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일본이 일을 저질렀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 것이다.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그 엉큼한 속을 누가 알랴~! 이제 필자가 그토록 좋아하는 생선회나 초밥을 먹을 때 느낄 부담을 생각하니, 억장이 끓어오른다. 그래도 아직 우리 바다에서 나는 생선은 깨끗할 거라 생각하고 화이트 와인을 하나 챙겨 횟집으로 향한다. 셀러에 고히 모셔뒀던 아끼는 샤블리, 제라르 뒤플레시스를 꺼냈다.
바다의 기운을 한껏 품은 샤블리 Chablis
프랑스 파리 남동쪽으로 약 200km 지점, 중부 지역에 위치한 샤블리는 매우 오래된 역사적 와인 산지다. 9세기 루아르 강을 거슬러 올라온 바이킹들의 침입을 피해 투르(Tours)에서 중부 내륙 지역으로 피신한 수도사들에게 왕은 샤블리 지역의 새로운 봉토를 수여했다. 12세기부터는 시토 교단이 포도를 재배했으며, 15세기에는 부르고뉴 공국에 합병돼 부르고뉴 지방으로 편입됐다. 이런 역사적 이유로 부르고뉴 와인 산지의 일부가 됐으나, 사실 샤블리는 위치나 기후, 토질로 볼 때는 부르고뉴 와인 산지보다는 샹파뉴 와인 산지와 유사한 테루아다.
약 5000ha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의 샤블리 산지는 기후적으로는 대륙성 기후로서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고 길다. 포도가 익을 만한 충분한 햇빛이 요구되므로, 포도밭의 채광 방향이 중요하다. 따라서 스렝(Serein) 천 주변 밸리의 구릉지대 경사지 밭에서 일급 프르미에 크뤼와 특급 그랑크뤼 와인이 생산된다.
토양 역시 샤블리를 특징짓는 매우 특별한 요소 중 하나다. ‘키메리지안(Kimmeridgian)’이라는 고유명사로 알려진 이 토양은 공룡이 살았던 상부 쥐라기(Upper Jurassic era)에 바다였던 곳에서 형성됐다가 지표면의 융기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온 땅이다. 특유의 작은 굴(Exogyra Virgula) 화석을 포함한 수많은 해양성 물질들이 퇴적해 형성된 두터운 이회암성 석회질 토양이다.
오늘날 샤블리 와인은 두 가지 스타일로 생산된다. 전통적 스타일은 연한 황녹색 상에 유산 발효를 하지 않은 단도직입적인 높은 산도와 드라이감, 금속성 느낌의 솔직성으로 무장한 담백한 화이트 와인이다. 현대적 스타일은 포도를 점점 더 늦게 수확해 완숙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유산 발효를 진행한다. 저온 침강법으로 주석산마저 제거해 더욱 풍부하고 부드럽고 유연한 스타일의 샤블리로 탄생된다.
양조법으로도, 스테인레스 탱크를 주로 사용한 신선하고 활기찬 스타일도 있고, 오크통에서 숙성해 견과류와 목재향이 풍기는 묵직한 스타일도 있다. 일반적으로 연한 색상에 아카시아 꿀향이 진하고 레몬, 자몽향과 흰 꽃향이 깃든 부께를 가진다. 미감은 드라이하고 신선하며 산도가 높고 미네랄 기가 강하다. 전통적으로 굴과 생선, 해산물, 갑각류, 달팽이, 염소 치즈와 잘 어울린다. 부르고뉴 샤블리는 정통 샤르도네 드라이 화이트 와인의 세계적 대명사다.
