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맡김차림의 시대다. 1~5만 원대의 중저가 메뉴부터, 20~50만 원, 혹은 그 너머를 호가하는 메뉴까지 이제는 셰프가 그날, 혹은 시즌에 맞춰 메뉴를 선보이는 맡김차림은 어디에서나 무궁무진하게, 창의적으로, 퀄리티 있게 만나볼 수 있다. 이제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다이닝 문화의 주류적인 흐름인 것이다.
이에 기존에는 스시와 일식에 국한됐던 맡김차림은 이제 프렌치, 한식, 퓨전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된 가운데 한국인의 회식과 모임을 책임졌던 중식도, 밥을 먹은 뒤 간단하게 즐겼던 커피와 디저트까지 맡김차림의 대열에 합류하며 인기가 식지 않는 추세다. 이번 지면에서는 맡김차림의 흐름을 읽으며, 풍부한 맡김차림 다이닝의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오마카세’라는 단어와 혼용되고 있으나, 본 지면에서는 한글 단어인 ‘맡김차림’으로 표기합니다.
무엇이 먹고 싶으세요? 다 준비했습니다!
맡김차림은 발전 중
집 밖을 나서면 수많은 다이닝 업장이 있다. 메뉴판을 펼쳐보면 수많은 메뉴들이 있고, 코스들이 있다. 무엇을 선택하기도 어려울 만큼 퀄리티 있고 맛있는 메뉴들이 고객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물론 가기 전에 어떤 메뉴를 먹을지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가자마자 ‘이것 주세요.’하고 메뉴를 고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메뉴판 앞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시키다 보면 이 매장에서 가장 맛있는, 혹은 시킨 메뉴 외에도 다른 메뉴를 함께 먹어보고 싶어진다.
주방의 상황도 비슷하다. 어렵게 찾아온 고객에게 셰프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업장 특유의 개성을 고객이 느끼기를 바랄 것이다. 혹은 자주 찾아온 고객을 대면한다면 그날 들어온 식재료로 만든 메뉴, 제철을 맞이한 식재료로 풍미를 극대화한 메뉴를 통해 고객에게 좀 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도 싶을 것이다. 맡김차림은 이러한 배경에서 태어났다.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오마카세’라고 불렸던 맡김차림은 기존에 스시와 일식 전반에서 통용되는 단어였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로, 그날 고객이 셰프에게 모든 메뉴를 온전히 맡긴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셰프는 자신 있는 메뉴, 혹은 시즌 메뉴로 고객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고 가끔은 즉석으로 만든 음식을 내어주며 고객 곁에서 알레르기가 있는 식재료나 먹지 못하는 식재료를 물어본다. 오로지 셰프와 고객만이 참여하는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인 셈이다.
한국에 본격적인 맡김차림 문화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다. 질좋은 재료와 비싼 금액에 부응하는 퀄리티 좋은 서비스, 훌륭하며 안정적인 셰프의 실력이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포문을 연 것은 호텔 일식당이었다. 모리타 마츠미 셰프가 이끄는 신라호텔의 아리아께와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도쿄 긴자의 스시 큐베이 셰프를 역임한 마츠모토 미츠호 셰프의 웨스틴 조선 서울 스시조를 시작으로, 로컬에서는 박경재 셰프의 스시 코지마, 강남의 터줏대감인 스시타츠 등으로 저변이 넓혀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맡김차림을 즐기는 고객층은 대체로 연령이 높았다. 가격이 비싼 데다가 대부분 호텔에 위치해 있어 호캉스가 보편화된 지금과 달리 젊은층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현재도 맡김차림을 검색하면 ‘맡김차림 예의’, ‘오마카세 예절’ 등의 검색어가 등장하는 만큼 맡김차림을 취급하는 업장의 문턱은 높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성이 있는 음식이라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겠다는 문화가 확산되며, 젊은층이 유입되는 등 맡김차림에 대한 수요는 가면 갈수록 높아져 가는 중이다. 2022년 1월 경 트렌드모니터에서 조사한 <고급 레스토랑(파인다이닝, 오마카세 등)관련 U&A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경우 70%가 ‘맛있고 특별한 음식이라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으며 30대가 59.2%, 40대가 52.0%로 젊은 세대와 더불어 중년에도 수요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특히 고급 레스토랑 방문 경험은 10명 중 4명으로, 대표적으로 파인다이닝과 맡김차림이 선호되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고객과의 가장 적극적인 소통
