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칵테일의 대명사, 하이볼(Highball)이 국내 주류 소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주류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편의점에는 각종 하이볼 RTD 제품이 진열되기 시작했으며, 취향에 따라 맞는 술을 섞어 마시는 믹솔로지(Mixology) 트렌드와 결합돼 하이볼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위스키 베이스의 정통 하이볼에서 위스키 이외에도 다양한 기주와 탄산수, 혹은 탄산에 향이 가미된 음료 등을 섞어 마시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
이에 일부 애주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위스키를 비롯해 그동안 소비자들과 비교적 가깝지 않았던 각종 주류 소비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다채로운 주종만큼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 술을 즐기지 않던 소비자들도 취향껏 주류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일부 주종으로 편중돼 있던 주류 문화의 다변화가 기대되는 가운데, 하이볼 트렌드가 단순히 소비의 확장뿐만 아니라 도소매 유통 활성화와 업장의 수익성 제고를 통해 주류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위스키가 낳은 하이볼, 하이볼이 쏘아올린 믹솔로지 열풍을 살펴봤다.
주류 소비 트렌드와 문화 이끄는 MZ세대
코로나19로 혼술, 홈파티의 문화가 확산되고 취향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의 영향으로 고착화돼 있었던 국내 주류산업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개인 취향에 따른 주류 소비가 확산되면서 소주, 맥주 위주였던 시장에 위스키, 와인, 무알콜 맥주 등 다양한 주종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메조미디어의 <2022 주류 소비 트렌드 리포트>에 다르면 변화된 음주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2030 주류 소비자는 술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음주 경험을 확장하는 것에 적극적인 이들이다. 이에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주류를 활발히 탐색, 구매에 열을 올리는 적극적 주류 소비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최근 불고 있는 위스키 열풍으로 나타났다. GS25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 구매 고객의 71%가 2030세대였으며, 이마트는 지난해 위스키, 브랜디, 럼의 양주 매출이 전년대비 20.2% 증가했고, 올해 2월의 경우 전년 대비 9.2% 늘었다고 밝혔다. 특히 위스키의 경우 구매 고객을 연령대별로 분석했는데, 30대 이하가 39.4%의 비중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양주의 매출 상승에 MZ세대가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2022년 위스키 수입액은 2억 6684만 달러로 15년만의 반등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글렌피딕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배대원 앰배서더(이하 배 앰배서더)은 “국내 위스키에 대한 관심은 실제 체감으로 느끼는 것이 더 큰 것 같다. 글렌피딕에서는 위스키 테이스팅 클래스를 ‘몰트저니’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인데 몰트저니에 대한 니즈가 기존의 기업체 임원 중심에서 사회 소모임이나 동아리, 대학교 축제 등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연령대는 물론 여성들의 소비량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이야기하며 “구매력도 상당한 이들이라 지난 3월에 진행했던 글램피딕 타임 시리즈 리뉴얼 론칭 당시에는 수천 만 원대의 50년산이 출고 당일 완판되기도 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현지에서 위스키 수입이 어려운 가운데 공급에 비해 폭발적인 수요로 오히려 업장이 난감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위스키를 더욱 맛있게 즐기는 방법
풍미에 청량감 한 스푼 더하다
위스키의 대중화는 하이볼의 재발견으로 이어졌다. 부담 없는 저도수, 무알콜 주류의 수요 증가로 가볍게 즐기는 음주 문화를 선호하는 MZ세대에게 하이볼이 제격이었던 것. 맥주보다 포만감은 덜하면서 소주보다 도수가 낮고, 위스키에 비해 저렴하지만 칵테일의 형태로 위스키도 즐길 수 있어 매력이 어필됐다.
하이볼은 위스키 베이스의 칵테일로, 얼음을 채운 텀블러 글라스에 위스키를 넣고 그 위에 탄산수나 탄산음료를 첨가해 마시는 술이다. 기호에 따라 기주와 탄산음료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고, 레몬이나 라임같은 가니시를 추가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은 것을 말한다. 하이볼이 탄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위스키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다. 짧게 숙성된 위스키는 맛이 강한 반면 풍미가 진하지 않기 때문에 탄산수나 다른 음료를 섞어 풍미를 배가시킨 것이다. 이에 버번위스키의 경우 콜라를 더해서 마시면 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청량감까지 느낄 수 있어 탄산수보단 콜라를 넣은 하이볼이 인기라고.
