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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화)

호텔&리조트

[Hotels in 2000] 2000년의 호텔 - 내 첫 내국인 출입 카지노, 강원랜드 카지노 & 호텔

 

1991년 4월부터 2023년 6월호까지 매달 1권씩, 모두 387권을 독자의 품에 안긴 <호텔앤레스토랑>에는 얼마나 많은 호텔과 레스토랑들이 담겼을까? 지난 32년 동안 매달 다양한 호텔, 레스토랑 등 호스피탈리티산업의 소식과 트렌드, 현안들을 취재해온 <호텔앤레스토랑>이 과거로 돌아가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호텔을 되짚어봤다.


1991년 구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방문해 VVIP 의전으로 화제가 됐던 제주신라호텔, 오픈과 동시에 드라마 ‘호텔’의 촬영지로 인기몰이를 했던 1995년 리츠칼튼 서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국내 첫 내국인 출입 카지노, 강원랜드 카지노 & 호텔이 개장한 2000년, 호스피탈리티업계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2000년의 호텔 , 강원랜드 카지노 & 호텔

2000년 10월 28일, 강원랜드 스몰 카지노 & 호텔 개장

 

2000년, 가장 뜨거운 감자는 국내 첫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 강원랜드의 개장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호텔앤레스토랑>은 연초부터 이와 관련한 기사들을 게재했다. 현재 건설 진행상황과 카지노산업의 현재와 전망, 총지배인과 직원들의 각오까지.   

 

 


우선 2000년 2월호 ‘포커스’ 지면에 첫 기사가 게재됐는데 10월 강원도 폐광촌 스몰카지노가 개장됨에 따라 정선군 사북, 고한읍의 경기가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다. 4만 5000여㎡ 부지에 건설되는 강원랜드는 슬롯머신 500대 규모의 카지노장 외에 200실 크기의 호텔 등 부대시설이 들어설 예정으로 400억 원 규모의 진입도로 공사, 200억 원 규모의 카지노 종업원 숙소 신축공사가 시작됐다. 2010년까지 1조 1260억 원이 투자되는 카지노호텔, 콘도미니엄, 테마파크, 스키장, 골프장 등의 본 카지노 공사도 2000년 6월부터 진행되며 10만 여㎡ 부지에 200억 원을 들여 가족 놀이 시설인 문화이벤트 공간이 건설될 것이라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당시 카지노가 오픈될 경우 일 평군 2200명, 연간 80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보인 가운데 게임시설이 슬롯머신 500대, 테이블 30대로 동시 최대 800여 명 정도만 수용할 수 있는 점이 문제가 됐다.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1400여 명이 돌아갈 사태가 우려되고 더불어 예상 이용객에 비해 숙박시설은 턱없이 부족,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전국에 운영 중인 13개 카지노 업장 가운데 흑자를 내는 곳이 적고 매출이 부진해 휴업 중인 곳이 있어 강원랜드 역시 체계적인 마케팅을 동반해야할 것이라는 조언도 함께 게재됐다. 

 

 

 

소극적 홍보와 적극적 PR을 전략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분류되는 카지노는 2000년 당시 약 80여 개국의 나라에 4000개의 카지노가 운영 중인데 미국과 호주, 마카오, 모나코,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위치해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은 97년 기준 카지노 입장객이 1억 8000여 만 명, 우리나라는 60만 명에 지나지 않아 매출에서도 많은 차이가 나며 무엇보다 엔터테인컨트 개념이 도입된 서구의 카지노와 달리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오로지 갬블링이 목적인 국내 카지노들은 카지노가 위치해 있는 호텔들의 업장 수입에 파급효과를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따라서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트렌드로 자리잡아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예에서 보여지듯 국내 카지노도 하나의 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자리잡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인데 따라서 강원랜드 카지노는 내국인이 출입하는 강점을 내세워 국민여가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시급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또한 강원랜드가 지리적으로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지역적 특성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청정한 자연을 매개로 생태관광이나 아리랑 발상지 투어처럼 여행상품과 연계해 적극적으로 패키지를 개발해 나가야하며 여행사 등 관련업계와 합작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러한 우려가 불식됐는지는 미지수다.  

