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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월)

남기엽

[남기엽 변호사의 Labor Law Note #22_ 마지막회 ] 허울뿐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결국 모든 인권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서 비로소 태동한다 


외모와 달리 적잖은 나이가 된 지금도 철들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질문하고 부딪히고 겪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느낀 시각, 청각, 촉각들이 하나의 인상을 이뤄 기억으로 저장되고 추억으로 재생된다. 그 과정의 순연을 위해 사는 때는 지금 이 순간이다.


한 명의 인간마다 하나의 우주가 있다는 어느 시인의 자의식 과잉엔 공감하지 않지만 분명 개개의 삶은 저마다 독특하고 충분히 특별하다. 단, 그 사람에게만 그렇다. 전체를 놓고 보면 거기서 거기다.

 

호텔도 마찬가지. 럭셔리 스케일에서 정장을 입고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멋져 보이고 호텔리어는 외국인과 자주 만나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익히기에도 매력적이다. 그래서 입사지원서를 쓰는데 그게 HR 입장에서는 다 똑같다. “어려서부터 남을 즐겁게 하는 데 큰 즐거움을 느꼈고”, “민간 외교관으로서 한국의 위상 업스케일에 기여하고 싶다.”, “이곳에서 GM이 될 때까지 뼈를 묻겠다.”라는 거창한 수사가 난무하지만 몇 달 안 돼 그만두는 탓에 인력난을 호소한다. 개별 활동의 특수성을 각자 포장하는 대신 집단 획일성으로 정의해 표현하는 것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네덜란드의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작품은 그래서 영감을 준다. 그는 수학의 무결성에 주목하여 평면의 균등분할, 무한한 공간의 존재와 순환을 그렸다. 글보다 그림이 빠르니 다음을 보자.


밑에서 시작하면, 한 인간이 계단을 오른다. 그렇게 왼쪽으로 가다 보면 누군가는 오르지만 반대편 누군가는 내려간다. 여기서 중력은 계단에 존재한다. 더 올라가면 누군가는 편안하게 독서를 하지만, 역시 밑에서 보면 매달려 있는 모양새다. 그 오른쪽엔 음식을 들고 오는 누군가를 상찬 중인 이가 기다린다. 여러 중력을 갖는 세계가 연결되며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 에셔는 묻는다.

 

 

 

진실은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은 대체로 자기부정을 하지 않는다. 자기부정을 할 때는, 그게 이익이 될 때만이다. 수사기관에서 선처받고 싶을 때, 재판에서 판사를 설득하고 싶을 때 말뿐인 반성을 하고 허울뿐인 용서를 구한다. 여성 2명을 살해한 어느 흉악범은 출소 전 반성하는 수기를 썼고 출판까지 계획했다.


우리 모두 요즘 유행하는 ‘사적제재’가 불법인 것은 안다. 아무리 나쁜 놈이어도, 법에 따라 처벌하자. 이를 세련되게 표현하면 “In dubio pro reo”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하라는 뜻인데, 죄가 있다고 확신이 들 정도가 아니면 무죄로 하라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①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 대한민국의 영역안에서는 중대한 군사상 기밀·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군용물에 관한 죄중 법률이 정한 경우와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
③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④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⑤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권고사항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증거법상 명백한 흉악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다툴만한 상황에서, 자신의 양심에 비춰 방어권을 행사하면 어김없이 “반성하지 않고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점”이 양형사유로 적시돼 가중 처벌된다. 방어권을 행사하라고 헌법 이하 형사소송법 및 규칙까지 만들어 뒀는데 졸지에 도박이 된 것이다.

 

무죄에 베팅할 것이냐,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여 양형을 낮출 것이냐. 저마다 우주는 없더라도 자기 양심과 원칙은 있다. 양심과 원칙에 따른 판단과 행동은 끊임없이 부유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 자신이 구축한 세계가 세상의 인정을 받으면 리더가 되고, 사유의 원리가 되면 철학이 된다. 범죄혐의를 받는 그 많은 전직 법조인, 이를테면 대법관, 판사, 변호사, 검사들은 모두 결백하다며 부정한다. 이렇게 전문가들조차 즐겨 쓰는 헌법에 명시된 자기방어권 행사가 양형가중 사유가 되는 현실에서 나는 변호사로서, 누군가의 변호인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에셔의 또 다른 작품 <손을 그리는 손>에서 각 손은 서로를 그린다. 그렇게 손은 그려지고 또 그리며, 끊임없이 순환한다. 각 손은 자신이 그려진다는 것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위 그림의 양 손을 그린 손이 누구의 손인지. 그런데 그것 또한 우리 생각이다. 결국 <Relativity>에서 진실로 존재하는 계단은 왼쪽 계단도, 오른쪽 계단도 아니다. 내가 서 있고, 나를 지탱하는 그 계단이다. 이 전제 위에 타인이 서 있는 계단인지, 비현실적인지 생각한다.


재판에서 우리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이런 가상함은 진실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나온다. 이 지점에서 에셔의 그림은 아래와 같이 웅변한다. 


“진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남기엽 변호사의 Labor Law Note를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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