이처럼 기주의 맛을 풍요롭게 즐기고자 탄생한 하이볼. 그런 하이볼의 부재료들에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탄산이다. 청량감이 생명인 하이볼에 있어 탄산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 이상의 고압 탄산, 이른바 강탄산수여야 한다. 실제로 닛카 위스키는 맛있는 하이볼을 위해서는 탄산이 날아가지 않도록 얼음을 피해 탄산수를 부어야 하는데, 미리 얼음을 한쪽으로 쌓음으로써 탄산수가 내려갈 길을 만들어두는 것이 프로의 기술이라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잔 높이와 비슷한 길이의 얼음을 준비해 따로 길을 내지 않는 방법을 고안했을 정도라고 한다.
2004년부터 이자카야 ‘동아리’를 통해 하이볼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아이와푸즈코리아 마쯔모토 히토미 대표(이하 마쯔모토 대표)는 “일본에서는 하이볼의 청량감을 위해 탄산수는 물론 얼음, 잔의 온도까지 꼼꼼히 체크한다. 탄산수는 탄산의 밀도를 강하게 하는 초탄산, 혹은 강탄산수를 사용해 청량감은 높이면서 위스키의 향미, 그리고 탄산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칠링을 통해 잔의 온도를 낮추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귀띔하며 “동아리의 경우 빔산토리코리아에서 지정한 하이볼 명가기 때문에 하이볼 서버를 통해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 강탄산수로 하이볼을 만들고 있다. 일본에는 하이볼 소비가 워낙 대중화돼 있기 때문에 생맥주 기계에 탄산수 서버가 내장돼 있어 어딜 가도 비슷한 청량함을 느낄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 약 100여 곳의 하이볼 명가에서만 진정한 하이볼 경험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위스키 열풍, 하이볼의 대중화 이끌어
하이볼이 국내 주류 소비의 중심이 된 데에는 대중화된 위스키의 영향이 크다. 하이볼의 기원이 위스키에 있는 만큼 제대로 된 하이볼을 즐기려면 위스키를 알아야 하는 법. 하이볼 소비가 대중화돼 있는 일본의 경우 하이볼 메뉴가 위스키의 종류에 따라 산토리 하이볼, 히비키 하이볼, 치타 하이볼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배 앰배서더는 “숙성의 미학을 담고 있는 위스키는 브랜드마다 추구하는 맛과 향이 다르고 재료와 제조 및 숙성 과정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물들이 탄생한다. 특히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핫한 싱글몰트의 경우 130개 증류소마다, 증류소 내에서도 위스키마다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나만의 취향을 존중하고 이를 통해 본인을 드러내길 원하는 MZ세대에게 호소력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며 “이렇듯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위스키를 하이볼로 즐기는 것도 어떻게 보면 위스키의 매력을 좀 더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싶은 니즈가 투영된 결과라고 본다. 그날의 무드나 상황에 따라 위스키의 종류별로 맛보거나, 하이볼로 첨가하고 싶은 음료를 달리 조합해 입맛을 맞춰가는 경험 자체가 위스키의 매력인 셈”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고도주의 독주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위스키가 하이볼을 통해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MZ세대의 가치 소비 성향으로 위스키 자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호재를 맞이하고 있는 위스키업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아영FBC는 ‘라벨5’ 하이볼 패키지를 선보이고, 트랜스베버리지는 ‘더 글렌그란트 팝업스토어’를 오픈해 자사 하이볼을 소개하는 등, 위스키업계 자체의 노력도 이어져 위스키 열풍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복합문화공간 지향하는 호텔
하이볼의 스토리텔링으로 문화예술 접목 시도도
