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번은 꼭 밀가루를 섭취해야한다.”며, 밀가루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쏟았던 소비자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소화 장애 및 비만을 불러일으킨다며, 밀가루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진 것.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부터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운동이 펼쳐졌는데, 1970년대에는 “오늘의 메뉴는 쌀보다 영양이 많은 분식을”이라는 표어가 전국에 붙고 ‘분식의 날’이 지정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때 정부는 부족한 쌀 생산량 때문에 국민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밀가루 음식을 권한 것일까. 복숭아/땅콩 알레르기처럼 밀가루에 대한 거부 반응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이는 밀가루 음식을 주식으로 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극히 일부로 나타났으며 국내에는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밀가루에 대한 악성 소문이 기정사실화 된 이유는 무엇일까. 소문 뒤에 가려진 최고의 곡물, 밀가루에 대해 알아보자.
취재 오진희 기자
주목성
밀가루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영받는 제 2의 주식이었다. 피자/빵/파스타 등 서양 음식뿐만 아니라 수제비/전/부침개와 같은 전통 음식에도 사용된다. 특히 온 국민이 사랑하는 국내 밀가루 음식의 대표, ‘라면’은 간편하게 먹기에도 충분하고 심지어 입맛이 떨어진 경우에도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부 국내 소비자들이 밀가루 음식에 대해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밀가루에 대한 악성 소문이 퍼져나갔다. 소문의 내용은 주로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살이 찐다.”, “균형 잡힌 식생활을 위해서는 밀가루를 끊어야 한다.”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음식이 많이 먹으면 더부룩하고, 살이찐다. 유독 밀가루에만 이런 악성 소문들이 나타나는 것은 왜일까.
그건 밀가루에는 ‘글루텐’이 함량돼 있기 때문이다. 밀가루의 주요 단백질 글루텐은 밀가루가 다른 곡물 가루에 비해 물을 균등하게 흡수하고 면이 잘 늘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일부 사람들에게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질병으로는 셀리악 병을 말할 수 있는데, 셀리악병은 만성소화장애증으로 설사/복통/구토 등과 빈혈/성장지연/영양 결핍/간염 등의 증상을 보이는 만성질환이다. 이외에도 밀가루와 관련된 글루텐 불내증/글루텐 과민성 장 증후군 등이 있는데, 셀리악 병과 글루텐 불내증의 경우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는 셀리악 병 등과 같은 질환은 유전병으로 볼 수 있는데, 한국 사람의 유전자 지도에서는 이 유전자를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실 글루텐 자체는 셀리악 병이나 글루텐 민감성을 보유하지 않는 경우라면 지질대사의 문제로 인한 고지혈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식이 요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글루텐은 인간의 면역 시스템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글루텐의 높은 글루타민 함유량 때문이다. 글루타민 보충은 수술 이후 환자의 감염 합병증의 발병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성
쌀, 옥수수와 함께 세계 3대 작물로 불리는 밀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약 1만 5000년 전부터 재배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리스/로마시대에 이르러 밀의 이용은 급격히 확장됐다. 이 시대 사람들은 밀로 만들어진 빵을 신의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국내의 밀가루 음식의 역사를 살펴 볼 때면 ‘혼분식 장려운동’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운동은 1970년대 초 절정을 맞았다. 한국인의 주식(主食)은 쌀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 이전까지 쌀 생산량의 부족으로 쌀밥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일제시대부터 국가가 절미운동(節米運動)의 일환으로 혼식과 분식을 강제하는 식생활개선 정책이 시행됐다. 일제강점기의 절미운동과 혼분식 장려운동은 해방 이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지속됐다. 1950년대에 정부에 의해 절미운동이 실시되다가 1956년부터 미국의 잉여 농산물 원조가 제공되면서 혼분식장려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정부는 1967년부터 1976년까지 매년 혼분식 관련 행정명령을 알리다가 1977년에 들어서 그 행정명령을 해제했다. 그 기간 동안 모든 음식점은 밥에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해 판매해야만 했고, ‘분식의 날’이 지정됐다. 그리고 이 행정명령을 위반한 음식점은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통해 가정에서도 혼분식을 하도록 유도했다. 이런 강력한 정부의 혼분식장려운동으로 1976년에는 밀 수입량이 연간 170만 톤이나 됐고, 정부는 외화 절약을 위해 혼분식에서 혼식 장려로 정책을 변경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혼분식장려운동은 사라졌지만, 이를 토대로 국내에는 밀가루 음식의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접근성
