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에서 고기를 찾지 못했다.
서천에서의 영감을 요리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바다의 보물들이 많은 그곳은 나를 매혹시키기엔 충분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코스에 육고기로 만든 스테이크가 있어야 만족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했다.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아무리 찾아봐도 그곳엔 없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원물의 성질을 바꿔놓을 순 없는 것. 어쩔 수 없이 내놓은 대안은 서해안에 한우가 유명한 곳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서산, 홍성 중 홍성의 한우를 선택했다.
이로써 메뉴 구상은 끝이 났고 순조롭게 1주일간의 테스트에 몰입할 수 있었다.
Amuse
쁘띠 마량포구, 블랙 쉬림프와 전어초밥
Petit Maryangpogu,Black Shrimp and Gizzard Shad Sushi
서천 중 가장 많이 방문한 마량포구를 표현하고 싶었다. 마량포구 앞에서 방파제를 보고 있노라면 수많은 배와 생선을 실어 나르는 차들로 붐빈다. 테트라포드에 부딪히는 파도와 그물로 마량포구를 표현했다.
대하를 껍질을 벗긴 뒤 내장을 제거한 후 오징어 먹물과 튀김가루를 섞고 160도에서 천천히 튀긴 다음 기름을 190도로 올려 한 번 더 튀겨내 여분의 수분을 날려 바삭하게 만든다. 마요네즈와 발사믹을 섞어 그 위에 올리고 트러플 소금을 뿌려낸다.
내장과 뼈를 발라낸 전어를 얼음물에 깨끗이 씻어낸 뒤 물기를 제거한다. 긴 트레이에 펼친 후 옅게 꽃소금을 뿌려 1시간 정도 재우면 수분이 빠진다. 수분을 깨끗이 닦아낸 뒤 서천 김과 켜켜히 쌓아올려 세게 누른 뒤 얼린다. 단단하게 얼었으면 슬라이서에 밀어낸 후 초밥에 김으로 만든 퓨레를 바르고 감싸준다. 전어 표면에 질 좋은 들기름과 소금을 올려 완성한다.
Cold Appetizer #1
세 가지 방법의 단호박, 자하젓, 소곡주 리덕션
Three Ways of Sweet Pumpkin, Salted Shrimp, Sokokjoo Reduction
자하젓을 맛봤을 때 단호박이 떠올랐다. 단짠의 조화를 만들어내면 멋질 거라고 생각했다. 단호박을 찜통에 부드럽게 쪄낸 뒤 껍질을 벗겨내고 식힌다. 또 다른 단호박은 쪄낸 뒤 믹서기에 곱게 갈아 소금 간을 한 다음 고운 채에 거른다. 그리고 세 번째 단호박은 슬라이서에 1.5mm로 자르고 채를 쳐서 얼음물에 담가 아삭함을 살린다.
한산 소곡주를 80% 이상 졸여내면 진득하게 되는데 묘한 감칠맛이 살아난다. 샐러드는 맛과 식감도 중요하지만 아로마가 인상적이어야 한다. 류니끄 앞 화단에 동네 아주머니가 심어놓은 바질이 있어 바질 잎을 뜯어 살짝 대친 후 얼음물에 담가 식히고 카놀라 오일과 믹서기에 곱게 간 다음 열을 넣어 식혀 고운 면보에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색이 선명해지면서 바질 특유의 신선한 향이 살아난다. 마지막으로 한산 모싯잎 파우더를 뿌리면 완성! 단호박의 단맛과 자하젓의 짠맛이 조화를 이루고 소곡주 리덕션의 감칠맛이 뒤에서 받쳐준다.