한편 국내에서 하이볼을 즐길 수 있었던 곳은 주로 이자카야였으나 하이볼이 대중화된 요즘, 최근에는 일반음식점의 메뉴판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호텔에서도 하이볼 프로모션을 출시했다.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타임스퀘어 호텔은 새롭게 출시된 하이볼 상품을 포함한 봄 패키지 ‘CHILL & VIBE’ 패키지를 선보였다. 모모바에서 제공하는 하이볼은 오리지널, 얼그레이, 피치, 총 3종으로, 프랑스에서 스카 위스키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스카치위스키 ‘라벨5’를 기주로 활용했다.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타임스퀘어 식음팀 이중훈 팀장은 “라벨5는 스코틀랜드 위스키 산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몰트위스키 산지인 스페인 사이드 지역의 몰트 원액과 하이랜드 지역의 그레인위스키를 블렌딩해 생산, 피트감이 가미된 부드러운 맛과 향이 일품이다. 또한 섬세한 과일과 카라멜 오크, 고소한 피트 아로마를 시작으로 산도와 당도 균형을 이룬 바닐라, 과일향과 스모키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하며 “기본 오리지널 하이볼은 라벨5의 표준 레시피와 같지만 얼그레이와 피치 하이볼의 경우 직접 개발했다. 이번 프로모션은 모모바가 새롭게 리뉴얼함에 따라 그리너리 테마로 돌아온 모모바와 함께 청량한 느낌을 주는 것이 포인트였는데, 가볍게 한 잔 마시기 좋은 메뉴로 판매량이 늘고 있다. 얼그레이와 피치 하이볼의 경우에는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전했다.
호텔에서 고가의 위스키 패키지를 선보이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하이볼 패키지를 론칭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위스키 열풍에 이어 하이볼의 매력이 호텔에게도 조금씩 호소력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배 앰배서더는 “위스키는 기본적으로 담고 있는 스토리가 많은 술이기 때문에 그동안 호텔과 컬래버레이션했던 사례들을 보면 문화예술, 패션, 음악과 같은 콘텐츠와 접목되는 일이 많다. 글렌피딕도 오랜 기간 동안 예술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해왔던 터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고 회상하며 “그런 의미에서 하이볼도 위스키만큼 어떻게 조합하고 이야기를 담느냐에 따라 스토리텔링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호텔인 만큼 문화예술 콘텐츠를 하이볼에 접목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주류 시장에서 위스키의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 직접 체감하고 있는 수요는 어떤가?
국내에서 위스키가 그 어느 때보다도 호황인 시기지 않을까 싶다. 최근 위스키 품귀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글렌피딕도 예외는 없다(웃음). 입점업체에서 공급 문의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업장을 통해서도 위스키 열풍을 실감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위스키에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이 혼술, 홈술, 간단한 회식 문화 등의 사회적 분위기와 개성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MZ세대의 가치, 취향 소비가 위스키의 재발견으로 이어진 듯하다. 국내 주류 시장은 여러 가지 트렌드를 겪어왔는데, 술을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 아닌, 음미하기 위한 음식 중 하나로 여기는 문화로 완전히 접어 들었다고 생각한다. 물꼬는 와인이 텄고, 다음으로 크래프트 비어가 이어받은 바통을 이제 위스키가 건네받은 모양새다.
하이볼 트렌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하이볼은 칵테일 중에서도 제조에 어려움이 없고, 우리가 주로 접하는 음식과도 무난하게 잘 맞는 주류라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된 것 같다. 게다가 위스키와 비교했을 때 가격도 합리적이기 때문에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도 하다. 최근에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성장세도 무서운 터라 업장뿐만 아니라 가내 소비도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도 고무적인 부분이다. 이러한 인기를 증명하듯 최근에는 위스키 베이스가 아닌 하이볼도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데, 꼭 정석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누구나 쉽게, 자신의 취향대로 즐기는 것이야말로 하이볼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글렌피딕에서 제안하는 하이볼에 대해 소개해달라.