그리고 차별화
이러한 맡김차림 속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커피와 디저트 맡김차림으로 유명한 펠른의 박성호 대표(이하 박 대표)는 “맡김차림이 외식의 트렌드를 이끄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을 소비하는 데 정당성이 부여가 된다는 점이다. 매 시즌마다 똑같은 음식이 아니라 업장에서 선보일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음식을 선보이기 때문에 고객들로 하여금 내 시간을 아깝지 않게 색다른 경험, 퀄리티 높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기분을 함께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커스터마이징한 요소가 중요하다. 고객이 무슨 음식을 원하는지, 똑같은 음료라도 추가할 수 있는 옵션이나 뺄 수 있는 옵션을 그 자리에서 물어보며 소통하는 것이다. 프라이빗한 장소에서 나를 위해 준비한다는 그 느낌이 차별화 요소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맡김차림을 찾는 고객들은 오너셰프에게 지정된 메뉴 외에도 새로운 메뉴가 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있다면 기꺼이 추가 금액을 지불하기도 한다. 또한 블로그 리뷰나 유튜브 리뷰 등을 보면 ‘취향에 따라 식재료를 빼고 더해줘 대접 받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는 이야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박 대표가 이야기한 커스터마이징의 긍정적 요소다.
차별화는 맡김차림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다. ‘믿고 맡긴다’는 뜻에 부합하는 숙련된 요리 솜씨는 당연하고, 온고잉 메뉴보다 개성이 살아있는 메뉴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한 셈이다. 더 플라자 호텔 도원 츄셩뤄 수석셰프(이하 츄 셰프)는 “맡김차림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에 부응하는 맛은 물론이고 서비스도 확보돼야 한다. 더불어 고객들은 퀄리티 좋은 음식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지만 만족을 얻지 못한다면 재방문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각국의 음식들을 충분히 맛봤기 때문에 비교 대상도 폭넓고 다양하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그 업장만의 개성이 잘 갖춰져야 한다. 도원의 양장따츄 같은 경우 코리안 차이니즈 스타일을 벗어나 글로벌한 차이니즈 푸드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중식하면 떠오르는 로브스터, 죽순 등은 당연하고 글로벌한 식재료인 화이트 트러플, 캐비어 등을 활용해 색다른 요리를 선보이며 전통의 맛을 지키며 글로벌한 고객들도 타깃하고, 도원의 중식을 익숙하게 느껴왔던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닌 각 현지에서 주민들이 소비하는 특수한 부위나 입소문이 난 재료들을 확보하기도 했다.”고 강조하며 차별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 음식의 사연은요….
테마와 콘셉트의 중요성
더불어 명확한 콘셉트와 스토리텔링도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이라고 해서 업장만의 시나리오를 만들 필요는 없다. 다만 무조건 완성도 있는 요리, 수십 년 경력의 모 셰프가 만드는 요리 등의 비교적 단출한 이야기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소리다. 마포에 위치한 ‘리북방’은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순대 맡김차림 업장이다. 오너셰프의 외할머니가 함경도 출신인 점을 바탕으로 이북 음식을 선보인다. 마장동에 직접 들러 돼지 피를 구매하고 막걸리 뚜껑을 잘라 손가락으로 소를 채워 순대를 만들었던 기억을 살려 함경남도 차호의 음식을 내는 특이한 콘셉트로 정평이 났다.
