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군인인 필자에게 ‘경희대 음식평론전문가 과정’과의 만남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군인’과 ‘음식’... 전혀 개연성이 없을 것 같은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고자 공부하던 중 알게 된 ‘전쟁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모든 국가들은 어떻게 하면 군인들을 잘 먹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탄생하고 진화해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음식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소재들을 중심으로 전쟁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사진 출처_ 구글
근대 전투식량의 시초
통조림(Can)
군대 음식하면 많은 이들이 전투식량(MRE, Meal Ready-to-Eat)을 떠올린다. 전투식량은 전투를 수행하는 군인들을 위해 개발된 음식으로, 휴대하기 편하고, 유통기한이 길어야 한다. 이러한 전투식량 개발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이다. 1809년 나폴레옹은 거액의 상금을 걸고, 효과적인 전투수행을 위한 식품저장과 포장방법에 대한 공모를 했다. 당시 생선을 끓여서 병에 넣고 코르크로 밀봉 후 병을 다시 가열하는 방법이 1등으로 당선됐으며, 수년 후에 이를 보완한 ‘통조림’ 기술이 개발됐다. 당시 제품명은 ‘캐니스터’였으며, 오늘날 통조림을 ‘캔’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프랑스 군대의 행군속도를 2배로 빠르게
비스켓(Biscuit)
나폴레옹은 보급에 의한 행군속도 지연을 막기 위해 병사들 각자가 식량을 휴대하도록 했다. 불을 피우지 않아도 되고, 별도의 보급부대가 필요 없이 군인들 각자가 휴대할 수 있는 음식, 특히 음식의 변질요인(추위, 더위, 습기 등)에 강한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개발된 비스킷은 나폴레옹 군대의 기동속도를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군대보다 2배 빠르게 만들어 줬다. 이후 민간에서는 다양한 풍미와 재료를 활용한 대표적인 스낵으로 발전했다.
오스트리아를 그리워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향수(鄕愁)
크루아상(Croissant)
1683년 7월 중순, 터키의 옛 전신인 오스만 제국이 오스트리아 빈을 공격한다. 같은 해 9월 결성된 유럽 동맹군은 빈을 위해 참전, 오스만 제국군을 몰아낸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제빵사 ‘피터 벤더’는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해 오스만 군대의 군기(軍旗)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을 본 떠 빵을 만들었다(당시에는 이 빵을 킵펠(Kipferl)이라고 불렀다). 1770년, 어린 나이에 루이 16세와 결혼하기 위해 파리로 온 마리 앙투아네트는 고향인 오스트리아에서 먹던 이 빵을 프랑스에서도 먹었고, 이처럼 왕비가 즐겨먹는 빵은 프랑스에서 귀족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이후 이 빵은 ‘크루아상’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모양으로 개발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대표적인 빵이 됐다.
