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중심은 맛의 기행
최근 선풍적 인기를 더해가는 K-컬처의 중심에 우리의 음식문화가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사적 흐름이 인간의 생리적 욕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음을 직설하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여행하더라도 식탁 위의 풍미와 멋이 우리처럼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여행의 중심은 맛의 기행이라고 생각한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먹어야 여행도 되고, 감성도 싹 트고 지성도 풍성해지기 때문에 먹는다는 것은 철학이며 문화고 예술이다.
맛의 본고장이라는 프랑스의 요리. 정열의 나라 이탈리아, 교향곡의 나라 독일, 아니 가까운 중국을 여행하면서 허기진 곡기를 채우기 위해 식당에 가보면 육류를 중심으로 하는 고기 요리. 생선 요리. 밀가루를 중심으로 하는 면 요리, 우유 가공 요리 등이 주를 이룬다. 잠시 눈을 돌려 명상과 구도의 등불을 켜고 삶 자체를 수행으로 보는 티베트나 부탄, 네팔, 인도를 보더라도 식단에 육류, 어류, 밀가루류, 쌀과 보리 등 기본 곡류를 빻고 볶고 반죽하고 굽는 음식 위주로 우리가 주로 애용하는 산나물 요리란 거의 찾을 길이 없다.
베트남을 여행하더라도 쌀국수에 고수나물 몇 개 더해 주는 단조로운 식단을 볼 수 있다. 일본여행에 유명한 식당이라고 들러봐도 육류. 어류, 또는 밀가루를 가공한 우동, 라멘류 등이며 우리 식단처럼 씀바귀, 명이나물, 고추나물, 고들빼기, 쑥국, 달래나물. 다래순, 취나물 등이 나오는 식당을 거의 보지 못한 듯하다.
한때 우리의 국토는 헐벗었었다. 일제의 수탈, 6.25 전쟁으로 황폐화된 우리 산야에서 생존하기 위해 초근목피로 연명해 온 우리 어머니들의 눈물겨운 보릿고개는 서럽고도 애잔한 아리랑과 육자배기 노랫가락의 남도창을 만들었으니, 어둠이 극에 달하면 칠흙 같은 어둠의 미명 한 줄기가 서광이 돼 아침이 불러오듯, 암울한 보릿고개와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진화한 식문화가 한국인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나물밥상을 이뤄 놓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밥상머리 구수하던 쑥국의 추억
필자는 추위를 잘 타는 소녀였다. 동네 친구들과 소꿉놀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놀다 어스름 저녁이 오는 봄날 저녁 밥상에는 엄마가 보글보글 끓여낸 구수한 쑥국이 올라오곤 했는데, 그땐 몰랐다. 문득 불혹을 넘기고 음식을 공부하며 초근목피의 효능을 연구하고 치유음식을 다루면서 쑥의 효능이 차가운 비위와 하초를 따뜻하게 해줌은 물론, 우리 몸의 면역력을 증진시키고 각종 질환을 극복하는 순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쑥국을 맛나게 먹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엄마가 딸을 위해 끓여낸 약선 치유음식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쑥국뿐이었을까? 철마다 올라오는 봄나물과 장아찌 그리고 쑥절편, 모시떡 등 무심히 밥상을 점령하던 나물음식들이 다른 나라에선 너무 낯설고 생경한 먹거리라는 걸 깨달으면서 한국인과 나물반찬은 어떤 연분이 있을까 곰곰이 반추해 본다. 그리고 그 나물의 효능이 나를 얼마나 건강하게 만들어 줬던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여러 가지 나물반찬이 있으나 내가 즐겨 먹는 나물을 열거하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추억 여행에 빠져 봤다.
돌나물
돌나물은 줄기가 마치 채송화나 쇠비름같이 생겼는데 들에 나가면 논둑, 습한 비탈, 돌틈, 길섶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입맛이 없을 때 돌나물을 뜯어다 깨끗하게 손질해 된장 보글보글, 고추장 한 스푼 넣어 비빔밥을 해 먹곤 했는데, 인도의 기바가 말했다. 세상에는 약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돌나물은 해열 해독 타박상 등 치료제로 사용되며 특히 입안이 헐어 아플 때 엄마가 담아주신 돌나물 물김치를 먹으면 상처가 진정되곤 했다. 최근에는 항암 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간암 치료제로도 사용되는 치유 먹거리로 각광 받고 있다.
