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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3 (화)

레스토랑&컬리너리

[Dining Feature] "<미쉐린 가이드>, 부산에 상륙하다", 미식(美食)의 진정한 정의를 찾아가는 안내서

 

지난 2월 22일 시그니엘 부산에서 한국의 새로운 미식 명소를 담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4>가 발표됐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뛰어난 해양 환경과 오랜 역사 속에서 고유의 미식문화를 발전시켜 온 부산의 합류로 서울 177곳, 부산 43곳 총 220곳의 레스토랑이 미쉐린 가이드 2024에 등재됐다. 하지만 미쉐린으로부터 스타를 받은 식당들이 폐업하거나 외국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과연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평가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하게 제시되고 있다. 

 

훌륭한 요리를 선뵈는 레스토랑. 그래서 멀리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 훌륭한 요리를 위해 여행을 떠날 가치가 충분한 레스토랑. 그것의 기준은 대체 무엇일까? 진정한 미식의 정의는 무엇인가? 
미쉐린 가이드의 발자취를 들여다보고 세계로 뻗어나갈 한국의 미식문화는 어떻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 방향성을 가늠해 보자. 내달에는 전 세계적으로 발행되고 있는 미식 평가 가이드들을 통해 차이를 비교해 볼 예정이다. 

 

 

 <미쉐린 가이드-서울 2017> 초판 발행 
 이후 8년 어떻게 흘렀나 

 

미쉐린 가이드가 <미쉐린 가이드–서울> 발간을 확정한 것은 2016년 3월이다. 그에 앞서 2007년 첫 번째 아시아 가이드로 <미쉐린 가이드–도쿄>가 출간됐고, 2008년에는 <미쉐린 가이드-홍콩 & 마카오>가, 2009년에는 <미쉐린 가이드–교토 & 오사카>가 각각 첫 발행을 하게 됐다. 한국은 미쉐린 가이드 정규 에디션의 28번째 국가이자 싱가포르에 이은 네 번째 아시아 국가로 출간이 확정 지어졌다. 당시 개최된 <미쉐린 가이드-서울> 기자간담회에서 미쉐린코리아 김보형 前 사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타당성 조사와 검증을 통해 결정된 사항”이라 밝혔으며, 미쉐린 그룹의 베르나르 델마스 前 부사장이 함께 참석해 “<미쉐린 가이드–서울>의 발간은 높아진 한국의 미식 수준이 반영된 것”이라 말했다. 또한 미쉐린 가이드의 마이클 엘리스(Michael ELLIS) 前 글로벌 총괄 디렉터는 서면을 통해 “서울의 음식 문화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미쉐린의 전문 평가원들이 훌륭한 요리를 발굴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마쳤다고 전했다. 

 

2016년 11월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서울 2017>에서 한국의 첫 미쉐린 3스타는 서울 신라호텔 ‘라연’과 광주요에서 운영하던 ‘가온’이 얻게 됐다. 2스타는 ㈜피와이앤파트너스의 ‘곳간 by 이종국’, 권우중 셰프가 운영하는 ‘권숙수’, 롯데호텔서울의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1스타는 광주요 ‘비채나’와 포시즌스 호텔 서울 ‘유 유안’, 장명식 셰프의 ‘라미띠에’를 포함 19개 식당이 받게 됐다. 주목할만 했던 점은 선정된 스타 레스토랑 24곳 중 13곳이 한식을 기반으로 하는 레스토랑이었다는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는 “한식을 포함해 다양한 유형의 음식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음식문화를 선도해 나간다.”고 특정하며, 좌식문화를 반영한 픽토그램과 전통주 픽토그램을 사용했다는 차별점을 부각시켰다.

 

 

2018년에는 총 175개의 레스토랑이 <미쉐린 가이드-서울 2018>을 통해 공개됐다. 6개의 레스토랑이 새로운 스타 레스토랑으로 등극했으나 호텔업계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당시의 본지 취재에 의하면 2017년 미쉐린 첫 발간 이후 일부 호텔은 매주 회의를 거치며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한다. 가이드 선정에 있어 한식당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자 호텔업계에도 한식 열풍이 불었고, 2018년에만 5개의 한식당이 호텔에 입점했다. 호텔업계가 한식에 집중하고 가성비를 내세우며 문턱을 낮추는 등 노력을 기울인 데에는 미쉐린의 영향도 한몫 했다는 것이 당시 분석이다. 