글렌피딕의 하이볼은 12년을 기주로 추천하고 있다. 글렌피딕 12년의 시그니처 풍미가 하이볼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청사과가 연상되는 시원하면서도 복합적인 향, 톡 쏘면서도 달달한 맛이 특징인 글렌피딕 12년은 신선한 서양배와 은은한 오크의 풍미가 어우러진 위스키다. 때문에 하이볼로 마시면 그 청량한 향과 맛이 더 가까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하이볼 제조 시 스탠더드급 위스키를 활용하다보니 청량한 맛은 끌어올리되 쓴맛은 감추고자 레몬이나 라임을 첨가하는데, 글렌피딕 12년은 얼음과 탄산수만으로도 고급스러운 하이볼을 즐길 수 있어 추천한다.
나만의 위스키, 하이볼 취향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방법을 조언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위스키가 주류 트렌드로 떠오르며 입문하기 좋은 위스키, 가성비 좋은 위스키 등 관련한 각종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는데, 본인의 취향을 찾고 싶다면 편견을 갖지 않고 많이 마셔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싱글몰트가 매력적인 이유는 다양성에 있다. 130개가 넘는 증류소들의 위스키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매력을 찾아가는 것이 말 그대로 ‘여행(Journey)’인 것이다. 글렌피딕에서 진행하는 테이스팅 클래스도 ‘몰트 저니’인 만큼 개방적이고 열린 자세로 위스키를 오롯이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스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테이스팅(Tasting)’과 ‘드링킹(Drinking)’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하이볼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하이볼은 위스키를 취향껏 편하게 마시고자 함이 목적이기 때문에 본인의 기호에 맞는 조합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를 음미했으면 좋겠다. 다만 하이볼의 경우, 업장이나 바에서 제대로 된 맛을 경험해본 다음에 집에서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보기엔 간단히 보여도 얼음의 상태로 맛이 달라질 수도 있고, 제조 과정에서 탄산이 날라가 하이볼만의 매력이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위스키와 하이볼의 비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위스키는 이제 시작인 듯 보인다. 와인이 그동안 주류 소비자들의 취향과 문화를 다변화시켰다면 위스키가 그 흐름을 잇게 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까진 위스키가 럭셔리, 프리미엄의 소구력이 높은 상황이지만 현재 글렌피딕의 라인이 10만 원대 초반에서 수천 만 원대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것처럼 위스키 열풍으로 취향을 찾아 가고 있는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어느 순간이 되면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마시고 취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위스키를 찾고 즐기는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글렌피딕도 위스키 문화의 중심에 설 계획이다.
나에게만큼은 나도 바텐더!
믹솔로지 트렌드로 나만의 술 찾는 소비자들
하이볼은 트렌드를 지나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류 트렌드가 집약돼 있는 편의점에서 하이볼의 매출은 단숨에 수제맥주와 와인을 따라 잡았으며, 제품 라인 또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위스키뿐만 아니라 소주나 보드카, 진 등의 기주를 활용하기도 하고, 탄산수를 대체하는 음료도 다양해졌다. 이제 하이볼은 그 자체로 ‘도수가 높은 기주에 탄산음료를 섞어 마시는’ 술을 통칭하는 대명사가 된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확장된 ‘믹솔로지(Mixology)’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믹솔로지는 ‘섞다(Mix)’와 ‘기술(Technology)’이 결합된 신조어로 ‘다양한 종류의 술이나 음료를 섞어서 만든 칵테일, 혹은 그 기술’을 뜻한다. 그런데 본래는 바텐딩 용어에 한정돼 있었던 믹솔로지가 홈술, 혼술의 문화로 ‘개인의 취향대로 직접 주류를 만들어가며 즐기는 문화’와 같은 확장된 의미를 띄게 됐다. 개개인에 한해서는 모두가 ‘바텐더’가 된 셈이다.
