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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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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덕의 스페셜티 커피 이야기 10] 산업으로서의 커피

내가 커피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의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한 나라의 커피산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이렇게 낙후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충격과 분노는 그 후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가고 있는 방향성을 지탱해주고 있다.
커피를 처음 시작한 1999년, 우리나라 커피산업은 산업이라 불리기에 어떤 규모나 양상도 갖추지 못했었다. 그 해에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에 첫 숍을 오픈했었고, 한국은 1997년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여전히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D’사가 커피시장 점유율 95%를 기록하며 독과점 체제를 유지했던 걸로 기억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특급호텔의 대부분이 ‘D’사의 커피를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호텔에서 이 회사의 제품은 찾아보기 힘든데 어찌 보면 큰 변화이다. 그 때 문제점 중 하나는 호텔의 커피 관련 식음 파트장이나 호텔의 총지배인들이 커피를 거의 모른다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이 수 십 년간 커피를 다뤘기 때문에 커피를 잘 알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 필자도 커피를 안다고 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어쨌든 그 시기 우리나라 커피 산업 분야는 전 분야에 걸쳐 문맹의 수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커피를 산업이라고 인식하기에는 커피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지금도 대부분 커피업계 종사자들조차 커피를 산업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그저 커피 맛에만 집중하는 좁은 시야를 보인다. 그동안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의 커피 산업이 어떻게 역동적으로 변해왔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 아니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커피가 석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무역품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커피인들이 알고 있지만 이 수많은 물동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 또한 이러한 시스템이 어떻게 정확히 작동하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동안 전 세계를 다니면서 어렴풋이 귀동냥으로 듣고, 많은 다국적 기업을 방문해보고 느낀 것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으로 인식했을 때는 더욱이 그렇다.
스위스의 ‘ECOM’, 독일의 ‘노이만’, ‘볼카페’ 등 3~4개 회사가 전 세계 커피 70~80%의 물량을 움직이며 거대한 큰 손으로 불리고 있다. ICO(유엔산하의 국제 커피 기구)에 의하면 2014년 전 세계 커피 소비량은 60kg백 기준으로 1억 4930만 백이다. 이는 895만 8000톤의 물량이다. 2014년 한국의 소비량은 12만 톤으로 10위 권 정도에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등수는 매우 높은 것 같지만 전 세계 물량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은 커피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지만, 한국처럼 커피가 전혀 생산되지 않은 스위스는 100년 이전부터 전 세계의 커피 물량을 좌지우지하는 다국적 기업을 가지고 있고, 스위스의 네슬레 또한 커피를 통한 막대한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7~8년 전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독일의 노이만에 소속돼 커피 농업학자로 25년 간 아프리카에서 일하다 은퇴한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케냐와 탄자니아에 이르는 광활한 아프리카 내륙의 커피 농장들을 스쳐왔다. 그야말로 스쳐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높이 솟은 킬리만자로의 우루피크 봉오리를 보면서! 앞서 언급한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커피 관련 전문 농업학자를 고용해 아프리카의 오지인 우간다, 부룬디, 탄자니아, 케냐 등에 연구소와 사무실을 두고 커피에 대한 비즈니스를 이어왔다. 우리가 근접하지 못할 위치에서, 국내 커피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부터 말이다. 최근에 이 다국적 회사들은 브라질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커피 농장 또한 막대하게 사들이며 또 다른 변화를 일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거대 인스턴트커피 회사인 ‘D’사도 미국의 다국적 식품회사인 ‘C’사가 50%의 지분을 가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분에 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또한 다국적 기업 ‘S’사도 50%의 지분을 가지고 한국의 대기업과 손잡고 로얄티와 이익의 반을 회수하며 그들의 커피를 팔고 있다. 얼마 전 다국적 기업인 미국의 ‘S’사의 아시아 지역 영업이익률이 34%에 달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영업이익률 34%라니 경이적인 숫자 아닌가? 이는 곧 영업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간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파트타임 형식으로 고용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한국의 커피 산업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커피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미국과 일본은 대다수의 숍이 본사 직영체제이고, 영국은 작은 커피숍의 창업과 운영이 모범적으로 시행되며 다국적 커피 회사에 대해 경쟁력을 꾀하고 있다. 미식 국가로 떠오른 호주는 스타벅스가 끝내 철수할 정도로 로컬 커피숍들이 잘 운영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커피 프랜차이즈 산업에 뛰어들어 기형적인 모습을 띈다. 대체적으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이들은 퇴직 후 퇴직금과 약간의 대출을 받아 손쉽게 커피 프랜차이즈 업장에 뛰어든 스몰머니 홀더들이다.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상당수의 회사들은 수많은 은퇴자와 영세한 이들의 삶의 질을 담보로 회사의 부를 축적해나고 있다.