정갈한 샘물과 같은 정통 샤블리, Domaine Gerard Duplessis
샤블리 지역의 명가 ‘도멘 제라르 뒤플레시스’는 1895년에 설립돼 가족경영으로 운영되고 있는 와이너리다. 5세대에 걸친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0년 유기농법을 적용하기 시작해, 2013년 ‘Ecocert’ 인증을 받은 후, 아펠라시옹과 재배 토양을 존중하고 표현해내는 친환경 와인(Vins Biologiques)을 생산하고 있다. 농장은 현재 5세대인 릴리앙 뒤플레시스(Lilian Duplessis)가 운영하고 있다. 그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본 농업고등학교(Lycée viticole de Beaune)에서 수학하고, 부르고뉴의 다양한 수많은 직책을 역임하며 노하우를 축적, 확장해왔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그는 2000년에 아버지 제라르(Gerard)와 함께 하기 위해 가족 농장으로 복귀했다. 부친으로부터 운영을 물려받은 릴리앙의 주 관심사는 친환경 생산이었다. 그는 토양의 건강과 기후 변화를 걱정하고, 포도나무를 위협하는 다양한 병해에 정확하고도 겸손하게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유기농 방법만을 사용하고 있다.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예를 들어 2018년 빈티지 와인들은 이산화황을 전혀 첨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관행은 와인의 품질을 훼손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샤블리 와인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의 높아지는 눈높이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엄격한 품질 관리를 바탕으로 양조할 때 황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뀌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릴리앙의 양조 철학과 새로운 샤블리
양조장에서 만드는 9개의 뀌베 중 3개(Petit Chablis, Chablis, Chablus Premier Cru Vaugiraut)는 오크통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12~15개월가량 숙성시킨다. 그랑크뤼 레끌로(Grand Cru Les Clos)를 포함한 다른 6개의 뀌베들은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12개월간 숙성시키는데, 그중 10%만 새 오크통에서 6개월간 숙성시킨다. 이런 섬세한 배려를 통해 오크가 주는 미묘한 향과 나무통을 거쳐 전달되는 미세 산소 공급이 가능해 뒤플레시스의 고급 샤블리 와인은 샤블리 와인의 특징인 세련된 미네랄 포인트와 현대적 감각의 복합미를 가진 우아한 와인으로 탄생한다.
2007년 부친이 은퇴할 당시 릴리앙은 7ha의 포도밭을 물려받았는데, 현재 대다수가 프르미에 크뤼 밭으로 10ha까지 확장했다. 밭은 20개의 구획으로 나눠져 있으며 해당 구획들은 각기 다른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75년 수령의 고목은 물론, 평균 45년 이상 수령의 나무들도 상당하다. 유기농 방식을 유지, 높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며, 살충제, 합성 살균제 등과 같이 토양과 포도나무를 해칠 수 있는 제품 또한 금한다. 피복 작물을 심어 토양을 보호하고, 유황과 구리 같은 자연 광물들을 사용해 흰가루병이나 흰곰팡이병을 이겨내는데 도움을 준다. 제라르 뒤플레시스 농장은 자발적으로 위와 같은 제약들을 둬 친환경적 생산에 더욱 신경 쓰고 있다. 토양, 포도밭, 재배자들과 최종 소비자들의 건강함은 이러한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한다니, 한 잔 한 잔 마실 때마다 건강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약 6000상자 정도 생산되는 와인은 전 세계 20여 국에 수출된다. 레이블에도 은은하게 그려져 있는 회사의 로고는 중세 시절 샤블리 마을로 들어가는 공식 대문이었던 뽀르트 노엘(Porte–Noël)이며, 그 위에 그려진 문장은 과거 샤블리 마을의 문장이다. 결국 제라르 뒤플레시스는 샤블리 지역에 대한 강한 주체성과 정체성을 표방한 와인을 생산한다는 고백과도 같은 레이블이라 볼 수 있다.
샤블리 Chablis
제라르 뒤플레시스 라인업의 신선한 화이트 와인이다. 샤블리 화이트 와인의 AOC 명칭 안에는 4단계 내부 카테고리가 있는데, 가장 낮은 등급은 ‘쁘띠 샤블리(Petit Chablis)’이고, 그 윗급이 ‘일반 샤블리’다. 뒤플레시스 와이너리에서도 쁘띠 샤블리가 생산되지만, 국내에 수입되지는 않기에 이 와인이 가장 기본이 된다. 사실, 쁘띠 샤블리는 샤블리 와인의 명성에 누가 된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다소 약하고 개성이 뚜렷하지 않기에, 샤블리 와인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일반 샤블리 단계를 추천한다.