 

<미쉐린 가이드-서울 2019>에는 2개의 2스타 레스토랑과 5개의 1스타 레스토랑을 포함, 총 191개의 레스토랑이 등재됐다. 시그니엘서울의 ‘스테이’가 미쉐린 1스타에 새롭게 등극했으나 호텔업계는 이번에도 기대에 비해 성적이 아쉬웠다. 당시 포시즌스 호텔 서울 알레한드로 버나베 총지배인은 “호텔의 레스토랑은 규모가 커 동일한 퀄리티의 서비스와 음식이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제공되기 어려울 수 있으며, 빠르게 바뀌는 식음 트렌드에 뒤쳐질 수 있다. 또한,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많아지는 것도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1스타를 유지해 오고 있는 비채나의 前 총지배인이자, 現 호텔인네트워크 이정한 대표 역시 “미쉐린은 셰프가 자신의 음식에 담긴 의도를 고객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반면 호텔은 고객이 우선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에 고객 입맛에 맞지 않는 요리는 내놓지 못한다.”며 관점에 차이가 있음을 강조했다. 

 

한편 <미쉐린 가이드-서울>이 발간된 지 3년이 지났던 시점에 줄곧 쌓여왔던 논란이 터지고 말았다. ‘미쉐린 가이드 측이 스타 레스토랑 선정의 대가로 유료 컨설팅을 제안했다거나, 미쉐린이 공신력을 핑계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미쉐린 가이드는 입장문을 통해 사실 관계를 밝히고자 했다.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한 것은 비단 한국의 일만은 아니다. 2003년 2월에는 미쉐린 3스타의 주인공인 베르나르 루아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고, 이 배경에는 가이드북의 평가에서 오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추측이다. 맛에 대한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고 문화권마다 다른데, “동일하게 적용하는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방법”이 엄격한 평강의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 중 한 명은 “미식 경험의 기준점을 마련하고 발전해 나아갈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선한 영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입맛도 바뀌고 가치관과 음식문화를 즐기는 방식도 트렌드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것을 수치화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거센 논란을 딛고 일어선 미쉐린 가이드는 <미쉐린 가이드-서울 2020>에서 전년도보다 12개 줄어든 179개의 레스토랑을 발표했다. 반면 호텔 다이닝에서는 더 플라자의 ‘주옥’이 새롭게 1스타를 받았으며, 라연과 가온이 4년 연속 3스타 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하며 한식의 강세를 이어나갔다. 

 

미슐랭 가이드 서울 2021 그린 스타 레스토랑 리스트 (지도&파일 첨부)

 

코로나19 위기 속에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서울 2021>에서는 2개의 3스타 레스토랑, 7개의 2스타 레스토랑, 23개의 1스타 레스토랑, 60개의 빕구르망과 86개의 플레이트 레스토랑을 포함해 총 178개의 레스토랑이 등재됐다. 지속가능한 미식을 실천하는 레스토랑에 부여하는 그린 스타가 처음으로 발표됐는데, 국내에서는 현지 식재료를 사용하는 레스토랑 ‘황금콩밭’과, 전체 식재료의 95%를 농장들과 직거래를 통해 공급받고 자체적인 친환경 재배를 통해 경북 봉화마을 유기농 쌀, 경남 거창산 전통 된장 및 간장 등 친환경 식재료 보급에 앞장서는 ‘꽃, 밥에피다’가 각각 선정됐다. 

 

한편 <미쉐린 가이드–서울 2021>부터는 ‘미쉐린 영 셰프 어워드(The MICHELIN Young Chef Award)’와 ‘미쉐린 멘토 셰프 어워드(The MICHELIN Mentor Chef Award)’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2021 미쉐린 영 셰프 어워드의 영예는 1스타 레스토랑인 ‘에빗(EVETT)’의 조셉 리저우드(Joseph Lidgerwood) 셰프가 차지했고, ‘한식의 대모’로 알려진 조희숙 셰프가 국내 첫 번째 미쉐린 멘토 셰프 어워드 주인공이 됐다. 