믹솔로지가 주류업계 트렌드를 주도하게 된 데에는 홈술과 혼술 문화의 확산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다양성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 각종 술과 음료를 조합해 전에 없는 새로운 맛과 향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점이 나만의 독특한 조합을 만들거나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채널에 공유, 인증하는 것이 하나의 밈처럼 MZ세대 사이에서의 화두가 됐으며, 위스키와 럼, 전통주와 같은 주류 판매처가 편의점이나 마트로 확장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국순당 영업본부 홍성찬 차장(이하 홍 차장)은 “하이볼이 믹솔로지 트렌드를 견인한 것은 주류 소비 시장이 확장된 것도 한몫한다. 기존의 국내 주류 문화에서는 술을 즐긴다기보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경향으로 소위 ‘술이 세지 않은’ 이들이 즐길만한 술이 맥주 이외에는 크게 없었다. 그러나 부담없이 가볍게 마실 수 있으면서도 맛까지 좋은 하이볼이 전반적인 주류 문화를 변화시킨 것과 함께 이전까지 소극적이었던 주류 소비층을 끌어들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며 “믹솔로지 트렌드는 주류의 확장성을 무한대로 넓히기 때문에 하이볼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획기적인 주류의 향연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볼도 주류 자체의 맛은 물론 음식과의 조화도 고려하면서 자리를 빛낼 수 있는 아이템으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이볼, 가장 핫한 믹솔로지의 산물이 되다
하이볼이 쏘아 올린 믹솔로지 트렌드으로 흥미로운 조합의 주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특히 번거롭게 제조할 필요 없이 바로 마실 수 있는 RTD 상품의 공격적인 출시가 이어지는 중이다. 포문을 연 CU는 지난해 11월, 브랜드 ‘어프어프’와 협업해 스카치위스키에 레몬 토닉, 홍차를 믹싱한 2가지 맛의 RTD 하이볼을 선보였으며, GS25는 올해 2월, 일본식 튀김 오마카세 ‘쿠시마사’와의 컬래버를 통해 출시한 하이볼이 2주 만에 10만 캔이라는 시장성을 확인한 뒤 인기 도넛 브랜드 ‘노티드’와 함께 하이볼을 제작, 4월까지 하이볼 제품만 총 9종을 론칭했다.
인기가 한풀 꺾여가고 있는 수제맥주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대안으로도 하이볼이 떠오르고 있다. 카브루는 피나콜라다 칵테일을 모티브로 만든 RTD 하이볼 ‘이지 피나콜라다 하이볼’을, 세븐브로이는 아트페어 솔드아웃 작가로 주목받는 청신의 작품을 패키지로 활용해 ‘블랙 네온 하이볼 레몬 토닉’으로 주류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섰다.
한편 전통주업계에서는 최초로 국순당이 백세주 하이볼 ‘조선하이볼’로 백세주의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2020년 12월, 한정판 세트로 출시돼 일부 유통매장에서만 소비자에게 닿았던 조선하이볼이 재출시된 것. 홍 차장은 “조선하이볼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오로지 백세주에 있었다. 국순당의 대표 브랜드이자 국내 전통주 시장을 리드해온 백세주가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세대에 대한 호소력이 약해지고, 약재 향이라든지 패키지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백세주 본연의 매력은 잃지 않으면서 보다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며 “현재의 하이볼 유행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통주도 칵테일화 해보자는 결론으로 탄생한 백세주 칵테일이 조선하이볼이 됐다. 조선하이볼의 특징은 일반 하이볼과 다르게 기주가 토닉워터보다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는 13도의 백세주 도수가 위스키보다 낮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백세주가 가지고 있는 약재의 은은한 느낌은 살리면서도 트렌디한 스타일로 즐길 수 있는 적정 지점을 찾은 결과”라고 전했다.
카멜레온 같은 하이볼만의 매력
변주 통해 다양성의 하이볼 문화 추구해야
이처럼 모든 하이볼의 탄생 배경에는 기주가 있다. 즉 하이볼 믹솔로지의 기본은 기주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되 다양한 음료와의 조합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혹자는 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하이볼만이 정통성이 있다고 하지만, 그도 나라별로 음용법과 레시피가 가지각색이다. 이에 정석을 크게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으로 앞으로 하이볼은 여러 변주를 통해 다채로운 맛과 향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하이볼을 정의한 사전들을 찾아보면 좁은 의미의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위스키 앤 소다’를 말하며, 넓은 의미로서는 탄산이 술보다 많이 들어가 있는 모든 칵테일이라고 표현하는 추세다.