최근 미국과 호주 기상청이 올해 엘니뇨 현상이 20년 만에 최악 수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함으로써, 세계 농산품 가격이 더욱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일본 기상청 역시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1950년 이후 최고치에 다다를 수 있다고 전했다.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동부 해수면 온도가 평년에 비해 높아지는 현상으로 지구촌 곳곳에 폭염과 폭우 극단적인 이상 기후를 초래할 수 있다. 국내 가공밀가루는 수입 밀에 의존하고 있는데, 수입 시 밀에 대한 생산량과 유가 가격 변화에 따라 가격이 변동될 수밖에 없다. 호주 농업수자원부는 지난 9월 2015~2016년 호주 밀 생산량이 2530만 톤으로 전년보다 7%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호주커먼웰스은행의 토빈 고레이 농업 이코노미스트는 9월의 극심한 가뭄을 이유로 생산량이 정부 예상보다 최대 200만 톤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자재의 공급량이 줄어들면 당연히 밀가루의 가격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엘니뇨는 전체적인 식자재에 대한 가격을 상승시켰는데,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한 9월 식량가격지수는 전월의 155.1에서 156.3으로 올라 18개월 만에 첫 상승세를 나타냈다.
시장성
밀가루 시장은 성숙기를 맞이함으로써 급격한 성장을 꿈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제분협회 박정섭 부장은 “식문화가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많이 소비되는 식재료에도 변화가 있었다.”며, “쌀밥 위주의 식생활 시기에서 라면, 국수, 부침개 등 밀가루 음식의 식생활로 변화되는 시기라면 아무래도 밀가루 시장 자체가 크게 확장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다양한 식자재에 따른 식문화가 발전됐기 때문에 식문화 자체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는 수준이 될 것이다. 때문에 밀가루 시장 역시 꾸준한 소비일 뿐이지 큰 성장 및 확장을 전망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덧붙여 ‘글루텐 프리’를 선언하는 밀가루 시장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다양하게 밀가루 시장이 발전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현재는 ‘글루텐 프리’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는 마케팅의 일환이며, 계속 소비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글루텐 프리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등의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트렌드가 나타나거나 기본적인 밀가루를 소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발전성
밀과 밀가루의 경우 <동의보감>(허준, 1610년)에 “기운을 더해주며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건강해진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주식이자 약이었다. 하지만 길거리 음식부터 자극적인 맛을 내는 음식까지 밀가루를 활용한 음식들이 다양해지고, 라면 등과 인스턴트 제품에 활용되면서 ‘건강하지 못한 음식’으로 인식됐다. 이와 같은 인식을 바꿀 다양한 프로모션과 마케팅 전략을 펼치면 밀가루 음식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우리밀과 할랄 인증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 산업 영역이 확대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국제분협회 박 부장은 “우리 밀가루 산업의 경우 정부 자체에서 생산량을 5%까지 늘리려고 하고 있다.”며, “현재 우리밀가루 생산량은 대략 2~3만 톤인데, 정책이 시행된다면 5~6만 톤 정도까지는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리밀 생산량에 대해 전망했다.
또한 올해 5월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밀가루 제조업체 동아원에서 국내 1호 할랄 인증 밀가루 수출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원 관계자는 “국내 제분기술과 밀가루의 품질은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미국, 유럽산보다 높은 가격으로 수출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할랄 인증 밀가루라는 새로운 접근이 국산 밀가루의 수출 경쟁력도 높여줄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참고서적 및 자료 : <밀가루의 누명>,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5년 11월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