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 열도(五島列島)는 규슈의 가장 서쪽에 있는 약 150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뤄져 있는데, 이 수 많은 섬 중의 하나인 ‘후쿠에(福江島)’ 섬에 ‘메구리메구라스(めぐりめぐらす)’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숙박시설이 오픈해 주목을 받고 있다.
‘생각하는 시공간’을 테마로 탄생한 이곳은 마치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라투렛 수도원’을 연상케한다.
매력적인 작은 섬마을
고토 열도에서 가장 큰 후쿠에 섬에는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서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공항이 있다. 공항에 도착해 차로 40분 정도 이동하면 ‘한토마리 마을(半泊部落)’이라는 곳에 도착하는데 이곳에 메구리메구라스(めぐりめぐらす) 숙박 시설이 있다. 도쿄 기준으로 4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곳인 만큼 쉽게 다가가기 힘든 곳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도착하면 이 마을에는 매력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우선 평지가 많아 예전부터 농업과 목축업이 활발했기 때문에 야채와 쌀, 고기를 비롯한 축산품까지 풍부한 식재료가 사계절 내내 생산된다. 물론 해산물도 풍부하다. 게다가 보건소, 슈퍼, 은행 ATM 등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도 잘 갖춰 있다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는 환경이다. 상하수도는 설치돼 있지 않기 때문에 불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주민들은 산으로부터 흘려내려 온 물맛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다른 마을의 주민들까지 물을 가지러 이 섬을 찾는다고 한다. 불과 5가구 6명의 마을만이 살고 있었던 이 작은 마을에 숙박시설인 메구리메구라스가 오픈하게 이유는 무엇일지 그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Rethink 프로젝트의 완성형
메구리메구라스는 한토마리 마을의 폐교가 된 초등학교 분교를 전면 개수해 만든 레지던스다. 이곳은 일본의 담배 제조회사인 JT의 ‘리팅크(Rethink)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러 기업들이 참여해서 만든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리팅크는 말 그대로 ‘다시 생각한다’는 뜻인데, 이곳의 콘셉트와도 일치한다. 메구리메구라스는 숙박객이 머무는 동안 어떤 체험 혹은 엔터테이먼트적인 요소를 제공해 즐기도록 하기 보다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 속에 몸을 움직이면서 도시의 일상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신 속의 ‘Philosopher’를 깨어나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도시의 생활 속에서 좀처럼 가지기 힘든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 PC나 스마트폰과는 거리를 두고 섬마을을 걷는 동안에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다만, 객실에 돌아왔을 때는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거나, 아이디어를 새롭게 정리할 수 있도록 Wi-Fi를 설치해 두고 있다.
특별한 신앙의 역사와 우연이 더해진 운명 같은 공간
메구리메구라스를 리노베이션한 건축가는 수 년 전 본지에도 소개한 바 있는 교토의 ‘교노온도코’를 설계한 나카무라 요시후미(中村好文)다. 나카무라는 한토마리 마을의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Philosophers in Residence’로 리노베이션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 직관적으로 “이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잠복 그리스도인’과 관련된 역사가 있는 ‘고토(五島)’라는 지역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잠복 그리스도인’이란 일본에서 기독교와 천주교가 금지된 시절에 숨어서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을 뜻한다. 나카무라는 이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어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체취가 묻어나는 곳에 숙박 시설을 설계하는 것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리팅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멤버들이 제안한 ‘Philosopher(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콘셉트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카무라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여유를 가지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만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싶어했는데, 그러던 차에 리팅크 프로젝트의 의뢰가 왔던 것이다.
나카무라는 초등학교를 새롭게 리노베이션하는 과정에서 원래 교실이었던 공간을 3분할 해 개인 룸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분할해 보니 싱글 룸의 폭은 우연히도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리용 교외에 있는 ‘라투렛 수도원’과 정확히 같은 크기로 맞아떨어졌다. 존경하는 건축가와 같은 느낌의 공간을 만드는 것에 나카무라는 운명 같은 것을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싱글 룸은 폭이 같은 크기였을 뿐만 아니라 방의 깊이 역시 거의 라투렛 수도원과 거의 비슷했다. 이로 인해 나카무라는 르코르뷔지에의 라투렛수도원을 자신이 마치 이 섬에 오마주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작업에 뛰어들게 됐다. 그리고 나카무라는 자연스럽게 수도원처럼 디자인된, 생각하는 공간을 완성시켰다.
메구리메구라스의 서비스
메구리메구라스의 공간은 크게 싱글 룸 6실(욕조/샤워 공용 사용 5실, 욕조 비치 1실)과 트윈 룸1실, 식당 겸 회의실, 샤워실 2곳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이곳에 숙박할 수 있는 최대 정원은 8명이다. 단체의 경우는 공간 전체를 빌려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식사는 어떨까? 일단 이 섬에는 슈퍼는 있지만 식당과 같은 가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 묵는 투숙객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른 호텔과는 다르다. 투숙객들은 체재하는 동안에 섬에서 유일한 슈퍼에서 사오거나 육지에서 가져온 식재료, 혹은 눈앞의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공유 주방에서 조리하는 등으로 각자의 스타일대로 요리해서 식사를 하게 된다.
스스로 요리해 만든 식사를 마친 투숙객들은 자연스럽게 산책을 하게 되고, 또 한 번 밤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리고 지나가다 몇 안 되는 주민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생각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며칠 묵다 보면 투숙객은 자신이 마치 이 섬에 이주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된다. 메구리메구라스는 짧은 기간 동안 머무는 사람도 지역의 커뮤니티와 관계를 가지면서, 동네에 녹아 들어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창출해 낸 것이다.
최근 고토 열도와 같은 작은 섬들이 숙박시설로 부쩍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인들은 항상 새로운 사고를 해야 한다는 피로감을 갖고 살고 있는데, 정작 이를 위한 공간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일상과 멀리 떨어진 곳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멀고 먼 작은 섬에 순수하게 ‘생각’, ‘철학’, ‘사색’에 집중해 완성된 숙박시설인 메구리메구라스(めぐりめぐらす). ‘돌아다니면서 둘러보다’라는 말 뜻 그대로 조용한 섬을 산책하며 생각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이곳은 현대인들을 위한 또 다른 의미의 수도원 같은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