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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 Resort

[Creative Hotel] 호텔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호텔 프린스엔 소설가의 방이 있다

호텔 유리벽을 타고 흘러내린 햇빛이 나른한 표정으로 골목을 채웠다. 체에 걸러낸 것처럼 잘고 부드러운 빛.
자동차 경적조차 끼어들지 않는 우묵한 공간. 호텔 부근은 마치 그곳만 진공 속으로 접혀 들어간 것처럼 적요했다.
- 안보윤, <호텔 프린스> “순환의 법칙” *


호텔 프린스. 명동에 있는 호텔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 호텔 이름을 달고 책이 한 권 나왔다. 호텔 대표의 자서전인가 싶지만 놀랍게도 소설집이다. 작가 여덟 명의 단편이 왜 한 호텔 이름 아래 모였을까? 모든 건 프린스 호텔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소설가의 방’에서 시작됐다.
*안보윤 外, <호텔 프린스> “순환의 법칙”, 은행나무, 2017, 184쪽



예술가에게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 어느 소설가는 같은 집 안이어도 거실 이외의 공간에서는 글을 쓰지 못한다 했다. 작가에게는 오롯이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할 테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여기서 출발한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레지던시 프로그램(Artist-in-Residence)은 예술가에게 일정 기간 거주나 전시 공간, 작업실 등 창작 공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예술가는 특정 공간에 거주하며 창작 활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지만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 외국에서는 이미 활성화돼 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크게 국·공립 운영과 민간 운영으로 나뉜다. 국·공립 운영은 제주문화예술재단, 인천아트플랫폼, 공주문화예술촌 등 지역과 연계한 곳이 많다. 민간 운영은 두산그룹, 금호아시아나 등 대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으로써 이뤄지는 경우가 다수다.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호텔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국내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호텔은 드물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꽤 많은 호텔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들은 객실, 식음, 세탁 등 자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다방면으로 예술가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Oklahoma)의 The Skirvin Hilton은 지금까지 다섯 명의 예술가를 후원했다. 이 호텔은 예술가의 작업 스튜디오를 호텔 고객에게 개방해 예술가와 대중이 상호작용할 수 있게 했다. 벨기에 브뤼셀의 Hotel Bloom은 예술과 창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며 오픈부터 예술가들을 지원해왔다. 이들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이 결국 호텔 고객에게도 영감을 주고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 믿는다.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셀러브리티들이 전세 내서 사용했던 프레지덴셜 스위트의 인기가 떨어지자, 2014년 이곳을 예술 공간 Penthouse Art Space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로컬뿐 아니라 전 세계 예술가들이 작업과 전시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 호텔이 지역 사회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프린스 호텔의 사려 깊은 시도
한편 국내에서는 2015년 인천 네스트 호텔이 한국 아트 영화 발전을 도모하고자 진행한 아트 영화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정도가 눈에 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작가를 위해 객실을 내어준 프린스 호텔이 빛을 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린스 호텔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소설가의 방’은 2014년 소설가 윤고은이 한 잡지에 기고한 수필 ‘호텔 프린스의 추억’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그 글을 읽은 호텔 관계자는 작가로부터 독서경영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했고, 결국 호텔과 작가가 만나게 된다. 작가와의 미팅 후, 호텔에서는 ‘공간’이 절실한 작가들을 위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2014년 하반기, 프린스 호텔은 ‘소설가의 방’을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점점 제대로 자리를 잡은 ‘소설가의 방’을 통해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완성했고, 그들은 ‘호텔’을 소재로 단편도 하나씩 써냈다. 이 단편이 모인 책이 은행나무출판사의 <호텔 프린스>. 책 안에는 낯선 공간인 호텔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겼다. 글에는 작가들이 호텔에 머물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묻어있다. 예술가가 자유롭게 작업하도록 돕는 호텔이라면 이들 역시 예술가가 아닐까.





[INTERVIEW] 다양한 가치를 품을 수 있는 공간, 호텔


<프린스 호텔 이의구 부장>


Q. ‘소설가의 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우리 호텔 남상만 대표이사께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독서경영이다. 실제로 2008년부터 매월 초에 책을 구매해 월말에 감상문을 쓰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또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이윤만 추구해선 안 된다는 게 회사 철학이다. 이웃과 사회가 함께 가야 한다는 기본 바탕이 있던 때, 윤고은 작가가 한 잡지에 기고한 <호텔 프린스의 추억>이라는 글을 보게 됐다. 작가들이 신춘문예 당선을 목표로 호텔에 투숙했지만 집필보다는 이야기꽃에 집중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고 윤 작가와 미팅을 진행하게 됐다. 글 쓰는 분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때 윤 작가가 말해준 내용이 글 쓸 공간의 중요성이었다. 숙식만 해결돼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말에 본격적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Q. 어떤 단계로 진행했나?
우선 모집 공고를 냈다. 제주에 우리 호텔 복지관이 있어서 서울 프린스 호텔과 제주 지역 두 군데로 나눠 모집했다. 작가 선정이 쉽지 않았는데 윤 작가가 많이 도와줬다. 젊은 작가 위주로 선정했다. 또한 일 년 내에 출간 계획이 있는 작가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더 확실한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하게 됐다.


