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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금)

레스토랑&컬리너리

[김성옥의 Erotic Food] 여자와 ‘홍시’


요즘 자주 가는 카페에 신메뉴가 등장했다. 늦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면서 카페 벽면에 ‘홍시죽순채, 홍시셔벗, 홍시레몬소스를 끼얹은 홍시샐러드’의 메뉴가 붙어 있는 것. 카페 한편 바구니에 잔뜩 담겨져 있는 과일들 중 ‘홍시’가 눈에 띄었다.
어릴 적엔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알싸한 추위도 아랑곳없이 시골할머니 댁에 가고 싶어 했다. 꽁꽁 언 추운 겨울 밤, 달리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생고구마를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 할머니는 땅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홍시를 꺼내다 주셨다. 그 때 그 홍시는 할머니의 냄새와 까치가 쪼아 먹다 아껴둔 맛이 나는 듯했으며, 하얀 서리까지 맞아 더 달달한 듯한 맛은 어떤 맛이라고 표현이 어려웠다. 홍시를 먹을 때면 으레 음악에 취한 듯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 속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있다. 지금도 홍시를 먹을 때면 눈을 감는 버릇이 있다.
드라마 대장금의 대사에는 어린 장금에게 죽순채를 먹고 무슨 맛이 나느냐고 물었을 때, 장금이는 ‘홍시’라고 답한다. 이에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장금이는 “예?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 온데…”라고 답한다. 그 어린 장금이도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맛으로 홍시를 찾아냈다.
홍시는 누군가에게는 추억으로 할머니를 생각하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감동적인 한 편의 드라마가 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에로틱한 여자로 살게 한다.
누구와도 다르지 않으나 또한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의 성(性,)은, 몸에 대한 별다른 자각이 없던 유년기를 지나면 여성으로서의 성징이 나타난다. 이때부터 나의 몸은 오직 자신만의 비밀스런 영역이 된다. 유년을 지나면서 시간의 나이테가 몸의 기억에 새겨지기 시작할 때 남자를 배운다. 초경, 임신과 출산, 수유의 흔적들-. 내 비밀정원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풋감이 익어 홍시가 되어 가듯 내 몸은 익어가는 것이다.
홍시에는 노폐물을 배출하고, 혈관에 축적되는 콜레스테롤과 지방을 체외로 배출시켜 주며, 홍시의 타닌 성분은 모세혈관을 강화하는 효능이 있다. 또한 몸속에 잔류하는 알코올 성분의 분해를 돕는 숙취해소에도 탁월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네 할머니의 삶에는 야심한 사랑을 나누기 전이나 사랑을 나눈 다음 날 아침에는 차가운 홍시가 있었다. 홍시라고 하면 그만의 컬러보다는 노년을 결부시킨다. 자유로운 영혼이 갇혀 있던 초년에 몸은 수치스럽고 감춰야 할 대상이었다면, 젊은 날 금욕주의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다른 성(性)에 설렌다. 하릴없이 청춘과 중년과 장년을 보내버리고 노년기에 거울을 보면 익히 알고 있는 내가 아닌 내 어머니와 내 할머니를 보게 된다.
신생아들의 얼굴이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혈족이 아니더라도 늙어가는 얼굴들과 노쇠의 과정은 대개 비슷하다. 그 평등함이 때때로 위안이 되기도 하는데, 늙어가는 몸은 무겁고 우울하다. 여기저기 고장 나고, 전에 없던 불편함과 통증으로 난감해하며, 주름져가는 보잘것없는 잉여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변치 않는 감정은 어찌된 것일까. 몸 구석구석이 다 퇴화하고 있는데도 삶의 환희는 변함없이 남아 있으니.’ 삶의 기쁨과 애착 그리고 질병과 고독과 죽음으로 가는 여정에 깃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60대로 접어든 노년의 이들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안도감은 홍시 같이 달콤하다. 금욕적인 사람은 에로틱하다. 에로스의 본질은 금지된 것을 뚫고 들어가는 힘이기 때문에, 노년의 금욕적인 사람은 바로 자기의 충동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에로스는 금욕적인 사람을 출입표시로 해석하고 그에게로 향하게된다. 이제는 풋감의 떫은맛보다 그 달달한 홍시가 맛을 안다. 만지면 살짝 얼어 툭 터져 주황색의 감액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꿀맛이 바로 홍시의 맛이다.
우리의 중년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감이 익어가는 과정이 꼭 여자의 성징을 보는 듯하다.