 


미니인터뷰로 당시 성철경 홍보부장의 인터뷰가 게재됐는데 내국인 출입을 전제로 한 카지노기 때문에 시민단체나 사회 일각에서 우려하는 문제점을 불식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시종일관 조심스러운 태도로 카지노 홍보에 임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을 전했다. 워낙 우려하는 시각이 많고 따가운 시선이 많기 때문에 소극적 홍보와 적극적 PR을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같은 단어를 국문과 영문으로 언급함으로써 모순이 될 수 있지만 강원랜드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의 착각일까? 

 

최우선의 가치로 둔 서비스 지상 제일주의


2000년 11월 호에는 강원랜드 스몰 카지노 & 호텔의 서갑석 총지배인의 인터뷰가 게재됐다. 그는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개관 준비를 해왔다고. 27년 걸친 호텔맨 생활의 노하우를 이곳에서 활짝 펴보이고 영광스럽게 퇴진하겠다는 포부를 전한 서 총지배인은 강원랜드 카지노 & 호텔이 단순한 호텔이 아닌 정부와 지자체, 폐광지역 주민들의 염원이 담긴 곳인 만큼 그 중요성을 강조하며 6월 부임한 이후 직원들을 고급 서비스 인력으로 바꾸는데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를 단적으로 표현해 달라는 당시 기자의 요청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 직원들이 재떨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혹시 손님이 담배를 피울 때 주위에 재떨이가 없으면 즉시 달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니 전 건물 금연 상황인 지금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만큼 고객 응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강원랜드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들을 생각하면 잠시도 편안히 있을 수 없다는 그는 서비스 교육으로 유명한 신라호텔 출신답게 서비스 지상 제일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강원랜드 스몰 카지노 & 호텔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그래서 지역 경제 활성화의 모델이 되는데 일조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한편 연말에는 강원랜드 호텔 & 카지노 개장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한 기사가 게재됐다. 원래 2개의 카지노 호텔 중 스몰 카지노 호텔이 먼저 오픈, 메인 카지노 호텔은 2002년 오픈 예정이다. 강원도 정선군 1만 6000평의 부지에 자리잡은 특2급의 강원랜드 스몰 카지노 & 호텔은 200여 객실 규모에 다양한 부대시설, 카지노에는 테이블 30대, 슬롯머신 500대의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입장료는 5000원 선으로 500여 명의 직원이 근무, 대대적인 홍보는 자제하고 내실을 다지고 있는 상황을 게재했다. 


강원랜드 호텔 & 카지노의 긍정적인 효과로 폐광지역을 비롯한 강원지역 관광과 여행업계의 활성화, 여행객들이 해외 카지노에서 사용하는 달러를 사전 차단해 국보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버려진 땅으로 치부됐던 폐광지역이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며 기사는 마무리됐다. 

 

호텔업계, 노사 갈등 최고조


2000년 노사갈등이 다른 어느해보다 거셌다. IMF 이후 내리막길을 걷던 경기가 눈에 띄게 회복되고 호텔 수입이 증가하자 노조측이 임금협상에 큰 기대를 걸었기 때문. 98년부터 연이은 일방적인 양보교섭을 해왔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노조는 호텔업이 타업종과 달리 IMF때도 오히려 매출이 증가한 것을 바탕으로 종사원들이 일방적으로 희생한 터라 보상요구가 많았다.

