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앤레스토랑 뉴스레터 신청하기 3일 동안 보지 않기 닫기

2024.05.02 (목)

[남재철의 의전 노하우] 축하 예포(Cannon Salute)와 보신각 제야의 종


예포의 의미
예포는 국가·부대·함정을 공식 방문하는 국내·외의 국가원수, 고위관리 및 장성 등이 도착하거나, 군함이 외국의 항구에 입항하는 등 각종 의례 시 그 수례 대상에 대해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군대나 군함이 일정 수의 공포탄을 발사하는 예식절차다. 우리나라의 예포발사는 국제적인 관례를 바탕으로 ‘군예식령 제4장’에서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예포의 유래
예포는 싸움에서 이긴 쪽에 대한 경의와 무장해제의 표시로 행한 중세시대의 전통의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싸움에서 패한 적군으로 하여금 탄환을 모두 소진하게 한 후 탄약을 재장전할 때까지 무력하게 방치되도록 요구한 17세기의 영국 해상관습에서 유래됐다.
영국은 처음에 함정에 적재하는 표준적인 포의 수가 7문이라는 점에 착안해 7발의 포를 해군예포로 쏘게 했다. 당시 화약은 질산나트륨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해상에서보다는 육상에서 보관하기가 용이,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해상에서 1발을 발사할 때마다, 육상에서는 세 발씩을 발사할 수 있었고 해상에서 7발을 쏠 때 육상에서 21발을 쏘게된 것이 21발 Royal Salute의 유래다.


Royal Salute
21발의 예포는 통상 ‘Royal Salute’라고 하며 미국에서는 ‘Presidential Salute’ 또는 ‘Salute to the Nation’이라고도 한다. Royal Salute라는 명칭은 우리에게 Royal Salute 21이라는 위스키 상표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위스키는 엘리자베스 2세가 5살인 무렵부터 21년 후의 대관식을 예상해 숙성시킨 스카치 위스키로서 1953년 6월 2일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에서 발사된 예포의 수를 따서 Royal Salute 21이라고 명명하게 됐다고 한다.


예포발포의 절차 및 시기
예포를 발사할 때에는 반드시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 발사간격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육군과 공군은 3초, 해군은 5초를 표준으로 한다. 예포는 국기를 게양하기 전이나 강하한 후, 무관인 수례자가 사복을 착용한 경우, 야간에는 발사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며 예포의 수례자가 예포발사를 거절하는 경우에는 예포를 생략할 수 있다. 그리고 예포발사와 군악 취주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 예포의 첫 번째 1발은 관악의 첫음과 동시에 발사하게 된다.


각 국의 예포 발사 수
예포의 발사 탄수는 국가에 따라 다르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가 원수의 경우 21발, 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19발, 장관, 대장 17발, 중장 15발, 소장 13발, 준장 11발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빈 방문 시 외국원수는 21발, 외국부통령, 삼부요인에 해당하는 각료, 특명전권대사 및 국방부장관 19발, 참모총장 및 중장 17발, 특명전권공사 및 소장 15발, 준장 13발, 대리대사 및 총영사 11발로 규정하고 있으나 수례자의 의사, 상대 국가의 예포 발사수, 날씨, 시간대를 고려해 조정 또는 생략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 우리와 같이 21발의 예포를 기본으로 하지만 왕실 구역에 해당하는 하이드파크에서 예포를 쏘게 되는 경우 총 41발, 왕실 기념일에 런던탑에서 예포를 쏠 경우 62발(기본 21발, 왕실구역에 해당하므로 20발 추
가, 런던시를 위해 21발 추가)을 발사한다. 런던탑 행사는 예포의식 중 가장 많은 수의 포를 발사하는 기록을 갖는데 6월 10일 영국여왕 생일이 에딘버러 공작의 생일과 겹치는 이 날은 총 124발을 발사하고 있다.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
‘제야(除夜)’는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밤을 뜻하는데, 제석(除夕) 또는 세제(歲除)라고도 한다. 예부터 이날에는 궁중이나 민가에서 여러 가지 행사와 의식을 행했다. 조선시대에는 이날 밤 대궐 뜰에서 악
귀를 쫓는 의식을 하기도 했고, 민가에서는 밤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말이 있어 밤을 새며 윷놀이를 하거나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종(鐘)의 역사는 깊다. 종소리는 사악함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하는 상징으로,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로 오랫동안 사용돼왔다. 불교에서는 108번뇌를 깨닫게 한다는 의미에서 아침·저녁으로 또는 섣달 그믐날 밤에 108번을 울렸다. 보신각 제야의 종이 33번 울리는 것은 제석천(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 세상인 도리천(33천)에 닿으려는 꿈을 담고있으며,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편안함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조선시대에는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매일 밤 10시쯤 종각의 종을 28번 쳤는데 이를 인정(人定)이라 하고, 새벽에는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기 위해 오경 삼점(五更 三點)에 33번을 쳤으며 이를 파루(罷漏)라고 한다. ‘오경’은 하룻밤을 다섯 부분으로 나눴을 때 맨 마지막 부분으로 새벽 3~5시에 해당한다. 오늘날 보신각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것은 파루에서 유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은 연례행사가 된 제야의 종소리의 시작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895년 9월 인정과 파루는 정오 및 자정에만 타종하도록 변경되고 1908년 이르러서는 이마저 없어지고 포(砲)를 쏘는 것으로 대체된다.
이때까지는 ‘제야의 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섣달 그믐날 밤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여는 소리로서 ‘제야의 종’이 생겨난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서다.
1926년에 설립된 경성방송국이 1929년 1월 1일 남산 기슭에 있던 일본 절본원사에서 범종을 옮겨 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10초에 한 번씩 치면서 중계한 것이 ‘제야의 종’의 출발이었다. 이후 해마다 조선의 종소리와 이른바
‘내지’의 종소리를 번갈아 섞어 가며 제야의 종소리를 생중계하는 행사가 일제 강점기 내내 이뤄졌다.
보신각 종이 ‘제야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울리기 시작한 것은 1953년이다. 그해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보신각을 재건하고 12월 31일 자정 보신각 종이 제야의 종소리로 울려 퍼지게 되며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는 세시풍속으로 연례행사가 됐다. 1985년에는 피로가 누적된 원래의 종을 새로이 주조된 종으로 대체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2016년 2월 게재>




남재철
(주)아이앤비컨설팅 대표/대림대 교수

남재철 대표는 20년 간 국내 최고 품격을 자랑하는 호스피탤리티 서비스업에서 경험한 VIP 환대서비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품격 있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정부 및 공공기관 기업체 대상으로 행사 및 VIP 의전서비스 전문 대한민국 1호 강사로 왕성한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배너
배너

기획

더보기

배너


배너

Hotel&Dining Proposal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