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어둡고 밀폐된 장소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흔하게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위스키는 도수와 가격대가 높은데다가 주로 유흥업소에서 소비됐기 때문에 과거 중년 남성들이 밀담을 나누며 마시는 고급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며, 위스키를 즐기는 층도 한정돼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2016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유흥업소의 소비가 줄어들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홈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집에서 맛있고 비싼 술을 마시며 즐기는 젊은 세대가 많아졌다. 이제는 어두운 곳이 아니라 밝은 쇼케이스가 비치된 마트나 주류 전문점에서 위스키를 구매하고 마시는 것. 덕분에 자연스레 위스키 시장도 발전을 거듭했다. 연령층과 문턱이 낮아져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특히 기존에는 수입해서 마시는 위스키가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위스키 원액을 제조, 국내에서 직접 위스키를 주조하는 기업도 출현하고, 대기업에서도 증류소를 차릴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 이렇듯 위스키 시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위스키 시장은 어떤 흐름을 견인하고 있는 중일까?
코로나19가 바꿔놓은 흐름
위스키의 부활
코로나19가 여러가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꿨지만, 맥주와 소주, 그리고 와인 시장을 견인하고 있던 주류 시장의 흐름을 바꾼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음식점 판로 등은 축소됐지만, 소매 시장은 커져 타 산업에 비해 비교적 내상이 적은 편이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모임이 축소되고 영업시간 제한으로 인해 술을 마시는 시간도 줄어들자, 저절로 많은 이들이 집에서 혼자 술을 즐기는 혼술 문화가 확산됐다.
2021년 롯데멤버스가 리서치플랫폼 ‘라임’을 통해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응답자는 성인 남녀 2000명 중 총 83.6%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이전 40%에 해당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러한 위스키 열풍이 분 것이 획기적인 성과 중 하나다. 실제로 2021년 현대백화점에서는 와인, 위스키 제품 매출은 2020년 대비 418% 성장했다고 밝혀 뜨거운 열기를 예상케 했다. 최근 와인 뿐만 아니라 위스키 수입에도 주목하고 있는 신세계L&B 마케팅 김설아 파트장(이하 김 파트장)은 “홈술 문화가 자리 잡자 한 잔을 마시더라도 맛과 분위기를 즐기는 음주 문화도 확산됐다.”면서 “과거의 위스키가 어른들만의 술로 여겨졌다면, 현재는 이색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힙한 술’이 돼 수요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고, 자신의 취향을 확장하는 데는 아낌없이 금액을 지불하는 모양새다. 이렇듯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위스키의 뜨거운 열풍이 불고 있다.
주류 도매로 유명한 남대문 시장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남던(남대문 던전)’이라고 불리며 위스키를 저렴하게 구매하고, 또 여러 위스키를 둘러보는 젊은 세대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 실제로 유튜브에 ‘남대문 주류상가’를 검색해보면 남대문 시장에 위스키를 저렴하게 구매하는 방법, 술을 고르는 방법, 추천하는 상가 등 여러 정보들이 즐비하다. 국내 최초로 싱글몰트 위스키를 제작한 쓰리소사이어티스의 도정한 대표(이하 도 대표)는 “최근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위스키 소개를 위해 고객들을 직접 초청, 시음회를 열기도 하는데, 대부분 젊은층”이라면서 “위스키에 대한 궁금증도 많아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시음에도 적극적”이라고 귀띔했다. 이렇듯 위스키는 중년 남성이 주로 소비하는 ‘아재술’에서 젊은 세대도 즐겨 마시는 ‘힙한 술’, ‘전 연령이 즐겨 마시는 술’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냥 마시고 섞어도 마시고
새로 알게 된 위스키의 변화