 

온라인 실황중계를 통해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 서울 2022>에는 169개의 레스토랑만이 등재돼 아쉬움을 남겼다.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그웬달 뿔레넥(Gwendal Poullennec) 디렉터는 “우리 삶 속에서 2년 넘게 지속된 팬데믹을 견뎌 낸 레스토랑과 그 팀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위기 속에서도 미식업계는 삶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인 미식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적응과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업계인들에게 응원을 전했다. 2022 미쉐린 영 셰프 어워드는 ‘미토우’의 김보미 셰프가, 2022 미쉐린 서울 멘토 셰프 어워드는 ‘라미띠에’ 장명식 셰프가 각각 선정됐으며, ‘황금콩밭’과 ‘꽃, 밥에피다’가 전년도에 이어 그린 스타를 유지하게 됐다. 

 

힘든 시기를 딛고 이겨낸 미식업계의 노력이 빛을 발한 2023년에는 176곳의 레스토랑이 <미쉐린 가이드-서울 2023>에 올랐다. “K-컬처에 대한 전 세계 여행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서울이 인기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 부상했다.”고 밝힌 그웬달 뿔레넥 디렉터는 “2016년 첫 번째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발간된 이후 7년간 서울의 미식문화와 외식산업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고 말하며, 새로운 3스타 레스토랑을 발표할 수 있게 돼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2019년 1스타를 받았던 ‘모수’가 2020년 2스타로 새롭게 등극한 데 이어 3년 만에 3스타로 등극한 것이다. 
한편 2년 전 도입한 ‘미쉐린 영 셰프 어워드’, ‘미쉐린 멘토 셰프 어워드’와 함께 ‘미쉐린 소믈리에 어워드’가 새롭게 선정됐다. ‘레스토랑 온’의 김준형 셰프가 영 셰프 어워드를, ‘코지마’ 박경재 셰프가 멘토 셰프 어워드를 각각 받았으며, 국내 첫 번째 미쉐린 소믈리에 어워드는 새롭게 3스타를 받은 ‘모수’의 김진범 소믈리에가 수상하게 됐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채소의 95% 이상을 셰프의 부친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직접 재배하며, 레스토랑 운영에 필요한 각종 에너지원 역시 재생 에너지 혹은 지속가능한 자원들로 사용하는 ‘기가스’는 새로운 그린 스타 레스토랑으로 등극했다. 

 

 

부산이 발간 도시로 합류한 올해에는 총 220곳의 레스토랑이 <미쉐린 가이드–서울 & 부산 2024>에 등재됐다. 부산에 위치한 ‘모리’, ‘피오또’, ‘팔레트’ 3개의 레스토랑이 첫 부산 1스타를 받았으며, 부산에서는 시그니엘부산의 ‘차오란’이 유일한 호텔 다이닝으로 셀렉티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며 미식도시로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케 했다. 

 

식재료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셰프 부부가 농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피오또는 새로운 그린 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됐다. 피오또의 이동호 & 김지혜 셰프는 “평생 미쉐린과는 관계가 없는 인생을 살 줄 알았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하며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만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미쉐린에 초대됐을 때 항상 우러러 봐왔던 셰프들과 한 자리에 설 수 있어 꿈만 같다.”며 소감을 전했다. 

 

전년도에 이어 미쉐린 멘토 셰프 어워드와 미쉐린 소믈리에 어워드가 ‘호빈’의 후덕죽 셰프와 ‘빈호’의 김진호 소믈리에에게 각각 수여됐으며, 영 셰프 어워드 대신 새롭게 추가된 서비스 어워드의 첫 번째 수상은 이타닉 가든 팀이 차지하게 됐다. 

 

한편 2023년에 7년 내내 3스타를 유지해 온 ‘라연’이 2스타로 강등된 데 이어, ‘가연’과 ‘모수’가 폐업을 결정하며 업계에 충격을 줬다. 다만 미쉐린 가이드 측은 “모수가 곧 새로운 장소에서 재오픈한다는 점을 감안했다.”며 모수의 3스타를 유지했다. 2스타 레스토랑이던 ‘주옥’ 역시 폐업을 결정하고 뉴욕으로 이전할 계획을 발표해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의 침체를 우려케 했다. 

 

 

 많은 기대 모았던 부산편 
 지역 미식문화 성장의 발판 될까 

 

올해 미쉐린이 발간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에서는 외식업을 꿈꾸는 젊은 경영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본지의 취재에 따르면 상당수의 청년 셰프들이 폐업을 결정하고 있다고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식당을 차리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인이 뭘까? 

