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특별함을 갖고 있다. 색은 연상작용에 영향을 미치므로 각종 브랜드는 자신만의 브랜드 컬러를 지정해 고객의 머릿속에 포지셔닝하는데 적극 활용한다. 코카콜라의 빨강, 티파니의 민트 빛 파랑, 카카오의 노랑 등이 그 예다. 이러한 브랜드 색은 각각의 색에 부여된 의미와 브랜드가 속한 산업 혹은 브랜드 개성에 따라 지정되기 마련이다.
또한 색깔은 공간의 분위기와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어떠한 색을 활용하는지, 어떠한 색을 조합하는지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파스텔 계통의 색은 대체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하는 반면, 비비드한 색은 공간에 활력을 제공한다.
이렇게 색은 우리에게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미국에는 다양한 색을 이용해 오감을 만족시키는 체험형 전시관이 있다. 이번 브랜드 토크에서는 뉴욕, 휴스턴, 시카고에 3개의 지점을 가진 색깔을 주제로 한 컬러 팩토리를 소개한다. 세 개의 지점 중 필자가 직접 방문한 뉴욕지점의 공간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컬러 팩토리의 콘셉트 및 브랜딩 요소
이벤트 플레너이자 블로거 조단 퍼니(Jordan Ferney)와 예술가 레아 로젠버그(Leah Rosenberg), 디자이너 에린 장(Erin Jang)에 의해 201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팝업 스토어로 시작한 컬러 팩토리는 본디 짧게 선보이는 기획전이었다. 소셜 미디어의 유행이 시작하던 시점의 트렌드에 따라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돼 플래그십 스토어로 확장했다. 2018년 뉴욕 맨하튼, 2019년 텍사스 휴스턴, 그리고 2022년 일리노이 시카고까지 확장하며 5년 넘게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도시를 대표하는 색을 지정해 공간을 꾸미고 그 지역 출신 예술가 및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도시의 매력을 발산하는데 일조하며 그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색을 주제로 한 전시인만큼 컬러가 주인공이다. 브랜드 이름인 컬러 팩토리에서도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전시관 대신 공장의 의미인 팩토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돋보인다. 공장이라는 의미의 팩토리가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전시관/박물관보다는 진입 장벽이 낮게 느껴지기도 한다. 벽에 걸린 작품을 멀찍이 감상하거나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된 유물을 감상하는 박물관의 느낌보다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만지며 방문객들과 소통하면서 영감과 행복을 제조하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팩토리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유추해본다.
컬러 팩토리의 로고는 워드 마크와 픽토리얼 마크를 조합한 형태다(그림 1의 중앙 마크). 브랜드명을 원형으로 표기한 워드마크에 글자 C, L, O를 활용해 웃는 얼굴 형태를 표현한 픽토리얼 마크를 완성했다. 웃는 얼굴 형태는 브랜드의 심벌로 곳곳에 활용되고 있다(그림 2). 컬러 팩토리가 전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는 색을 통한 영감, 행복, 연결이다. 도시를 대표하는 색상에 스토리를 담고, 색을 주제로 한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방문객들은 그 안에서 작품과 다른 방문객들과 상호 교류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과 추억을 쌓는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몰입형 전시 공간
컬러 팩토리는 색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므로 주로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곳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미각, 후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입구에서부터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데, 이는 여정의 시작을 긍정적인 기분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다. 이 외에도 공간마다 색깔 별 마카롱, 젤리, 팝콘, 아이스크림 등 미각을 만족시키는 달콤한 간식이 제공된다. 그림 3은 필자가 직접 촬영한 뉴욕 컬러 팩토리의 대표 공간과 작품을 담은 사진 모음이다.
01. 100 COLORS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색색 종이들의 향연. 일본에 거주하는 프랑스 건축가 엠마뉴엘 무로(Emmanuelle Moureaux)의 작품. 일본어로 파티션을 의미하는 시키리(Shikiri)에서 영감을 받은 그녀는 아름다운 색을 지닌 다양한 재료들로 공간을 구분하고 돋보이게 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02 & 03. 등록 및 카드 받는 공간 & PICK A COLOR, ANY FLAVOR
컬러 팩토리의 본격적인 탐험은 태블릿에 이름과 이메일을 입력하고 카드를 발급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카드는 공간마다 태그를 해 정보 및 촬영한 사진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는 용도다. 카드마다 다양한 색상의 컬러 팩토리 심벌이 프린트돼 있다. 카드를 발급받은 후 뉴욕의 마카롱 브랜드인 밀푀유(Mille-Feuille)와 컬러 팩토리가 함께 개발한 색색깔의 마카롱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을 마주한다.
04. 원하는 색을 골라봐
통로 전체에 파스텔 톤부터 비비드 톤의 색으로 물든 벽에 원형 배지가 달려 있다. 이는 컬러 팩토리에서 제공하는 선물이다. 방문객들은 마음에 드는 색상의 배지를 골라서 가져갈 수 있다.
05. COMPLEMENTARY COMPLIMENTS
뉴욕 퀸즈의 아티스트 크리스틴 옹 얍(Christine Wong Yap)이 기획한 이 공간은 바쁜 삶 속에서 여유를 갖고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동반인과 유리를 사이를 두고 마주보는 공간에 들어가 상대를 바라보며 헤드폰을 착용한 채 흘러나오는 지시에 따라 준비된 색연필과 종이로 서로에 대해 표현한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06. DANCE FLOOR
뉴욕의 밤 문화 색상을 연상케 하는 불빛과 네온사인으로 꾸며진 이 공간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춤출 수 있도록 꾸며진 곳이다. 바닥에는 빨강, 핑크, 파랑, 하얀색으로 반짝이는 원형 조명, 은빛 반짝이로 뒤덮인 벽면과 공간을 꽉 채운 흥겨운 음악은 뉴욕의 나이트클럽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입술모양의 네온사인이 있는 곳에서는 핑크 빛과 보랏빛 팝콘 5종을 나눠준다.
