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을 예약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호텔 예약 대행 사이트에 접속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알뜰한 사람이라면 2개 이상의 호텔 예약 대행 사이트에 접속해봤을 텐데, 신기하게도 그 많은 호텔 예약 대행 사이트의 가격이 거의 동일한 가격을 보여주고 있다. 예약 대행 사이트는 여러 개인데, 왜 가격은 거의 동일하게 책정됐을까? 호텔 예약 대행 사이트와 같이, 온라인으로 여행 관련 예약서비스를 대행하는 사업자들을 소위 Online Travel Agency, 즉 ‘OTA’라고 지칭한다. OTA 사업자들은 최근까지 호텔들을 상대로, 다른 OTA나 호텔 자체 홈페이지에 자사 플랫폼에 제공하는 객실 조건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계약 조항, 소위 ‘최저가 보장 조건’을 삽입하도록 요구해왔다. 그 결과 호텔 등 숙박업체들은 사실상 모든 OTA에게 동일한 가격과 조건을 제시할 수 밖에 없었고, 사실상 모든 대행업체가 동일한 가격으로 해당 숙박 상품을 판매하게 됐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인터파크(tour.interpark.com), 부킹닷컴(Booking.com), 아고다(Agoda.com), 익스피디아(Expedia.co.kr), 호텔스닷컴(Hotels.com) 등 국내외 5개 호텔 예약 플랫폼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위와 같은 조항을 계약에서 삭제·수정하도록 시정했다. 모든 OTA에게 최저가가 보장되는 것은 소비자에게도 좋은 것이 아닐까? 공정거래위원회는 어떠한 연유로 위와 같은 시정조치를 내린 것일까?
점점 확대되는 OTA의 영향력
인터넷으로 호텔을 예약하려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의 선택지에 직면한다. 하나는 호텔 공식 홈페이지를 이용하거나 호텔 예약 대행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호텔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호텔 공식 홈페이지를 이용해 예약하는 고객들이 더 반가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대중의 접근성이 월등히 높은 호텔 예약 대행 사이트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국내 숙박업체들의 경우,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글로벌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OTA 사업자들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부 대형 호텔 체인들은 호텔 자체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포인트 적립제도나 등급 제도를 운영하는 방법을 통해, OTA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자 노력 중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방법은 전 세계 각지에 호텔이 있고, 높은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호텔들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고객은 1회성 방문에 그치는데다, 이러한 고객일수록 OTA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호텔들은 높은 수수료 등 달갑지 않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OTA의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저가 보장 조건이 종국적으로 소비자에게 불리한 이유
이번에 OTA사업자들이 호텔들에게 요구한 최저가 보장 조건의 기원은 MFN(Most Favored Nation), 소위 ‘최혜국대우조항’이라 불리는 규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최혜국대우는 각국이 산업보호를 위해 관세장벽을 높이던 시대에 무역장벽을 없애는 방법으로 적용되던 기준으로, 무역장벽을 없애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그 뒤를 이은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 공통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본래는 수출국 사이의 경쟁기회를 동일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자유무역을 가능하게 하고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됐던 원칙인데, 최근에는 나라 대 나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쓰이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OTA 사업자들이 호텔들에게 요구하는 MFN 조항으로는, (i) 자사 플랫폼에 제공하는 객실 조건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다른 OTA나 호텔 자체 홈페이지에 제공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넓은 범위의 MFN 조항, (ii) 다른 OTA보다는 유리한 조건을 요구하지 않지만, 적어도 호텔 자체 홈페이지에는 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좁은 의미의 MFN 조항이 있다.
위와 같은 MFN 조항에 따를 경우, 특정 호텔이 OTA 사업자인 A사를 통해 해당 숙박상품을 10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면, 호텔 홈페이지는 물론 다른 OTA 사업자인 B사, C사에게도 해당 객실을 10만 원 미만으로 제공할 수 없다(가격 동일성). 또한 특정 호텔이 특정 기간 동안 OTA 사업자인 A사에게 10개의 객실을 공급할 것을 약속했다면, OTA 사업자인 B사, C사에게도 10개를 초과하는 객실을 제공할 수 없다(동등가용성). 특정 호텔이 OTA 사업자인 A사에게 특정 객실 조건, 취소 조건을 적용했다면, 호텔 자체 홈페이지, OTA B사, C사 등에게 그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객실을 제공해서는 안된다(기타 조건의 동일성).