홈술을 즐기려면 맥주도 있고, 소주도 있고, 와인도 있는데 젊은 세대가 유독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믹솔로지(Mixology)’ 트렌드와도 맞닿아있다. 위스키를 그냥 마시는 경우도 물론 많지만, 다른 주류와 섞어서 마시는 홈텐딩(홈+바텐딩) 문화 또한 무시할 없는 것. 한국주류수입협회 홍준의 고문은 “소비자 개개인의 개성, 취향을 반영한 술을 마실 수 있는 홈브루잉이나 홈텐딩이 관심을 모으는 추세”라며 “관련 도구와 기기는 물론 토닉워터, 탄산수 등 술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 시장도 급성장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주류를 믹스해서 마시는 가운데 위스키도 하이볼로 접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에 주류업계에서는 처음부터 ‘하이볼 패키지’를 내놓기도 한다. 신세계L&B는 올해 2월 에반 윌리엄스 블랙 제품과 하이볼 전용 잔을 함께 구성한 하이볼 패키지를 8000개 한정 수량으로 선보였다.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완판이 됐을 만큼 인기를 모았다. 김 파트장은 “높은 도수, 쓴맛을 선호하지 않는 소비자나 젊은 세대를 위해 하이볼을 마케팅 요소로 적극 활용하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재미있게’ 마실 수 있는 장점도 존재한다. 위스키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이러한 소비에 힘을 불어넣기도 한다고. 도 대표는 “어떤 농장에서 원재료를 재배했는지, 숙성 기간, 캐스크의 종류, 위스키의 생산자 등 위스키는 고르면서 흥미로워 할 요소가 많다.”면서 “위스키를 즐기며 위스키 자체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경우도 잦다. 스토리텔링을 재미있어 하는 MZ세대들에게 이러한 점이 어필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몇 년 산인지, 어느 지역 증류소에서 나온 위스키인지 등 이야기 나눌 부분이 많다. 이에 스토리텔링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사례도 있다. 조니워커, 윈저 등을 수입하는 디아지오코리아는 2001년부터 한정판 싱글몰트 위스키인 디아지오 스페셜 릴리즈를 출시하고 있다. 2021년에는 LEGENDS UNTOLD(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은 전설)을 테마로, 위스키 장인들이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 숙성고에서 각각 다른 전설 속 신비한 생물체들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실험적으로 8개의 스페셜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었다고 알려 흥미를 자아냈다. 이렇듯 홈술 문화의 확대로 인한 믹솔로지와 홈텐딩, 위스키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소비층에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즐겨 마시는 위스키의 종류는 어떻게 변했을까?
프리미엄 시장의 개막, 싱글몰트 위스키
기존의 위스키 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블렌디드 위스키였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보리 외에도 여러 곡물을 혼합해 만든 위스키로, 조니워커, 시바스 리갈, 발렌타인, 로얄 샬루트 등 위스키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이름이 돋보인다. 그러나 현재는 한 곳의 증류소에서 맥아(보리)만을 원료로 하는 싱글몰트 위스키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발베니, 맥켈란, 글렌피딕 등이 싱글몰트 위스키인데, 단일 증류소에서 맥아를 추출해 만드는 만큼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만들기가 까다롭고, 생산량이 적어 대체로 가격이 비싸다. 대신 희소성이 있고 증류소마다 개성적인 맛과 향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어 오픈런을 방불케 하는 구매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 1월 코스트코가 발베니 12년산을 내놓자 전날부터 길게 줄이 서있는 등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는 새로운 소비층이자 현재 주된 소비층인 MZ세대가 낯설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 이렇듯 싱글몰트의 위상이 높아지며 위스키 시장에도 프리미엄 소비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닌 모양새다. 실제로 위스키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여전히 처음에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버번 위스키나 금액대가 비교적 저렴한 엔트리급 위스키로 입문하지만, 대세를 이루는 트렌드 보다는 선호하는 위스키의 맛이나 본인의 취향에 따라 위스키를 다양하게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김 파트장은 “위스키도 와인과 같이 워낙 종류가 많고, 맛과 향이 다양하기 때문에 소비자들 또한 특정 브랜드의 위스키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며 “처음에는 다채롭게 경험한 뒤 그 뒤에 본인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도 대표는 “이전에는 몇 년 산인지, 대형 증류소 혹은 회사에서 제작한 제품인지를 확인했다면 이제는 개인의 취향에 맞게 위스키를 마시는 편”이라며 “특정 브랜드의 위스키만 고집하는 소비자는 적은 편이다. 