 

 


사실 98년부터 99년까지 내국인 F&B 매출은 상당수 감소한 반면 외국인 투숙객의 증가로 객실 수입이 증가, F&B 수입 감소분을 매워 경영 안정을 찾았고 또 F&B 수입도 점차 회복돼 호텔업은 지속적으로 호황을 누렸다. 여기에 2002년 월드컵과 ASEM, 2001년 한국방문의 해 등 굵직한 국제 행사 유치로 호텔 호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노조는 임금 인상 폭 두자릿 수와 고용안정을 주장했는데 노사간 큰 시각차로 첨예한 대립이 일어난 것. 특히 봉사료 잉여금이 쟁점으로 부각됐다. 96년 대부분 특급호텔들이 봉사료 기본급화를 수용하면서 이후에 발생하는 봉사료 수입을 회사측으로 돌린다는 노사간 합의서가 작성됐는데 봉사료 기본급화가 실시된 이후 호텔은 꾸준히 수익을 냈음에도 임금삭감과 고용 조정을 추진하자 노조측은 봉사료 기본급화에 대한 잉여금 배분을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사업자 측은 이미 협의서에 사인까지 한 사항이므로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해 봉사료 잉여금 문제가 단체교섭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됐다. 

 

롯데호텔, 74일간의 파업 이어져


결국 호텔들은 파업에 달했고 롯데호텔 노조가 태풍의 핵이었다. 롯데호텔 노조 500여 명이 2000년 6월 9일 소공동 롯데호텔 정문 앞에 농성장을 만들고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측은 정년연장(57세), 2년 이상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봉사료 잉여금 전액 지급, 기본급 17% 인상, 사측의 일방중재조항 폐지, 노사 동수의 징계위원회 구성, 96년 기준으로 한 적정인력 확보와 정원 유지를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스위스 그랜드호텔, 서울 힐튼호텔도 파업대열에 합류했다. 

 

 


이때가 공교롭게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시기라 내외신 기자들의 프렌스센터가 롯데호텔에 설치됐는데 파업 중에도 노조는 객실과 7개의 영업장이 정상영업할 수 있도록 했다. 


롯데호텔 파업과 관련해 본지 기자는 칼럼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국제행사가 있을 때마다 롯데호텔은 프레스센터나 운용본부가 차려지는 일종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어, 호텔 이상의 역할이 부여되고 있는데 당시의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전했다. 특히 6월 29일에는 새벽 경찰이 들이닥쳐 농성 중인 노조원을 강제 진압하기도 해 힐튼, 스위스그랜드 등 파업 중인 다른 호텔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무엇보다 사측은 각 대학에세 산학실습생 파견을 추가 요청하는 등 파업 해결의지가 불투명하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파업열풍이 지나간 호텔가의 명과 암


2000년 9월호에는 ‘파업열풍이 지나간 호텔가의 명과 암’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8월 22일 새벽 롯데호텔 노사간 합의가 극적으로 이뤄지며 그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롯데호텔의 경우 파업 기간 동안 경찰이 한밤 중에 호텔로 진압병력을 투입해 투숙고객들은 전쟁이나 테러가 벌어진 줄 알고 황급히 대피하는 촌극도 있었고, 예정된 일본인 비즈니스 고객들이 다른 호텔로 발길을 돌리는 바람에 신뢰도에 막대한 손상을 입게 됐다. 


파업으로 인한 각 호텔의 금전적인 손해는 수십 억에서 수백 억 원대로, 롯데호텔 사측은 노조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58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호텔의 가장 큰 피해는 대외적인 이미지 실추. 노조는 사측이 경찰을 동원해 강제진압, 간부구속 등 강경수단을 동원하자 여직원들이 간부들에 대한 성희롱 소송을 내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며 파문을 일으켰다. 상무, 이사, 등 임원진과 차장, 과장 등 간부직원들이 그간 해온 성희롱 사례가 개인 이니셜과 함께 상세히 기술돼 충격을 줬다. 이 소송으로 사측은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롯데와 힐튼, 스위스그랜드 등 특급호텔 세 곳이 정상운영되지 않자 오히려 다른 호텔들이 반사이익을 보기도 했다고. 특히 워커힐 호텔은 북한에서 온 이산가족들의 숙소와 양측가족들과의 상봉장소로 지정돼 3박 4일간 3개 공중파 방송과 케이블 TV 전파를 하루종일 탔으며 객실과 연회 매출까지 고스란히 수입으로 들어와 약 2억 5000만 원의 매출이 발생, 남는 장사를 했다는 후문이다. 조선호텔의 연회외식사업팀도 상봉기간동안 연회 수입으로 약 1억 원에 달하는 수입을 내고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만찬을 진행함으로써 ‘준비된 연회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외신기자들이 다수 방문함으로써 호텔의 국제적인 인지도 또한 높일 수 있었다.  


