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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수)

손진호

[손진호 교수의 와인 Pick] Chateau Le Puy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이 갈수록 강해지고 빨라지고 높아진다. 디지털 기술과 IT의 진보로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정확해졌다. 과연 그것들이 모두 좋은 것일까? 2000년 전의 와인은 시골의 농촌에서 농민이 별 도구도 없이 그냥 포도를 수확해 발로 짓이기고 흙으로 만든 토기에 담아 발효시켜 만든 술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와인은 온도 통제가 되는 커다란 스테인레스 스틸 통에 인공 효모를 첨가하고 당도와 산도를 조정하고 매우 정확한 기계 설비를 사용해 양조한다. 그런데, 시대적 진보를 거부하는 일부 반항아들은 어느 세상에나 있기 마련이다. 

 

 

 

400년 자연주의 와인 생산 철학을 고수하다~!


프랑스 보르도는 꿈과 동경의 와인을 생산한다. 메독(Medoc), 그라브(Graves), 소떼른(Sauternes), 생테밀리옹(Saint-Emilion), 뽀므롤(Pomerol) 등 최고의 원산지 명칭에서 생산된 정통 와인과 그랑크뤼 와인들은 19세기 이후 세계 레드 와인의 표준이 됐으며 귀족적 존경을 받아 왔다. 그 위상과 품격, 화려함의 세계가 명품 럭셔리 산업 못지 않다. 이런 와중에서, 보르도의 갸론느(Garonnes) 강을 건너 다소 한적한 시골 동네인 꼬뜨 드 프랑(Cotes de Franc) 마을의 한 양조장은 아주 특별하고도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수백 년간 자연주의 와인 생산이라는 힘겹고도 소박한 외길을 걸어왔다.

 

샤또 르 쀠(Chateau Le Puy)가 바로 그 농장이다. 아모로(Amoreau) 가문이 1610년부터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가족 농장을 경영해 왔는데, 선조들이 해 왔던 전통적인 방법을 그대로 고수하며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와인은 포도가 자라는 자연 환경(Terroir)을 순수하게 담아 개성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회사의 철학이다. 

 

 

내추럴 &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 


샤또 르 쀠 농장의 포도밭은 지난 400년 동안 단 한 방울의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 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가꿔졌다. 자연 그대로의 미생물이 살아 숨쉬는 토양이다. 25ha의 작은 규모의 포도밭은 집에서 키우는 말을 이용해 일군다. 이러한 자연주의적인 농법으로 포도나무는 스스로 저항력과 자생력을 갖게 된다. 뿌리는 보다 깊게 내리고, 보다 농축된 영양을 담은 포도알을 맺을 수 있도록 한다.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을 담은 대지와 같은 와인, 궁극의 ‘신의 물방울’이다. 친환경 농법 인증서(Ecocert)를 받은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이다. 1998년부터는 와인 양조에 있어서도 내추럴 및 바이오 다이내믹 방법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이산화황(SO2)이라는 산화방지제를 사용하지 않고, 월력에 따라 오크통을 저어 주는 등 자연스러운 양조법으로 와인을 생산해 왔다. 와인을 병에 담을 때가 되면 달의 주기 중간에(in the middle of the lunar cycle) 여과 없이 병입한다.

 

병은 코르크 마개와 왁스 씰로 보호된다. 이러한 특이한 생산 방법과 철학때문에 전 세계의 많은 애호가 층들이 이 와인을 예찬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일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21권에도 등장했다. 만화 주인공에 의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란 숲의 바닥에 깔려 있는 푹신한 대지와도 같은 와인”으로 묘사됐다. 그리고 궁극의 ‘신의 물방울’ 와인으로 선정됐다. 

 

 

샤또 르 쀠, 레드, 에밀리앙 Chateau Le Puy, Emilien


한 포도나무 그루에서 단 몇 송이만 생산하는 희생을 통해 소량 생산된 와인이다. 메를로 85%에 까베르네 소비뇽 13%, 까르므네르 2%가 블렌딩됐다. 미묘한 블렌딩 비율은 빈티지마다 다소 변경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메를로 품종이 많으면 오래 보관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와인은 우주와 자연의 기운을 활용하는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으로 생산됐기에, 장기간 보관도 가능하다. 최소 20~24개월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최적의 상태에서 장기간 보관될 수 있도록 모든 와인을 밀랍을 사용해 봉하고 있다. 보존제인 이산화황을 넣지 않았고, 맑게 하기 위한 여과 과정도 생략됐다.


필자가 시음한 2012년 에밀리앙 레드 와인은 맑은 루비 빛이 감도는 옅은 갸닛 레드 컬러가 아름답다. 농축미 있는 붉은 과일 향과 구운 아몬드, 흙내음과 버섯, 감초 향, 우엉 향이 완숙한 조화를 이룬다. 일반 내추럴 와인에 특징적인 시골 농장취나 자극적인 멘홀취는 거의 없다. 입안에서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타닌과 적절한 산도, 미디엄 바디, 순하고 자연스러운 소박미가 돋보인다. 이 명성 높은 테루아의 깊이와 특성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버섯 볶음 등 전통적인 소박한 요리나 양갈비 구이 등 복합적인 풍미의 요리 모두에 완벽한 파트너가 될 레드다. 우아함과 자연미의 작은 기적이랄까?

 

 

 

샤또 르 쀠, 화이트, 마리-세실, Chateau Le Puy, Marie-Cécile


보르도 지역의 주력 화이트 품종인 세미용(Semillon) 100% 단품종 와인이다. 상큼하고 발랄한 소비뇽 블랑에 밀려, 현대로 올수록 점점 활용도가 낮아지고 있는 세미용 품종이지만, 그 깊이와 품격, 숙성 잠재력은 소비뇽이 따라올 수 없다. 전통적인 오래된 오크 조에서 월력에 따라 양조와 숙성이 이뤄졌다. 자연주의 화이트 와인의 대표작으로서, 역시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산화에 자연스럽게 노출돼 빛바랜 오렌지 컬러 색상이 매우 이국적이며 특별하다.

 

마치 크리스찬 디올의 Miss Dior Chéri 향수 컬러 같다. 크로커스와 프리지아 등 서양 꽃의 이국적 퍼퓸이 가득하고, 봄의 꽃밭에 온 느낌이다. 자연에 묻혀 살아서 외모는 소탈하게 변모됐지만, 고상한 품격에서 풍기는 체취가 압도적인 한 자연인을 접하는 듯하다. 입안에서는 새큼한 산도와 미세한 진흙 알갱이의 초미세 미네랄 재질감이 느껴지며, 정교한 구성과 함께 긴 여운을 가졌다. 한 여름 소나기가 내리는 농가의 농막에서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명품 염소 치즈 ‘크로뗑 드 샤비뇰(Crottin de Chavignol)’과 함께 마시니, 호캉스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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