박 대표는 “스토리 회의, 콘셉트 회의에 많은 시간을 쏟는 편이다. 그때그때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리스타팀과 디저트팀이 추구하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메뉴에 많이 투영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츄 셰프는 “만약 강원도 지역에서 가져온 음식이라면 메뉴와 기물도 강원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맞춘다.”며 “스토리와 콘셉트를 잡고 멘트도 그에 따라 맞춘다. 중식 같은 경우에는 카운터석이 아니라 룸으로 들어가서 셰프가 즉석으로 서빙을 하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더 재미있게 진행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더불어 음식을 직접 만든 셰프가 설명을 해줘야 진정한 ‘맡김’이 성사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렇듯 맡김차림은 고객들이 음식을 만든 셰프를 온전히 믿고 맡기는 구성이니 만큼, 완성도 좋은 음식은 당연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와 콘셉트를 선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 업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찾아갔는데 이름만 맡김차림이고 늘 똑같은 메뉴, 혹은 큰 차별화가 없는 메뉴라면 다시 찾을 필요가 없는 터, 많은 업장들이 고유의 콘셉트를 고민하고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정확한 맛 선사하는 호텔의 맡김차림
고급스러운 다이닝의 대명사로 불리는 호텔은 맡김차림을 어떻게 선보이고 있을까? 사실 아쉽게도 대부분의 호텔에서는 일식을 비롯한 스시 맡김차림이 대다수로 튀김, 파스타, 디저트, 차 등 로컬의 많은 맡김차림 업장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임대업장을 통해, 혹은 자체적인 연구를 거듭해 로컬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하이엔드 맡김차림을 선보이는 업장도 단연 돋보였다. 이처럼 호텔은 느리지만 호텔만의 개성이 살아있는 맡김차림을 연구하며 침착하고 정확하게, 고객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비스타 워커힐 서울 명월관은 한우 맡김차림을 만들었다 ‘대령숙수’라는 이름으로 선보이는 맡김차림은 워커힐의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셰프들이 구성한 한상을 맛볼 수 있어 창의적인 요리로 입맛을 돋운다. 오랜 연구와 고심 끝에 중식 맡김차림도 나왔다. 더 플라자 호텔의 중식당 도원의 양장따츄가 그것이다. 하루에 3팀만 받는 양장따츄는 2020년 오픈 이후로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 국내외 미식가와 여러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성업 중이다. 츄 셰프는 “양장따츄는 현장의 셰프들이 그동안의 경험과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최적의 요리를 선보이는 코스다. 2020년 그랜드 오픈 뒤 감사하게도 많은 고객들이 찾아주고 있고, 예상했던 것보다 예약률과 재방문율도 높다.”며 “호텔 다이닝은 10년이 넘어야 프라이팬을 잡는,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호텔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객이 신임하고 맡길 수 있는 맡김차림을 선보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 44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 중식당인 도원이 나서서 중식 맡김차림을 선보인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더 플라자 호텔에서 최초로 중식 맡김차림인 양장따츄를 선보였다. 소개 부탁한다.
올해 11월 2주년을 맞이하는 양장따츄는 ‘셰프에게 믿고 맡기다’라는 뜻의 중국어로, 셰프들이 직접 ‘제철, 지역, 고급, 희귀, 특수’라는 총 5개의 테마 콘셉트를 가지고 전국 각지의 산지를 다니며 선별한 최고의 식재료를 직공수해 선보이는 호텔 최초의 중식 맡김차림이다. 뛰어난 식재료를 기반으로 44년 간의 역사를 간직해온 도원의 셰프들이 선보이는 중화 미식과 더불어 아름다운 플레이팅, 노련하고 완성도 있는 서비스, 그때그때 제철 재료에 따른 콘셉트와 스토리텔링까지 선보이는 코스다. 전채, 스프, 찜, 볶음, 구이, 조림, 식사, 디저트 순으로 총 7종의 메뉴가 제공되며 구성은 매일 식재료 구성에 따라 변경된다. 또한 프리미엄 와인과의 심도 깊은 페어링도 특징이다.