마쯔모토 대표는 “하이볼이 이미 주류 문화에 스며들어 있는 일본에는 흔히 아는 가쿠 하이볼, 야마자키 하이볼, 히비키 하이볼과 같이 위스키 종류별 하이볼도 있지만, 위스키에 탄산수가 아닌 콜라를 섞은 하이볼은 ‘코쿠하이’라고 부른다. 우롱차에 소주를 섞은 우롱하이라든지, 소츄(소주)를 기주로 한 츄하이도 있다. 결국 일본 하이볼의 핵심은 ‘노도고시(のど越し)’, 목넘김”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변주 아래 최근 일본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하이볼이 ‘타루하이’가 있다. ‘타루(樽)’는 일본어로 ‘술, 간장 등을 넣어두는 나무 통’을 의미하는데 타루하이의 타루는 맥주 서버에 연결하는 케그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루하이가 여타의 하이볼과 다른 점은 생맥주처럼 케그(타루)에 보드카 베이스의 하이볼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살아있는 보드카 하이볼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이 타루하이의 특징이다.
아직 한국 수입규정으로 레몬, 복숭아, 자몽 등 함께 곁들일 수 있는 플레이버까진 들어오진 못했지만 플레인만으로도 여타의 하이볼과 또 다른 타루하이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의 경우 진저 하이볼, 유자 하이볼 등 풍미를 위해 섞이는 재료를 더욱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한편, 아직 맛과 향의 베리에이션은 넓지 않은 상황이다. 다양한 플레이버의 활용까지 이어지면 더욱 다채로운 하이볼의 세계를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로 또 같이, 하이볼로 넓어지는 주류 시장
업장 수익성 개선에도 효자 아이템으로 등극해
하이볼을 통해 빛을 발하지 못했던 술들의 재발견이 이뤄지기도 한다. 베이스가 되는 술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홍 차장은 “조선하이볼은 패키지 출시 이전에 2020년 초부터 업장을 중심으로 한 바이럴 마케팅이 선행됐었다. 초기의 목적대로 백세주를 보다 다양한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백세주 취급 업장에서 토닉워터, 레몬을 같이 제안하고 판매했던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업장에서 이를 경험한 이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바이럴이 됐고, 제품화 요구가 이어져 한시적으로 기획세트를 선보인 것”이라고 설명하며 “조선하이볼이라는 브랜드명도 현장에서 지어진 애칭에서 차용했다.
기획하기로는 ‘백세주 하이볼’이나 ‘백세주 온더락’이 리스트에 있었는데 오히려 ‘조선’이라는 표현으로 호기심 자극이 되는 듯하다. 실제로 긍정적인 후기들이 많지만 기획자로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조선하이볼을 통해 백세주에 관심이 생겼다는 이야기들이다. 마시고 보면 조선하이볼은 어떤 기주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백세주의 재발견을 조선하이볼을 통해 실현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위스키를 하이볼로 즐기듯, 반대로 하이볼이 기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순환의 구조가 파생됐다는 것. 그동안 일부 품목에만 치중돼 있었던 주류 시장의 지평을 하이볼이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그는 주류업체뿐만 아니라 업장의 수익성을 개선에에도 하이볼이 효자 아이템으로 떠올랐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보통 하이볼은 스타터로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업장에서 2~3잔씩 세트로 판매하는 프로모션이 인기인데 마시다보면 대개 추가 주문으로 이어진다. 업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백세주에 대한 추가 수요도 생긴다는 후문”이라고 귀띔하며 “하이볼은 업장에 따라 굉장히 여러 가지 옵션 선택이 가능한 아이템이다. 기주 주종에 따라, 탄산과 가니시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업장의 차별화 포인트를 담은 시그니처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마진 구조도 좋기 때문에 효자 아이템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위스키에서 파생된 하이볼은 믹솔로지 트렌드와 함께 새로운 주류 시장의 패러다임을 개척하고 있다. 당분간 가볍게 즐기는 음주 문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적극적인 주류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업체들의 기획과 마케팅이 활발한 만큼 앞으로 변주될 하이볼의 선율이 기대된다.
