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백수저로 출연한 옥수동 로컬릿의 남정석 오너 셰프에게도 국내 비건 식문화의 현주소와 미래 전망에 대해 물었다. 로컬릿은 ‘Local’과 ‘EAT’의 합성어로 ‘지역의 제철 재료를 먹는다.’는 의미를 담은 제철 채소 베이스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남정석 셰프는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에서 전국의 농부들과 소통하며 제철 채소를 이용해 요리를 하던 중 비건을 실천하는 고객들을 자주 접하게 되며 비건 메뉴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로컬릿의 시그니쳐 메뉴 ‘채소 테린’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 비건 식문화의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나?
비건 옵션이 있는 레스토랑은 예전보다 많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 외국에 비해서는 많이 대중화 되지 않았다. 비건 메뉴를 처음 시작했던 2018년쯤에는 원물 채소 위주의 메뉴를 많이 선뵀다. 하지만 요즘은 대체육이나 비건 치즈 등 다양한 비건 재료들이 유통되고 있다. 특히 SPC에서 수입하고 있는 저스트에그 비건 달걀은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비건, 락토-오보 베지테리언, 페스코 베지테리언, 플렉시테리언 등 다양한 채식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국내에서 가장 보편화된 유형은 어떤 것이라고 보는지?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이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가 많은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유제품과 달걀을 사용하면 폭넓은 메뉴를 만들 수 있고, 누구나 부담없이 비건식을 즐길 수 있는 유형이기도 하다. 로컬릿도 완전 비건 메뉴도 있지만 주로 락토오보 베지테리언 메뉴를 더 많이 판매하고 있다.
국내 채식 스펙트럼의 다양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어느 정도인가?
이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를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비건 재료를 수입하거나 제조하는 회사와 여러 번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메뉴 개발도 하고, 팝업을 통해 대중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다. 그렇게 개발된 메뉴나 소스는 로컬릿 SNS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사람들이 비건 소스나 비건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채식 스펙트럼이 식품산업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비건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은 대기업들의 비건 제품 출시를 보면 알 수 있다. 국내 유수의 식품 대기업에서 비건 시장을 공략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고, 대체육은 물론 최근에는 참치같은 해산물도 비건으로 나와 비건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다만 비건이 아닌 사람들에게 비건 제품을 어필하려면 맛과 가격 경쟁력이 충분해야하는데 아직 국내 출시된 비건 제품 중 논비건인들도 즐길 수 있는 히트 상품은 드문 것 같아 아쉽다.
해외여행이나 비즈니스 관광객들, 베지테리언 소비자의 다양한 채식 요구를 국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는 어떻게 수용하고 있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현재 국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는 다양한 비건 메뉴를 제공하기보다는 기존의 육류나 생선을 빼고 준다던지, 대체해서 변경해주는 정도의 메뉴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고 생각한다. 비건을 찾는 고객이 많다면 재료도 더 다양해지고, 비건 식재료도 구비하며 제대로 갖출 수 있겠지만, 어쩌다 한두 번 찾아오는 비건 고객을 상대하기에는 재료 수급이나 회전율을 고려할 때 고정메뉴로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건 메뉴를 만드는 조리사의 재료나 메뉴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고, 관심이 적은 것도 하나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업장 책임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비건 메뉴의 필요성과 인식이 없다면 고정메뉴로 넣기 상당히 어렵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서울미식 안내서에는 ‘채식(Plant-based)’ 카테고리가 따로 들어가 있다. 국가가 나서서 비건 시장을 키우고자 하는 이유는?
서울미식 안내서는 서울특별시에서 주관하고 있다. 당연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왔을 때 비건식당을 찾는 관광객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과 제대로 된 비건레스토랑을 소개하기 위해서 좀더 관심있게 보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외국의 비건인들은 플렉시테리언보다는 하나의 생활이 된 사람들이 많기에 그에 따른 기대치나 경험치도 높다. 그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조리법을 좋아하는지 눈여겨 보고 메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비건과 유기농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적인 정의와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비건은 식물성 재료로 만드는 모든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말하고, 유기농은 식물성 재료 중 좀 더 철저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재료다. 모든 비건인들이 유기농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인들보다 먹는것에 좀 더 철저하기 때문에 유기농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비건 메뉴들을 개발하고 있나?
