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대자연 속에 있는 집을 본다면 그 곳에 한 번 지내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집을 ‘짓는’ 과정 자체가 자연에 반하는 과정이 대부분이며, 그곳에 사는 것 역시 전기며 수도, 오수 같은 문제들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의 일부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집 자체를 오롯이 자연 속에 놓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 집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100% 만들어 쓰고, 정화 장치에 의해 오수 배수도 발생하지 않아 CO2 배출량이 제로라면? 이는 정말 바람직한 미래형 주거 형태가 아닐까? 이 바람직한 일이 일본에서 이미 시작됐다.
사진 출처_ https://weazer.jp
웨저의 첫 번째 호텔
‘주식회사 ARTH’가 개발한 거주형 모듈 ‘웨저(WEAZER)’. 웨저는 20fit 컨테이너(폭 2.33×길이 5.867m)의 유닛 6대로 구성된 모듈 하우스다. 전체 크기 중에서 각종 설비를 제외한 실거주 부분의 전용 면적은 약 52㎡며, 그 외 부분에는 태양광발전시스템, 축전지, 빗물을 멸균해 생활 용수로 이용하는 여과 정수 장치를 갖췄다. 그야말로 무인도처럼 인프라 설비가 없어도, 에너지와 물이 100% 자급자족 가능한 궁극적인 ECO 하우스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획기적인 공간을 개발한 주식회사 ARTH는 2022년 12월 10일 시즈오카현(静岡県) 니시이즈(西伊豆)에 퍼스트 모델로 빌라형 호텔을 오픈했다. 호텔 이름은 ‘웨저 니시이즈(西伊豆)’. 스루가만(駿河湾)이 보이는 경사지에 등장한 약 70㎡ 규모의 첫 빌라형 호텔이다. ‘웨저 니시이즈’는 언뜻 보면 평범한 별장처럼 보이지만, 6개의 모듈로 합쳐진 이 공간에는 조명, 공기정화, 부엌, 화장실 등 공간 내에 사용되는 전기와 물을 모두 지붕에서 모은 빗물과 태양열로 공급되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다면 웨저는 어떤 방식으로 전기와 물을 100% 자급자족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먼저 웨저는 집 외벽에 미국 테슬라사가 만든 축전기 3대를 설치해 뒀다. 축전기 1대로만으로도 호텔에서 하루에 사용하는 전기를 다 모아둘 수 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여분으로 2대를 더 두어서 항상 전기를 비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파나소닉과 개발한 독자적인 전력 최적화 시스템을 활용해 최소한의 전기로 집안의 모든 설비에 공급할 수 있는 운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기 외에 물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빗물을 활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즉, 빗물을 모아서 정수시스템을 활용, 물을 정화해 샤워, 세면, 그리고 부엌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사용된 물은 다시 정수해서 샤워, 세면을 위해 재사용되는데, 웨저 자체적으로 개발한 특수한 탱크를 활용해 물을 지속적으로 정화해서 순환시키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웨저는 이 이외에 또 다른 별도의 두 번째 정수 시스템을 뒀다. 제2정수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이 정수 탱크는 화장실에서 나가는 물을 정화해서 다시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물로 대체하는 시스템을 구현했다. 상수와 하수로 나눈 2개의 정수 시스템을 둠으로써 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에너지 활용 방식을 통해 웨저는 어떤 곳이든지 빗물과 태양만 있으면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호텔을 구현한 것이다.
웅대한 스루가만을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 이 호텔에 도착하면 전속 컨시어지가 고객을 맞이해 오션뷰 노천탕 등을 갖춘 특별한 프라이빗 공간에서 최고의 환대를 제공한다. 저녁 식사는 ARTH가 오픈한 ‘LOQUAT 니시이즈’까지 차로 이동해 지역에서 난 재료로 만든 신선한 음식을 제공한다.
