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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7 (토)

호텔&리조트

[남재철의 의전 노하우] 쿠르트 발트하임 VIP 서비스

완벽한 서비스를 망친 5월의 날씨

<쿠르트 발트하임>


필자가 근무했던 호텔이 전격적으로 개관했던 1979년, 그 해 투숙했던 최고의 VIP는 4대 유엔 사무총장 쿠르트 발트하임(Kurt Waldheim, 1918~2007)이다. 빈국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발트하임은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비서, 캐나다 대사, 유엔 대사, 외무부 장관을 거쳐 UN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초고속 승진의 입지전적 인물로 유명하다. 게다가 UN사무총장 경력을 바탕으로 1986년 오스트리아 국민당 대선후보에 선출됐고 54%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사무총장이 방한했을 당시 국제 정세는 미국과 중국의 국교 수립, 팔레비 이란 국왕의 망명, 소련과 중국의 상호원조조약 파기 등으로 예측이 불가했다. 게다가 남북 간의 관계도 불안한 상황에서 쿠르트 발트하임 UN사무총장의 한국 방문이 결정됐고, 평양을 먼저 방문한 후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어서 정부 당국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호텔은 개관 후 불과 한 달 정도 지나 UN사무총장의 숙소로 결정된 터라 모든 면에서 경험이 미숙한 상태였고, 그 긴장감은 호텔 사원들에게 전염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IP 중 VIP인 발트하임 UN사무총장을 맞이할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됐다. 호텔은 그 나라의 얼굴이나 다름없으므로 우리 호텔이 최고의 품격, 최선의 서비스를 베푼다면 그것이 곧 한국 국민의 격조와 친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터였다. 뿐만 아니라 평양을 먼저 방문하고 오는 발트하임 사무총장에게 평양보다 서울에서의 체류가 훨씬 편안하고 쾌적하게 느껴진다면 한국이 북한보다 비교 우위에 서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당시 직원들은 ‘한국의 얼굴’이라고 내세워도 좋을 만큼 전통문화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우리 호텔에서 북한에서는 꿈꾸지 못했던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노라는 포부로, 최고 VIP인 UN사무총장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서실, 경비실, 의전실, 의무실 등이 두루 완벽하게 꾸며졌고 호텔의 어디를 가나 화려하고 품위를 느낄 수 있도록 치장됐다. 현관에서부터 엘리베이터 홀까지 국빈 예우 때 쓰이는 붉은 카펫이 깔렸다. 사무총장 일행이 로비에 들어서면 ‘UN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울려 퍼질 예정이었다.


드디어 1979년 5월 4일. 이날은 영국총선에서 보수당이 압승을 거두고 마가렛 대처 당수가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자 수상으로 취임한 날이었다. 그리고 국제 평화의 대표자 쿠르트 발트하임 UN사무총장이 우리 호텔에 첫발을 들여놓는 날이기도 했다. 아리따운 한복 차림의 여직원이 걸어준 꽃다발을 걸고 프레지덴셜 스위트로 들어선 발트하임 총장 부처는 무척 흡족해 하는 듯 했다. 부인도 가구와 도자기 등을 어루만지며 감탄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 꽤 날카로운 발트하임 총장은 의외로 말이 없고 속마음을 잘 내색하지 않는 편이었다. 총장이 도착하기 전 미리 그의 식성과 음식 습관에 관한 리스트를 참고해 준비할 만큼 완벽하게 대비를 했던 때문인지, 발트하임 총장은 2박 3일의 체류기간 동안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 생선요리를 좋아한다는 발트하임을 위해 특별히 생선요리 전문 요리사를 초빙했고 소식주의자인 부인을 위해선 음식을 조금씩 자주 제공하는 등 이들 내외가 일본 방문 때 묵었던 호텔로부터 제공받은 식음기호 자료가 유용하게 활용됐다. 그래서인지 발트하임 내외는 음식에 대해선 꽤나 만족하는 듯 보였다.


<오스트리아 카를성당>


아카시아 향기가 무르익는 계절인 5월은 어떤 면에선 완벽한 서비스를 하기 곤란한 계절이다. 실내온도 조절에 애를 먹기 때문이다. 더운 지방에서 온 손님들은 좀 춥다고 히터를 켜주길 원하는 반면, 추운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덥다며 은근히 에어컨을 틀어주길 바라는 등 사람마다 느끼는 쾌적한 실내 기온이 달라, 이에 대한 고객의 불편이 유난히 많아질 수밖에 없다. 1979년의 5월은 봄 날씨 답지 않게 초여름에 가까운 고온현상이 계속됐다. 호텔직원들은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곤두세워 쿠르트 발트하임 UN사무총장 부처에게 완벽에 가까운 서비스를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발트하임 총장은 한국을 떠나기 직전 정부 고위층과 대화를 나눴는데, 대화 중에 우리 호텔 얘기가 나왔다. 발트하임 총장은 우리 호텔을 높게 평가한다고 하면서 다만 한 가지, “조금 더운 듯 했다.”며 실내온도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던 것. 발트하임 총장의 말에 호텔 직원들은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감을 느꼈다. 그의 한 마디는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별도의 냉난방 시설을 설치할 만큼 위력을 발휘했다. 마침 미국 카터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결정되던 때, 프레지덴셜 스위트가 중앙감시체제에서 자유자재로 온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최신 설비를 갖추게 됐고 이는 우리 호텔이 미대통령 일행의 공식 체류호텔로 선정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호텔 직원들에게 긴장의 시간이었던 UN사무총장의 방한 일정은 모두 순조롭게 끝났다. 사무총장 일행이 호텔을 떠날 때 우리 호텔은 ‘이용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자개보석함을 선물했다. 발트하임 UN사무총장은 1982년 11월 8일 다시 한 번 우리 호텔을 찾았는데, 첫 번째 방한 때 친절을 잊지 못해 한국 방문 때는 으레 우리 호텔을 숙소로 정하기로 했다는 것. 그는 우리 호텔에서 1박 2일의 두 번째 방한을 일정을 마친 뒤 “호텔 측의 친절한 환대에 매우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남재철
(주)아이앤비컨설팅 대표/대림대 교수

남재철 대표는 20년 간 국내 최고 품격을 자랑하는 호스피탤리티 서비스업에서 경험한 VIP 환대서비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품격 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정부 및 공공기관 기업체 대상으로 행사 및 VIP 의전서비스 전문 대한민국 1호 강사로 왕성한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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