호텔업체들은 위와 같은 MFN 조항으로 인해 판매경로를 불문하고 똑같은 객실 요금과 조건을 제공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를테면, 특정 OTA를 대상으로 파격적으로 객실 요금을 낮추는 판촉 전략을 취하고 싶어도, 다른 OTA와의 MFN 조항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전략을 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위와 같은 경쟁 제한적 효과는 호텔업체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었다. 신규 OTA 사업자로서 OTA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려는 사업자들 역시 위와 같은 시장 상태에서는 기존 OTA보다 낮은 객실 요금을 책정하는 전략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시장 전반적으로 가격 경쟁이 사라지고 소비자 후생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들로서는 더욱 더 최저가로 제공받을 수 있었던 잠재적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즉 계약조항을 통해 보장되는 ‘최저가’는 진정한 의미의 최저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OTA 사업자들의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호텔 자체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루트가 병존하고 있기 때문에, OTA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가격보다 호텔 자체 홈페이지 가격이 더 저렴하다면, 합리적인 소비자들은 OTA 사업자들의 플랫폼을 이용해 호텔을 검색한 뒤 예약은 호텔 자체 홈페이지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OTA 사업자들이 플랫폼 정비 및 확장을 위해 투자한 시간적·비용적 노력에 호텔업체들을 무임승차시키는 셈이 돼, 또다른 부당함을 야기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MFN 조항에 대한 해외 규제사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초기에는 좁은 범위의 MFN 조항 정도는 인정했지만, 개별입법을 통해 좁은 범위의 MFN 조항마저도 금지하는 추세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벨기에와 오스트리아 역시 입법을 통해 모든 형태의 MFN 조항을 금지했다고 한다. 다만 이 나라들을 제외한 EU 국가들, 스위스, 브라질, 뉴질랜드, 홍콩 등은 좁은 범위의 MFN 조항까지는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미국의 경우, 소비자들이 OTA와 호텔체인업체들을 상대로 위와 같은 경쟁제한적효과를 이유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사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 사례에서, 연방지방법원은 OTA와 호텔체인업체들 간에 맺은 계약이 공모에 의해 이뤄졌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내용
공정거래위원회는 위와 같이 관련 실태 및 해외 규제 사례를 조사하면서, 2019년 12월 경 서울·제주도에 소재한 호텔 16개 업체를 현장방문해, 이들과 거래하는 모든 OTA 사업자의 계약서를 점검했다. 그 결과 상당 수의 대형 OTA 사업자들의 계약서에 넓은 범위의 MFN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사업자들은 조사 과정에서 스스로 MFN 조항을 삭제하거나, 넓은 범위의 MFN 조항을 좁은 범위의 MFN 조항으로 수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예시는 다음과 같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숙박업체의 무임승차 문제를 고려해 OTA 사업자가 호텔 홈페이지보다는 같거나 유리한 조건으로 숙박 상품을 제공하도록 한 조항, 즉 넓은 의미의 MFN 조항은 허용하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호텔업체들이 OTA 사업자가 구축한 플랫폼에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호텔과 OTA의 공존을 모색할 필요성
남귤북지(南橘北枳)는 남쪽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가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글로벌적인 온라인 시스템을 중심으로 성장한 OTA 사업자들을 무조건 비판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과거에는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일부 호텔들이 OTA를 통해 보다 다양한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OTA의 거대한 플랫폼이 호텔산업을 비롯해 관광산업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OTA의 거대한 영향력이, 다른 한편으로는 각 호텔들에 대한 일방적인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OTA에 대한 위와 같은 시정 역시, 위와 같은 OTA의 명(明)과 암(暗)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OTA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각 호텔들 고유의 자생력을 해치지 않고, 나아가 OTA와 호텔을 모두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편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정한 경쟁이 펼쳐질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조성이 최우선 돼야 한다.
단순히 다른 한 쪽을 무조건적으로 끌어내리거나, 시장의 강자 내지 약자라는 단순히 이념적인 이유로 규제를 가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규제를 통해 소비자의 편익을 소화하고 시장 참여자들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그러한 고민에 부합하는 시장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규제당국은 물론, 이를 지켜보고 이용해야 할 국민 모두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김한솔 법무법인 (유)율촌 변호사 kimhs@yulchon.com / tskim@yulcho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