도원은 이미 중식 단품, 코스로 정평이 나있는 업장이라 더욱 새로운 시도로 느껴진다. 맡김차림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면 음식도 함께 발전한다. 발전이 지속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무한경쟁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오너셰프들이 다양하고 실험적인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요리라는 것은 셰프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는 30~40% 정도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는 좋은 식재료를 통해 어떻게 요리해 내느냐가 관건이고, 가장 중요한 재료에 승부를 걸자는 마음이었다. 또한 도원은 앞서 언급했듯 44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중식 다이닝에서 빠질 수 없는 위치를 점하고 있는 공간이지만, 심화된 경쟁시장에서 도원이 여전히 최고로, 그리고 미래에도 최고로 남을 수 있는 진짜 비법이란 좋은 식재료의 수급, 그리고 중식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는 것이라 여겼다.
최초로 중식 맡김차림을 기획한 만큼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과정은 어떻게 준비했나?
2017년부터 셰프 헌터 프로젝트를 통해 양장따츄의 밑그림을 기획했다. 매주 쉬는 날을 반납하면서까지 좌에서 우로,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4회씩 교차로 지역의 신선한 재료들을 살펴보고 들, 산, 논, 바다로 나눠서 조사했다. 조사를 하면서 시중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지만 산지에서는 입소문으로 소비하는 재료들을 알게 됐다. 소량 생산일 뿐더러 애초에 팔려는 물건이 아니라서 유통 과정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직접 가서 구매하는 것이 최선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식재료들을 굽고, 찌고, 튀기면서 재료들마다 어울리는 조리 기법을 기록하고 제철 식재료, 소스 등을 완벽하게 데이터베이스화 했다. 현장 셰프들이 보면서 확인할 수 있게끔 말이다. 지금도 도원은 셰프와 구매담당자가 함께 다니며 당일 출조한 재료들을 현지에서 직접 공수한다. 셰프는 요리에 사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기획자는 스토리를 어떻게 입힐 것인지, 구매 담당은 식재료를 최대한 신선하게 유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산지의 생산자와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사용해 고객에게 최대한 빠르게 소개하고, 경험케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보통 맡김차림은 일식에서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중식에서 선보인 이유가 있다면?
중식이라고 하면 재빠르게 팬으로 볶고 흔들어서 조리하는 러시안식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시선도 있고, 맛은 있는데 프렌치 등 서양요리에 비해 미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시선도 있었다. 그래서 중식의 향과 메뉴는 살리되 장르를 다양하게 하자는 데 목적을 뒀다. 장르는 자유롭지만 먹었을 때 이것은 중식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봄에는 갈치를 찌거나 튀겨서 비치 완두 소스에,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이 나도록 청양고추 소스를 써보기도 하고,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원한 비치색을 살려 여름이라는 테마와 함께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외 고객들이 맛있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을 넣어 글로벌한 요리로 거듭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중식하면 생각나는 중국 전통주나 고량주보다는 프리미엄급 와인을 페어링해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호텔에서 맡김차림을 선보였을 때 얻는 시너지 효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호텔은 호스피탈리티산업의 정수로서 하이엔드 퀄리티 서비스를 지향하는 장소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시대는 변하고, 발전해가고 있고, 호텔이 고급 서비스를 선사하는 고급 인력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매출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레스토랑이 남아있다는 것은 수익이 나야 한다는 뜻으로, 호텔의 브랜드 가치를 지치는 제대로 된 값어치의 음식을 내면서 고객을 호텔로 이끌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호텔 레스토랑은 코스의 가짓수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오히려 셰프가 주력 메뉴에 집중, 각각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품 메뉴를 줄이고 오히려 고객이 메뉴판에 없지만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는 만들어줄 수 있는 정도로 남겨두면 수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호텔은 프라이팬 하나 잡는 것, 요리를 하나 만드는 것에도 수많은 시간이 걸리는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야 말로 진정한 맡김차림을 선보여야 할 것이다. 맡김차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신선함, 계절감을 바탕으로 가치가 있는 식재료를 기술이 뛰어난 셰프가 해낼 수 있는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맡김차림을 구가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는 스시를 위주로 눈앞에서 쥐어주는 일종의 오픈 카운터 스시 형식을 모두 오마카세로 소개, 앞다퉈 경쟁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맡김차림은 눈앞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 형태가 아니라, 신뢰와 명성에 그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오랜기간 신뢰와 명성을 가진 도원이 양장따츄를 론칭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알려달라.