차라리 스모키한 맛의 위스키를 즐긴다면 훈연향이 나는 위스키를 찾는 등 특징을 고려해서 선별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르면, 소비자가 선호하는 위스키 종류는 약간의 경향성을 띄고 있을 뿐 절대 다수가 선호하는 맛을 이야기 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를 통해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저변이 확대된 이유를 예측해볼 수 있다. 6년산, 12년산처럼 정량적인 요소가 이전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고유한 맛과 개성이 소비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기에 한 증류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개성을 지닌 싱글몰트 위스키가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확대할 수 있다면 아낌없이 금액을 지불하는 MZ세대가 프리미엄 시장에 우호적인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도 대표는 “프리미엄이라는 이유로 싱글몰트 위스키를 찾기도 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조니워커 골든라벨 등 한 번씩 들어본 블렌디드 위스키를 주로 접했지만, 그것보다는 가격대가 높은, 처음 들어보는 프리미엄 싱글몰트 위스키가 경험적인 측면을 확대시켜준다고 생각해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금 시작하는 국내 위스키 주조
위스키 시장이 확장되고 있지만, 확장 단계이니 만큼 개척할 영역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현재 대부분의 위스키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위스키 종주국인 스코틀랜드를 차치하고서라도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과 대만은 국내에서 위스키 원액을 제조해 위스키를 만들고 있는 것. 대표적으로 카발란은 대만의 King Car Group의 위스키 증류소에서 생산하는 싱글몰트 위스키로, 세계 주류 품평회에서 각종 메달을 수상하는 브랜드다. 국내에는 골드블루사에서 2017년부터 수입과 유통을 병행하고 있으며 위스키 마니아 사이에서도 수요가 있다.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등장해 판매량 증가를 이루기도 했다. 일본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캐나다와 함께 위스키가 유명한 국가 중 하나다. 특히 산토리의 야마자키는 국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이야기를 들어봤을 만큼 알려져 있다. 2018년에는 50년산이 세계적인 경매인 소더비 홍콩 경매소에서 약 3억 3000만 원에 입찰 되기도 하면서 저력을 과시했다.
국내에서도 국산 위스키를 만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위스키 안내서>(김성욱 저)에 따르면 한강의 발전이라고 불리는 1970년대 경제성장 이후 외국의 위스키들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국내에서도 퀄리티 좋은 국산 위스키를 제작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당시 백화양조사에서 1975년 죠지드레이크를 주조하고, 그 뒤로는 진로에서 인삼 위스키인 에릭사와 JR 위스키를 생산했다. 이때 출시한 위스키들은 위스키 원액 20%, 주정 80%의 위스키였으며, 그 뒤에도 정부의 지시를 받고 원액을 25% 가량 사용하는 위스키가 연달아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산 위스키가 수입 원액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비록 1987년에는 국내에서 제조한 몰트위스키 30%와 그레인위스키 70%를 섞은 위스키가 출시됐으나, 이미 소비자들은 몰트 원액 100%를 차지하는 수입산 스카치위스키의 맛을 본데다가,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는 처지였다. 결국 국산 위스키는 1991년에 모두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전에 좌절됐다고 해서 영원히 좌절될 수는 없는 법. 최근 들어 강하게 부는 위스키 열풍과 유흥업소에서 마시는 술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국내 위스키 시장은 이제 국산 위스키를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최초로 증류소를 설립한 후 싱글몰트 위스키인 ‘기원’을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더불어 최근 가장 핫하다고 불리는 ‘김창수 위스키’도 빠질 수 없다. 올해 4월 출시된 김창수 위스키는 국내에 단 336병만 출시, 22만 원이라는 저렴하지 않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열흘 만에 완판됐다. 도 대표는 “기존에는 국내에서 위스키 원액을 제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여러 기업들이 진출하기를 부담스러워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고객층도 넓어지고 위스키를 소비하는 공간도 달라졌다. 2020년에 증류소를 차릴 때만 해도 10년 뒤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를 거치며 위스키 시장이 더욱 확대돼 현장에서도 놀랐을 정도”라고 이야기해 국내 위스키 시장의 수요와 니즈를 실감하게 했다.