필자가 시음한 2019년 빈티지 샤블리는 샤르도네 100%(당연히~!)인데, 포도나무 수령이 무려 45년산이다. 무척 놀라운 일이다. 이 정도 수령이면 프르미에 크뤼급 와인을 만들 수도 있을텐데, 문제는 포도밭 채광이 북동쪽을 보고 있는 밭이기에, 일반 샤블리급으로 생산되고 있다. 일급 바이용(Premier Cru Vaillons) 밭 맞 편에 있는 세 곳의 밭 포도를 모아 양조했다.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알코올 발효와 유산 발효까지 마쳤다. 가벼운 여과 후에 입병했으며, 유기농법으로 바이오 인증을 받았다. 잔에서는 밝고 명랑한 노란 색상에, 싱그런 레몬과 화사한 꽃향기, 은은한 허브향이 뛰어 논다. 상큼하고 담백하고 깔끔한 기본에 충실한 샤블리 와인이다. 13.5%vol에 미디엄 보디감으로, 3~5년 정도 보관하며 마실 수 있겠다. 에피타이저, 조개구이, 갑각류, 시원한 뷔페 음식들과 즐겨 마실 수 있다.
Price 7만 원대
샤블리 프르미에 크뤼, ‘바이용’ Chablis Premier Cru, ‘Vaillons’
샤블리 지역에는 17개 명칭의 일급 프르미에 크뤼가 있는데, 바이용은 샤블리 마을 남서쪽 구릉지에 위치한 규모가 큰 프르미에 크뤼 포도밭 중 하나다. 스렝천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남동쪽 방향의 경사지에 양질의 키메리지안 토양이 훌륭한 테루아를 만들어낸다. 언덕은 특히 오전에 햇빛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포도는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신선한 산도를 유지하면서 최적의 성숙을 이룰 수 있다. 그 결과, 바이용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샤르도네 와인은 덜 강렬하며 가뿐한 편으로, 꽃향기가 강하고 섬세한 경향이 있다.
필자가 시음한 2019년 빈티지 뒤플레시스 바이용은 50년 수령의 고목 샤르도네로 바이용 구획의 4군데 필지 클리마를 블렌딩했다. 역시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샤르도네 포도이며, 모두 손수확으로 해서,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알코올 발효와 유산 발효를 마쳤다. 이후, 6개월간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켰는데, 통의 10%는 새 오크를 사용해서, 오크향과 미감을 조절했다. 백도와 벌꿀, 레몬, 오렌지 향이 첫 부께를 장식하며, 아몬드, 개암 등 견과향과 산사나무 흰 꽃향이 은은한 복합미를 완성한다. 알코올은 일반 샤블리보다 살짝 높은 14%vol인데, 무난한 보디감과 비중감을 구성하며, 와인의 기본적인 농축미와 균형을 잘 이뤘다. 영덕 대게, 굴찜, 가을 전어회 등과 잘 어울리겠다. 5~10년 정도 병 안에서 보관 숙성이 가능하며,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것이다.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2011년 빈티지를 시음하고는 “블라인드로 마시면 마치 Cote–de–Beaune 화이트를 연상시키는, 매우 잘 다듬어진 바이용 샤블리~!”라고 평하며 92점을 줬다.
Price 12만 원대
샤블리 프르미에 크뤼, ‘몽멩’ Chablis Premier Cru, ‘Montmains’
프르미에 크뤼 ‘몽멩’ 밭은 앞서 시음한 ‘바이용’ 밭의 남쪽에 위치한다. 남동향 언덕에 있어, 아침 첫 햇살의 시원함과 오후의 따뜻한 햇볕을 고루 받는다. 바이용과 비슷한 음성적 성향의 프르미에 크뤼를 대표하지만, 바이용보다는 더 힘있는 스타일이다. 필자가 시음한 2018년 빈티지 ‘몽멩’은 평균 수령 60년의 몽멩 구획 내의 두 필지 클리마 포도를 블렌딩했다. 2018년은 전반적으로 서늘한 기후 여건을 보여준 해로써, 일찍 마실 수 있는 부드러움을 간직한 와인을 생산했다. 따라서 알코올 도수도 상대적으로 낮게(13%vol) 생산됐다. 5~10년 정도의 보관 기간에 일찍 음용할 수 있겠다. 키메리지안 점토질 이회암성 토양에서 생산된 포도는 전량 손 수확돼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알코올 발효와 유산 발효를 거쳤다. 이후 지하의 셀러의 프랑스 오크통에서 6개월간 산소와의 미세 접촉으로 부께를 키워 나갔다.
