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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 Culinary

[The CHEF] 미완성의 한식, 식재료 하나하나에 의미를 더하다, 박대순 셰프


박대순 셰프. 이름만 들어도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는 27년 경력의 한식 베테랑으로 전 세계 100여 개 국가를 돌며 한식을 전하고 타국의 음식에서 한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화려한 경력을 제쳐두고서라도 그의 요리를 맛본 사람은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타공인 한식 장인이다. 지난해 조리부문 국가공인 1호 한국음식 우수숙련기술자로 선정돼 다시 한 번 세간에 이름을 알린 그는 요즘 한의학에 근간을 둔 약선 요리에 관심이 많다. 우리 음식은 먹을거리를 넘어 약이 된다는 옛 조상들의 지혜를 따라 식재료 하나하나에 의미를 새겨 이로운 음식을 만든다.


따르르릉~!
새벽 알람이 울렸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아직 하늘은 어둑하니 달빛마저 그윽하게 내리는 이른 새벽이다.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들어 새벽시장에 가기 위해 부지런히 채비를 했다. 단돈 1500원이면 탁주 한 잔에 우거지국 한 사발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때가 있었다. 6년을 매일같이 새벽시장에 나가 육류, 채소, 생선, 향신료 등 모든 식재료를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아가며 익혔다. 우리음식은 하나에서 열까지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여느 주방보다 노동 강도가 센 곳이 바로 한식주방이다. 낮에는 가든에서 일하고 밤에는 한정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 5시간 넘게 눈을 붙여본 적이 없다. 그 때는 몰랐다. 6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나의 DNA는 한식
어머님이 음식을 참 잘하셨지. 떠올려보면 어머님 치맛자락 너머 음식을 보고 거들면서 늘 먹고 자라던 한식에 대한 애정을 싹 틔운 것 같다. 자연스레 조리사의 길을 걷게 됐지만 한식만큼 마음을 끄는 것이 없었고 오롯이 한식 한 길만을 보고 걸었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 현장실습을 수안보 와이키키 관광호텔에서 하게 됐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80~90년대 만 해도 이곳은 온천관광이 인기를 얻어 당대 최대의 숙박시설로 전성기를 누렸었다. 선배들의 눈에 들어서였을까. 현장실습 3개월 만에 정식직원으로 입사한 후로도 오너 셰프가 되리라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일을 배웠다. 2년 뒤 취사병으로 입대한 후,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유성관광호텔에서 호텔경력을 이어갔다. 오너 셰프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도 놓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한식의 매력에 충만해 있었다. 그러던 중 한식에 대해 깊게 빠져들게 되면서 호텔 한식의 한계에 부딪쳤다. 한식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호텔을 나와 가든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대로 경력을 쌓다보면 호텔 셰프로서 보장된 삶을 살 수도 있었을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깊고 진하게 한식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가든으로 이직했다. 그 해 스물다섯이 되던 때였다.


내 인생의 선배, 내 인생의 황금기
아직 젊기에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날고 뛰었다. 가든으로 입사할 때 호텔에서 일한 5년은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방 막내로 들어가 6년간 똑같은 급여를 받았다. 가든에서만 일해서는 생활이 빠듯했기에 아르바이트로 나머지를 충당해야 했다. 그래서 낮에는 가든에서 일하고 밤에는 한정식집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에는 30명 이하의 소규모 영업장에서 갈비, 냉면 등 각 파트별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는데, 박 셰프가 일하던 가든에서도 조리팀이 추가 파트타임으로 번 돈에 대해서는 모두 똑같이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하루 5시간 넘게 눈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깨어 있는 모든 시간에는 한식에 대한 노하우를 몸에 새겨 넣었다. 새벽마다 승합차를 끌고 농수산물 시장에 나가 식재료를 고르고 싣고, 식재료에 대한 선별과 구매법을 선배로부터 혹독하게 훈련받았다. 이때부터 박 셰프는 식재료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아보고 빛깔도 확인하고 수확 시기나 상태에 대해서 매일같이 확인하며 식재료와 친숙해졌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봐야 하는 법. 선배는 냉면을 맛있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보다 유명한 냉면집들을 돌아다니며 냉면의 특징, 유래, 차이점 등을 설명하며 스스로 느낄 수 있길 바랐다.
“선배는 늘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레시피와 똑같은 요리가 아닌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이를테면 “냉면을 맛있게 만들고 싶으면 맛있는 냉면을 많이 먹어봐야 알지.”하시면서 메밀은 얼마나 들어갔네, 메밀보다 전분이 더 많네, 탄력이 떨어지네, 면발의 굵기가 어떻네...등등 가는 곳마다 냉면을 맛보게 하고 각각의 맛과 특징을 알려주셨죠. 그렇게 수많은 냉면들을 맛보다 보니 냉면의 맛을 알겠더라고요.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레시피를 보고 만들기보다 그 음식이 어떤 맛인지를 먼저 알아야 해요. 많이 경험해봐야지요.”


The Chef, 서른에 얻은 주방장 타이틀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도 하루라도 빨리 박대순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다. 아니, 기술에 대한 인정이라고 해야 할까. 조리경력 10년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어느 날 음식을 맛보다가 맛의 포인트를 집어내니 선배가 꿀밤을 탁 놓으며 “이제 네가 요리사야!”라는 한 마디를 건냈다. 마침내 홀로서기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이후 그는 ㈜육삼의 한식 주방장으로 발탁 돼 당시 호텔 주방장 급여의 두 배에 해당하는 연봉에 스카웃됐다. 21명의 주방 팀원을 이끌면서 연매출 60억을 올리며 승승장구했고 유성호텔에서 한식팀장으로 경력을 쌓았다.
“요리 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그런 것 같아요.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의 시간을 한 가지 목표에 매진해야 한다고 봐요. 자신의 이름을 건 셰프가 될지, 안락함이 보장된 직장인이 될지는 본인 선택의 몫이지요. 10년, 20년은 좋은 조건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지만 이후 오너 셰프가 된다면 과연 그때 가서 무엇으로 고객을 만족 시킬 수 있을까요? 기술은 성공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요리사에게는 어떤 조건이 더 나은가를 따지기보다 요리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이유지요.”