국내 최초로 론칭한 만큼 사명감과 더불어 지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 또한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식재료 연구 개발과 스토리텔링 테마 콘셉트도 지속적으로 개발, 함께 교합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미쉐린 스타셰프와의 컬래버레이션 갈라 디너, 해외 유명 셰프 초청, 다양한 명차와 음식의 조화를 콘셉트로 삼은 양장따츄 프로모션을 기획 준비 중에 있다. 최종적으로는 코스를 아예 없애 원코스 다이닝으로 선보이는 게 목적이다. 매일매일을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도원을 넘어 ‘The One’이 될 예정이니 앞으로도 많은 기대 바란다.
이것까지 만든다고요?
로컬 다이닝의 색다른 맡김차림
로컬에서는 다양한 변화에 맞춰 색다르고 참신한 매력의 맡김차림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호텔이 하이엔드를 구가하는 맡김차림을 내놓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로컬에서는 연령층 상관 없이 즐길 수 있는 맡김차림을 내놓으며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예약이 티켓팅에 가깝다는 ‘바위파스타 바’는 타임 당 1팀씩 예약을 받고 있으며 생면 파스타를 눈 앞에서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접시 요리라는, 집에서도 자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파스타를 시즌 별로 바꿔 선보이며 예쁜 비쥬얼로 일약 SNS 스타덤에 올랐으며, 특히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개인 SNS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포에 위치한 ‘쿠시카츠쿠시엔’은 일본식 튀김인 쿠시아게를 맡김차림으로 선보이는 업장이다. 일본식 튀김하면 보통 덴뿌라를 떠올리기 쉽지만, 쿠시아게는 꼬치에 재료를 꽂아 튀기는 꼬치 튀김 음식이다. 코스는 총 5가지로 제공되며 셰프가 그날의 신선한 식재료와 주문하는 고객의 성향에 맞춰 내어준다. 10만 원대를 훌쩍 뛰어넘는 다른 쿠시아게 업장과 달리 저렴한 가격을 구가하고 있어 문턱이 낮다.
씹는 것을 넘어 마시는 것으로 맡김차림을 구성한 공간들도 있다. 알디프 티 바는 티 맡김차림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이어트나 힐링, 건강 등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지면서 마음을 릴렉싱 시키고 2시간 정도 시즌 별 티 코스를 맛보며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며 유명세를 탔다. 테마에 맞춰 매 시즌 인테리어를 바꾸고, 티 코스가 진행되는 동안 맞춤형 음악 선곡, 스토리텔링을 맛보며 즐길 수 있다. 밀크티, 셔벗, 칵테일 등으로 티 바리에이션을 넓히며 다양한 고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곳의 이은빈 대표는 2022년 1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기름을 비롯해 마늘, 후추, 할라피뇨 등 차에서 쓸 법하지 않은 재료를 쓰고, 티코스를 즐기는 2시간 동안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매 시즌 티마스터들이 고민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펠른은 시즌 별로 커피와 디저트를 페어링한 맡김차림을 선보이고 있다. 식스센스 등 방송에도 자주 출연한 펠른은 2019년 맡김차림이 이렇게 대중화되지 않았던 당시, 커피 맡김차림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각 분야의 요식업 전문가들이 모여 콘셉트 회의를 통해 메뉴를 구성, ‘식후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커피가 중심이 되는 맡김차림을 선사한다. 아침정원, 정오의 들판, 새벽의 꽃잎 등 감성적인 메뉴 터치와 오크통에 숙성시켜 알콜은 없지만 위스키 향이 나는 위스키 더치 커피 등 참신한 메뉴를 통해 고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박 대표는 “일반적으로 커피 맡김차림이라고 하면 20대 커플들이 자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30대, 40대들도 자주 찾는다. 색다른 가족모임의 장소로도 채택되는 편”이라며 “특히 바리스타의 섬세한 응대와 조명과 조용한 분위기가 살아있는 공간이라 비즈니스 미팅 장소로도 활용된다.”고 귀띔했다.