가을바람 한 줌 스적스적 밀려와
살짝이 옆구리를 건드린다
고것 참 상큼해서 한 모금 들이마시니
청무우 먹고 뒤틀린 뱃속이 환하게 뚫린다
담 넘어 이웃집 노랗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실눈을 달고 서늘바람에 흔들리며
살며시 그 집 초경 치른 소녀의 붉은 귓불에 입맞춤이다
바람도 바람 나름이지
가지끝에 매달려 저희 끼리 웃으며 속닥거리게 하다니,
올라가 한 개 따서 와삭와삭 먹고 싶기도 하고
아서라 참으려니 풋감 익을 때 처럼
군침이 질질 흘려서 가슴이 먹먹하다
이럴 때 건넛 마을 순단이나 찾아와
은근슬쩍 옆구리 찌르며
산 동백 아늑한 숲에서
눈빛 맞추자고 실실 웃어주면 오죽이나 좋을까?
가을은 꽝꽝하게 익어가는데.
- 박종영의 ‘은근슬쩍’ 전문


어느 글에서는 풋감을 “‘너의 슬픔이구나 이 딱딱한 것이 가끔 너를 안으며 생각한다.’ 몸의 안쪽을 열 때마다 딱딱해지는, 슬프고 아름다운 눈을 가리고 손으로 대상을 만지는 것에 ‘나’는 눈을 감고 ‘너’의 몸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안의 슬픔을 만지는데 그것은 딱딱한 감각으로 내게 다가온다. 너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고 나는 안으로부터 금지되고 싶어 한다.”고 표현했다. 감이 에로틱해도 되는 걸까? 홍시는 여자의 입술처럼 은밀하다. 붉은 입술이 홍시에 닿는 순간 그것은 에로틱한 각성이 된다. 익은 감은 부끄럼도 없이 겉과 속이 모두 다홍색이다. 건드리면 툭 터지고 달콤한 맛을 모두 쏟아 내어준다. 홍시의 감각은 실재인 동시에 파편적이다. 계절이 바뀌고 어느 겨울은 계속되지만 그것의 속성은 시시로 바뀌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에로틱’한 그 무엇이 된다.
영화 <간신>은 파격적인 요소가 참 많은 영화다. 조선 팔도에서 1만의 미녀를 강제 징집해 왕에게 바친다는 설정부터 최고의 흥청이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산군(김강우)의 어명까지 모든 것이 파격이다. 볼 때는 ‘야하다’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영화를 본 후에 남은 생각은 참 ‘아프다’였다. 성을 탐하는 연산이 불쌍했고, 강제 징집된 풋감 같은 수련과정 중의 그녀들이 나를 아프게 했다. 저고리가 벗겨진 어깨는 가냘프지만 10대의 징집녀들의 마음은 이미 홍시가 돼 있었다. 홍시는 여자의 일생과 같다. 홍시소스의 샐러드는 신혼시절을, 무덤덤한 죽순에 단맛을 더한 홍시죽순채는 나의 중년을 차가워 혀를 마비시킬 듯한 홍시셔벗은 영화 <간신>의 징집녀의 저고리를 벗은 어깨를 생각나게 한다.
요즘의 홍시는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어 버리는 동시가 돼, 한국의 디저트로 자리 잡아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생각한 것처럼, 겨울에 항아리에 묵혀뒀던 홍시를 먹듯, 달콤함과 시원함이 가득한 동시를 먹듯 겨울이 다 가기 전 ‘홍시’를 그저 즐겨보는 건 어떨까.

<2016년 1월 게재>




김성옥
동원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식품기술사. 조리기능장. 영양사 등 식품, 조리에 관련한 자격증 국내 최다 보유자로 현재 외식경영학회 부회장, 한국관광음식협회 부회장, 조리학회 이사, 한식세계화 프로젝트 및 해외 한국홍보관 책임연구원, 농림축산식품부, 문화관광부, 관광공사, 노동부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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