전쟁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진한 위로 한잔
인스턴트 커피
커피믹스로 대표되는 ‘인스턴트 커피’의 시초 또한 전쟁과 관련이 있다. 1846년부터 2년간 지속된 미국과 멕시코 전쟁 때 군인들의 전투식량에는 고기, 밀가루 외에 전쟁과 죽음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럼주(Rum)가 지급됐다. 그러나 음주로 인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함에 따라 술 대신 볶지 않은 원두와 설탕이 지급됐다. 당시 미군 교범(FM)에는 ‘커피는 체력과 기력의 근원이다.’라는 문구가 등장할 정도로 커피는 전쟁 필수품이 됐으며, 남북전쟁 당시 남군은 자신들의 담배와 북군의 커피를 교환해 마시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장병사기를 위한 전투식량 개발에 관심이 높아졌으며, 초창기 전투식량 버전인 씨레이션(C-Ration) 내 건조된 커피가 포함됐고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인스턴트 커피는 전 세계로 확산이 됐다. 1938년 스위스의 Nestle社는 당시 ‘네스카페(Nescafe)’라는 분무건조 기법을 개발했고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본사를 미국 코네티컷 지사로 이전, 네스카페 커피를 생산하게 됐다. 이 커피는 이후 미군의 전투식량 품목에 선정돼 전쟁의 스트레스로부터 장병들을 위로해 주면서 네스카페가 세계인들의 인기를 얻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군의 사기를 좌우했던 젤리가 된 포도주
비노젤(Vinogel)
예나 지금이나 포도주하면 프랑스고, 프랑스하면 포도주다. 그래서 프랑스 군인들의 전투식량으로 개발된 휴대용 포도주가 바로 ‘비노젤’이다. 1954년 프랑스와 베트남간의 치열했던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작전에 실패, 베트남군에게 포위됐는데, 프랑스군을 위해 보급품 공수작전이 실시됐다. 물론 보급품에는 비노젤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일부 보급품이 적진에 떨어졌고, 비노젤 회수를 위한 특공대를 조직하니 지원자가 넘쳤다는 일화가 있다. 작은 포도주 젤리가 프랑스군 부대 전체 사기를 좌우했던 것이다.
한국전쟁 장진호 전투 당시 美 해병대의 영웅
투시 롤(Toosie rolls)
1950년 11월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는 美 해병 1사단과 당시 중공군 7개 사단간의 전투로, 美 해병대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다. 중공군에 포위돼 전투를 벌이던 해병대원이 긴급 지원요청을 했다. “지금 투시 롤이 바닥나기 직전이다. 긴급지원 바란다.”라는 요청을 접수한 해병대는 항공기를 이용해 투시 롤(초콜릿 사탕)을 낙하산으로 대량 투하했다. 원래 미 해병대의 은어로 투시 롤은 박격포탄을 의미하는데, 이를 그대로 해석한 보급부대에서 초콜릿 사탕인 투시 롤을 보내주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잘못 보낸 투시 롤은 미 해병대 용사들에게 전투식량 역할과 함께 구멍난 총알구멍을 메우는 보충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탄생시킨 음식
밀면과 아구찜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인 부산. 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을 구하기 힘들자 미군이 배식으로 나눠주던 밀가루를 이용해 면을 만들면서 개발된 음식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이다. 유독 부산에서 밀면이 유행한 이유는, 흥남 철수 등으로 인한 부산지역 피난민이 증가했고, 부산이 미국 잉여 농산물이 유입되는 주요 항구였으며, 바닷바람을 이용한 국수 건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한편 많은 피난민 유입은 새로운 식재료인 ‘아구’의 탄생을 불러온다. 당시 어부들은 그물에 아구가 걸리면 재수없다며 바다로 돌려보냈는데, 아구를 바다에 버릴 때 텀벙 소리가 들린다고 ‘물텀벙’이라고도 불렀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당시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아구가 가장 저렴하게 팔린 덕분에 피난민들은 아구를 사서 무와 파 등을 넣어 끓여 먹거나 매콤한 양념과 함께 찜을 해 먹으면서 국민요리 아구찜이 탄생하게 됐다.
위대한 장군과 훌륭한 요리는 전쟁터에서 만들어져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일찍이 “군대는 위(胃)를 가지고 싸운다.”라고 말하면서 군인들을 잘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외부의 적과 싸우기 위해서는, 우선 내부의 배고픔과 싸워야 한다. 군대를 잘 먹이는 것은 전투력 발휘와 전쟁 승리의 원동력이며, 이는 수많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18세 이상 모든 남성들에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토방위를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고 있다. 이들이 군 복무하는 동안 잘 먹고,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글_ 신진호 육군 중령
한국음식평론2급. 정회원 / 육군사관학교 56기 졸업, 경희대 음식평론전문가과정 13기 수료, 20년 넘게 전·후방 각지에서 국토방위를 위해 복무했으며, 미식을 통한 행복 나눔을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낭만감성 직업군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