지리적 환경에 최적화된 하우스
ARTH 타카노(高野) 대표는 미래의 집을 목표로 만들어진 웨저가 언뜻 보면 공장에서 만든 모듈을 그냥 합쳐서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타카노 대표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에너지 시뮬레이션 기술을 이용해 웨저를 설치할 지점의 과거 20년분의 기상 데이터를 해석해 에너지의 완전 자급에 필요한 태양광 패널이나 축전지, 단열재 등 각 설비의 사양을 도출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만약 일조시간이 짧은 지역이면 태양광 패널을 증설하거나, 단열재를 늘려 에너지 절약을 도모하는 식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면서도 공을 들이는 부분 중의 하나는 에너지나 물을 자급할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는 과정인데, 설치하는 장소가 바뀌면 일사량도, 기온도 바뀌고, 습도도 강우량도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지리적 환경을 고려해 어디서나 안심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웨저의 강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웨저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대규모의 개발 공사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공기가 짧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최신의 에코 기술을 집합시킨 ‘오프 그리드(Off-Grid)형’의 모듈 하우스라고 할 수 있다.
호텔 ‘웨저 니시이즈’의 활용 가능성
‘웨저 니시이즈’로 이름 붙여진 세계 최초의 오프그리드 호텔은 지역의 고령화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동네를 칭하는 ‘한계마을’로 불리는 지구에 세워졌다. 실제로 호텔이 만들어진 마을에는 현재 4세대만이 남아있고 나머지는 전부 빈집으로 언제 마을이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바로 이곳에 웨저의 첫 호텔을 선보임으로써 ARTH의 타카노 대표는 지역 재생의 핵으로 삼고자 했다.
그렇다면 웨저는 어떻게 사라져 가는 마을의 재생을 도모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타카노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웨저 호텔을 축으로 한 전략은 지역 전체에 웨저와 EV의 상호 에너지 매니지먼트를 실시해, 마을 전체의 오프 그리드화, 제로 에미션화를 목표로 하는 ‘웨저 빌리지’의 구상이다. 실제로, 호텔 웨저 니시이즈는 숙박기간 중에 이용할 수 있는 모빌리티로서 최신 전기자동차 충전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웨저 니시이즈는 하우스와 전기자동차의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활용하는 형태를 마을 전체에 확대해 나감으로써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의 커뮤니티를 도모한다는 전략이다. 에너지 공급뿐만 아니라 지역에 어떤 오수도 배출하지 않음으로 해서 마을 자체를 청정지역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다음의 4가지 가치의 실현을 도모한다. 첫째로는 ‘어느 곳이나 둔다’는 뜻의 ‘Place it Anywhere’를 들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전기, 가스, 수도의 인프라가 없는 장소에서도 설치가 가능하도록 만듦으로써 ‘두는 것만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고 체재하는 것이 가능한 공간을 구현해냈다.
둘째로는 Zero Emission 전략 즉 CO2 배출량 제로를 도모하는 전략이다. 자연의 힘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CO2의 배출량은 제로. 특수한 정화 장치에 의해, 오수 배수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설비 역시 환경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셋째로는 긴급 재산시의 주거 공간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재해 등으로 인해 정전이나 단수가 발생해도 웨저라면 문제없다. 즉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의 경우 긴급시 피난 장소로 활약할 수 있다. 넷째로는 자유로운 커스터마이즈의 가능성이다. 웨저의 형태와 사이즈는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진 건축형태다.
이를 통해 웨저는 단순히 호텔로서의 성격을 넘어서 새로운 주거공간으로서 개발될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저출산 고령화가 점점 더 진행돼 일자리가 부족하면 인프라 정비가 구석구석까지 닿지 않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럴 경우, ‘웨저 빌리지’의 구상이 실현되면 기존 인프라의 유지와 수리에 걸리는 막대한 비용을 억제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의 일부 지자체는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기존의 도시계획의 재정비를 도모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웨저와 같은 오프 그리드 형의 하우스가 확대되면 물도 에너지도 자급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이 부락을 이뤄 한 마을을 구성해 사람들의 생활이 가능한 주거 인프라를 새롭게 창출해 나갈 수 있다. 그야말로 인프라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넓은 지구 아래에서 인프라가 발달한 한정된 장소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 공간을 무한대로 설정해서 사는, 그런 삶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실제로, 타카노 대표는 웨저의 개발과 확장을 지금 일본 정부와 함께 우간다에서 추진하고 있다.
타카노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물과 각종 인프라 설비가 부족한 지역에 웨저의 건설을 통해,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서 인프라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주거 공간을 만들어 내는 지역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어쩌면 ‘웨저’의 모델은 인류가 만든 마을이라는 것을 새롭게 정의하는 하나의 중요한 실험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