메뉴 개발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로컬릿의 비건 메뉴에는 대체육을 사용하지 않고, 채소 자체가 주재료가 되는 메뉴를 주로 만들고 있다. 채소테린은 구운 채소가 주재료이고, 가지라자냐는 가지, 시금치 뇨끼는 감자와 시금치, 호박 까넬로니는 단호박이 주재료다. 그렇다고 대체육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비건보다 채소에 더 포커스를 두고 요리를 하기 때문에 채소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비건 서양식의 경우 버터나 치즈로 감칠맛과 식감을 낼 수 없는 것이 어렵다. 비건치즈나 버터가 있지만 풍부한 맛을 내기엔 어려움이 있고, 사용하더라도 수입 식재료다 보니 품절이 나는 경우가 많아 수급이 일정치 않다. 직접 만들어 써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로컬릿은 그래서 백태콩으로 만든 후무스를 주로 사용한다. 후무스는 비건소스 중 가장 완벽한 밸런스를 갖췄다고 생각하기에, 맛과 영양을 채워주며 우리의 밥처럼 모든 재료나 요리에 잘 어울리는 기본식이라 각종 소스나 요리에 응용해 사용하고 있다. 일례로 비건 가지 라자냐를 만들 때 백태콩 후무스를 사용하는데, 밀가루와 버터로 만드는 베샤멜 소스 대신 식물성 콩으로 건강한 맛을 표현할 수 있어 좋다.
비건 메뉴의 가격 책정에 있어 어려운 점이 있다면?
비건 메뉴는 기본적으로 채소 베이스의 식물성 재료다보니 비싸게 받기 어렵다. 재료비는 적게 들지만 공정상 인건비가 더 많이 들다보니 그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소비자들이 재료보다는 이 메뉴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아준다면 좀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대중적으로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 같다.
비건 식문화의 확대를 위해 기업이나 업장에서는 어떤 전략과 개선이 필요할까?
대중들이 좋아하는 인기 아이템(호불호가 없는 메뉴)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맛과 양,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마니아층이 매니아층이 아닌 대중에게 인기를 얻으려면 맛, 양, 가격뿐 아니라 마케팅 전략도 중요하다. ‘비건이기 때문에 건강한 맛’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 ‘건강하지만 맛있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또 비건이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기보다는 ‘좋은 재료로 건강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가면 좋을 것 같다. 하루 한 끼는 고기나 해산물이 없는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비건이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메뉴를 비건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너무 생소한 새로운 메뉴를 하게 되면 시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매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을 비건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비건을 한다.’는 게 아니라, ‘채소를 먹는다.’는 느낌으로 접근해야 한다. 로컬릿의 경우 가지를 먹지 않는 사람이 가지 라자냐를 맛있게 먹었다는 후기를 전할 때 정말 기분이 좋다. 어릴 때 안 좋은 추억이나 물컹거리는 식감이 좋지 않아 가지, 오이 등 특정 채소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봐 왔는데 그건 정말 그 채소의 참맛을 몰라서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차원에서도 말을 덧붙이고 싶다. 평소 많이 먹지 않는 채소를 접하려고 노력하고, 특히 제철에 나오는 채소를 찾아서 먹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봄에만 나오는 봄나물, 특히 두릅 같은 것은 아무리 하우스 재배가 가능하다고 해도 제철의 맛은 따라갈 수 없다. 제철 채소를 찾아서 먹다보면 채소와 좀 더 친해질 수 있고, 비건에 가까운 다이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샐러드 마니아로서 하루 한 끼 정도는 샐러드로 식사하는 것을 권장한다. 샐러드는 채소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고, 비건식을 지향하는 가장 쉬운 실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