Soup
꽃게 에센스
Blue Crab Essence...Purity
마량포구에서 온 동죽조개를 다시마와 정종과 함께 한 번 훅 끓인 후 입이 벌어지면 채에 걸러 국물만 따로 모아둔 뒤 꽃게와 생강, 파 등을 넣고 천천히 다시 끓이면 꽃게의 단맛과 감칠맛이 살아난다. 꽃게 국물을 다시 고운 채에 걸러 진공 포장한 뒤 얼린다. 얼린 국물을 다시 고운 채에 올린 다음 녹이면서 한 방울씩 냉장고에서 이틀 동안 얻어내면 비로소 엄청나게 맑은 국물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아이스필터레이션 기법이라고 하는데 불순물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고 콘소메처럼 맑은 국물을 만들 수 있다. 맑고 순수한 결과물을 얻어내려면 얼려서 뽑던 콘소메처럼 천천히 오래 끓이던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다.
삶아낸 꽃게의 살은 발라내고 꽃게 내장은 계란 노른자와 함께 중탕에서 열을 넣어가며 질감이 나올 때까지 저어준다. 질감이 나오면 식힌 뒤 마요네즈와 함께 섞어 게 내장 마요네즈를 만들고 게살을 함께 섞은 후 연어알과 허브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막걸리로 만든 증편을 태워 찍어 먹는데 보통 서양식에서는 브리오슈나 크루통으로 쓰는 것을 로컬 버전으로 재해석해 봤다. 투명한 꽃게 에센스는 따뜻하게 데운 뒤 젤리 같은 타피오카를 함께 넣어 서브한다. 쫄깃한 식감이 참 좋다.
Cold Appetizer #2
소금게장 비빔면
Blue Crab Noodle
이번 메뉴 테스트 중 가장 어려웠던 메뉴는 단연코 소금게장이었다. 서천의 생산자들에게도 귀찮을 정도로 물어봤는데 레시피는 각양각색이었으나 소금에 게를 파묻는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소금에 게를 묻고 일정시간이 지나 맛을 봤을 때 혓바닥이 따가울 정도로 짜서 전부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한다.
곰곰히 생각해 10%, 15%, 20% 소금물을 만들어 봤다. 소금물에 당근, 파, 고추 등 채소를 함께 훅 끓인 후 식힌 뒤 세척한 꽃게를 담가 3일 단위로 매일 체크했다. 냉장고에 보관했지만 국물이 탁해지고 냄새가 심하게 났다. 결국 일주일도 못가 살도 다 녹고 부패하기 시작했다.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포기할 수 없었다. 15%, 20%에 동시에 꽃게를 넣고 밀봉한 다음 냉장고에 숙성 시켜 하루에 한 번씩 두 가지의 국물과 게다릿 살을 뜯어 먹어 봤다. 이틀째 되던 때 국물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삼투압 현상에 의해 농도가 진한 쪽에서 옅은 쪽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고 농도가 같아지는 시기를 찾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5일째가 되니 맛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래 크게 기뻐하지 않는데 솔직히 기뻤고 성취감을 느꼈다. 국물이 약간 탁해지긴 했으나 농도와 맛이 적절했다.
15%와 20% 중 15%가 성공이다. 20%는 국물이 맑고 깨끗했으나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살을 정성스레 파내 메밀국수에 칠리소스와 함께 섞은 뒤 서천 특산물인 참소라와 동죽조개, 국물, 해초를 올려 비빔국수의 텍스트를 완성했는데 풍미가 약간 부족했다.
오랜 고민 끝에 소금게장 국물의 맛을 보니 엄청난 풍미가 느껴졌다. 비빔면은 차가운 요리기 때문에 더 차갑게 하는 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장 국물의 거품을 내 액체질소에 냉각시키니 딱 게거품이었는데 국수위에 올려 완성시키기로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디시가 만들어져 만족스러웠다.
Main/Poisson
참돔 & 가지, ‘겉촉안바’
Wild Sea Bream and Aubergine
참돔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다. 품위 있고 고급스런 맛과 향이 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鯛は草っつでも鯛だ - 도미는 썩어도 도미”라는 말이 있다. 기품 있고 용맹스러움을 뜻하는 것이다. 설날에는 오세치 요리로 도미가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지만 준치보다는 참돔이 훨씬 고급생선이다.