2004년부터 이자카야 동아리를 통해 하이볼 문화를 소개해왔다. 오픈 배경과 함께 동아리가 하이볼 맛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26년간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시작한 것 치고는 늦은 나이에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처음부터 사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한국에 적응하다보니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손맛을 발휘해 고향인 오사카 본토 스타일의 이자카야 동아리를 오픈하게 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식사와 술을 함께하는 이자카야 개념이 한국에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일본 주재원이나 일본 대사관 직원 등 일본 고객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이볼을 서비스하게 된 것은 2013년 당시 산토리 대리점에서 한국에 가쿠빈을 소개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이볼이야 일본, 그리고 오사카에서도 즐기는 술이었기 때문에 동아리 메뉴와 잘 어울리기도 했고, 스트레이트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에게도 새로운 시도가 될 듯해 하이볼을 주류 메뉴에 포함하게 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금의 믹솔로지 스타일에 대한 니즈가 많지 않았을텐데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일본에는 술에 물을 타는 미즈와리나 탄산수를 넣는 소다와리가 일반적이지만 한국은 스트레이트를 즐기기 때문에 밍밍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위스키를 더 넣어달라든가, 얼음을 빼달라는 등의 요구가 많았다. 하지만 하이볼을 처음 소개하는데다 산토리에서 여러 연구를 끝에 전수해준 황금비율이 있었던 터라 정통성을 잃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이볼을 새롭게 알아가는 이들에게 하이볼이란 술의 기준을 세운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알음알음 하이볼을 알려오면서 하이볼 맛집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2018년부터 빔산토리코리아가 본격적으로 한국 마케팅을 시작, 동아리가 빔산토리코리아가 지정하는 하이볼 명가로 인정받으면서 하이볼을 찾는 고객들이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중이다.
국내에서 하이볼 시장의 성장 과정을 지켜봐오면서 체감한 주류 소비 변화는 어떠한가?
기존의 한국 주류 소비는 소주와 맥주, 막걸리 정도에 국한돼 있었다면 특히 코로나19 기간 동안 한국만의 스타일을 가진 술들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위스키까지 생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점점 한국에도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술의 종류가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초기에 동아리를 정착시키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한국 손님들의 음주 문화였다. 하지만 요새는 위스키보다 하이볼을 찾고, 위스키 이외 다른 술들도 취하기보다 천천히 음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낀다. 게다가 최근에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히비키나 야마자키와 같은 산토리 위스키들이 동아리에는 아직까지 남아있어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들도 많다. 확실히 자신의 취향에 따라 활발히 탐색하고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적극적인 주류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하이볼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소개하고 있나?
하이볼은 음식과 같이 즐기는 술이다. 탄산감이 뛰어나기 때문에 기름기 있는 음식과 즐겼을 때 특히 궁합이 좋다. 의외로 스키야키와도 맞는다. 사실 일본식 하이볼은 달지 않고 드라이한 맛이라 질리지 않으며 오래 다양한 음식과 조합이 가능하다.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어렵달까?(웃음)
또한 하이볼은 위스키 베이스에 의해 맛이 다르지만 첨가된 음료나 플레이버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술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하이볼을 경험해보고 본인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한국에 아직 많은 플레이버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 자체적 생산되거나 일본에서 수입되는 플레이버가 있다면 현지 스타일의 다양한 하이볼들을 소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하이볼의 비전에 대해 전망한다면?
하이볼 도입 초기에는 빔산토리의 역할이 주요, 그들의 마케팅과 홍보에만 지원을 받았다면 이제는 이외 위스키업체는 물론, 다양한 주류와 유통업계, 업장에서도 하이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한 것도 업계의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주류산업 전반에서 하이볼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므로 시너지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 이제는 하이볼이 트렌드가 아닌 문화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동아리도 동아리만의 하이볼 문화를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