 

부산 토박이인 A씨는 “부산 사람들은 오래된 식당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새로 생긴 식당은 ‘뜨내기’가 하는 것 같다는 인식이 큰 것 같다. 주로 엄마가 어릴 적부터 가던 식당, 가족들과 다니는 ‘추억’의 식당을 더 자주 찾게 되는 경향이 있다. 어른들은 맛이 변해도 가던 곳만 간다. 그곳이 오래 됐으니까. 젊은 세대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한편 업계 전문가는 “부산은 고령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경제력을 가춘 노년 인구비율이 높은데 비해 외식에는 돈을 잘 쓰지 않는다. 다이닝업장에서는 알코올 판매가 핵심이다. 인건비와 재료 코스트를 상쇄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류 소비율도 낮다.”며 원인을 분석했다. 또한 “부산에서 영업을 하는 것이 서울에서 하는 것보다 약 20~30%가량 돈이 더 든다. 모든 식자재가 서울에 갔다 다시 내려오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할 때도 수입 자재를 많이 쓰는데 그런 것들이 거의 다 인천에 도착하지 않냐.”며 재료 수급 및 유통 인프라가 부족한 현실을 지적했다. 그에 반면 매출은 서울의 비해 반도 못미치기 때문에 영업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말한 그는 “서울권 외 지역 레스토랑 오너들이 전반적으로 겪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한 피오또의 이동호 & 김지혜 셰프 역시 지역 식당 운영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서울에 비해 지역에서는 양식, 레스토랑에 대한 경험 소비가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이동호 셰프는 “손님들의 평가로 흔들리던 때도 있었다. 부산에서 ‘피오또’라는 이름으로 새 레스토랑을 열 때는 ‘음식을 통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강하게 표출하자’는 의지를 가득 담았다.”고 밝혔다. “피오또(Fiotto)는 용솟음친다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큰 물줄기가 잔잔한 물에 구애되지 않고 뚫고 지나가듯 뚝심있게 요리를 펼쳐 나가고 싶다.”고 이동호 셰프는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셰프들에게 얼마나 쉽지 않은 마음가짐인지, 또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서울의 미식문화가 활발해지기 전에는 그곳의 셰프님들이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 그는 “그 분들이 길을 잘 닦아두었기에 우리도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꾸준히 길을 만들다 보면 지역들도 미식문화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담아 전했다. 

 

 

 요리는 ‘미학’일까? 
 우리가 미식(美食)을 정의하는 법 

 

한국인은 맛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다. 외국인들이 여행을 와서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만 봐도, 패널들은 “밥과 재료를 비벼서 먹어야 한다.”, “직원이 와서 먹는 방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잘 지냈냐’는 인사 대신 ‘밥은 먹었냐’고 안부를 묻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미식문화의 부재’나 ‘맛에 대한 무지’로 여겨질 수 있을까? 파인다이닝만 미식의 계보에 들어가야 하나?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문화와 경험을 과연 진정한 ‘미학’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미쉐린 가이드와 같은 미식 평가 안내서는 앞으로의 평가 기준을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가?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탈리아가 미식의 나라로 유명한 이유는 지역마다 고유한 요리와 식재료를 보유하고 있고, 또 그것을 매우 자부하는 지역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러시아 작가 엘레나 코스튜코비치는 그의 저서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라는 책을 통해 음식을 먹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삶의 일부이자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미식문화가 깊이 뿌리내리는 데에는 사실 별 게 없다. 각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와 풍부한 맛을 함께 나누며 대화의 기쁨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오래된 맛과 새로운 맛의 조화를 즐기고, 맛을 선뵈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것. 이러한 가치와 전통이 함께 어우러질 때 우리나라에도 고유한 미식문화가 정착할 수 있지 않겠는지 질문을 던져 본다.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요리, 그런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을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미식의 문화가 아닐까? 