보통 마량포구에서 잡히는 자연산 참돔은 9kg 이상의 최상급이 류니끄에 보내지는데 요즘 바다사정이 좋지 않아보였다. 그렇지만 최대한 크고 두꺼운 참돔을 선별해 소금을 뿌리고 이틀정도 숙성시켜 소시 모양으로 발로틴(뼈를 도리고 둥글게 실로 감은 고기덩이)해 단단하게 얼린 후 밀가루, 계란, 빵가루 순으로 입혀 커틀렛을 만든다.
함께 매칭 시킬 채소는 가지로 정했다. 가지는 ‘Eggplant’라고 하지만 유럽에서 요리를 했기 때문에 ‘Abergine’으로 표기했다. 이와 같이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가에 따라 식재료 표기법도 달라진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도 같은 식재료지만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과 같다.
가지는 속을 파내어 튀기고 가지 퓨레는 가지를 가스 불에 태운 뒤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넣고 믹서기에 간 다음 검은색 퓨레를 만든다. 스모키향과 감칠맛이 엄청나다. 가지 파우더는 가지를 바싹 태워 말린 뒤 갈아서 마지막에 뿌린다.
붕장어 소스는 붕장어 머리와 뼈를 구운 다음 맛국물을 만들어 오랫동안 졸인 다음 버터를 녹여 질감을 잡는다.
일본요리에는 “穴子の柔らか煮 - 아나고노 야와라카니”라는 부드럽게 졸인 붕장어 요리가 있다. 쯔메라는 소스가 있는데 붕장어 뼈를 졸여 만든 진득하고 검은색 소스다. 쯔메에 버터를 넣고 저어가며 부드럽게 서양식으로 재해석해 보다 풍미가 좋고 녹진한 맛이 나게 만들었다. 바삭하게 튀긴 참돔 커틀렛을 튀긴 부드러운 가지 속에 넣어 겉은 촉촉하고 속은 바삭한 형태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한 식감과 녹진한 소스가 잘 맞아 다행이다.
Main/Rice and Soup
서프앤터프
Surf and Turf
서천을 이 잡듯 뒤졌을 때 아쉽게도 고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인 홍성의 쇠고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힘줄 부위는 1시간 이상 푹 삶아야 부드럽게 풀리고 먹을 수가 있다. 간 쇠고기와 채소로 압력밥솥에서 짧은 시간 맑게 국물을 내 토마토와 고추장으로 만든 양념을 넣고 각종 채소 그리고 새우, 힘줄을 넣고 끓여준 다음 아롱사태를 고명으로 얹어주면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감칠맛 가득한 국물이 완성된다.
서천은 서래야 쌀이 유명하다. 품종은 삼광벼며 쌀은 밥을 짓기 전에 살짝 불여 두고 질 좋은 베이컨을 굽고 그 기름을 쌀에 문질러 코팅을 한다. 서천의 김과 새우 그리고 구운 베이컨을 넣고 천천히 정성스레 밥을 짓는다. 충분한 뜸을 들인 후 김으로 만든 달콤한 퓨레와 소금 간 그리고 버터를 함께 섞으면 기가 막힌 서천의 밥과 국물의 텍스트가 완성된다.
돼지고기와 새우는 어느 나라를 가도 존재하는 조합이며 완탄누들, 딤섬, 보쌈과 새우젓 등 새우는 돼지고기 소화를 돕는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성질 즉 바다와 육지가 하나 되는 서프앤터프는 맛의 조화와 새로운 풍미를 가져다준다.
다음 호에서는 류니끄의 크리스마스 메뉴를 소개할 예정이다. 특별한 날인만큼 특별한 메뉴를 선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전 지역을 하나로 묶어 메뉴를 선보인다. 류니끄만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메뉴의 탄생, 2월 호에서 만나볼 수 있다.
류태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