가맹점포가 적자를 보든 그로 인해 삶이 망가져도 회사는 크게 관여치 않는다. 그저 신규 가맹점주를 데려오면 수당을 주는 유인책으로 점포수를 늘이고, 경쟁회사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 업장수를 확장했는지를 질타하는 철학 없는 오너만 있을 뿐이다. 자영업을 쉽게 생각하는 자영업자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무책임한 프랜차이즈 산업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며, 일부 언론사들의 광고 수주를 위한 프랜차이즈 산업 칭찬 릴레이식 과대 홍보기사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사회계층간의 갈등과 위화감,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해치는 큰 문제이다. 산업이 존재해야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산업에 소속된 사람들과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업과 사회에 소속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산업이 어떤 효용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해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는 생산에서 벌어들인 부의 속도보다, 자본이 자본을 벌어들이는 속도가 빠르고 크다는 데 있다고 한다. 자본의 탐욕이 지나친 세상이 됐다.
지난해부터 필자의 작은 공장이 있는 시골에 3번째 공장을 건설 중에 있다. 물론 공장이라고 불리기에는 아직 영세한 규모지만. 공장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어온 ‘P’사의 로스터기를 수입해 생산시설을 장착하고 있다. 이 시설만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또한 생산량의 증가로 그동안 수작업으로 포장 해왔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전자동 포장 머신을 설치해야 하는 시기가 왔는데, 이 또한 수억대에 달하는 이탈리아 포장기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테라로사 모든 업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미국산이며 한 대의 가격이 웬만한 자동차 한 대 값에 버금간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상업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사용하고 있는 머신 만해도 수십 대이다. 2만 여개가 넘는 한국의 커피전문점에서 사용되는 에스프레소 머신 만해도 액수로 보면 적지 않은 산업이다. 또한 상업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커피 그라인더 또한 이탈리아 혹은 스위스 상품이 주를 이룬다. 부수적으로 쓰이고 있는 제빙기는 일본제품이 시장을 대다수 점유하고 있고, 정수기와 온수탱크, 심지어 커피를 내리는 주전자와 커피를 담는 서버, 드리퍼, 드립페이퍼까지 수입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때는 도자기의 나라였던 한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카푸치노 잔과 아메리카노 잔, 그리고 드립커피 잔까지 수입산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설픈 국산주의자가 되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단지 커피가 커피 그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관련된 산업이 부수적으로 훨씬 많다는 것을 얘기 하고 싶을 뿐이다. 근래 들어 전 세계적으로 커피 산업이 재탄생되고 있는 시점을 맞아 독일의 로스터기 제작사와 이탈리아의 제조사들은 창업 이래 가장 큰 호황을 맞고 있을 것이다. 에스프레소 머신 제작사와 다른 여타 관련 기구를 만들어 내는 회사들은 향후 10년 이상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갈 것이다. 물론 세상은 흥망성쇄가 있는 것 이지만, 가까운 곳에서 재편돼가는 커피 산업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지 못하겠다.
필자가 커피를 시작하면서 처음 느낀 것은 ‘어떻게 하나의 산업이 이렇게 낙후될 수 있을까?’였다. 한국은 역동성의 저력을 발휘하며 빠른 속도로 세계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지만 이는 소프트웨어에만 국한됐다. 하드웨어인 시설이나 설비 산업 발전은 아직 미미하다. 커피를 단순하게 먹고 마시는 하나의 외식업이나 카페로 보기 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커다란 장치 산업까지 볼 수 있는 안목과, 그것의 발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뛰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를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무엇이 필요한 지, 정부가 먼저 관심을 가져 줘야 할 것이다. 커피업에 종사하는 수 십 만의 자영업자와 관련 장치 산업들이 국가의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또한 비록 아주 작은 곳에서 커피숍을 할지라도 100년을 살아남는다면 그것이 국가의 작은 경쟁력임과 동시에 우리 삶의 경쟁력이라는 자부심을 우리 모든 커피인들이 가졌으면 한다.

<2015년 7월 게재>



김용덕
(사)스페셜티커피협회 회장

김용덕 회장은 강원도 강릉이 커피 도시로 변화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 테라로사 커피의 대표로 (사)스페셜티커피협회 활동과 함께 국내에 올바른 커피 문화 전파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kyd78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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