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일본에 시작된 와이너리 호텔, 와이너리 스테이 트라비뉴

일본의 와이너리 역사가 120년이 넘었다는 사실, 니가타현에 와이너리와 오베르주가 결합한 와이너리 호텔들이 있다는 것, 프랑스 브루고뉴의 최고급 와인을 생산해 내는 와이너리가 홋카이도에 진출했다는 사실 등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와이너리에서 직접 와인을 생산하고 이를 활용하는 비즈니스가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일본 와이너리의 역사

일본에 120년 전 터 와이너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에노에서 전철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우시쿠(牛久)’라는 곳에는 일본 최초의 와이너리인 ‘우시쿠샤토(牛久シャトー)’가 있다. 이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카미야 덴베에(神谷傳兵衛)가 1903년에 설립한 본격적인 와이너리다. 우시쿠샤토는 우시쿠 지역의 광대한 토지, 도쿄와 가까운 지리적 입지를 활용해 와이너리를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우시쿠에서 포도재배를 시작하기 시작한 카미야는 사위인 카미야덴조(神谷傳蔵)를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파견해, 현지 기술을 도입,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 그리고 와인병에 담는 과정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렇게 탄생한 ‘우시쿠샤토’는 일본 와이너리와 와인의 루트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지금은 아오모리, 나가노, 야마나시, 시즈오카 등 전국 각지에서 와이너리와 호텔을 결합한 형태의 숙박시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온천과 와인을 결합한 와이너리 호텔, 와이너리 스테이 트라비뉴(Winery Stay Travigne)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와인의 재평가

일본의 와인이 탄생했던 당시, 포도는 와인을 양조하기 위한 재료라기보다는 식탁에 올려지는 과일의 한 종류로 여겨져 왔다. 일본의 기후 풍토로 봤을 때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는 것은 적합치 않다는 선입견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입견 때문에 일본에서 재배된 와인은 프랑스 와인에 비해 ‘싼 맛에 마시는 와인’이라는 이미지가 정착돼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젊은 일본인 와인 양조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일본 와인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일본 와인이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하자 일본 와인의 세계적인 평가 역시 상승 중이다.

이러한 일본 와인의 상승세에 힘입어 일본 요리에도 일본 고유 품종의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평이 나오면서, 카이세키 요리를 제공하는 고급 일식집을 중심으로 일본 와인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프랑스 와이너리 샤토처럼 숙박할 수 있는 와이너리가 각 지역에서 오픈하고 있고, 그 중심에 CAVE D’OCCI WINERY(카부도치 와이너리)에 만들어진 호텔, 와이너리 스테이 트라비뉴(Winery Stay Travigne)가 있다.

와이너리 스테이 트라비뉴

일본의 나파밸리를 꿈꾸며 니이가타현 니칸(西蒲)구 카쿠다야마(角田山) 기슭 11만 평의 포도밭에 위치한 카부도치 와이너리 안에 최근 호텔이 문을 열었다. 미국의 나파밸리처럼 와인을 즐기는 풍요로운 시간을 제공하고자 문을 연 이 호텔에는 레스토랑, 마르쉐, 카페, 온천 시설, 스파 살롱이 있어 와인과 온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혼자서도 여유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와이너리 호텔로 문을 연 와이너리 스테이 트라비뉴는 목조의 2층 건물로, 10개의 객실을 가지고 있으며, 결혼식 등의 이벤트를 위해 전체를 대여할 수 있는 플랜도 준비하고 있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프랑스의 ‘오베르주’를 표방하면서 고급스러움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와이너리 호텔에 도착하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가쿠다산과 넓은 포도밭이 조화를 이룬 로케이션이 주는 절경이다. 와이너리를 만들면서 전선을 모두 땅 밑으로 깔아 와이너리의 전경에 그 어느 것도 가리는 것이 없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있던 전주는 호텔 홀의 기둥으로 재활용해 지역의 흔적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 경치를 감상하며 호텔 로비 라운지에 들어서면, 스파클링 와인이 웰컴 드링크로 제공된다. 호텔 라운지에는 와인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바 카운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숙박객은 계절의 추천 와인과 호텔 고객만 맛볼 수 있는 카부도치 와인도 주문할 수 있다.

객실에서도 테라스로 나가면 포도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호텔 투숙객은 온천 시설인 ‘비네스파’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으며 특히 노천탕은 정원 안에 욕조가 있어 포도밭의 정취를 맛보며 몸을 담글 수 있다. 호텔 내의 북카페에서는 2층까지 이어지는 높은 서고에 인기 작가의 베스트셀러 작품을 비롯해, 음식, 여행, 예술, 식물, 동물, 신체 등 테마별로 구성된 책들이 놓여 있다.

와이너리 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와인이 곁들여진 디너타임이 아닐까?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호텔 직원을 따라 비밀의 장소로 먼저 안내되는데, 이곳은 바로 지하에 있는 와인셀러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와인들 중에서 선택해 시음을 한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와인을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것이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와인은 포도밭에서 재배한 21종류의 와인이다. 특히 이곳의 모래질 토양의 특징인 섬세함과 투명감을 겸비한 레드 와인 ‘사블(프랑스어로 ‘모래’라는 의미)’과, 이 지역에 가장 맞는 품종으로 알려진 스페인 원산의 ‘알바리뇨’를 사용한 화이트 와인은 호텔에서 가장 추천하는 와인이라고 한다.

저녁은 지역의 계약 농가에서 생산 재배된 재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요리가 제공된다. 카부도치의 레드 와인을 넣고 푹 끓인 소스 베이스의 생선요리 등은 와이너리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냈다. 요리 외에 과일들 모두 지역에서 재배된 것으로 와인, 요리 그리고 후식까지 모든 것들이 지역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일본 와이너리 산업의 미래

세계 최고급 와인의 산지인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방에서 300년 가까이 역사를 자랑하는 와이너리가 2019년 홋카이도 하코다테시에 진출했다. 지구온난화로 포도의 수확 시기가 해마다 빨라지고 있는데, 부르고뉴 대학 등의 전문가가 최근 30년간의 수확 시기와 현지 기록을 바탕으로 지난 600년간의 수확 시기를 비교한 결과 평균 13일 빨라졌다고 한다.

부르고뉴 와인의 섬세한 맛을 특징짓는 것은 포도의 신맛인데, 포도가 너무 익으면 산미를 포함한 맛이 바뀔 수도 있다. 이처럼 미래에 다가올 위험에 대비해 먼저 움직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부르고뉴에서 전통적인 와인 만들기를 계속하면서 새로운 도전으로 국외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했던 와이너리가 선택한 곳이 바로 일본의 홋카이도 하코다테시다.

홋카이도는 혼슈보다 시원하고, 피노누와와 샤르도네의 재배에 적합하다고 한다. 넓게 정리된 농지를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로, 포도밭은 도쿄돔 8개분에 해당하는 약 37ha를 확보했다. 첫해에는 2.5ha에 레드 와인용의 피노 느와르와 화이트 와인용의 샤르도네의 묘목을 심었고, 매년 3ha씩 면적을 늘려 첫 와인 출하는 2025년으로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