣고 반죽, 일정한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지져낸 다음 조청 시럽이나 꿀을 이용한 즙청을 통해 기름에 튀겨 낸다. 


이를 통해 산패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보관이 좀 더 용이한 음식으로 예전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겨울이면 약과를 만들어 조청에 즙청해 항아리에 넣고 겨우내 먹었다.

 

 

 

약과의 종류


약과는 모양에 따라 여러 이름이 붙게 되는데 궁중연회의궤에 나오는 약과는 약과, 연약과, 방약과, 소약과, 대약과, 다식과, 소다식과, 대다식과, 만두과, 소만두과, 대만두과 11가지였으나 현재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약과는 크게 궁중약과와 개성약과로 나눌 수 있다. 


궁중약과는 밀가루와 찹쌀, 참기름 꿀, 청주를 넣고 반죽해 약과틀에 찍어 모양을 내 튀긴 후 즙청을 한 것으로 보통 우리가 시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약과다. 부드럽고 고소한 것에 비해 모약과라 불리는 개성약과는 부드럽게 반죽해 잘라 겹치기를 한 다음 밀대로 밀어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잘라 튀겨 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약한 온도의 기름에 켜가 생기면서 부풀어 오르면 2차로 고온에 바삭하게 튀겨 즙청을 해 고소한 맛이 난다. 

 

 

 

약과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인 과자를 가르켜 ‘과정류(果飣類)’라 하는데 곡식에 기름과 꿀을 섞어 만든 것을 말한다. 기름과 꿀은 삼국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나 이 재료를 이용해 과자류가 만들어진 것은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문헌 기록은 고려시대 때부터로 확인할 수 있다. 


과정류에는 재료와 만드는 법 등에 의해 유과(油菓)류와 유밀과(油蜜菓)류 다식(茶食)류, 정과(正菓), 엿강정류 등으로 크게 나뉜다. 그중 유밀과류는 용재총화(1439~1504년)에 처음 기록됐으며 유밀과는 본디 과실 모양뿐만 아니라 새나 짐승모양으로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고 약과가 가장 대표가 되며 다음이 만두과, 다식과다. 


옛날에는 밀면으로 과자의 모양을 만들되 과일 모양으로 만들어 조과(造果)라 했는데 조과(造果)는 생과(生果)와 구별되는 말로 가공해 만든 과일의 대용품이라는 뜻이다. 조과라는 호칭을 얻게 된 근거에 대해 이익이 증언하기를 “꿀과 밀가루로 반죽해 만든 떡을 기름에 튀겨서 말린 것은 박계(朴桂)고 조금 윤기가 있도록 엿 또는 꿀로 집청한 것은 약과인데 이런 종류를 우리나라에서는 통칭 조과라 한다. 그 모양이 둥글어 그릇에 높이 담을 수가 없어 방형으로 만들었고 제사나 제물을 차릴 때 과일 접시 줄에 놓으며 우리 말에 꿀을 약이라 이르는데 꿀을 넣어 만든 과자라 해 약과라고 한다.”고 했다. 약과는 ‘약(藥)’이 되는 ‘과일(果)’이란 뜻인데 1850년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와 1613년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그 재료인 밀은 춘하추동을 거쳐서 익기 때문에 사시의 기운을 얻어 정이 되고 꿀은 백약의 으뜸이며 기름은 살출하고 해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조선시대의 문헌인 <아언각비>에 “유밀과는 중국의 거여나 한구에서 출발했으나 약과는 고려에서 따로 개발한 것”이라고 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숭상으로 육식이 절제되면서 차를 마시는 풍속과 함께 과자류가 크게 발달했고 연등팔관회의 연회, 공사연회와 재연(齎宴), 왕의 행차 등에 널리 쓰였다. 

 

 

충렬왕 8년(1282)에는 유밀과를 만들기 위해 곡물, 꿀, 기름 등을 사용함으로써 물가가 오르고 민생이 어려워지자 유밀과의 봉정을 금했으며, 공민왕 2년(1353년)에는 유밀과 사용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충렬왕 22년에 왕세자가 진왕의 딸을 맞이하는 혼례 때 납폐(신랑집에서 보통 결혼식 전날 신부용 혼수와 혼서 및 물목을 넣은 혼수함을 보내는 것)를 함으로써 원나라로 유밀과를 가져가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맛이 입속에서 살살 녹는 듯해 고려 유밀과의 솜씨를 칭송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원나라에서는 ‘고려병’이라 하며 즐겨 찾게 됐고, 유밀과는 고려에서 납폐음식의 하나가 됐으며 이러한 풍습은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져서 개성의 납폐례에는 반드시 유밀과가 따랐다. 조선시대는 한과가 고도로 발달된 시대였으며 한과류의 금지도 계속돼 대저회통에도 헌수, 혼인, 제향 이외에 조과를 사용하는 사람은 곤장을 맞도록 규정했을 정도로 비싸고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다. 

 

우리나라 생활 속에서 함께 한 역사만큼이나 약과의 제조법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 볼 수가 있는데 <음식디미방>과 <요록>, <주방문>, <규곤시의방>에서는 볶은 밀가루를 사용해 약과를 만들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성행, 많은 문헌에 소개돼 있다.

 

 

그러나 서양과자들이 넘쳐나는 현대에는 과거에 사랑 받았던 우리의 한과들이 아쉽게도 명절이나 차례상에서만 볼 수 있는데 MZ세대들의 열광과 한류의 열풍을 타고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사랑 받는 과자가 되기를 바라본다.

 

참고문헌_ 한국음식대관

 

김필화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한국음식평론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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