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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수)

레스토랑&컬리너리

[김성옥의 Erotic Food] 디지털 시대의 식사 ‘테이크아웃 피자와 콜라’


영화 <인턴>은 패션 관련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해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성공한 30대의 열정적인 CEO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과 기업체 임원에서 은퇴한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 분)의 이야기다. 1년 남짓한 기간에 급속 성장한 회사를 혼자 힘으로 버겁게 이끌어 가는 젊은 사장 줄스는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반면 그의 70세 인턴 벤은 다른 모든 일에 자신의 경험을 살려 노련함과 여유롭게 일을 처리한다.



벤과 줄스, 두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은 40년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줄스는 하루 종일 애플 컴퓨터와 아이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산다. 잘 나가는 패션몰의 대표답게 최신 트렌드의 고급 브랜드 복장으로 무장하고, 하루 종일 일에 집착한다. 눈은 끊임없이 컴퓨터 모니터와 통유리를 통해 직원들의 현장을 직시한다. 줄스의 손에는 스마트 폰 아니면 노트북 컴퓨터가 들려있다. 직원들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서류와 일거리는 쌓여 있고 일의 스타일도 이미 사장 줄스를 닮아 있다.
자유로운 복장을 허용하는 회사인데도 오랜 직장생활이 몸에 베인 벤은 정장을 고수하며 그의 집 드레스 룸에는 많은 넥타이와 손수건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벤은 온라인 세상에서 컴퓨터도 잘 모르고, 휴대폰도 스마트 폰이 아니다. 벤과 줄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가 많다. 줄스가 ‘디지털’을 표현한다면 벤은 ‘아날로그’를 표현하는데,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소통을 하기 시작한다.


벤과 줄스는 운동 스타일도 전혀 다르다. 영화 속에서 화려한 CEO로 상승한 줄스는 잠을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모든 일상의 시간들이 1분 1초가 아까운 여주인공으로 현대의 여성 CEO의 열정이 투사된 것 같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줄스는 운동할 시간조차 없어 사무실 안에서의 자전거 타기를 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부하 직원들로부터 보고도 받고, 커피도 마신다.
혼자 타는 자전거에는 남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필요 없다. 하지만 줄스는 사무실에서의 자전거 타기는 직원들과의 소통과 함께 운동, 두 가지 모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줄스의 자전거는 ‘개인주의’의 상징이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멈춰 쓰러진다. 줄스는 계속 페달을 밟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자전거는 ‘일 중독’에 빠진 줄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줄스는 ‘사무실 안’에서 자전거를 ‘혼자’ 탄다. 벤은 ‘사무실 밖’ 도심의 푸른 공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태극권을 한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맨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소리 없이 느릿한 몸짓으로 태극권을 함께하는 모습이다


벤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마음을 비우면 나 말고 나 이외의 세상 사람과 사물이 보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태극권은 소통과 공감의 상징인 것이다. 정리되고 심플할 것 같은 디지털은 도리어 복잡하게 꽉찬 상태였고, 묵은 것을 축적해 놓았을 것 같은 아날로그는 단순한 상태였던 것이다.
줄스는 아날로그 세상에서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만하지 않다. 아내의 창업과 더불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 노릇을 하는 남편과의 관계도 소원하다. 잠자리에 누운 남편 옆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일을 하는 게 다반사인데, 사이가 좋을 리 없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남편과의 섹스도 유치원생 딸을 돌볼 물리적 시간도 심리적 여유도 없다. 줄스의 마음은 항상 남편과 어린 딸에게 있다. 그러나 줄스는 그녀의 시간을 가족을 위해 내어주지는 못한다. 줄스가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고 벤에게 울면서 하소연한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 시간을 내주지 못했던 줄스의 자책과 회한이 안쓰럽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식사는 소통과 공감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벤과 줄스 두 사람은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대화로 꼬인 일을 풀어간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하는 식사는 없었다.
줄스는 테이크 아웃한 피자와 콜라를 즐기고, 커피도 텀블러에 담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벤은 정식 스테이크를 즐기고, 손수 내린 풍성한 향의 커피를 즐긴다. 두 사람은 야근을 하다가 탄산음료와 피자를 같이 먹게 된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회사 돌아가는 이런 저런 사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새로운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기 위해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며 의기투합한다. 특히 호텔의 같은 침대 위에서 먹을거리를 앞에 놓고 남편의 외도문제와 회사의 진로문제에 대해 소통하고 공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친근한 부녀지간 같이 아름답다. 개성으로 보면 뚜렷하게 대척점에 서있는 벤과 줄스가 뜻밖에도 자신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인 직장을 공통분모로 만난다.
사랑이 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이가 늘 웃음을 주는 것도 아니다. ‘말하지 않으려 했으면 내가 모르게 하지 그랬어.’ 줄스가 외도한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으리라. 영화 <인턴> 속 줄스 부부의 모습은 사랑하지만 사랑을 나눌 수도, 함께 할 수도 없는 현대의 부부를 보는 듯하다.
갓 구운 피자는 따뜻하고 입안에 착 감기듯 맛있지만, 시간 지난 테이크 아웃한 피자는 뻣뻣하고 입안에서 온기라곤 없어 허기를 채우는 맛이 된다. 변함없이 사랑하지만 사랑을 기다리던 시간이 꿈꾸는 시간으로 지나가 버리면, 시리고 외로운 시간이 된다.
남편의 외도는 두 사람의 식어버린 피자의 맛에 비유할 수 있다. 성공하기 이전의 부부는 따뜻한 피자를 함께 먹었으리라. 하지만 현재의 남편은 아이를 돌보며 가정살림을 하며 늘 외로웠고 차가운 피자를 먹은 건 아닐까.


시간은 점점 더 빨라진다. 그만큼 사람들은 성급해지고 오래된 것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빠르고 새로운 것보다 여유롭고 오래된 경험이 필요한 순간이 더 많아진다. 디지털의 식사 시간은 투자 개념으로, 보다 간단히 먹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먹는 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 내 몸의 건강을 위한 목적은 상실하고 마음의 공허함이 있다.
영화 속 젊은 여성 CEO는 오랜 경험을 통해 인생의 가치와 노하우를 지닌 인턴을 만나 더 성숙한 CEO로 거듭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가치관과 삶을 성숙시켜 생각과 말에서 깊은 향이 우러나오는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 메뉴가 피자라면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피자를 먹자.

<2016년 2월 게재>



김성옥
동원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식품기술사. 조리기능장. 영양사 등 식품, 조리에 관련한 자격증 국내 최다 보유자로 현재 외식경영학회 부회장, 한국관광음식협회 부회장, 조리학회 이사, 한식세계화 프로젝트 및 해외 한국홍보관 책임연구원, 농림축산식품부, 문화관광부, 관광공사, 노동부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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