파업대상 호텔들이 주로 외국인 비즈니스 고객들이 묵는 특1급호텔이었던 만큼 국가적 신뢰도와 비즈니스 유치에 큰 타격을 줬고 경제활성화의 저해요인이 돼 결국 장기적인 파업으로 사측, 노조측 모두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2000년 8월 21일 74일간 계속됐던 롯데호텔 파업에 종지부를 찍고 홍보실에서는 노사 양측 합의 내용으로 4년차 이상의 정규직과, 일방중재조항의 삭제, 만 56세까지 정년 연장, 임금 10% 인상 등을 전했다. 또한  파업과 관련된 조합원 징계를 최소화하며 상호 진정, 고소고발을 동시에 취하하기로 했다. 봉사료 잉여금 지급은 노사동수 5인 이내로 구성된 별도의 봉사료위원회에서 지급기준과 시기, 계산방식을 정하기로 했다고. 힐튼 호텔 역시 8월 4일 합의로 43일간의 파업을 끝냈다. 

 

2000년 Hot Place 1.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


1999년 11월 1일 부분 개관에 이어 12월 1일 전관을 개관한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의 형제호텔,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이 오픈하며 당시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비즈니스호텔답게 15명에서 1500명까지 수용 가능한 16개의 다양한 연회장을 보유하고 코엑스몰과 연결돼 있어 숙식, 오락은 물론 쇼핑까지 원스톱으로 해결 가능한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은 “새천년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디자인 됐다.”고 평가 받았다. 특히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과 시스템이 통합돼 있어 체크인아웃은 물론 식음업장까지 두 호텔이 연동되는 점을 큰 장점으로 꼽았다. 


베스트 인테리어 지면을 통해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의 외관이 “수직적 상승감과 강인함이 묻어나는 장방형 직육면체에 유연한 타원형 곡선을 부분적으로 결합시킨 형태로 단순함과 섬세함이 조화를 이룬 깔끔한 모습으로 바로 옆에 위치한 아셈 국제 컨벤션센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로비라운지의 높은 천정과 후면 벽체, 체리무늬색 기둥들이 시원하면서도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스카이라운지는 비행기의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천정은 하늘의 구름이 연상되도록 구름 모양을 연출했다고. 새로운 밀레니엄 양식을 고려한 첨단 비즈니스 호텔을 기본 콘셉트로 했으며 기존 호텔건물에 비해 내부 공간과 실내건축면에서 미래 지향적 개념을 도입했다는게 당시 기고자의 평가다. 

 

 

 

2000년 Hot Place 2.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9월 1일, 당시 기사의 표현을 빌자면 ‘해가 지지 않는 호텔 제국’을 이룩한 세계 최대 호텔 기업인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최고급 브랜드 호텔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이 오픈했다. 전 세계 2000여 개가 넘는 메리어트 호텔 중 10번째 JW 메리어트 호텔로 지하 5층, 지상 34층, 총 497개 객실, 9개 레스토랑, 1300명 규모의 그랜드 볼룸 규모로 선보였다. 특히 오픈 당시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의 가장 큰 자랑으로 소개된 마르퀴스 더말스파 휘트니스가 눈에 띄는데 21세기형 새로운 스타일의 스포츠 클럽으로 4200여 평 규모에 150여 대가 넘는 체련기구, 500여 평 6레인의 온천 수영장, 404평의 체련장을 자랑하고 있다고. 게다가 국내 최초로 태양광 실내 전달 시스템을 도입해 인체에 유익한 자연광만을 실내로 끌어와 사계절 내내 선탠을 즐길 수 있고 강원도 오대산 등지에서 채취한 청명한 자연 공기를 분사해 최적의 운동공간을 조성하고 있어 현재까지 이 부분이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했다. 벌써 JW 메리어트 호텔이 오픈한지 23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오픈 당시 10월 ASEM, 2002년 월드컵 등을 앞두는 등 서울에서 개최될 여러 국제 행사에 맞춰 개관한 JW 메리어트 호텔은 센트럴시티와 함께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부상될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특1급 호텔 예식 허용으로 웨딩 시장 각축전