여러가지 음식 통해
업장이 선사하고자 하는 가치 보여주는 맡김차림
그렇다면 이러한 업장들이 이토록 맡김차림에 주안점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코로나19 이후로 나에게 투자하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가 주고객층으로 떠오르면서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 인증을 하는 문화가 강해지기도 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MZ세대가 찾을 때도 있지만, 그들이 주 고객층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30대와 40대 손님들이 많이 찾을 뿐만 아니라 중년층으로 저변이 넓혀져 연령층은 확대됐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우리 공간의 브랜드 가치를 알리고, 업장의 음식을 맛보게 해 고객들에게 보다 뜻 깊은 경험, 브랜드의 신뢰감을 심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앞서 츄 셰프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원 다이닝 레스토랑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말이다. 박 대표는 “맡김차림은 펠른의 종착지가 아니라 길목이다. 펠른의 커피를 알리고 디저트를 알리는 데 목적을 둔 것”이라며 “명품 브랜드가 레스토랑을 내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식음료장이야 말로 브랜드 경험을 경험케 하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설명했다. 의식주 중에 가장 친근한 것은 어떻게 보면 식의 경험이다. 안부인사가 주로 밥을 먹었나, 먹지 않았나는 말로 통용되는 것을 봐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국내의 맡김차림은 퀄리티 높은 음식과 각자의 특성을 조화시킨 업장으로, 트렌드가 아니라 업장이 추구해나가는 방향의 길목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물론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곳도 많은 만큼 테마, 스토리, 식재료, 셰프의 솜씨, 독창성 등 많은 요소를 고민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최근, 앞으로는 다수의 고객들이 항상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비싸더라도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는 데 주안점을 둘 가능성이 높은 바, 앞으로도 맡김차림은 열풍이 아니라 다이닝의 한 문화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최초로 커피 맡김차림을 선보인 곳으로 알고 있다. 소개 부탁한다.
펠른은 커피와 디저트 맡김차림을 시즌마다 바꿔 선보이는 공간이다. 그때 정한 테마를 바탕으로 약 4가지에서 5가지의 커피와 디저트의 페어링을 통해 고객들에게 커피가 후식이 아니라 메인으로 느껴질 수 있게끔 만들고자 했다. 대표인 나는 기획자와 셰프, 바리스타, 디자이너를 모아 공간을 제공하고 기획했으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나 협업을 통해 고객들에게 보다 퀄리티 좋고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맡김차림을 선보이고 있다.
커피 맡김차림은 잘 들어보지 못해 신기하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커피를 좋아했다. 카페는 특별한 휴식을 준다고 생각했고, 여러 사람들과 의견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판단, 다양한 원두를 바탕으로 즐거운 소통을 맛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사실 펠른은 에스프레소 바로 시작했다. 물론 지금은 워낙 맡김차림 코스가 반응이 좋아 옆에 새로운 에스프레소 바를 내기는 했지만(웃음). 에스프레소만 판매할 때는 고민이 많았다. 에스프레소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문화에 밀려 그저 쓴 커피로만 취급되니까 새로운 시도를 해도 선뜻 마시려는 고객이 적었다. 그래서 다양한 커피를 맛보게 하고 싶어 맡김차림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다가 2020년에 맡김차림 열풍이 불고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덩달아 붐업이 됐다. 미쉐린 레스토랑의 디저트 파트에서 근무하던 셰프들과 국가대표급 바리스타들을 캐스팅하고, 카피라이팅과 스토리를 기획할 수 있는 기획자를 영입해 맡김차림을 더욱 퀄리티 있게 선보이고 있다.