 


INTERVIEW

“접시에 담으려 노력한 본질과 진심, 
마침내 별이 되다”

피오또(Fiotto) 이동호 & 김지혜 오너 셰프  

 

피오또(Fiotto)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김지혜 피오또는 우리의 세 번째 레스토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이전에 운영하던 곳이 많이 어려웠다. 가게를 정리하고 타지역에서 새로 준비할 계획이었는데, 부산에서 오픈을 하면 부모님 댁과도 멀지 않고 농장 재료를 얻기에도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호 직전에 한 사업이 정말로 크게 망했다.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까지 빼서 가게에서 지내며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새로 다시 도전을 해볼까, 아니면 요리를 포기할까. 정말로 딱 한 번만 해보자고 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미련 없이 털어버리자고. 그래서 피오또는 아주 소규모의 자금만으로 오픈하게 됐다. 캐주얼한 콘셉트로 시작을 했다가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김지혜 셰프가 출산한 뒤에 코스 요리를 1년만 더 해보기로 했다. 정말로 빛을 못 받으면 문을 닫고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1년을 조금 버텨보니 먹고 살 수 있는 정도까지는 오게 되더라. 

 

김지혜 초반에는 파스타와 채소를 활용한 메뉴 위주로 손님들께 선뵈다가 2달 정도 ‘파스타 코스’라는 단어를 사용해 봤다. 그런데 농작물을 조금씩 더 이해하고 표현법을 다양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코스라는 ‘틀’이 제한적으로 느껴졌다. 현재는 ‘피오또 테이스팅 코스’라고 해서 9가지 메뉴 중 파스타는 3가지만 구성한다. 나머지는 농장의 흐름에 따라 재배되는 농작물을 활용한 다양한 채소 요리다. 

 

이동호 지금은 겨울이 막 끝나고 봄이 다가오는 철이기 때문에 저장해둔 농작물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토종 단호박과 당근, 수박무를 활용한 메뉴를 선뵈는 중이다. 수박무는 이번에 처음 시도해 본 작물이다. 단면을 자르면 수박처럼 겉이 초록색이고 안이 빨갛다. 수박향과 함께 시원한 맛이 있는데 콤부차로 피클링을 해서 손님들께 내어드리고 있다.

 

사용하는 모든 식재료를 농장에서 직접 생산하나? 

 

이동호 쌀과 밀, 육류는 국내 로컬 재료를 공급받고 있고 치즈와 버터, 오일과 같이 대체할 수 없는 재료만 최소한으로 수입한다. 그 외 다른 재료들은 모두 선원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것들이다. 정통 이탈리아 요리에서 쌀과 밀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최상급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탈리아 재료가 아닌 우리나라 재료를 사용하고 싶어 재배 방법도 공부를 해봤다. 그러다 경험과 지식이 보다 풍부하고 질 좋은 경작물을 생산하는 분들을 직접 찾아나섰다. 우리밀은 지리산에서 재배하는 것을 사용하고 있고, 샤퀴테리를 만드는 돼지고기나 오리고기도 수입산이 아닌 지역 재료를 활용한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품질의 식재료를 생산해내는 분들을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것 또한 요리사의 역할이라는 생각으로 재료를 쓰고 있다. 
     
김지혜 그래서 피오또의 음식은 겉으로 볼 때 이탈리안이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매우 한국적이다. 처음 오픈했을 때만 해도 선원농장의 재료를 많이 사용하지 못했다. 2~3년에 걸쳐 공부하고, 해를 거듭해 가며 자체생산율을 높였다. 지금은 피오또에서 사용하는 모든 채소가 100% 선원농장에서 재배되고 있다.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팜투테이블(Farm-to-Table) 경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동호 우리는 유학파가 아니다. 결국 이탈리아 출신 셰프의 요리를 통해 영감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치고 고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80, 90살까지 요리를 하는 것이 우리 꿈인데 그때까지 스스로 발전 가능한 요리를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집중하기로 한 것이 로컬 재료, 발효, 그리고 에이징이다. 

 

김지혜 실제로 손님들이 오면 어떻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직접 만드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많다. ‘팜투테이블’이라는 장르가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하다 보니 실제로 요리를 먹어보기 전까지는 의구심을 가지는 손님들도 종종 있다. 클래식이 아니다 보니 낯설어하기도 하고, 우리의 경력과 출신을 궁금해하기도 한다. 

 

이동호 외국 요리를 하면 사실 유학을 안 다녀오는 경우가 드물다. 많은 셰프들이 미쉐린 레스토랑 출신이기도 하고. 사실을 이런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경력에 대해 밝혔을 때 손님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오면 어떡하나 불안하기도 하다. 우리는 증명할 방법이 오직 접시뿐이다. 본질적인 요리를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 

 

피오또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피오또만의 음식철학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동호 자연스러움. 농작물이 안 나오는 시기에는 저장한 재료를 사용하고, 계절에 맞게 땅의 상황에 맞게 나오는 재료를 활용한 선순환. 옛날에는 아주 당연했던 것인데 요즘은 안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게 봐주는 것 같다. 