80년 정부가 국민허례허식 행위금지 규정에 따라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을 개정, 호텔 예식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리고 14년만인 94년 7월 특2급 호텔에서의 예식을 허용했는데 호화사치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특1급 호텔에 대해서는 여전히 예식을 금지했다. 그러다  99년 8월 전면 자율화 되면서 2000년 웨딩 시장의 경쟁이 본격화 됐다. 국내 예식 시장은 특1급, 특2급과 전용웨딩홀, 일반예식장 등 3각 구도를 그리는 가운데 동급 호텔 간에도 마케팅 전략에 따라 유치건수와 질적 서비스가 현격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급호텔의 경우 고급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결혼식을 유치한다는 내부방침을 정했는데 도심 외곽에 위치한 스위스 그랜드 호텔과 워커힐 호텔 등은 주변 자연환경을 부각시켜 야외 결혼식 등도 추진 중이었고 도심에 있는 롯데와 프라자, 힐튼, 신라호텔은 편리한 교통을 강조하며 경쟁호텔간 차별화를 위한 치열한 이미지 경쟁을 벌였다. 프라자호텔과 조선호텔은 시청 앞 지리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명당론을 부각, 고객들을 끌어들이고 신라, 하얏트 인터컨티넨탈, 르네상스 호텔은 예식이 일반 연회행사보다 외형은 크지만 수익성이 낮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특1급 호텔들은 일반 예식장과 달리 품위있고 격조높은 시설, 넓은 주차장, 충분한 예식시간, 고도의 서비스, 바가지 상혼이 없는 점 등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수준 높은 예식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면서 성장세를 이끌어 갈 것으로 보였다. 반면 특1급 참여로 오히려 시장 볼륨이 커져 가격 경쟁력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특2급 호텔과 고유의 개성 살린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고급 웨딩홀들이 경쟁에 돌입했다.

 

 

 

2000년의 Hospitality People. 금탑산업훈장 수훈한 신라호텔 이영일 대표


제27회 세계 관광의날 기념식에 관광업계 인사로 4번째로 신라호텔 이영일 대표가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공학도 출신인 이 대표는 1973년 삼성그룹에 입사 후 호텔신라를 신축할 때 공사 담당으로 일하다 개관 후에도 그대로 호텔로 남아 호텔경영자로 변신한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호텔업에 대한 일반 시각이 좋지 않아 호텔에 취직했다하니 안됐다고 하거나 적극적으로 집안, 선후배나 친구들이 말렸다고. 하지만 업게 전문가에게서 관광업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듣고 마음을 굳혀 호텔업계 생활을 시작한 이 대표는 많은 VIP들을 성공적으로 맞이했는데 특히 카터 대통령은 신라호텔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본국에 돌아간 후 감사장을 보내왔으며 호텔 직원들을 미 8군 영내로 초청해 파티까지 열어줬다. 이때부터 국빈 호텔로 불리는 신라호텔의 역사가 시작됐는데 이와 함께 신라호텔 명성의 기초를 다지게 된 것으로 바로 이 대표가 유치한 미스 유니버스 대회로 전 세계적으로 큰 홍보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금탑산업훈장 수훈 소감에 대해 저체 관광인들을 대신해서 받은 상이라고 겸손한 소감을 전한 이 대표는 많은 대형행사를 앞두고 관광업의 역할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금탑산업훈장이라는 상징을 통해 격려하려는 정부의 의지라는 해석을 더했다. 
현재 이영일 대표는 호텔전문경영인협회 활동을 하며 자문 역할을 맏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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