시즌 별로 메뉴를 선보인다고 했는데,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디저트를 선별한다. 세계여행이나 휴식 등 그때그때 시의성 있는 콘셉트와 테마를 정하면, 그에 맞춰 디저트 팀에서 콘셉트에 맞는 디저트를 고안한다. 그러면 바리스타 팀에서 디저트를 먹어보고 조화로운 원두를 골라 커피를 추출한다. 예컨대 디저트가 단맛이 강하다면 깔끔한 맛의 원두를, 진한 맛이라면 산뜻하고 톡톡 튀는 디저트를 선별하는 식이다. 그에 따라 카피를 작성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책자를 구성, 바리스타가 고객에게 책자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읽어주고 고객들이 원하는 것에 따라 변주를 준다. 반대일 때도 있다. 원두를 정하고 디저트를 만드는 거다. 이 시즌의 원두는 무조건 이 원두여야 한다는 바리스타 팀의 강조가 있다면 말이다(웃음).
다른 맡김차림 업장과 가장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다면?
원두 로스팅부터 디저트까지 우리가 다 만든다는 점이다. 직접 원두경매에도 참여하고 식재료를 구하러 다니고, 인천에 있는 로스터리에서 로스팅을 마친다. 더불어 디저트도 OEM 주지 않고 디저트 팀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관장한다. 재료, 레시피도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시도에 겁내지 않는다. 오크통에 훈연해 위스키 향을 느낄 수 있는 위스키 더치부터 티 베리에이션도 만들며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그리고 정교한 스토리라인을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가지 못했을 때 한 번은 세계여행이라는 콘셉트를 잡아 디저트의 스토리를 만들었는데, 외국의 음식을 가지고 만들었다. 커피벨트라고 해서 원두가 출하하는 생산지가 있다. 멕시코,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나라를 지정해서 그곳의 토속 음식과 곡물, 자주 쓰는 재료를 파악해 디저트를 만들었다. 이집트는 피라미드 모형으로, 에티오피아는 디저트를 먹지 않아 그곳에서 주식으로 취급하는 곡물로 고소한 디저트를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호텔에서도 커피 맡김차림을 만들면 어떨까?
호텔의 라운지 공간은 지금도 너무 좋지만, 미팅도 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올인원 공간으로 구성하다 보니 술도, 커피도, 다이닝도 판매하는 다소 복잡한 공간이 된 것 같다. 커피 맡김차림의 좋은 점은 시간이 길어 술을 마시지 않는 고객들도 미팅하기에 적합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맡김차림을 먹고, 마시며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고객들이 많고 연령층도 생각보다 높기도 하다.
또한 맡김차림의 생명은 디테일한 오더라고 생각한다. 맡긴다는 것은 셰프에게 위임한다는 것인데, 그만큼 유연한 코스 구축이 가능하기에 고객의 목소리에 보다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예민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보는데, 호텔의 경우 퀄리티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기에 맡김차림에 보다 적극적이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열어두는 것이다.
맡김차림 시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 펠른의 계획이 알고싶다.
고객들의 재미다. 디저트나 원두 선택을 할 때도 항상 맛의 레이어를 다층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처음에 먹었을 때 이런 맛인 줄 알았는데 반전을 주고, 재미도 있고. 애시당초 맡김차림은 신선한 경험이기에 안에 재미있는 요소를 무궁무진하게 넣는 거다. 우리가 고객에게 선보이고자 하는 브랜드 메세지를 단 1개라도 가져가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맡김차림이 펠른의 정착지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펠른의 커피를, 제품을 즐기게끔 메뉴 확장 및 맛을 끊임없이 테이스팅하며 커피업계의 지평을 넓히고, 펠른이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달려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