방풍나물
봄철이면 어김없이 재래시장에 파릇하게 진열되던 방풍나물을 데쳐 들기름. 깨소금 무쳐 내던 엄마의 손맛이 치유약선의 근본이었다. 이름 그대로 풍을 막아 준다는 방풍나물의 풍미는 겨우내 움츠렸던 모세혈관 하나하나를 일깨워주는 나물로서 한방에서는 풍을 예방한다고 해 이름이 지어졌다. 예전에는 주로 약용식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쌉싸름한 맛을 이용한 식재료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방풍은 원방풍, 갯방풍, 식방풍의 3가지 품종으로 나뉘며 식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식방풍은 발한, 해열, 진통의 효능이 있다. 방풍나물의 어린 순은 식감이 좋고 향긋한 맛을 지녀 누구나 사랑하는 봄나물로 사랑받고 있다.
민들레 홀씨의 추억
한때 내가 좋아하던 노래 중 민들레 홀씨를 노래한 곡의 가사가 생각난다.
“달빛 부서지는 강뚝에 홀로 앉아 있네. 소리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가슴을 헤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우리는 들길에 홀로 핀 이름 모를 꽃을 보면서 외로운 맘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걸었지. 내 마음 민들레 홀씨돼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이 노랫말처럼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던 어느 봄날의 민들레 나물의 쌉쌀한 추억이 생각난다. 민들레는 성분이 서늘한 봄나물이다. 우리나라 산야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민들레는 진통 소염 항암 항균의 명약이라 할 것인데, 그 어떤 소염제보다 탁월한 우리의 민약이 찬거리가 돼 진열된 밥상머리의 지혜가 놀랍다.
다래덩쿨처럼 시간은 흘러갔다
봄날이면 일가 중 한 분이 소풍 겸 일요일마다 포천 백운계곡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산나물을 뜯으러 다녔는데, 유독 큰 자루에 한가득 채취해 오던 나물이 다래순이었다. 개나리잎처럼 생긴 어린잎을 끓는 물에 데쳐 갖은 양념에 버무려 내면 그 향긋한 맛의 풍미는 예술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다래순은 혈압을 다스리는데 최고의 선물이다. 다래순과 함께 봄날 같이 먹는 다래수액은 만성 고혈압과 통풍을 다스리는 민간약으로 요즘도 나물의 귀족이라 할 것이니 나의 건강 또한 부모님의 신토불이 산나물 덕이 아닌가 한다.
금수강산 산채정식
입맛 깔깔한 날이면 집 근처 산채정식을 찾는다. 밥상 푸짐하게 차려진 쌈채소와 곤드레밥. 그리고 먹음직한 된장찌개. 양념 달래간장에 명이나물 장아찌를 밥에 얹어 한 숟갈을 뜨노라면 한국인의 밥상은 멋과 낭만 아니겠는가? 막걸리 한 사발에 도토리묵, 비름나물 한 젓가락이 산 아래 동네에서 먹던 치즈와 돈까스에 비길 수 있겠는가? 사는 것은 축제와 같으며 하루를 살아도 업을 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느 스님의 강연을 듣노라니 정육점과 식육점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한다.
“축생을 방금 도살해 그 자리에서 요리한 고기에는 가축의 공포와 원망이 채 가시지 않았으므로 우리 모음의 기혈순환에도 영향을 주지 않겠는가? 하여 이를 식육이라 하며, 윤회의 길목 돌고 도는 삶의 윤회에서 어차피 산자는 먹어야 살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으므로, 수명을 다한 가축을 도살하고 충분한 숙성을 거친 고기를 파는 곳을 정육점이다.”
이 말을 되돌아 생각하면서 차라리 아름다운 땅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산나물이야 말로 순리대로 살아가는 우리네 먹거리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날마다 뱉어내는 말은 풀씨와 같아 언젠가는 싹이 난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 고기류. 생선류. 유제품. 과일류. 채소류 그리고 산나물 반찬을 나열하면서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 나물들이 있다, 취나물, 홀잎나물, 엄나무순, 오가피순, 구기자순, 꿩의다리, 땅두릅, 질경이나물, 병풀나물, 비름나물, 명이나물, 삽주나물 이왕이면 다홍치마 곤드레나물에 달래장 비빔밥 참으로 곱다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