Q. 작가의 소설로 낭독회도 진행했다.
그건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작가들이 ‘소설가의 방’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을 집필한 뒤, 그 연장선에 있는 행사를 진행하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그래서 작가가 호텔 소재로 가벼운 단편 하나를 쓰고 그 작품의 낭독회를 열게 됐다. 성우, 극단 배우들이 낭독극을 하고 초대가수가 작은 공연을 여는 구성이었다.




Q. 음악가 지원 프로그램인 ‘음악가의 방’ 프로그램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음악가의 방’은 낭독회에서 파생됐다. 이은선 작가가 가수 하림을 낭독회 가수로 초청했는데, 그때 하림 씨가 음악가의 방을 제안했다. 음악가의 방 프로그램은 소설가의 방보다 좀 더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아무래도 호텔 내에서 진행되다 보니 다른 고객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음악 데시벨을 맞추는 등 여러 까다로운 점이 있더라. 그래서 소설가의 방 프로그램만큼 활성화하진 않았지만 계속 고민하고 있다.


Q.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단편집 <호텔 프린스>가 출간됐다.
문화예술위원회가 ‘소설가의 방’ 프로그램 선정 작가들의 단편집을 내보자고 제안해 은행나무출판사와도 함께하게 됐다. 그런데 책 제목이 <호텔 프린스>가 될 줄은 몰랐다. 놀랐고 고마웠다. 책 제목이 호텔 이름인 덕에 블로그 등 온라인상에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취지는 문화 부문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국 우리 호텔도 좋은 영향을 받게 됐다. 그 덕에 망설이던 다른 사회 지원 프로그램도 시도할 용기를 얻었다.


Q. ‘소설가의 방’ 프로그램에 대한 소회가 듣고 싶다.
호텔은 매일 출근하는 곳이기에 익숙해져 버린 공간이었다. 이 계기로 호텔이라는 곳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떤 작가는 오자마자 텔레비전을 떼어달라고 했다. 또 다른 작가는 호텔 근처 명동과 을지로를 걸으며 영감을 얻기도 하더라. 이곳에서 누군가는 글에만 집중하게 되고, 누군가는 이곳을 안식처 삼아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거다. 이곳이 다양한 가치를 품을 수 있는 공간임을 깨달았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한 IT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는 직원 숙소 공간이 남는데,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면 어떻겠냐며 조언을 구하더라. 어쩌면 작게나마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호텔 프린스> 북 콘서트에 가다


지난 2월 15일 저녁 7시. 마감의 한 가운데 행사 일정이 잡혀 있었다. 프린스 호텔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호텔에 머문 작가들이 단편을 썼고 이를 엮은 책 <호텔 프린스>가 출간됐다. 행사는 <호텔 프린스> 출간 기념 북 콘서트였다. 며칠 전 만난 프린스 호텔 이의구 부장님과의 인터뷰는 즐거웠고, 좋아하는 뮤지션도 게스트로 나온다. 하지만 썩 내키지 않았던 건 마감이 주는 압박 때문이었다. 피로가 잔뜩 묻은 얼굴로 행사장에 들어섰는데 아뿔싸! 내 자리는 하필 또 맨 앞자리였다. 난감해할 새도 없이 행사가 시작됐다. 이은선 소설가가 진행을 맡았고 전석순, 김경희, 김혜나 소설가가 참석했다.
첫 순서는 극단 ‘해인’의 낭독극이었다. <호텔 프린스>의 단편을 얼마나 솜씨 좋게 엮었는지 여덟 가지 이야기가 하나처럼 느껴졌다. 소설 구절을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는다는 건 기분 좋게 묘했다. 이미 처음의 피로는 잊혔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맘이 설렜다.
다음 순서는 네 사람의 작가가 서로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작가가 작가에게 묻다’ 시간. 이은선 작가가 김혜나 작가에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었고, 김 작가는 소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소설을 너무 사랑해서 다른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고. 소설의 장점을 묻는 말에 전석순 작가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했다. 다들 해야 하는 생각만 하고 사는 세상인데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하는 자체가 의미 있다면서.
이어 윤덕원이 기타를 들고 등장했다. 그는 호텔을 매개로 문학과 음악이 만났다는 게 참 근사하다고 했다. 호텔 측에서 맨 앞자리에 앉혀주신 덕에 덕원의 라이브를 정말 코앞에서 보고 듣게 됐다. 프린스 호텔의 상앗빛 로비, 낮은 천장, 소설가들, 그리고 옹기종기 모인 백여 명의 사람들, 호텔 직원들….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찰나였다. 어떻게 호텔에서 이런 순간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마지막엔 작가들이 다시 등장했다. 이은선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를 인용하며 작가에게 ‘자기만의 방’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전해주었다. 이 작가의 말은 결국 그토록 소중한 ‘공간’을 제공해준 프린스 호텔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호텔을 다루는 잡지를 만들며 나도 모르게 호텔을 비즈니스로만 생각하게 됐다. 이번 취재를 하며 새삼 느낀 건 호텔은 사람이 마주치는 공간이라는 것. 호텔에서 묵은 누군가가 그 얘기로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은 누군가는 작가를 호텔로 불러들인다. 그 작가는 또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결국 호텔은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피어나는 곳이다. 프린스 호텔 ‘소설가의 방’이 애송이 기자에게 울림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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