한식의 다양한 스펙트럼 살려 문화로 접근해야
박대순 셰프의 요리의 비결은 한식에 대한 폭넓은 지식에 더한 맛이다. 호텔과 가든을 오가며 일한 경력 탓에 격을 갖춘 호텔 한식에서부터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맛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이런 장점 덕분에 VIP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현재 그는 전국을 돌며 요리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기능인협회, 기능경기대회, 조리기능장, 조리산업기사, 조리기능사 등 국가자격 심사의 출제, 검토,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명장의 전 단계인 우수숙련기술자 조리부문에 선정돼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박 셰프는 지금껏 해외 100여 국을 돌며 각국의 특색 있는 음식 속에서 한식에 대한 깊은 고민도 놓지 않았다.
“음식은 문화로 접근해야 합니다. 문화 vs. 문화로 접근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외국의 음식을 모방해서 비슷해지려는 것이 아닌 우리의 전통을 깊이 있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나라에는 비슷한 색을 가진 음식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테면 네덜란드의 청어절임나 엔초비처럼 우리나라에는 젓갈이 있잖아요. 그 나라에 문화에 맞는 한국의 음식을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외국에 가서 그 나라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듯, 우리나라를 방문하거나 한식에 관심을 갖는 그들도 한국의 특색이 담긴 음식을 먹고 싶어 할 겁니다.”


세계 요리에서 얻은 영감을 한식으로
많은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박셰프가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있다. 바로 전통식당과 전통시장이다. 이 두 곳을 방문해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특히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한식으로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실제로 박 셰프가 태국에 가보니 전통 요리와 외국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퓨전 메뉴를 선택할 수 있었다. 고수나 피시소스 등 한국 사람들도 피하는 음식들이 있지 않나. 이런 것들도 개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한 것이 인상 깊어 ‘한식에서도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불고기를 메뉴로 내 놓을 때 전통식으로 먹을지, 햄버그스테이크처럼 퓨전화된 불고기를 먹을지 선택하는 식이다. 젓가락이 서툰 외국인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 중아시아 음식을 보면, 카자흐스탄처럼 양고기 요리가 많은 나라가 있다. 버터와 밀가루로 페이스트리처럼 만두피를 만들고 여기에 양고기 소를 채워 만두를 빚은 뒤 항아리 오븐에 굽기도 하고 생고기를 꼬치에 끼워 숯불로 구워 먹는 것에 익숙한데 이는 우리나라의 숯불구이와도 유사해 한식 구이 요리로 접근하면 쉬울 것이다.
“어디 이뿐 일까요? 종교별로는 중동과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 비슷한 음식문화를 갖고 있고 아시아에 속한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면 요리를 좋아하잖아요.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하면 한식이 좀 더 쉽게 다른 나라의 문화에 융화될 수 있지 않겠어요?”



약이 되는 한국음식
최근 박 셰프가 관심을 갖는 분야가 바로 한의학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한식에는 이로운 점이 많아 알고 먹으면 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약선 요리 연구가들이 음식을 만들 수는 있지만 한의학적으로 효능을 따져가며 처방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직접 약선 요리를 위한 한의학을 배워보기로 했다. 체질에 따라 음식으로 처방이 가능한데, 이는 마치 처방전과 같아서 기초의학 지식 없이 약선 요리를 할 수 없다는 게 박 셰프가 학문에 정진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전통주 전문가 박록담 선생님을 찾아 전통주 빚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의 가치를 살려 계승하는 것. 그가 한 결 같이 지켜가는 한식에 대한 애정이다. 여전히 한식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기에 아직 그의 한식은 미완성이다.
“장인어른이 막걸리를 참 좋아하십니다. 제가 술을 빚어갈 때면 옛 향수가 느껴진다며 맛있게 드시지요. 60년대 들어 정부의 정책에 따라 쌀이 아닌 밀로 술을 빚게 되면서 아쉽게 많은 가양주들이 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졌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식재료에 좋은 점이 참 많은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우리 식재료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 약선 요리를 공부하고 있어요. 육개장 하나를 만들더라도 좋은 스토리를 끄집어 내 스토리텔링할 수 있다면 그 가치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겁니다.”


명장의 전 단계, 우수숙련기술자 조리부문에 선정
기술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우수숙련기술자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우수숙련기술자는 총 22개 분야 96개 직종에서 7년 이상 동일 업무에 종사한 전문 기술인을 대상으로 숙련기술보유정도, 기술개발 및 업무개선실적, 수상실적, 사회봉사활동, 대면면접 등 평가를 통해 선정된다. 박대순 셰프는 지난해 롯데호텔 무궁화 천덕상 셰프, 아워홈 고재길 셰프와 함께 우수숙련기술자 조리부문에 올랐다.


Chef. 박대순

2016 한국음식(국가공인1호). 우수숙련기술자(노동부)
우수숙련기술자(준명장, 농림축산식품부)
2015 궁중음식 고수 선정(사)대한민국한식협회
외교부장관 표창
한식재단 이사장 표창
2014 최우수지도자 선정(사)한국조리사회중앙회/(사)한국음식관광협회
국무총리 표창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표창
(사)대한민국한식협회 자랑스런 조리인상 수상
2012 대통령실장 표장
2011 조리기능장
한국음식을 이끄는 100인의 달인(사)한국음식조리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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