 

김지혜 오픈 초반부터 자주 오던 덴마크 부부 손님이 있었다. 북유럽 식문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식재료를 통한 레스토랑과 농부간 협업이 매우 활발하다고 하더라. 핫도그를 파는 푸드트럭마저도 지역 재료를 쓴다고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도 그런 방향이다. 지역 재료를 활용하고, 농장주들이 생산활동을 하며 해당 지역의 경제활동까지 활발해지는 구조가 자리잡혔으면 좋겠다. 토종쌀, 우리밀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농업이 활성화돼야 식문화가 확장되고, 음식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동호 손님들 중에 하고 싶은 요리가 있어서 작물 키우냐, 작물을 키우고 싶어서 요리를 하는 것이냐, 묻는 분들이 있다. 우리가 농장을 하려던 첫 번째 이유는 농작물에 대한 공부가 가장 시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 없이 음식의 표현법을 정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선원농장에서는 기존 작물을 70% 재배하고 30%는 새로운 작물을 시도한다. 농작물의 맛과 형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조리법을 선택한다. 표현법이 가장 마지막 단계에 있다. 예를 들어, 여름 가지는 껍질도 부드럽고 물도 많고 달달하니 라자냐에 사용하고, 겨울 가지는 껍질이 단단하고 딱딱하기 때문에 껍질을 벗겨내고 말려서 파우더로 만들어 1년 내내 활용하는 식이다.

 

김지혜 메뉴를 짤 때 우리는 이 재료에서 감칠맛이 나는지 안 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료 본연의 맛을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음식이 정말 맛있어서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를 손님들이 궁금해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우리가 하는 손님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린 스타를 획득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미쉐린 가이드를 통해 “자연에서 난 식재료를 사용한 뒤 이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환경친화적 선순환에 집중”한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다. 

 

김지혜 도시에서 레스토랑을 하면 식재료를 마트에서 사야하지 않나. 손질도 한번 더 해야 하는데 여기서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한다. 가령 양배추라는 식재료는 겉잎을 벗겨내고 사용하는데, 우리는 농장에서 직접 우리가 키운 것들이니 양배추 크림 소스를 만드는 데 활용한다거나 완전히 말라서 쓰지 못하는 잎은 땅에 묻어 퇴비를 만드는 식으로 순환을 실천하고 있다. 이번 겨울부터 새로 시도한 것은 작은 로스팅 카페에서 생두를 로스팅하고 나오는 실버스킨을 받아다 퇴비로 만든 것이다. 껍질에도 영양분 많다고 하더라. 결과는 이 땅에 알맞은 작물을 찾아 키워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현재 테스트 중이다. 

 

이동호 둘이 항상 이야기하는 게 있다. 우리 손에 들어온 재료가 신선한 상태에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은 크게 실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셰프로 부지런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해 쓸 수 있는 한 모두 활용한다. 채소같은 경우에는 스톡을 만드는 데 쓰는데 농장에서 나는 채소가 항상 달라지니 스톡의 맛이 똑같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맛을 보고 사퀘테리에도 넣어보면서 밸런스를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김지혜 소스를 끓이고 난 오리뼈 등은 어쩔 수 없이 버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최대한 줄여보려고 하고 있다. 20L짜리 음식물 쓰레기통을 채우는 데 보통 2~3주 가량 걸린다. 손님들도 음식을 잘 남기지 않는 편이다. 

 

앞으로의 계획, 방향성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혹은 새로운 목표가 생겼는지?

 
김지혜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감칠맛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발효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금으로 하는 락토 발효를 통해서는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과 더불어 짠맛과 감칠맛이 함께 끌어올려지고, 콤부차를 활용하면 감칠맛과 산미가 함께 올라온다. 발효에 집중하면서 선원농장을 이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세우고 있는 계획이자 목표다. 

 

이동호 다소 먼 미래의 일일 수도 있겠지만, 손님들이 농장으로 걸어 들어와 테이블에 앉는 것이 피오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호박꽃을 맛보고 신기해 하는 손님이 있다면, 식사 후 마당에 데리고 가 자라고 있는 것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레스토랑이 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한 해 한 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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