대기업도 참여
앞으로의 전망이 기대되는 위스키 시장
한편 최근 들어 대기업도 K-위스키를 위해 증류소 설립에 주력하고자 하는 모양새다. 롯데칠성은 올해 1월 기업설명회 자료를 통해 위스키 증류소 관련 경력직을 채용, 스코틀랜드 위스키 양조 장인과 계약을 맺고 위스키를 만들 수 있는 증류소 부지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내년 착공을 목표로 제주 서귀포시에 증류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신세계L&B도 마찬가지다. 한국식품연구원 등 전문가집단과 위스키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했으며, 전문 인력도 채용 중에 있다. 김 파트장은 “국내 위스키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을 대비해 증류소 설립을 검토 중”이라면서 “현재 제조 등에 대해서 정해진 내용은 특별히 없으나, 제주에 소주공장시설 및 부지를 보유하고 있어 제주에 증류소를 차리는 것을 우선적으로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전문가집단과 면밀히 고려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기존에는 왜 증류소를 차릴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종주국인 스코틀랜드와 국내의 기후 차이를 확인하면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스코틀랜드는 쌀쌀한 서안해양성 기후를 형성하고 있다. 사계절의 온도차가 적어 위스키 일정한 숙성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는 사계절이 뚜렷하며 겨울은 건조하고 여름에는 다습해 위스키 숙성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라는 시선이 있었던 것. 그러나 국내처럼 기후가 마땅치 않은 대만과 일본은 위스키 개발에 성공한 바, 최근에는 이러한 조건이 K-위스키를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다. 오히려 이를 이용해 숙성을 더 잘 마칠 수도 있다. 위스키를 담은 캐스크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위스키를 숙성시키는데,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클수록 양이 늘어나 국내의 기온에 적합한 것이다. 쓰리소사이어티스의 김유빈 과장(이하 김 과장)은 “위스키 주조 시 처음에는 3년 숙성을 계획했는데, 1년이 지나니 위스키의 숙성도가 이미 목표 수준에 다다랐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기후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는 했지만, 앞으로 K-위스키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규제 문제다. 국내 주세법상 위스키의 결감(술저장 중의 손실)량은 캐스크 당 2% 이내로 결감이 2% 이상일 시 세금을 내야하는 것. 김 과장은 “위스키는 지역별로 기후에 따른 차이가 있다. 국내는 결감량이 7~10%선이며, 우리 기후에는 맞지 않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위스키에 따른 규제를 현지의 기후에 맞게 완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K-위스키는 시작 단계다. 김창수 위스키의 김창수 대표는 이번년도 7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위스키 사업 안착에는 10년 정도 보고 있다. 현재까지 10년 대계로 첫 작품이 나왔다면 지금부터 10년 대계로 해외시장을 개척할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쓰리소사이어티스의 도 대표는 “가장 한국적인 맛을 찾는 것이 집중할 계획”이라면서 “현재도 수출을 감행하고 있지만, 더욱 글로벌한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수출 저변을 확대하고 전 세계에 K-위스키의 퀄리티를 알릴 예정이다. 더불어 어디서든 맛볼 수 있는 위스키가 아니라 국내에서만 접할 수 있는 위스키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처음 도전하는 만큼 안전한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앞선 1970~1990년대의 국내 위스키처럼 차별점이 없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오히려 개성을 강조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위스키는 맛과 개성에 집중해야 하는 음료다. 더불어 고객층 저변이 확대, 시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장인 정신을 갖춘 기업과 사업적 기반이 갖춰져 있는 대기업도 뛰어드는 만큼, 앞으로는 K-위스키가 글로벌 시장 어느 곳에 내놔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믿음직한 술이 되기를 바라본다.
국내 최초의 증류소를 차렸다. 소개 부탁한다.
2014년에 수제 크래프트 맥주 회사를 차렸다. 당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렇게 좋은 크래프트 맥주를 낼 수 있는 국가가 왜 좋은 위스키를 내놓지 못하냐는 말이었다. 본래 맥주 뿐만 아니라 위스키도 좋아했고, 이런 말을 들으니 직접 증류소를 차려 위스키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2020년 국내 최초로 남양주에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를 차렸고, 2021년에는 프리미엄 진 정원과 싱글몰트 위스키인 기원을 출시했다. 글렌리벳 증류소, 니카 증류소 등 세계 유수의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만든 41년의 경력자인 마스터 디스틸러(증류소 총괄) 앤드류 샌드, 위스키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한국인 직원들과 함께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위스키를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이었다. 현재는 맥아 추출 뿐만 아니라 맥아로 만들 수 있는 보리를 직접 재배한 뒤 위스키로 만드는, 싱글 에스테이트 위스키를 만들고자 청평 부근에 2000평 규모의 보리밭을 경작해 지난 6월 수확을 해냈다.
