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켜면 유명 셰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주방장’이라는 이름 대신 ‘셰프’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며 자신들의 실력을 뽐낸다. 셰프들은 자신만의 노하우, 레시피(조리 방법)를 아낌없이 방송에 선보이고 시청자들은 이를 보고 열광한다.
이렇게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개하는 셰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셰프들은 그렇지 않다. 자신만의 레시피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한다. 수많은 실패를 딛고 찾아낸 자신만의 영업비밀이자 노하우기 때문이다.
나만의 레시피, 우리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오랫동안 개발한 나만의 레시피를 다른 사람이 베껴 쓰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많은 셰프들, 레스토랑 오너들이 한번쯤 고민해 봤을 문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혼자 꽁꽁 숨겨 놓는 것이다. “며느리도 몰라~”라고 눙치는 노포집 주인 할머니의 말은 여기서 비롯됐다. 그러다 보니 간혹 주방에서 몰래 비법소스를 훔쳐서 달아나는 경우도 있고,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맛이 변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꽁꽁 숨겨 놓는 방법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을 통해서다. 이 법에 따르면,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비밀로 유지된 기술상 정보의 경우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다. 실제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레스토랑에 내부관리계획, 취업규칙, 보안규정 등 상세한 관리규정을 두고, 이를 직원들에게 알리며, 보안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좋다. 영업비밀 보호 각서를 미리 받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또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미리 특정기관에 등록하는 방법도 있다(영업비밀 원본증명 제도). 물론 소규모 레스토랑에서는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말이다.
법적으로 나만의 레시피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특허를 받는 것이다. 나만의 레시피 또는 이 레시피로 만들어진 음식도 특허의 대상이 된다. 일단 특허를 받으면 다른 사람이 나의 레시피를 카피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을 수 있다. 보호기간은 20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물론 아무 레시피나 특허를 받을 수는 없다. 첫째, 기존 레시피와 달라야 하고, 알려지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이를 ‘신규성’이라 한다). 기존 레시피와 다르다는 것은 조리 과정(시간, 온도 등)이 다르거나, 새로운 재료를 넣었다거나, 배합비를 바꾸는 경우 등을 말한다. 둘째, 이러한 레시피의 변경을 다른 셰프는 쉽게 생각할 수 없어야 한다(이를 ‘진보성’이라 한다). 새로운 레시피를 사용함으로써 조리과정이 간단해지거나 효율적이 되거나 재료비를 줄일 수 있거나, 아니면 이러한 레시피로 조리된 음식이 맛있거나 영양이 풍부하다는 등의 장점이 있으면 통상 ‘진보성이 있다’고 본다. 여기서 특히 유의할 점은 레시피가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레시피라도 이미 알려져 있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이미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던 음식에 사용된 레시피는 특허 받을 수 없다. 다만 예외적으로 손님들에게 제공된 지 1년을 넘지 않았으면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레시피의 공개 수위를 잘 조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허란 것이 원래 발명을 공개하는 대가로 독점권을 주는 것이니만큼 레시피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핵심 레시피를 그대로 공개하면 제3자가 살짝 바꿔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많은 셰프들이 핵심 레시피 노출을 꺼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핵심 레시피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특허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물론 있다. 예를 들면 간장 10ml, 식초 4ml를 넣어 새로운 소스를 개발한 경우라고 하자. 이 경우 특허 명세서는 소스에 사용되는 재료의 함량으로 간장 5ml~20ml, 식초 2ml~7ml로 표시하고, 실제 제조 예에도 간장 7ml, 식초 3ml로 기재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효과 차이가 크지 않다(예를 들면, 어느 정도 비슷한 맛을 내는 경우)면 말이다. 이 경우 특허는 받으면서도 핵심 레시피는 숨길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특허출원을 한다고 반드시 특허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특허도 못 받고 발명 내용만 공개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될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특허출원은 출원한 날로부터 18개월이 경과하면 자동적으로 공개되므로 원칙적으로 공개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개되기 전에 빨리 심사를 받은 후(우선심사 신청), 특허를 받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공개되기 전 조속히 출원을 취하하는 것이다. 이 경우 레시피 공개를 막을 수 있다.
특허를 받은 자는 특허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갖게 된다. 만약 자신의 레시피에 대해 특허권을 가질 경우, 다른 셰프가 자신의 동의 없이 유사한 레시피를 사용하는 경우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경고장을 보낼 수 있다. 또한 특별한 레시피의 경우 다른 요리사나 다른 레스토랑에 라이선스를 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 또한 특허를 받게 됨으로써 마케팅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적어도 전에 없었던 새로운 레시피라는 점이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유명 레스토랑인 Vegas Strip Steak는 스테이크 제조방법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고, 이를 홍보해, 고객들의 기대심리를 높인 바 있다. 멀리 미국에 갈 것도 없이 우리도 레스토랑이나 음식점에 특허증이 걸려 있으면 한번 더 쳐다보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모 호텔 레스토랑에서 호텔 최초로 로스트 치킨의 일종인 황제치킨의 조리 방법을 특허출원했다고 한다. 친환경 무항생제 닭을 사용해 초정리 천연 탄산수 염지 기법으로 만든 치킨이라고 한다. 차별화 전략으로서의 레시피 특허의 활용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