잔에서는 깨끗하고 청량감있는 미네랄 풍미가 가장 특징적이었다. 심산유곡의 찬 계곡물에서 느낄 수 있는 냄새와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복숭아와 살구, 레몬과 라임향이 교차하면서 고유의 벌꿀향과 함께 ‘몽멩’밭의 DNA를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며, 오렌지 과즙과 노란 자두 속살향, 가벼운 피톤치드 수지향이 복합미를 완성한다. 입안에서는 신선하고 높은 산미가 등장하며, 오렌지 껍질향과 허브 풍미가 몽멩의 볼륨감과 균형을 이뤄 매우 편안한 안정감을 피니시까지 느끼게 해 준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13%vol의 상대적으로 낮은 알코올이 후각과 미각, 위를 편하게 해줘 매우 만족스러운 음용을 했다는 점을 꼭 얘기하고 싶다. 아마 2019년 새 빈티지 와인을 추후에 마시는 이들은 좀 더 강하고 힘차며 응축된 또 다른 스타일의 ‘몽멩’을 느낄 것이다.
필자는 철 지난 민어회와 함께 시음했는데, 찰지면서도 타박타박한 민어 육질과 이 2018 몽멩이 제대로 어울려 행복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이 와인의 2016년 빈티지는 <Wine & Spirits> 매거진으로부터 98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Price 12만 원대
샤블리 그랑크뤼, ‘레 끌로’ Chablis Grand Cru, ‘Les Clos’
샤블리 와인 테루아의 최고봉인 그랑크뤼 밭은 마을의 북동쪽, 스렝 천 우안의 해발 고도 100~250m 구릉 경사지에 있다. 로마 시대의 웅장한 극장의 테라스 계단를 연상시키는 포도밭은 스렝 밸리 평지를 내려 보며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채광은 완벽한 남향과 남서향으로, 마지막 지는 태양의 잔 기운마저도 흡수할 수 있는 방향이다. 총 면적 100ha에 달하는 그랑크뤼 밭은 7개의 구획으로 나눠져 있으며, 레이블에 각 클리마(Climat)의 명칭을 기재한다. 각 밭은 고도와 채광이 달라 다채로운 품질과 특성의 와인이 생산된다. 크게 언덕 상층부와 하층부 클리마로 나뉘는데, 뒤플레시스가 가지고 있는 밭 ‘레 끌로’는 하층부에 있어, 풍부하고 농밀하며 복합적인 와인 특성을 보인다. 평균 수령 60년 이상의 고목에서 전량 손수확된 포도는 압착돼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 10~12개월간 숙성했으며, 이어서 6개월간 오크통 숙성을 거쳤는데, 새 오크의 비율은 10% 정도다.
필자가 시음한 2020년 빈티지 레 끌로 그랑크뤼는 완벽하게 놀라운 품성을 지닌 화이트 와인이었다. 반짝이는 황금빛 수면 위로, 부싯돌처럼 튀는 미네랄 터치와 레몬–라임의 싱그러움이 차가운 얼음 위를 스케이팅하듯 미끄러 다니고, 인동 덩굴 꽃과 아카시아 꽃의 향긋한 단내음, 오크 숙성에서 얻은 개암, 볶은 아몬드의 너트류 향이 저변을 잡아 준다. 키메리지안 석회 점토질에서 기인하는 놀라운 미네랄 강도와 짧은 듯 적절했던 오크 숙성의 터치가 매력을 더했다. 높은 산미, 칼 같은 미네랄, 12.5%vol의 온화한 볼륨으로 구조가 잘 잡혀 있다. 0.36ha의 금쪽같은 밭에서 극소량 생산되는 제라르 뒤플레시스의 컬트급 샤블리 와인~! 리코타와 견과류를 곁들인 채소 샐러드, 프랑스풍 버터 관자 요리, 금태 구이 등 고급 생선 요리, 바닷가재와 킹크랩 등 향기로운 갑각류 찜요리와 함께 하면 최상이다.
Price 25만 원대
사진 제공_ 동원와인플러스(T. 1588-9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