07. 실로폰 룸
다양한 높낮이의 실로폰에 색을 입혀 놓은 이곳은 소리를 색으로 표현한 듯한 공간이다. 각 실로폰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를 확인해보는 재미도 있고, 여러 명이 실로폰을 두드리며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있다.
08. SECRET COLORS
심리테스트로 나에게 맞는 색상을 찾아가는 공간. 질문에 대한 답을 따라가면 입구 반대편의 문에 다다르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화면에 나의 맞춤형 색상 이름이 뜨고 해당 색상 카드를 가져갈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09. RGBNYC
이 공간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디자이너 듀오인 프란체스코 루지(Francesco Rugi)와 실비아 퀸타닐라(Silvia Quintanilla)의 작품이 전시된 곳이다. 듀오의 시그니처 작품인 벽면에 빛의 삼원색인 RGB(Red, Green, Blue)를 이용해 뉴욕 시티를 대표하는 자연과 명소, 문화를 담았고, 빛의 변화에 따라 다른 풍경이 나타나도록 설계한 공간이다. 몽환적인 음악과 조명이 변화에 따라 드러나는 벽화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른 세계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10. FROM ABSINTHE TO ZEPHYR: AN ALTERNATIVE ALPHABET OF UNUSUAL COLORS
A부터 Z까지 27개의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색의 이름과 기원에 대해 설명한 벽면이다. 영국의 작가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Kassia St. Clair)가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색의 스토리를 담은 공간.
11. NEW YORK IN COLOR
컬러 팩토리 팀이 맨해튼의 W 220번가부터 배터리 파크까지 50마일을 걸으면서 발견한 1000장 이상의 사진과 265개의 색상을 바탕으로 뉴욕의 대표하는 10대 색상을 선정했다. 이 색에 뉴욕 퀸즈 출신 작가인 원 매킨토시(Won McIntosh)가 뉴욕 시티의 삶을 담은 시를 입혔다. 이 정육면체의 색상 큐브에는 색상이 발견된 곳의 이름과 사진, 매킨토시의 짧은 시가 함께 기록돼 있다. 예를 들면, 뉴욕 시티의 상징인 옐로 캡에서 추출한 노란빛 큐브에는 ‘택시 5번가’와 택시 사진, 그리고 그에 걸맞은 짧은 시를 볼 수 있다.
12 INTO THE BLUE
푸른빛 플라스틱 공으로 가득 찬 볼 풀의 벽면에는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요리사인 타마라 숍신(Tamara Shopsin)의 독특한 일러스트로 가득하다. 볼 풀 안에서 발을 담그고 걷다 보니 공의 움직임 소리가 마치 파도소리와 같이 느껴진다. 볼 풀 옆 카운터에서는 볼 풀을 가득 채운 플라스틱 공의 색과 동일한 모양의 아이스크림이 준비돼 있다. 계단식 좌석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볼 풀 안에서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바닷가에 와 있는 느낌마저 든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모두 고려해 설계된 곳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
본지 필자의 칼럼에서 다뤘던 뉴욕의 아이스크림 뮤지엄(MOIC)과 마찬가지로 컬러 팩토리 역시 종합 체험 전시관인 익스페리엄(Experium)으로 분류할 수 있다(정성연,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한 토털 브랜딩 뉴욕의 아이스크림 뮤지엄(Museum of Ice Cream)」, <호텔앤레스토랑> 2022년 2월호). 밀레니얼과 Z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이곳은 셀카를 찍고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기 적합하게 기획된 것으로 셀피 뮤지엄(Selfie Museum) 혹은 인스타그램 뮤지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필자가 뉴욕에서 직접 경험한 MOIC과 컬러 팩토리를 비교해보자면, MOIC의 공간은 체험보다 사진촬영을 위한 공간인 반면, 컬러 팩토리는 그 공간에서 즐기는 경험에 몰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컬러 팩토리의 체험 활동을 즐기다 보면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도가 뛰어나다.
본디 기억은 휘발성이라 물리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쉽게 잊혀진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모든 전시장의 종착지에는 그 경험과 기분을 남길 수 있는 물리적인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소품가게가 있다. 그러나 소품가게에서도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컬러 팩토리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물리적인 기록과 선물을 제공한다(그림 4). 대단한 선물은 아니지만, 방문했던 지점의 특징을 담은 소품과 엽서, 나만의 색깔 카드, 동반자로부터 받은 나를 표현한 그림과 카드, 내가 좋아하는 색상의 배지, 그리고 공간에서 나눠준 먹기 아까울 정도로 귀여운 스낵류는 컬러 팩토리를 오랫동안 추억하고 떠올릴 수 있게 하는데 충분하다.
컬러 팩토리는 지역 예술가 및 브랜드, 당대의 힙한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각 도시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뉴욕시를 대표하는 색상과 작품, 스토리가 공간 곳곳에 녹아 있듯이 휴스턴과 시카고 지점을 방문하면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과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점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필자도 휴스턴이나 시카고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그곳의 컬러 팩토리에도 꼭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서울시에 컬러 팩토리를 오픈한다면 어떤 상징물과 색상으로 공간을 꾸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