현재 위스키 열풍이 거세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나?
우선 현재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 자체가 욜로(You Only Live Once)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다 보니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는 확실히 투자하는 성질이 번진 것이라고 본다. 또한 2000년대 초반부터 술을 집에서 섞어 마시는 문화가 생겼고, 바도 다양하게 생겨났지 않나? 위스키만 취급하는 바도 국내에 400개가 넘는다. 칵테일바에서도 위스키를 쉽게 마실 수 있다. 이렇듯 문턱이 낮아져서, 과거에는 어둑한 곳에서 아저씨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느낌이었지만(웃음) 최근에는 2030 여성들이 증류소를 방문하고 위스키 시음회에 참석하는 등 저변이 확대됐다. 스토리가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위스키는 한번에 많이 마시는 술이 아닌 만큼, 특히 싱글몰트 위스키는 많이 생산할 수 없어 가격도 높고 프리미엄이다. 자연스럽게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누가, 어떻게, 어떤 캐스크에서 숙성했는지, 어떤 맛과 향을 갖추고 있는지 스몰 토크 하기에도 좋다. 술 자체가 이야깃거리가 되는 셈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기존과 다른 최근의 트렌드도 이와 비슷하다. 기존에는 원산지와 10년산, 20년산 등 연도를 확인하는 편이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셰리 캐스트에 숙성시킨 위스키도 유행했다. 셰리와인을 담았던 캐스트에 위스키를 숙성하니 와인을 마셨던 기존 고객들이 위스키를 접할 때 친근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수요가 높은 편이었다. 좋은 첫인상을 심어줘 위스키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요소기도 했다. 지금도 이를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것보다는 취향에 맞는지, 더 나아가 앞으로 내게 맞는 위스키 맛을 고르는 데 방점을 두는 편이다. 위스키를 즐기는 이들이 많이 하는 질문도 더 다양한 위스키를 즐기기 위한 일종의 팁이다. 예를 들어 피트향(훈연향) 강한 위스키를 마시려고 하는데, 이 위스키를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 어떤 위스키를 마셔야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이다.
국내 위스키 시장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규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위스키가 유흥업소 등 음지문화에서 유통됐기 때문에 일명 가짜 위스키를 방지하기 위한 RFID(무선주파수인식 전자태그)를 부착했다. 문제는 다양한 사람이 즐기는 문화로 자리잡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RFID를 붙이지 않으면 다른 술과 달리 바로 유통하기도 어렵고 이를 부착하기 위해 추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내 위스키가 수출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해외에서는 RFID를 붙일 필요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밖에는 증류소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밀물이 들어오면 배가 뜨는 것처럼, 하나의 흐름이 생기면 탑승하는 배도 많아지는 법이다. 그래서 대기업이 증류소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꽤 고무적이라고 본다. 긍정적인 경쟁을 할 수 있고, 경쟁을 하면서 더 좋은 품질의 위스키가 생산되기 마련이다.
위스키를 만들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궁금하다. 또한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달라.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이다. 특히 한국적인 맛을 찾기 위해 몰두했는데, 이를 위해 마스터 디스틸러와 매우 고심했다. 보통 위스키를 처음 만들 때 야마자키 스타일, 맥켈란 스타일 등 특정 브랜드의 스타일로 위스키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미 야마자키가 있고, 맥켈란이 있는데 그런 스타일의 새로운 위스키를 고객들이 선택하게 될까? 스코틀랜드,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를 거치며 각 나라에서만 즐길 수 있는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가장 소구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문에 위스키를 만들 때도 매콤한 감칠맛이 감도는 위스키를 선보이고자 했다. 한국 특유의 반주 문화를 위시해 매운 음식을 먹을 때도 결코 지지 않는, 당당함이 있는 위스키를 만들려는 것이다. 더불어 위스키 문턱을 낮추고자 했다. 전통주를 만드는 곳과 협업해 복분자주를 비롯해 약주를 담은 곳에 위스키를 넣어 숙성하는 것이다. 마치 셰리 캐스트에 숙성시키는 것처럼. 위스키를 접해보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게 뭐지?’라는 궁금증을 자아내 위스키 세계에 입문 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